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봉효(奉孝) · 170년 ~ 207년 · 예주 영천군 양책현 · 조조 휘하
신출귀몰한 통찰력으로 조조의 하북 제패를 이끈 천재 모사
출전 · 『삼국지』 위서 곽가전과 배송지 주의 『부자』 · 『위서』 · 『세어』 · 위서 무제기 · 순욱전 · 순유전 · 정욱전 · 삼소제기와 배송지의 말
곽가는 자가 봉효이며 영천군 양책현 사람입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부자』는 그가 젊어서부터 멀리 내다보는 도량이 있었고, 한나라 말 천하가 어지러워지려 하자 스무 살 무렵부터 이름과 자취를 감춘 채 뛰어난 이들과 남몰래 사귀어 식견이 트인 이들만 그를 기이하게 여겼으며, 스물일곱에 사도부의 부름을 받았다고 적습니다. 처음에 그는 북쪽으로 원소를 찾아가 만났으나, 원소의 모사 신평과 곽도에게 원공은 주공이 선비에게 몸을 낮춘 것을 흉내 낼 뿐 사람을 쓰는 기미를 모르고 「꾀하기를 좋아하나 결단이 없으니」 함께 패왕의 업을 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떠났습니다.
이보다 앞서 조조가 크게 아끼던 영천의 모사 희지재가 일찍 죽자, 조조는 순욱에게 편지를 보내 누가 그를 이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순욱이 곽가를 천거했습니다. 조조는 그를 불러 천하의 일을 논한 뒤 「나로 하여금 대업을 이루게 할 사람은 반드시 이 사람이다」 했고, 곽가도 나와서 「참으로 나의 주인이다」 하고 기뻐했습니다. 조조는 표를 올려 그를 사공군좨주로 삼았습니다. 『부자』는 원소가 거듭 불손하게 굴어 칠 힘이 모자라다고 근심하는 조조에게 곽가가 원소가 질 열 가지와 조조가 이길 열 가지를 들어 보이고, 원소가 북쪽으로 공손찬을 치는 틈에 먼저 동쪽의 여포를 치라고 권했다고 적습니다.
건안 3년(198) 조조는 여포와 세 번 싸워 모두 이겼으나, 여포가 하비에 물러나 굳게 지키고 군사들이 지치자 군사를 돌리려 했습니다. 곽가는 서둘러 치라고 권했고, 순유전과 무제기는 순유와 곽가의 계책을 따라 기수와 사수를 터 성에 물을 대어 여포를 사로잡았다고 적습니다. 유비를 두고 한 말은 기록이 갈립니다. 배송지 주의 『위서』는 궁해서 온 영웅을 해치면 지혜로운 선비들이 스스로 의심해 주인을 다시 고를 것이라며 곽가가 유비를 죽이지 말라고 했다고 적고, 『부자』는 유비가 끝내 남의 아래에 있지 않을 사람이니 일찍 손써야 한다고 했다고 적어, 배송지는 두 기록이 정반대라고 했습니다. 199년 조조가 유비를 보내 원술을 막게 하자 정욱과 곽가가 함께 유비를 놓아주어서는 안 된다고 했으나 이미 늦었습니다.
손책이 강동을 다 차지한 뒤, 조조와 원소가 관도에서 맞서는 틈에 강을 건너 허를 치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 모두가 두려워했습니다. 곽가는 손책이 가볍고 대비가 없어 자객이 숨었다 일어나면 한 사람의 적일 뿐이니 「반드시 필부의 손에 죽을 것」이라고 내다보았고, 손책은 강을 건너기 전에 과연 허공의 식객에게 죽었습니다. 배송지는 이를 일을 밝게 본 것이라 하면서도, 죽을 해까지 알 수는 없었으니 허를 치려던 해에 죽은 것은 우연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원소가 죽은 뒤 곽가는 조조를 따라 여양에서 원담과 원상을 잇달아 이겼습니다. 장수들이 이긴 김에 몰아치자고 하자, 곽가는 원소가 두 아들을 아껴 누구도 세우지 못했고 곽도와 봉기가 둘 사이를 다투게 할 것이라며 「급히 몰면 서로 붙들고 늦추면 다툴 마음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유표를 치러 가는 것처럼 남쪽으로 향해 변을 기다렸다가 치면 한 번에 평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건안 8년(203) 조조가 서평에 이르자 과연 원담과 원상이 기주를 두고 싸웠고, 진 원담은 신비를 보내 항복을 청했습니다. 곽가는 조조를 따라 업을 평정하고 남피에서 원담을 쳐 205년 기주가 평정되자 유양정후에 봉해졌습니다. 『부자』는 하북이 평정된 뒤 조조가 그곳의 이름난 선비를 많이 불러 쓴 것도 곽가의 꾀였다고 적습니다.
