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于禁

자 문칙(文則) · 미상 ~ 221년 무렵 · 연주 태산군 거평현 · 조조 휘하

우금 초상

엄정한 군율로 조조군을 이끌었으나 말년의 항복으로 명예를 잃은 명장

능력치

통솔84무력77지력72정치57매력56

카드

공격력 5체력 5비용 4값어치 12직군 맹장
징모 호령
소환물 의병 하나를 부른다 (1/1)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우금전과 배송지의 말 · 『위서』 · 위서 무제기와 배송지 주의 『위서』 · 문제기 · 삼소제기 · 악진전 · 장료전 · 방덕전 · 유표전 · 촉서 관우전 · 오서 오주전 · 우번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우금은 자가 문칙이며 태산군 거평현 사람입니다. 황건이 일어나 포신이 무리를 모으자 우금은 그를 따랐습니다. 조조가 연주를 맡게 되자 무리와 함께 가서 도백이 되어 장군 왕랑 밑에 들었고, 왕랑은 그를 남다르게 여겨 대장군을 맡길 만한 재목이라고 천거했습니다. 조조는 그를 불러 이야기를 나눈 뒤 군사마로 삼았고, 서주로 보내 광위를 떨어뜨리자 함진도위로 삼았습니다. 무제기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서』는 조조가 우금과 악진을 싸움터의 대오 가운데서 뽑아 올렸다고 적습니다.

흥평 원년(194) 복양에서 여포를 칠 때 따로 성 남쪽의 진영 둘을 깨뜨렸고, 수장 · 정도 · 이호를 치고 옹구에서 장초를 에워싸 모두 떨어뜨렸습니다. 건안 원년(196) 황건의 유벽 · 황소 등을 칠 때 황소 등이 밤에 조조의 진영을 습격하자 휘하를 이끌고 깨뜨려 그 무리를 모두 항복받고 평로교위가 되었습니다. 건안 2년(197) 완에서 항복한 장수가 다시 배반해 조조가 져서 무음으로 물러날 때, 군이 어지러워 저마다 샛길로 조조를 찾아갔으나 우금만은 거느린 수백 명을 다잡아 싸우며 물러났고 죽고 다치는 이가 있어도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추격이 늦춰지자 대오를 가다듬고 북을 울리며 돌아오던 길에, 다친 채 옷을 빼앗기고 달아나는 사람들을 보고 까닭을 물으니 청주병에게 털렸다고 했습니다. 청주병은 항복한 황건의 무리로 조조가 너그러이 대해 왔기에 그 틈을 타 노략질을 했던 것입니다. 우금은 성이 나 「청주병도 같은 조공의 군사인데 도리어 도적이 되느냐」며 그들을 치고 죄를 따졌습니다. 청주병이 먼저 조조에게 달려가 하소연했으나 우금은 진영과 보루부터 세웠고, 서둘러 가서 해명하라는 말에 「적이 뒤에 있어 언제 쫓아올지 모르니 먼저 대비하지 않으면 어찌 적을 맞겠는가. 공은 총명하시니 참소가 무슨 소용이겠는가」라 했습니다. 해자를 파고 진영을 다 세운 뒤에야 들어가 사정을 아뢰자, 조조는 「어지러운 가운데서 군을 가다듬고 포악한 자를 치고 보루를 굳혔으니 흔들 수 없는 절개가 있다. 옛 명장이라도 어찌 이보다 나으랴」 하며 익수정후에 봉했습니다. 그해 고현에서 원술의 장수 교유를 에워싸 네 장수를 베었고, 뒤에 하비에서 여포를 사로잡는 데 따랐으며 사견에서 휴고를 베었습니다.

조조가 원소를 치러 나서자 우금은 먼저 성벽에 오르기를 바랐고, 조조는 장하게 여겨 보졸 2천을 주어 연진을 지키게 했습니다. 원소가 쳐도 우금은 굳게 지켜 떨어뜨리지 못하게 했고, 이어 악진 등과 보병과 기병 5천을 이끌고 강을 따라 원소의 진지 서른여 곳을 불태우고 원소의 장수 하무 · 왕마 등 스무여 명을 항복시켰으며, 두씨진의 원소 진영을 깨뜨려 비장군이 되었습니다. 건안 5년(200) 관도에서 조조와 원소가 진영을 잇대고 토산을 쌓아 마주했는데, 원소가 진중에 화살을 퍼부어 군사들이 두려워할 때 우금은 토산을 맡아 지키며 힘껏 싸워 기세를 더욱 떨쳤고, 원소가 무너지자 편장군이 되었습니다.

