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영명(令明) · 미상 ~ 219년 · 양주 남안군 환도현 · 마등 휘하
관우의 이마를 쏘아 맞히고 사로잡혀서도 꿇지 않은 서량의 맹장
출전 · 『삼국지』 위서 방덕전과 배송지 주의 『위략』 · 『촉기』 · 우금전 · 조인전 · 종요전 · 무제기 · 삼소제기 · 촉서 관우전과 배송지 주의 『촉기』 · 마초전
방덕은 자가 영명이며 남안군 환도현 사람입니다. 젊어서 군의 아전과 주의 종사가 되었고, 초평 연간 마등을 따라 반란한 강족과 저족을 치며 여러 번 공을 세워 교위에 올랐습니다. 건안 연간 조조가 여양에서 원담 · 원상 형제를 칠 때 원담이 곽원 · 고간 등을 보내 하동을 빼앗자, 조조는 종요에게 관중의 장수들을 거느리고 이들을 치게 했습니다. 방덕은 마등의 아들 마초를 따라 평양에서 곽원과 고간을 막았는데, 선봉이 되어 나아가 크게 깨뜨리고 몸소 곽원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에 따르면 방덕은 머리 하나를 베었으나 그것이 곽원인 줄 몰랐고, 싸움이 끝난 뒤 다들 곽원이 죽었는데 머리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곽원은 종요의 생질이었습니다. 방덕이 나중에 활집에서 머리 하나를 꺼내자 종요가 보고 울었고, 방덕이 사죄하자 종요는 「곽원이 내 생질이나 나라의 도적이오. 그대가 어찌 사죄하오」라고 했습니다. 방덕은 이 공으로 중랑장이 되고 도정후에 봉해졌습니다.
뒤에 장백기가 홍농에서 반란하자 다시 마등을 따라 두 효산 사이에서 그를 깨뜨렸습니다. 싸울 때마다 늘 적진을 무너뜨리고 적을 물리쳐 그 용맹이 마등의 군에서 으뜸이었습니다. 마등이 조정에 불려 가 위위가 되자 방덕은 남아 마초에게 속했습니다. 건안 16년(211) 조조가 위남에서 마초를 깨뜨리자 방덕은 마초를 따라 한양으로 달아나 기성을 지켰고, 다시 마초를 따라 한중으로 가서 장로를 섬겼습니다. 건안 20년(215) 조조가 한중을 평정하자 방덕은 무리를 따라 항복했습니다. 조조는 본디 그의 날램을 들어 알고 있어 그를 입의장군으로 삼고 관문정후에 봉했으며, 봉읍은 3백 호였습니다.
건안 23년(218) 겨울 완을 지키던 후음 · 위개 등이 반란하자, 방덕은 거느린 군사를 이끌고 조인과 함께 완을 쳐서 빼앗고 후음과 위개를 벤 뒤 남쪽으로 내려가 번에 주둔했습니다. 무제기는 조인이 이듬해 정월 완을 무찌르고 후음을 베었다고 적습니다. 관우를 치게 되자 번의 장수들은 방덕의 형이 한중에 있다 하여 그를 자못 의심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은 방덕의 사촌형 방유가 그때 촉에 있었다고 적습니다. 방덕은 늘 「나는 나라의 은혜를 입었으니 의리상 죽음으로 갚을 뿐이다. 내가 몸소 관우를 치겠다. 올해 내가 관우를 죽이지 못하면 관우가 나를 죽일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뒤에 방덕은 몸소 관우와 싸워 화살로 그의 이마를 맞혔습니다. 방덕은 늘 흰 말을 탔으므로 관우의 군사들은 그를 백마장군이라 부르며 모두 꺼렸습니다.