건안 12년(207) 조조가 원상 형제와 오환을 치려 하자 많은 이가 유표가 유비를 시켜 허를 칠까 두려워했습니다. 곽가는 오환은 멀리 있음을 믿고 대비하지 않을 것이니 갑자기 치면 깨뜨릴 수 있고, 원상 형제를 두고 남쪽으로 가면 청주와 기주를 잃을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또 「유표는 앉아서 말만 하는 손님일 뿐」이라 유비를 무겁게 쓰면 다스리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가볍게 쓰면 유비가 힘을 다하지 않을 것이니, 나라를 비우고 멀리 가도 걱정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역에 이르러서는 「군사는 귀신같이 빨라야 한다」며 짐을 남겨 두고 가벼운 군사로 길을 재촉하자고 했고, 조조는 몰래 노룡새를 나가 백랑산에서 답돈을 베었습니다.
곽가전은 그가 깊이 통달하고 셈과 꾀가 있어 일의 실정에 밝았다고 적고, 조조는 「오직 봉효만이 내 뜻을 안다」고 했습니다. 진군은 곽가가 행실을 단속하지 않는다며 여러 번 조정에서 따졌으나 곽가는 태연했고, 조조는 곽가를 더욱 중히 여기면서도 바른 것을 지키는 진군도 좋게 여겼습니다. 곽가는 서른여덟에 유성에서 돌아오다 병이 깊어졌고, 조조는 문병하는 사람을 잇달아 보냈습니다. 그가 죽자 조조는 몸소 조문하며 몹시 슬퍼했고, 순유 등에게 봉효가 가장 젊어 천하의 일이 끝나면 뒷일을 맡기려 했는데 한창 나이에 요절했으니 「운명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조조는 표를 올려 「신의 계책이 정해지지 않으면 곽가가 늘 이루어 냈으니 천하를 평정한 꾀의 공이 가장 높다」며 봉읍을 800호 더해 1천 호로 하게 했고, 시호는 정후입니다.
건안 13년(208) 형주에서 돌아오던 조조는 파구에서 역병을 만나 배를 불태우고 「곽봉효가 있었다면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탄식했습니다. 『부자』에 실린 조조의 편지는 곽가가 남방에는 역병이 있어 가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고 늘 말하면서도 함께 꾀할 때는 형주를 먼저 평정해야 한다고 했다며 그를 잊지 못했습니다. 아들 곽혁이 뒤를 이어 태자문학이 되었으나 일찍 죽었고, 손자 곽심과 증손 곽렵이 차례로 이었습니다. 경원 3년(262) 조정은 곽가를 태조의 묘정에 함께 제사하게 했는데, 배송지는 그보다 앞서 정욱은 올리고 곽가는 빠뜨린 까닭을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진수는 정욱 · 곽가 · 동소 · 유엽 · 장제를 두고 「재주와 꾀가 세상의 기이한 선비이니, 맑게 다스리는 덕업은 순유와 다르나 헤아리고 내다본 것은 그와 짝이 된다」고 평했습니다.