기주가 평정된 뒤 창희가 다시 배반하자 우금이 쳤는데, 우금과 옛 벗이던 창희는 우금에게 와서 항복했습니다. 여러 장수가 조조에게 보내야 한다고 했지만 우금은 「에워싸인 뒤에 항복한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공의 명령을 모르는가. 법을 받들어 명령을 행하는 것이 윗사람을 섬기는 절개이니, 창희가 옛 벗이라 해도 내가 절개를 잃을 수 있겠는가」라며 몸소 나가 작별하고 눈물을 흘리며 베었습니다. 순우에 있던 조조는 창희가 자기에게 오지 않고 우금에게 간 것을 운명이라 탄식하며 우금을 더욱 무겁게 여겼습니다. 배송지는 이 일을 두고 사로잡아 보냈어도 명을 어긴 것이 아닌데 옛 벗을 위해 만에 하나를 바라지 않았으니, 끝내 항복한 포로가 되고 죽어서 나쁜 시호를 받은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동해가 평정되자 호위장군이 되었습니다. 뒤에 진란 · 매성을 칠 때는 장료 등이 진란과 맞서 군량이 모자라자 군량을 잇달아 날라 장료가 두 사람을 벨 수 있게 했습니다.

그 무렵 우금은 장료 · 악진 · 장합 · 서황과 함께 이름난 장수로, 조조가 싸우러 나갈 때마다 번갈아 앞장서고 돌아올 때는 뒤를 막았습니다. 우금은 군을 엄하고 가지런히 다스렸고 적의 재물을 얻어도 사사로이 챙기지 않아 상을 특히 두텁게 받았지만, 법으로 아랫사람을 다스려 군사들의 마음을 크게 얻지는 못했습니다. 조조가 주령의 진영을 빼앗으려 하자 위엄이 무거운 우금이 기병 수십 명만 데리고 명령서를 들고 곧장 들어가 그 군을 빼앗았는데, 주령과 그 무리가 감히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우금은 좌장군이 되어 절월을 받았습니다.

건안 24년(219) 조조는 번에서 관우를 치는 조인을 돕게 우금을 보냈습니다. 가을에 큰 장맛비가 내려 한수가 넘쳐 평지에 물이 여러 길 차오르자 우금 등의 칠군이 모두 물에 잠겼습니다. 우금은 여러 장수와 높은 곳에 올라 물을 바라볼 뿐 피할 곳이 없었고, 관우가 큰 배를 타고 치자 항복했으며 방덕만이 절개를 굽히지 않고 죽었습니다. 조조는 오래 슬퍼하며 「내가 우금을 안 지 서른 해인데, 위태로운 일을 당해 도리어 방덕만 못할 줄 어찌 알았으랴」 하고 탄식했습니다. 사로잡힌 우금은 강릉에 갇혔다가 손권이 관우를 사로잡자 오나라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우번전은 손권이 그를 풀어 주고 말을 나란히 타고 나가자 우번이 「항복한 포로가 어찌 우리 임금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느냐」며 채찍으로 치려다 손권에게 꾸지람을 들었고, 잔치에서 음악을 듣고 우는 우금에게 「거짓으로 벗어나려 하느냐」고 했다고 적습니다.

조비가 황제가 되고 손권이 번국을 칭하자 황초 2년(221) 우금은 돌아왔습니다. 조비가 불러 보니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세고 얼굴이 초췌한 채 울며 머리를 조아렸고, 조비는 순림보와 맹명시의 옛일을 들어 위로하며 안원장군으로 삼았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서』의 조서는 번성의 패배는 갑작스러운 물난리 때문이지 싸움의 허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조비는 그를 오나라에 사신으로 보내기에 앞서 업으로 가서 조조의 고릉에 참배하게 했는데, 미리 능의 집에 관우가 싸워 이기고 방덕이 성내며 우금이 항복하는 모습을 그려 두었습니다. 그림을 본 우금은 부끄럽고 분해 병이 나서 죽었습니다. 아들 우규가 뒤를 이어 익수정후에 봉해졌고, 우금의 시호는 여후입니다. 진수는 평에서 「우금은 가장 굳세고 무겁다고 일컬어졌으나 끝을 잘 맺지 못했다」고 했고, 정시 4년(243) 장료 · 악진 · 장합 · 서황과 방덕이 조조의 사당 뜰에 모셔질 때 그 명단에 우금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于禁最號毅重,然弗克其終
우금은 가장 굳세고 무겁다고 일컬어졌으나 끝을 잘 맺지 못했다『삼국지』 위서 장악우장서전 평
吾知禁三十年,何意臨危處難,反不如龐德邪
내가 우금을 안 지 서른 해인데, 위태롭고 어려운 일을 당해 도리어 방덕만 못할 줄 어찌 알았으랴『삼국지』 위서 우금전에 실린 조조의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0~79회

