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程昱

자 중덕(仲德) · 141년 ~ 220년 · 연주 동군 동아현 · 조조 휘하

정욱 초상

연주를 사수하고 조조의 패업을 완성시킨 냉혹하고 대담한 전략가

능력치

통솔70무력49지력90정치79매력56

카드

공격력 3체력 4비용 3값어치 11직군 모사
함정 비용 2
비밀 · 적이 소환할 때 · 그 장수는 두 국면 더 멀미
반간 비용 2
적 하나가 이번 국면 적군을 한 번 공격한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정욱전과 배송지 주의 『위서』 · 『위략』 · 『세어』 · 서중의 평 · 위서 무제기 · 명제기 · 순욱전 · 이전전 · 촉서 장비전 · 제갈량전

정욱은 자가 중덕이며 동군 동아현 사람입니다. 키가 여덟 자 세 치였고 수염이 아름다웠습니다. 중평 원년(184) 황건이 일어나 현승 왕도가 호응하고 창고를 불태우자, 현령은 달아나고 관리와 백성은 동쪽 산으로 피했습니다. 정욱은 왕도의 무리가 성을 얻고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보고 성으로 돌아가 지키자고 했으나 백성들이 따르지 않자, 몰래 기병 몇을 동쪽 산 위에 올려 깃발을 들게 하고 적이 왔다고 외치며 성으로 달려가 백성들이 뒤따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현령을 찾아 함께 성을 지키다가 물러나려는 왕도를 쳐서 깨뜨려 동아를 온전히 지켰습니다.

초평 연간 연주자사 유대가 불렀으나 정욱은 응하지 않았습니다. 유대가 원소와 공손찬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꾀를 묻자, 정욱은 가까운 원소를 버리고 먼 공손찬에게 기대는 것은 물에 빠진 아이를 먼 월나라 사람을 빌려 구하려는 격이라 했고, 공손찬은 과연 원소에게 크게 졌습니다. 유대가 표를 올려 기도위로 삼으려 했으나 정욱은 병을 핑계로 사양했습니다. 초평 3년(192) 유대가 황건에게 죽고 조조가 연주에 들어와 부르자 정욱은 곧 나섰고, 고을 사람들이 어찌 앞뒤가 이리 다르냐고 하자 웃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조조는 그와 이야기해 보고 기뻐하며 수장령을 맡겼습니다.

흥평 원년(194) 조조가 서주를 치러 가며 정욱과 순욱에게 견성을 지키게 했는데, 장막 등이 배반해 여포를 맞아들이자 군과 현이 모두 호응하고 견성 · 범 · 동아만 남았습니다. 순욱의 부탁으로 돌아간 정욱은 범을 지나며 여포에게 어머니와 처자가 잡혀 있는 범령 근윤에게 여포는 거칠고 예가 없는 필부의 영웅일 뿐이라며 범을 굳게 지키라고 달랬고, 근윤은 눈물을 흘리며 두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정욱은 또 기병을 보내 창정진을 끊어 진궁이 건너지 못하게 했고, 동아령 조지 · 연주종사 설제와 함께 마침내 세 성을 지켜 조조를 기다렸습니다. 돌아온 조조는 그의 손을 잡고 「그대의 힘이 아니었다면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을 것」이라 하고 동평상으로 삼았습니다. 배송지 주의 『위서』는 정욱이 젊어서 태산에 올라 두 손으로 해를 받드는 꿈을 꾸었는데, 이때 순욱이 그 꿈을 아뢰자 조조가 본래 이름 립 위에 해를 뜻하는 일 자를 얹어 욱으로 바꾸어 주었다고 적습니다.

그해 조조가 복양에서 여포와 싸워 거듭 불리하자, 원소가 손을 잡자며 조조의 가족을 업으로 옮기게 하려 했고 연주를 잃고 군량도 떨어진 조조는 받아들이려 했습니다. 정욱은 일에 닥쳐 두려워하시는 것이라며, 원소는 천하를 삼킬 마음은 있어도 지혜가 따르지 못하는데 그 아래에 있을 수 있겠느냐고 따지고, 아직 세 성과 싸울 군사 만여 명이 있으니 거두어 쓰면 패왕의 업을 이룰 수 있다고 하자 조조는 그만두었습니다.

