자 맹덕(孟德) · 155년 ~ 220년 · 예주 패국 초현 · 한 세력의 주인
난세의 간웅이자 초세지걸로 불린 조위의 진정한 건국자
출전 · 『삼국지』 위서 무제기와 배송지 주의 『위서』 · 『조만전』 · 『세어』 · 손성 『이동잡어』 · 『잡기』 · 『산양공재기』 · 위서 문제기 · 명제기 · 원소전 · 도겸전 · 곽가전의 배송지 주 『부자』 · 화타전 · 촉서 선주전 · 『후한서』 허소전 · 도겸전
조조는 자가 맹덕이며 패국 초현 사람으로, 『삼국지』 무제기는 그를 한나라 상국 조참의 후손이라 적습니다. 환관 조등이 할아버지이고 그 양자 조숭이 태위에 올랐으나, 조숭이 본디 어디서 났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조만전』과 『세어』는 조숭을 하후돈의 숙부라 합니다. 조조는 어려서 협객 노릇을 하며 멋대로 굴어 세상이 대단히 여기지 않았으나, 양국의 교현과 남양의 하옹만은 그를 남다르게 보았습니다. 교현은 천하가 어지러워질 터인데 「능히 편안하게 할 이는 그대일 것」이라 했습니다. 역시 배송지 주의 손성 『이동잡어』는 허소가 그를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이라 했다고 적고, 『후한서』 허소전은 「청평한 세상의 간적이요 어지러운 세상의 영웅」으로 다르게 전합니다.
스무 살에 효렴으로 천거되어 낙양 북부위가 되었습니다. 『조만전』은 그가 오색 몽둥이를 문에 걸어 두고 금령을 어긴 자는 세도가라도 때려죽였으며, 영제가 아끼던 소황문 건석의 숙부가 밤에 나다니자 그 자리에서 죽였다고 적습니다. 돈구령 · 의랑을 거쳐 광화 말년(184) 황건이 일어나자 기도위로 영천의 적을 쳤고, 제남상이 되어 뇌물을 탐하던 장리 여덟을 파면하고 음란한 제사를 끊었습니다.
중평 6년(189) 영제가 죽고 하진이 환관을 없애려 동탁을 불러들였습니다. 도성에 들어와 헌제를 세운 동탁이 그를 효기교위로 삼으려 하자, 조조는 이름을 바꾸고 샛길로 동쪽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길에 성고의 옛 벗 여백사의 집에서 사람들을 죽인 일을 배송지 주는 셋으로 전합니다. 『위서』는 여백사의 아들과 빈객이 말과 물건을 빼앗으려 해 몇 사람을 베었다 하고, 『세어』는 해칠까 의심해 밤에 여덟 사람을 죽였다 하며, 손성의 『잡기』는 그릇 소리에 해치려는 줄 알고 죽인 뒤 서글퍼하며 「차라리 내가 남을 저버릴지언정 남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겠다」고 했다고 적습니다. 그해 12월 그는 진류에서 집안 재산을 흩어 모은 의병으로 기오에서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초평 원년(190) 관동의 군웅이 원소를 맹주로 삼아 일어나자 조조는 분무장군 일을 맡았습니다. 동탁이 천자를 장안으로 옮기고 낙양을 불살랐는데도 제후들이 나아가지 못하자, 그는 장막이 보낸 위자와 함께 서쪽으로 나섰다가 형양 변수에서 동탁의 장수 서영에게 크게 졌습니다. 초평 3년(192) 청주의 황건 백만이 연주로 들어와 자사 유대가 죽자 포신 등이 그를 맞아 연주목으로 삼았고, 그해 겨울 항복한 군졸 30여만과 남녀 백여만을 받아 날랜 이들로 청주병을 삼았습니다.
아버지 조숭이 낭야에서 도겸에게 해를 입자 조조는 복수에 뜻을 두었고, 흥평 원년(194) 다시 도겸을 쳐 동해까지 이르며 지나는 곳마다 많이 죽였습니다. 『후한서』 도겸전은 앞선 초평 4년(193)의 싸움에서 여러 현을 도륙해 남녀 수십만을 죽이니 사수가 흐르지 못했다고 적고, 『삼국지』 도겸전은 도겸의 군사가 만을 헤아리게 죽었다고 적어 기록이 갈립니다. 그사이 장막과 진궁이 여포를 맞아들여 연주가 뒤집혔고, 조조는 복양에서 여포와 싸우다 불길 속에서 말에서 떨어져 왼손바닥을 데었으며, 흥평 2년(195)에 여포를 깨뜨려 연주를 되찾았습니다.
