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효(子孝) · 168년 ~ 223년 · 예주 패국 초현 · 조조 휘하
강릉에서 주유와 한 해 남짓 맞서고 번성에서 관우를 버텨 낸 조조의 종제
출전 · 『삼국지』 위서 조인전과 배송지 주의 『위서』 · 『부자』 · 위서 무제기 · 문제기 · 명제기 · 만총전 · 장제전 · 오서 오주전 · 손책전 · 주유전 · 주환전 · 『진서』 선제기
조인은 자가 자효이며 조조의 종제입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서』는 할아버지 조포가 영천태수를, 아버지 조치가 시중 · 장수교위를 지냈다고 적습니다. 젊어서 활쏘기와 말타기, 사냥을 좋아했고, 호걸들이 일어나자 몰래 젊은이 천여 명을 모아 회수와 사수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조조를 따라 별부사마가 되었습니다.
조인은 조조가 원술을 깨뜨릴 때 많은 적을 베고 사로잡았고, 서주를 칠 때는 늘 기병을 거느린 선봉으로 도겸의 장수 여유와 그 구원군을 깨뜨렸으며, 여포를 칠 때는 구양을 빼앗고 여포의 장수 유하를 사로잡았습니다. 건안 원년(196) 조조가 천자를 맞아 허에 도읍할 때 여러 번 공을 세워 광양태수가 되었는데, 조조는 그의 용맹과 지략을 높이 사 군으로 보내지 않고 의랑으로서 기병을 거느리게 했습니다. 장수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쫓겨 군사들이 기가 꺾였을 때는 장병을 크게 북돋워 조조가 이를 장하게 여겼습니다.
건안 5년(200) 조조가 관도에서 원소와 맞서자, 원소는 유비를 보내 여러 현을 돌게 했고 많은 현이 이에 응해 허 남쪽이 불안해졌습니다. 조인은 「유비는 원소의 군사를 새로 거느려 아직 부리지 못하니 치면 깨뜨릴 수 있다」고 했고, 기병을 이끌고 가서 유비를 쫓아 버린 뒤 배반한 현들을 모두 되찾았습니다. 또 원소가 서쪽 길을 끊으려 보낸 한순을 계락산에서 깨뜨리고, 사환 등과 함께 원소의 군량 수레를 불살랐습니다. 건안 11년(206) 호관을 에워쌌을 때 조조가 성을 빼앗으면 모두 산 채로 묻겠다고 해 여러 달이 되도록 성이 떨어지지 않자, 조인은 「성을 에워쌀 때는 살 길을 열어 보여야 하는데 반드시 죽이겠다고 하니 저마다 스스로 지키려 한다」고 아뢰었습니다. 조조가 그 말을 따르자 성이 항복했고, 조인은 도정후에 봉해졌습니다.
건안 13년(208) 형주를 평정한 뒤 조인은 행정남장군으로 강릉에 남아 주유를 막았습니다. 주유의 선봉 수천이 이르자 조인은 3백 명을 모아 부곡장 우금에게 나가 싸우게 했습니다. 이 우금은 뒷날 관우에게 항복한 우금과 다른 사람입니다. 우금의 무리가 에워싸이자 조인은 말리는 장사 진교 등을 뿌리치고 날랜 기병 수십을 이끌고 성을 나가, 해자를 건너 에움 속으로 뛰어들어 우금 등을 풀어내고 남은 무리를 구하러 다시 들이쳐 빼냈습니다. 진교 등은 「장군은 참으로 하늘 사람」이라 감탄했고 삼군이 그의 용맹에 복종했으며, 조조는 그를 안평정후로 옮겨 봉했습니다. 주유전은 주유가 몸소 적진을 누비다 날아든 화살에 오른 옆구리를 맞았고, 그가 누워 있다는 말에 조인이 진을 치자 주유가 일어나 군사를 북돋워 조인을 물리쳤다고 적습니다. 오주전은 건안 14년(209) 두 사람이 한 해 남짓 맞선 끝에 조인이 성을 버리고 떠났다고 적습니다.