연의에서 우금은 제10회에 처음 나옵니다. 연주에서 인재를 모으는 조조에게 군사 수백 명을 이끌고 찾아온 「태산 거평 사람 우금, 자는 문칙」으로, 조조는 그가 활쏘기와 말타기에 익숙하고 무예가 뛰어난 것을 보고 전군사마로 삼습니다. 제11회 복양에서는 여포의 서쪽 진영을 치자는 꾀를 내고, 악진과 함께 여포와 싸우다 당해 내지 못합니다. 제16회 완에서 조조가 장수에게 크게 지고 달아날 때는 하후돈이 거느린 청주병이 마을을 약탈하자 이들을 쳐서 죽이고, 우금이 배반했다는 청주병의 하소연에도 먼저 진영을 세운 뒤 쫓아온 장수의 군을 앞장서 맞받아 물리칩니다. 조조는 「옛 명장이라도 어찌 이보다 나으랴」 하며 금그릇 한 벌을 내리고 익수정후에 봉합니다.

제39회 박망에서는 길이 좁고 숲이 우거졌다며 불을 조심하라고 하후돈에게 달려가 알리지만 이미 늦습니다. 제41회에서는 조조의 명을 받아 청주로 떠나는 유종과 채부인을 뒤쫓아 죽이고, 제45회에서는 채모와 장윤이 죽은 뒤 모개와 함께 수군도독이 되어 제46회에서 안개 속의 배에 화살을 퍼붓습니다.

제73회에서 조조의 지목을 받아 번성을 구하러 나선 우금은, 제74회에서 정남장군으로 칠군을 이끌고 선봉 방덕과 함께 갑니다. 방덕이 관우의 왼팔을 쏘아 맞히자 그가 큰 공을 세울까 꺼려 징을 쳐 군을 거두고, 칠군을 번성 북쪽 증구천의 낮은 골짜기로 옮겨 방덕이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관우가 막아 둔 물을 터뜨리자 칠군이 물에 잠기고, 우금은 땅에 엎드려 목숨을 빌어 형주의 옥에 갇힙니다. 제75회에서 조조는 「우금이 나를 따른 지 서른 해인데 위태로운 때에 도리어 방덕만 못할 줄 어찌 알았으랴」 하고 탄식하고, 형주를 얻은 손권은 옥에서 우금을 풀어 조조에게 돌려보냅니다. 제79회에서 조비는 그에게 조조의 능을 돌보게 하는데, 능의 집 흰 벽에는 관우가 높이 앉고 방덕이 성내며 우금이 땅에 엎드려 목숨을 비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우금은 부끄럽고 분해 병이 나서 얼마 뒤 죽습니다. 연의에서 우금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92조조가 연주를 맡자 무리와 함께 가서 도백이 되었고, 왕랑의 천거로 군사마가 되었습니다.
  2. 194복양에서 여포를 칠 때 따로 성 남쪽의 진영 둘을 깨뜨렸습니다.
  3. 196밤에 조조의 진영을 친 황건의 황소 등을 깨뜨려 평로교위가 되었습니다.
  4. 197완에서 진 뒤 약탈하던 청주병을 치고 진영부터 세워 익수정후에 봉해졌습니다.
  5. 197고현에서 원술의 장수 교유를 에워싸 네 장수를 베었습니다.
  6. 199사견에서 사환 · 조인과 함께 휴고를 쳐서 베었습니다.
  7. 200보졸 2천으로 연진을 지켜 원소의 공격을 막았습니다.
  8. 200관도에서 토산을 맡아 지키며 힘껏 싸웠고, 원소가 무너지자 편장군이 되었습니다.
  9. 206다시 배반했다가 항복한 옛 벗 창희를 군법대로 눈물을 흘리며 베었습니다.
  10. 206동해가 평정되자 호위장군이 되었습니다.
  11. 209진란 · 매성을 칠 때 군량을 잇달아 날라 장료가 두 사람을 베게 했습니다.
  12. 219한수가 넘쳐 칠군이 물에 잠기자 관우에게 항복했습니다.번성의 물
  13. 219손권이 관우를 사로잡은 뒤 오나라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14. 221오나라에서 돌아와 안원장군이 되었으나 고릉의 그림을 보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들 우규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군율을 세운다!

말을 열며

우문칙이오. 군법에는 사사로움이 없소.

되받으며

규율대로 답하겠소.

말문이 막혀

…물이 차오르는구나.

말문이 막혀

이럴 리가 없다.

설전을 이기고

군법을 세운 자가 끝까지 서는 법이오.

설전에 지고

…살아 돌아온 것이 죄가 되는구려.

이긴 뒤

군율이 이겼다!

진 뒤

…무릎을 꿇을 수는 없다.

쓰러지며

그 벽의 그림이… 나를 죽인다.

같은 기치 아래

조조하후연하후돈서황학소허저조인전위문앙악진조진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