건안 원년(196) 낙양에서 천자를 모신 조조는 도읍을 허로 옮기고 대장군이 되었다가 원소에게 사양하고 사공이 되었으며, 조지 · 한호 등의 의논으로 둔전을 일으켰습니다. 197년 완에서 항복했던 장제의 조카 장수가 배반해 맏아들 조앙과 조카 조안민을 잃었고, 198년 하비에 기수와 사수를 대어 여포와 진궁을 사로잡아 죽였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부자』는 이 무렵 원소의 불손함을 근심하는 조조에게 곽가가 원소가 질 열 가지와 조조가 이길 열 가지를 들었다고 적고, 선주전은 조조가 몸을 맡겨 온 유비에게 「지금 천하의 영웅은 그대와 나뿐」이라 했다고 적습니다.
건안 5년(200) 정월 동승 등의 모의가 새어 모두 죽임을 당했고, 조조는 유비를 깨뜨려 관우를 항복받았습니다. 네 주를 차지한 원소와 관도에서 맞선 조조는 백마에서 안량을, 연진에서 문추를 베었으나, 군사는 만이 되지 않고 군량이 모자라 허로 돌아갈 뜻을 순욱에게 물었다가 만류를 들었습니다. 10월 원소의 모신 허유가 달아나 와서 오소에서 순우경 등이 지키는 군량을 치라고 권하자, 조조는 몸소 보병과 기병 5천을 이끌고 밤에 나가 순우경 등을 모두 베었고 원소의 무리는 크게 무너졌습니다. 그는 거둔 문서 가운데 자기 사람들이 원소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두 불태웠습니다. 배송지는 이 군사의 수를 의심했습니다.
원소가 건안 7년(202)에 죽자 조조는 그 아들들이 다투는 틈을 타 건안 9년(204) 장하의 물을 끌어 업을 떨어뜨리고 원소의 무덤에 제사하며 울었으며, 이듬해 남피에서 원담을 베어 기주를 평정했습니다. 건안 12년(207)에는 여러 장수가 말렸으나 곽가의 권유를 따라 원상 형제를 받아 준 오환을 치러 나섰고, 노룡새를 나와 산을 깎고 골짜기를 메우며 오백여 리를 나아가 백랑산에서 답돈을 베었습니다. 요동으로 달아난 원상 · 원희의 머리는 공손강이 베어 보냈습니다.
건안 13년(208) 승상이 된 조조는 남쪽으로 유표를 치러 나서 유종의 항복을 받았으나, 적벽에서 유비와 싸워 이롭지 못했고 역병으로 관리와 군사가 많이 죽자 물러났습니다. 210년 「오직 재주만으로 천거하라」는 영을 내렸고, 211년 마초 · 한수를 깨뜨려 관중을 평정했습니다. 213년 위공이 되어 구석을 받았고, 216년 위왕에 올랐으며, 217년 조비를 태자로 세웠습니다. 219년 한중에서 유비와 맞서다 물러났고, 220년 정월 낙양에서 예순여섯으로 죽었습니다. 장례가 끝나면 상복을 벗고 금과 옥을 넣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고, 2월 고릉에 묻혔으며 시호는 무왕입니다.
그해 황제가 된 조비는 아버지를 무황제로 추존했고, 명제 때 묘호를 태조로 정했습니다. 화타전은 두통을 앓던 그가 아내의 병을 핑계로 돌아오지 않은 화타를 옥에서 죽게 했다가, 아들 조충이 앓아 죽어 갈 때 이를 뉘우쳤다고 적습니다. 『위서』는 그가 군사를 부리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높은 곳에 오르면 반드시 시를 지었다고 적는 한편, 『조만전』은 그가 가볍고 위엄이 없었으며 법을 가혹하게 부렸다고 적습니다. 진수는 그가 신불해 · 상앙의 법술과 한신 · 백기의 계책을 아우르고 옛 원한을 생각하지 않아 끝내 큰 업을 이루었으니 「비상한 사람이요 세상을 뛰어넘은 호걸」이라 평했습니다.