건안 16년(211) 조인은 행안서장군으로 동관을 막고 위남에서 마초를 깨뜨렸고, 하간에서 소백과 전은이 반란하자 행효기장군으로 일곱 군을 거느려 평정했습니다. 이어 행정남장군 · 가절로 번에 머물며 형주를 지켰고, 건안 24년(219) 정월 완에서 반란한 후음을 베고 정남장군이 되었습니다.
그해 관우가 번을 쳤습니다. 장마로 한수가 넘쳐 구원 온 우금 등 일곱 군이 물에 잠기고 우금은 관우에게 항복했습니다. 조인은 사람과 말 수천으로 성을 지켰는데, 성이 물에 잠기지 않은 곳은 몇 판뿐이었고 관우가 배를 타고 여러 겹으로 에워싸니 안팎이 끊기고 군량이 다해 가도 구원군은 오지 않았습니다. 조인이 장병을 북돋우며 반드시 죽겠다는 뜻을 보이자 장병들이 감동해 모두 두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만총전에 따르면 어떤 이가 가벼운 배로 밤에 달아나자고 하자 여남태수 만총이 산의 물은 빨리 빠지니 기다리자고 말렸고, 조인이 따르자 만총은 흰 말을 물에 빠뜨려 군사들과 맹세했습니다. 서황의 구원군이 이르고 물도 조금 빠지자 서황이 밖에서 관우를 쳤고, 조인은 에움을 뚫고 나왔으며 관우는 물러갔습니다.
조인은 젊어서 행실을 닦지 않았으나 자라서 장수가 되자 엄하게 법령을 받들어 늘 조목을 곁에 두고 일을 처리했고, 동궁의 조비는 오환을 치러 가는 아우 조창에게 「장수가 되어 법을 받드는 것은 정남장군처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일렀습니다. 연강 원년(220) 조비가 위왕이 되자 조인은 거기장군으로 형주 · 양주 · 익주의 군사를 도맡고 진후에 올랐습니다. 『진서』 선제기는 이 무렵 조정이 그를 완으로 불러들이자 조인이 번과 양양 두 성을 불사르고 버렸다고 적습니다. 오의 진소가 양양을 차지하자 조인은 서황과 함께 그를 깨뜨렸고, 황초 2년(221) 대장군을 거쳐 그해 11월 대사마가 되었습니다.
황초 3년(222) 조비가 세 길로 오를 치자 조인은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유수로 나섰습니다. 장제는 유수의 가운데 섬으로 들어가는 것은 스스로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라 말렸으나 조인은 듣지 않았고, 이듬해 3월 아들 조태와 장군 상조 등이 유수성과 가운데 섬을 쳤으나 주환이 상조를 베었고 위군 천여 명이 죽거나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문제기는 같은 3월에 대사마 조인이 죽었다고 적습니다. 시호는 충후이고, 『위서』는 그때 나이가 쉰여섯이었다고 적습니다.
아들 조태가 뒤를 이어 진동장군에 이르렀고, 조태의 아우 조해와 조범도 열후가 되었습니다. 청룡 원년(233) 명제는 하후돈 · 정욱과 함께 조인을 태조의 묘정에 배향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부자』는 「조 대사마의 용맹은 맹분과 하육도 더할 수 없고, 장료가 그다음이다」라고 했습니다. 진수는 하후씨와 조씨가 대대로 혼인한 사이라 하후돈 · 하후연 · 조인 · 조홍 · 조휴 · 하후상 · 조진 등이 모두 가까운 친척으로 그 시대에 귀하게 쓰였고, 곁에서 공업을 도와 모두 힘쓴 보람이 있었다고 평했습니다.