건안 24년(219) 조인은 방덕을 번의 북쪽 십 리에 주둔시켰습니다. 마침 장맛비가 열흘 넘게 내려 한수가 크게 넘쳤고, 번 아래 평지는 물이 대여섯 길이나 되어 방덕과 장수들은 둑 위로 물을 피했습니다. 관우는 배를 타고 와서 큰 배로 사방에서 둑 위를 쏘았습니다. 방덕은 갑옷을 입고 활을 잡아 쏘는 화살마다 헛나가지 않았고, 장군 동형과 부곡장 동초 등이 항복하려 하자 모두 잡아 베었습니다. 새벽부터 해가 기울 때까지 힘써 싸웠으나 관우의 공격은 더욱 급해지고 화살이 다해 짧은 무기로 맞붙었습니다. 방덕은 독장 성하에게 「내가 듣기로 좋은 장수는 죽음을 겁내 구차하게 살아남지 않고, 열사는 절개를 허물어 삶을 구하지 않는다 하오. 오늘이 내가 죽을 날이오」라고 했습니다. 싸울수록 노기가 더해 기세가 더욱 장해졌으나 물이 점점 불어나자 관리와 군사가 모두 항복했습니다. 방덕은 휘하 장수 한 사람, 병졸의 우두머리 둘과 함께 활에 살을 먹인 채 작은 배를 타고 조인의 진영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물살에 배가 뒤집혀 활과 화살을 잃고 홀로 뒤집힌 배를 안고 물속에 있다가 관우에게 붙잡혔습니다.
방덕은 서서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관우가 「그대의 형이 한중에 있으니 그대를 장수로 삼으려 하는데, 어찌 일찍 항복하지 않는가」라고 하자, 방덕은 관우를 꾸짖어 「어린놈아, 무슨 항복이냐! 위왕은 갑옷 입은 군사가 백만이요 위엄이 천하를 떨친다. 너의 유비는 용렬한 재주일 뿐이니 어찌 맞서겠느냐! 나는 차라리 나라의 귀신이 될지언정 도적의 장수는 되지 않겠다」고 했고, 끝내 관우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금전은 이때 우금이 관우에게 항복하고 방덕만이 절개를 굽히지 않고 죽었다고 적습니다. 조조는 이 소식을 듣고 슬퍼 눈물을 흘리며 그의 두 아들을 열후에 봉했고, 우금전에 따르면 오래 탄식하며 「내가 우금을 안 지 서른 해인데, 위태로운 일을 당해 오히려 방덕만 못할 줄 어찌 알았겠는가」라고 했습니다.
220년 조비는 위왕이 되자 방덕의 무덤에 사자를 보내 시호를 내리며, 옛날 선진이 머리를 잃고 왕촉이 목을 끊어 몸을 버려 절개를 따랐듯이 방덕이 굳셈을 밝혀 어려움을 밟고 이름을 이루었다 하여 장후라 했습니다. 또 아들 방회 등 넷에게 관내후의 작위와 봉읍 백 호씩을 내렸습니다. 방회는 용맹이 아버지를 닮아 중위장군에 이르고 열후에 봉해졌습니다. 관우전의 배송지 주에 인용된 『촉기』는 방회가 종회 · 등애를 따라 촉을 쳤고 촉이 무너지자 관씨 집안을 모두 없앴다고 전합니다. 방덕전의 배송지 주에 인용된 『촉기』는 종회가 촉을 평정하고 방덕의 주검을 맞아 업에 장사지냈는데 무덤 속의 몸과 머리가 산 사람 같았다고 적지만, 배송지는 방덕이 번성에서 죽었고 조비가 그 무덤에 사자를 보냈으니 주검이 촉에 있었을 리 없다며 왕은의 헛된 말이라고 했습니다. 정시 4년(243) 위나라는 입의장군 방덕을 조조의 사당 뜰에 공신으로 함께 모셨습니다. 진수는 「방덕은 목숨을 바치며 적을 꾸짖었으니 주가의 절개가 있다」고 평했습니다.