건안 원년(196) 천자가 허에 도읍하자 정욱은 상서가 되었다가, 연주가 아직 안정되지 않아 동중랑장으로 제음태수를 겸하며 연주의 일을 감독했습니다. 서주를 잃은 유비가 오자 정욱은 그가 끝내 남의 아래에 있지 않을 것이니 일찍 도모하라고 했으나 조조는 영웅을 거둘 때라며 듣지 않았고, 199년 조조가 유비를 보내 원술을 막게 하자 정욱은 곽가와 함께 군사를 빌려주면 반드시 딴마음을 품을 것이라 했으나 이미 늦었습니다. 건안 5년(200) 원소가 여양에서 황하를 건너려 할 때 정욱은 군사 칠백으로 견성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조조가 2천을 더 보내려 하자, 정욱은 원소가 십만 무리를 믿으니 군사가 적은 것을 보면 얕보고 치러 오지 않겠지만 군사를 늘리면 지나가다 치지 않을 수 없으니 둘 다 잃을 뿐이라며 사양했습니다. 원소는 과연 오지 않았고, 조조는 가후에게 「정욱의 담력은 맹분과 하육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정욱은 산과 늪으로 달아난 이들을 거두어 정병 수천을 얻고 여양에서 원담과 원상을 쳐서, 분무장군이 되고 안국정후에 봉해졌습니다.

건안 13년(208) 조조가 형주를 치자 유비가 오로 달아났고, 모두 손권이 반드시 유비를 죽일 것이라 했습니다. 정욱은 손권이 홀로 조조를 당하지 못하니 관우와 장비가 모두 만 명을 당해 낼 만한 유비를 밑천 삼아 조조를 막을 것이라 내다보았고, 손권은 과연 유비에게 군사를 많이 주었습니다. 중원이 차츰 평정되자 조조는 정욱의 등을 두드리며 연주에서 졌을 때 그대의 말이 아니었다면 어찌 여기에 이르렀겠느냐고 했고, 정욱은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으니 나는 물러날 만하다」며 스스로 군사를 돌려주고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배송지 주의 『위서』는 211년 조조가 마초를 치러 간 사이 조비를 도운 정욱이 하간의 반란에서 항복한 무리를 죽이지 말자고 해, 조조가 군사의 셈에 밝을 뿐 아니라 남의 부자 사이도 잘 다룬다고 기뻐했다고 적습니다.

정욱은 성품이 굳세고 사나워 남과 자주 어긋났고, 어떤 이가 그가 모반한다고 고했으나 조조는 오히려 더 후하게 대했습니다. 213년 위나라가 서자 위위가 되었으나 중위 형정과 위의를 다투다 물러났습니다. 220년 조비가 즉위하자 다시 위위가 되어 안향후로 올랐고, 막내아들 정연과 손자 정효도 열후에 봉해졌습니다. 조비가 그를 공으로 삼으려던 참에 정욱이 죽으니 조비는 눈물을 흘리고 거기장군을 추증했으며 시호는 숙후입니다. 『위서』는 그때 나이가 여든이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세어』는 예전에 조조의 군량이 모자랄 때 정욱이 제 고을을 노략해 사흘 치 양식을 대면서 사람 고기 말린 것을 꽤 섞었고, 이 일로 조정의 신망을 잃어 자리가 공에 이르지 못했다고 적습니다.

아들 정무가 뒤를 이었고, 손자 정효는 가평 연간 황문시랑으로 교사의 횡포를 따지는 글을 올려 그 벼슬을 없애게 했습니다. 청룡 원년(233) 조정은 정욱을 태조의 묘정에 함께 제사하게 했습니다. 장비전은 정욱 등이 관우와 장비를 만 명을 당해 낼 사람이라 일컬었다고 적습니다. 진수는 정욱 · 곽가 · 동소 · 유엽 · 장제를 두고 「재주와 꾀가 세상의 기이한 선비이니, 맑게 다스리는 덕업은 순유와 다르나 헤아리고 내다본 것은 그와 짝이 된다」고 평했습니다.

程昱、郭嘉、董昭、劉曄、蔣濟才策謀略,世之奇士,雖清治德業,殊於荀攸,而籌畫所料,是其倫也
정욱 · 곽가 · 동소 · 유엽 · 장제는 재주와 꾀가 세상의 기이한 선비이니, 맑게 다스리는 덕업은 순유와 다르나 헤아리고 내다본 것은 그와 짝이 된다『삼국지』 위서 정욱전 평
程昱之膽,過於賁、育
정욱의 담력은 맹분과 하육보다 낫다『삼국지』 위서 정욱전에 실린 조조의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0~61회

연의에서 정욱은 제10회에 처음 나옵니다. 연주에서 인재를 모으던 조조에게 순욱이 동군 동아 사람 정욱을 천거하자, 조조는 산속에서 글을 읽던 그를 찾아 절하며 청하고, 정욱은 순욱의 고향 사람 곽가를 일깨워 천거하게 합니다. 제11회에서 여포가 연주를 휩쓸 때 견성 · 동아 · 범현 세 곳은 순욱과 정욱의 계책으로 지켜지고, 제14회에서는 동평상이 됩니다. 제16회에서는 곽가의 말에 따라 유비를 예주목으로 삼으려는 조조에게 유비는 끝내 남의 아래에 있지 않을 사람이니 일찍 도모하라고 간하고, 제20회에서는 조조의 위세가 날로 커지니 왕패의 일을 행하라고 권해 허전의 사냥으로 이어집니다. 제21회에서는 유비에게 군사를 준 것을 두고 용을 바다에 놓아주고 범을 산으로 돌려보낸 격이라며 곽가와 함께 말립니다.