程昱、郭嘉、董昭、劉曄、蔣濟才策謀略,世之奇士,雖清治德業,殊於荀攸,而籌畫所料,是其倫也每有大議,臨敵制變。臣策未決,嘉輒成之。平定天下,謀功為高『삼국연의』 제10~33회
연의에서 곽가는 제10회에 처음 나옵니다. 연주에서 인재를 모으던 조조에게 순욱의 천거로 온 정욱이 순욱의 고향 사람 곽가를 일깨우자, 순욱이 조조에게 아뢰어 그를 연주로 불러들이고, 곽가는 다시 광무제의 후손 유엽을 천거합니다. 제11회에서는 서주를 치던 조조에게 유비가 편지를 보내자 좋은 말로 답해 방심하게 하라고 하고, 여포가 연주를 차지했다는 소식에는 유비에게 인정을 베푸는 셈 치고 군사를 물리자고 합니다. 제14회에서 조조가 천자를 허도로 옮긴 뒤에는 사마좨주가 됩니다. 제16회에서는 순욱이 유비를 죽이라고 하자 궁해서 찾아온 영웅을 해치면 천하의 지혜로운 선비들이 발길을 끊을 것이라며 말리고, 제17회에서는 제 말이 보리밭을 짓밟아 스스로 목을 베려는 조조에게 법은 존귀한 이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춘추』의 뜻을 일깨우니, 조조는 머리카락을 잘라 목을 대신합니다.
제18회에서 원소의 오만한 편지를 받은 조조에게 원소가 질 열 가지와 조조가 이길 열 가지를 들고 먼저 여포를 치자고 하며, 순욱은 그 말이 제 생각과 같다고 맞장구칩니다. 제19회에서 하비를 두 달 동안 떨어뜨리지 못하자 곽가가 성을 곧 깨뜨릴 꾀가 있다고 하고, 순욱이 기수와 사수의 물을 트는 것이냐고 알아맞히자 웃으며 그렇다고 합니다. 제21회에서는 유비가 군사를 거느리고 떠난 것을 알고 정욱과 함께 달려와 하루 적을 놓아주면 만대의 걱정이 된다며 말립니다. 제23회에서 예형은 조조의 모사들을 헐뜯으며 곽가는 글이나 읊게 할 만하다고 합니다. 제24회에서는 원소는 느리고 의심이 많으니 먼저 유비를 치자고 하고, 관우는 의리가 깊어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제29회에서는 손책이 가볍고 대비가 없어 소인의 손에 죽으리라 한 그의 말이 사신을 거쳐 손책의 귀에 들어가 손책을 크게 노하게 합니다. 제32회에서는 원씨 형제를 몰아치면 서로 돕고 늦추면 서로 다툴 것이라며 형주로 군사를 돌리자고 합니다.
제33회에서 조조가 오환을 치려 하자 곽가는 여러 장수의 걱정을 물리치고 원정을 권하지만, 풍토가 맞지 않아 병들어 수레에 누운 채로 「군사는 귀신같이 빨라야 한다」며 짐을 두고 가볍게 달려가라고 일깨웁니다. 조조는 그를 역주에 남겨 병을 돌보게 하는데, 조조가 돌아왔을 때 곽가는 이미 죽은 지 며칠이 지났고, 조조는 봉효가 죽은 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라며 통곡합니다. 곽가가 죽기 전에 봉해 둔 편지에는 요동으로 달아난 원희와 원상을 치지 말고 늦추면 공손강과 서로 도모할 것이라는 셈이 적혀 있었고, 과연 공손강이 두 사람의 목을 보내옵니다. 연의는 그가 서른여덟에 죽었다고 적습니다. 연의에서 곽가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제34회에서 조조는 그를 정후로 추증하고 아들 곽혁을 제 집에서 기르며, 제50회에서 적벽에서 지고 남군에 이른 조조는 봉효가 있었다면 결코 이런 큰 실패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가슴을 치고 통곡합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곽혁 · 손자 곽심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앞이 보이오.
곽봉효요. 오래 끌 몸이 아니니 빨리 갑시다.
답은 이미 알고 있소. 확인만 하겠소.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군.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구려.
열 가지 이길 까닭을 대 드리리다.
…서른여덟이면 짧구려.
보이는 대로 되었소.
…길이 너무 멀었구려.
…요동의 길이 너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