故惇、淵、仁、洪、休、尚、真等並以親舊肺腑,貴重於時,左右勳業,咸有効勞曹大司馬之勇,賁、育弗加也。張辽其次焉『삼국연의』 제5~86회
연의에서 조인은 제5회에 처음 나옵니다. 조조가 의병을 일으키자 조씨 형제인 조인과 조홍이 저마다 천여 명을 이끌고 와 돕는데, 연의는 두 사람이 병마에 익숙하고 무예에 정통했다고 소개합니다. 제6회 형양 싸움에서는 곽사를 맞아 싸우고, 제11회에서는 여포에게 연주를 빼앗긴 뒤 여러 번 싸워도 이기지 못해 조조에게 급함을 알립니다. 제19회에서는 조조의 명으로 소패를 기습해 차지하고, 제29회에서 조조는 사자 새끼와는 다투기 어렵다며 조인의 딸을 손책의 막내아우 손광에게 시집보냅니다.
제35~36회에서 조인은 번성에 머물며 형주를 노리다가 신야로 보낸 여광 · 여상을 잃고, 말리는 이전을 나무라며 몸소 나서 팔문금쇄진을 벌입니다. 유비의 군사 단복(서서)이 동남쪽 생문으로 들어가 서쪽 경문으로 나오면 진이 어지러워진다고 짚어 조운이 진을 깨뜨리고, 밤에 진영을 치러 갔다가 다시 지며, 돌아와 보니 번성은 관우가 이미 차지해 있습니다. 조인은 허도로 돌아가 조조 앞에 엎드려 울며 죄를 청합니다. 제40회에서는 조홍과 함께 선봉 10만을 이끌고 신야에 들었다가 제갈량이 놓은 불에 쫓기고 백하의 물에 휩쓸립니다.
제50회에서 조인은 적벽에서 쫓겨 오는 조조를 남군에서 맞고, 조조는 급할 때만 열라는 계책을 남기고 돌아갑니다. 제51회에서 조인은 오군에게 에워싸인 우금을 구하러 몸소 수백 기를 이끌고 적진에 뛰어들고, 조조가 남긴 계책을 열어 성을 비운 듯 꾸며 쫓아 들어온 주유가 옹성에서 쇠뇌 화살에 왼쪽 옆구리를 맞게 합니다. 화살촉에 독이 있어 성을 내면 상처가 터진다던 주유가 죽은 척하자, 조인은 그 말을 믿고 밤에 오의 진영을 치다 크게 지고, 그 사이 남군은 조운에게, 형주와 양양은 장비와 관우에게 넘어갑니다.
제58회 동관 싸움에서는 동관을 잃고 쫓겨 오는 조홍을 구하고 조조의 영채를 굳게 지키며, 제66회에서는 밤중에 조조를 뵈러 왔다가 허저에게 막힙니다. 제73회에서 관우가 쳐들어오자 만총의 말을 듣지 않고 나가 싸우다 양양을 잃고 번성으로 물러나고, 제74회에서 성이 물에 잠기자 배를 타고 밤에 달아나려다 만총의 말을 듣고 흰 말을 타고 성에 올라 성을 버리자는 자는 베겠다고 맹세합니다. 이어 궁노수 5백에게 활을 쏘게 해 관우의 오른팔을 맞히는데, 제75회는 그 화살촉에 독이 묻어 있었다고 합니다. 제76회에서는 서황과 함께 관우를 협공하고, 에움이 풀리자 조조 앞에 울며 죄를 청하지만 조조는 하늘의 운수이지 너희의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제84~85회에서 조비가 세 길로 오를 치자 조인은 유수로 나서는데, 주환이 앞서 보낸 상조를 베고 선계에서 오군이 쏟아져 나오자 크게 져 물러납니다. 제86회는 조비가 다시 오를 치려 할 때 대사마 조인과 태위 가후가 이미 죽었다고 적으니, 연의에서 조인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할아버지 조포 · 아버지 조치 · 아우 조순 · 아들 조태 · 조해 · 조범 · 종형 조조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이 성은 안 무너진다.
조자효요. 성을 맡았으면 지킬 뿐이오.
허튼소리는 성벽에 튕겨 나가오.
…성벽이 우는구려.
물이 차올라도 버티겠소.
지켜 낸 자가 이긴 것이오.
…성을 잃는 것보다 부끄럽소.
성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오.
…성벽 하나를 내주었소.
성을 지키는 일은 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