제24회에서는 의대조의 일이 드러나 헌제를 폐하려는 조조를 한나라의 이름을 받들기에 천하를 호령할 수 있다며 말리고, 하비의 관우를 사로잡을 꾀를 내어 제25회에서 거짓 항복한 군사를 성에 들이고 관우를 꾀어내 돌아갈 길을 끊게 합니다. 이어 안량을 당할 사람으로 관우를 천거하며, 관우가 원소의 군사를 깨뜨리면 원소가 유비를 의심해 죽일 것이라고 셈합니다. 제27회에서는 떠나는 관우를 쫓아 죽여 뒷날의 걱정을 없애자고 하지만 조조는 약속을 지킵니다. 제31회에서 창정의 원소와 맞선 조조에게 「십면매복」의 계책을 내어, 강가로 물러나 군사 열 갈래를 숨겨 두고 원소를 꾀어 크게 깨뜨리게 합니다.

제36회에서는 유비의 군사 단복이 영천의 서서라는 것을 밝히고 효자인 서서의 어머니를 데려오면 된다고 하며, 벼루를 던진 서서의 어머니를 죽이려는 조조를 말린 뒤 서서와 의형제를 맺었다고 속여 어머니의 글씨를 얻고, 그 글씨를 흉내 낸 거짓 편지로 서서를 허창으로 불러들입니다. 제37회에서 속은 것을 안 서서의 어머니는 스스로 목을 맵니다. 제48회에서는 배를 사슬로 묶은 것을 보고 화공을 경계하지만 조조는 겨울에 동남풍이 없다며 웃고, 제49회에서는 동남풍이 부는 밤 다가오는 황개의 배가 가볍게 떠 있다며 거짓 항복임을 알아보지만 이미 늦습니다. 제50회 화용도에서는 관우가 은혜와 원한이 분명하니 옛정에 호소하라고 권해 조조를 살립니다. 제56회에서는 주유를 남군태수로 삼게 해 손권과 유비를 서로 싸우게 하자는 꾀를 내고, 제61회에서는 유수에서 손권에게 막힌 조조에게 군사를 물리자고 권합니다. 연의에서 정욱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제92회에서 아들 정무가 하후무의 참군으로 조운을 꾀어 에워쌀 복병의 꾀를 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84황건이 일어나 현승 왕도가 호응하자 꾀로 관리와 백성을 성으로 되돌려 동아를 지켰습니다.
  2. 192유대의 부름은 마다했으나 조조가 연주에 들어와 부르자 곧 나아가 수장령이 되었습니다.연주의 사람
  3. 194장막 등이 여포를 맞아들이자 순욱과 함께 견성 · 범 · 동아 세 성을 지켜 냈습니다.
  4. 194원소와 손잡고 가족을 업으로 보내려는 조조를 말렸습니다.
  5. 196몸을 맡겨 온 유비를 일찍 도모하라고 권했으나 조조가 듣지 않았습니다.
  6. 199곽가와 함께 원술을 막으러 나가는 유비를 놓아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7. 200칠백 명으로 견성을 지키며 조조가 보내려는 2천 명을 사양했습니다.
  8. 203여양에서 원담과 원상을 친 공으로 분무장군이 되고 안국정후에 봉해졌습니다.
  9. 208모두가 손권이 유비를 죽이리라 할 때 오히려 도우리라 내다보았습니다.
  10. 211하간의 반란에서 항복한 무리를 죽이지 말자고 했다고 『위서』가 적습니다.
  11. 213위나라가 서자 위위가 되었으나 중위 형정과 위의를 다투다 물러났습니다.
  12. 220조비가 즉위하자 다시 위위가 되었고, 공으로 삼으려던 참에 여든으로 죽었습니다.
  13. 233조정이 그를 태조의 묘정에 함께 제사하게 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들 정무 · 막내아들 정연 · 손자 정효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연주는 내가 지켰다.

말을 열며

정중덕이오. 에두르지 않겠소.

되받으며

듣고 곧바로 답하겠소.

말문이 막혀

…판이 무겁구려.

말문이 막혀

생각을 고쳐야겠군.

설전을 이기고

매복은 열 겹이라야 그물이 되오.

설전에 지고

…내 눈이 흐렸구려.

이긴 뒤

연주를 지킨 손이오.

진 뒤

…성 하나가 흔들렸군.

쓰러지며

연주를 지킨 일이 처음이자 끝.

같은 기치 아래

조조하후연하후돈서황학소허저조인전위문앙우금악진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