太祖運籌演謀,鞭撻宇內,擥申、商之法術,該韓、白之奇策抑可謂非常之人,超世之傑矣『삼국연의』 제1~78회
연의에서 조조는 제1회에 처음 나옵니다. 황보숭 · 주준에게 쫓기던 장량 · 장보를 가로막는 기도위로, 키 일곱 자에 가는 눈과 긴 수염을 한 패국 초군 사람이라 소개됩니다. 연의는 아버지 조숭이 본디 하후씨로 중상시 조등의 양자가 되었다고 단정하고, 숙부를 속인 어린 날과 교현 · 하옹의 칭찬, 허소의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는 평을 차례로 들며, 낙양 북도위가 되어 오색 몽둥이로 금령을 어긴 중상시 건석의 숙부를 매질했다고 그립니다.
제4회에서 효기교위 조조는 왕윤에게 칠성보도를 빌려 동탁을 찌르려다 거울에 비친 모습 때문에 들키자 칼을 바치는 척하고 달아납니다. 중모현에서 붙잡혔다가 현령 진궁이 벼슬을 버리고 따라나서고, 성고의 여백사 집에서 칼 가는 소리와 「묶어서 죽이자」는 말을 듣고 여덟 식구를 죽인 뒤에야 돼지를 잡으려던 것임을 압니다. 술을 사 오던 여백사마저 베고는 「차라리 내가 천하 사람을 저버릴지언정 천하 사람이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겠다」고 합니다. 제5회에서는 거짓 조서를 돌려 제후들을 모으고 원소를 맹주로 세우며, 제6회에서는 머뭇거리는 제후들을 두고 홀로 동탁을 뒤쫓다가 형양에서 서영의 복병에 크게 져 조홍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집니다.
제20회 허전의 사냥에서는 천자의 활로 사슴을 맞히고 신하들의 만세를 천자 앞에 나서서 받으며, 제21회에서는 푸른 매실과 데운 술을 앞에 두고 유비에게 「지금 천하의 영웅은 그대와 나뿐」이라 말합니다. 제24회에서는 동승 등을 죽이고도 노여움이 풀리지 않아 아이를 밴 동귀비까지 궁문 밖에서 목 졸라 죽입니다. 제25회에서는 토산에 갇힌 관우가 내건 세 가지 약조를 받아들여 그를 맞고, 사흘에 작은 잔치 닷새에 큰 잔치를 베풀며 여포가 타던 적토마까지 내줍니다. 관우가 백마에서 안량을 베어 은혜를 갚고 금을 봉하고 인을 걸어 둔 채 떠나자, 제27회에서 조조는 「저마다 제 주인을 위하는 것」이라며 뒤쫓지 말라고 합니다.
제30회 관도에서는 허유가 찾아오자 신도 신지 않고 맨발로 뛰어나가 맞고, 오소의 군량을 불사른 뒤 원소와 몰래 편지를 주고받은 이들의 글을 모두 태웁니다. 제48회에서는 적벽의 배 위에서 창을 비껴들고 노래를 짓다가 그 노래가 불길하다고 한 유복을 창으로 찔러 죽이고, 제49회 적벽의 불에 크게 진 뒤 제50회 화용도에서 관우를 만나 옛 은혜를 들어 빌어서 길을 얻습니다. 제58회에는 마초에게 쫓겨 붉은 전포를 벗고 수염을 잘라 달아나고, 제66회에서는 자기를 없애려는 편지가 드러난 복황후를 매로 때려죽이게 합니다. 제72회 한중에서는 「계륵」이라는 군호의 뜻을 알아채고 짐을 꾸린 양수를 군심을 어지럽혔다며 벱니다.
제77회에서 손권이 보내온 관우의 머리를 왕후의 예로 낙양 남문 밖에 장사 지낸 조조는, 제78회에서 낙양에 건시전을 지으려 신목인 배나무를 베다가 두통을 얻습니다. 도끼로 머리를 열어야 한다는 화타를 관우의 원수를 갚으려는 것이라 의심해 옥에 가두니 화타는 옥에서 죽고, 조조는 가짜 무덤 일흔둘을 만들어 묻힌 곳을 모르게 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예순여섯에 죽습니다. 연의에서 조조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조숭 · 아내 변씨 · 아들 스물다섯(조앙 · 조비 · 조창 · 조식 · 조충 등)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내가 왔다. 길을 열어라.
천하를 두고 겨루는데 말이 빠질 수 있겠소?
그대의 뜻을 먼저 듣고 판단하겠소.
적벽의 불길이 떠오르는군.
…머리가 또 쑤시는구나.
차라리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화용도에서도 나는 웃었소. 오늘도 웃겠소.
천하가 한 걸음 가까워졌다.
…이번 패배도 셈에 넣어 두겠다.
내 향을 나누어 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