龐德授命叱敵,有周苛之節吾知禁三十年,何意臨危處難,反不如龐德邪『삼국연의』 제58~59회 · 제64~65회 · 제67~68회 · 제72회 · 제74회 · 제79회
연의에서 방덕은 제58회에 처음 나옵니다. 마등이 조조에게 죽자 원수를 갚으러 일어선 마초 곁에서 마대와 함께 장안을 치는데, 장안 성 안은 물이 짜고 땔감이 없으니 물러나는 척하자는 꾀를 내고, 밤에 성안으로 들어가 종요의 아우 종진을 베어 성문을 엽니다. 동관에서는 마초와 함께 조조를 몰아붙이고, 위남에서는 함정에 빠졌다가 뛰어올라 걸어서 싸우며 조영을 베고 에워싸인 한수를 구해 냅니다. 제64회에서는 기성과 역성의 싸움에서 진 마초를 따라 마대와 함께 한중의 장로에게 가고, 제65회에서는 병으로 누워 가맹관으로 가는 마초를 따르지 못하고 한중에 남습니다.
제67회에서 조조가 한중으로 쳐들어오자 장로의 명으로 나가 장합 · 하후연 · 서황 · 허저와 잇달아 겨루면서도 조금도 겁내지 않습니다. 그 날램을 탐낸 조조는 가후의 꾀로 장로의 모사 양송에게 뇌물을 주어 방덕을 헐뜯게 하고, 장로에게 죽을 뻔한 방덕이 조조를 사로잡으려 산비탈로 달려오다 함정에 빠지자 몸소 묶음을 풀어 주어 항복을 받습니다. 제68회에서는 유수에서 오의 장수 진무를 베고, 제72회에서는 사곡에서 위연과 싸웁니다.
제74회에서 관우가 번성을 에워싸자 방덕은 스스로 선봉을 자청하고, 조조는 우금을 대장으로 삼아 일곱 군을 보냅니다. 옛 주인 마초와 친형 방유가 촉에 있다는 말에 선봉의 인수를 거두려는 조조 앞에서 방덕은 관을 벗고 머리를 찧어 피를 흘리며 형수를 죽인 일로 형과는 이미 의가 끊겼다고 아뢰고, 집에 돌아가 나무 관을 짜게 해 「관우에게 죽으면 내 주검을, 관우를 죽이면 그 머리를 담겠다」며 관을 앞세우고 나갑니다. 관평과 서른 합, 관우와 백여 합을 겨루고, 이튿날 쉰여 합 만에 칼을 끄는 척 달아나다 활을 쏘아 관우의 왼팔을 맞힙니다. 그러나 공을 시기한 우금이 징을 울려 군을 거두어 쫓지 못하고, 우금은 일곱 군을 증구천의 낮은 골짜기로 옮깁니다. 관우가 물목을 막아 두었다가 터뜨리자 일곱 군이 물에 잠기고, 둑 위에서 버티던 방덕은 항복하자는 동형 · 동초를 베고 끝까지 싸우다 작은 배를 빼앗아 번성으로 가려 하지만, 큰 뗏목을 몰고 온 주창이 배를 들이받아 뒤집고 물에 뛰어들어 그를 사로잡습니다. 관우 앞에 끌려 나온 방덕은 눈을 부릅뜨고 서서 꿇지 않고, 형과 옛 주인 마초가 촉에 있으니 항복하라는 말에 「차라리 칼 아래 죽을지언정 어찌 너에게 항복하겠느냐」며 끝까지 꾸짖다 죽습니다. 관우는 그를 가엾게 여겨 장사지내 줍니다. 제79회에서 조조의 능을 지키러 간 우금은 벽에 그려진, 성내며 굽히지 않는 방덕과 엎드려 목숨을 비는 자기의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하다 병들어 죽습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형(『위략』은 사촌형 방유) · 아들 방회 등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서량의 방영명이다!
관은 이미 지고 왔소. 죽음은 두렵지 않소.
무릎 꿇는 법은 배우지 못했소.
…화살이 다해 가는구려.
그래도 무릎은 굽히지 않는다.
서량의 뼈는 굽지 않소.
목을 치시오. 항복은 없소.
이 관은 아직 비어 있다.
…무릎은 꿇지 않겠다.
관을 지고 왔다. 무릎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