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운장(雲長) · 미상 ~ 219년 · 사례 하동군 해현 · 유비 휘하
굳건한 충의와 만인을 대적하는 용맹으로 천하를 진동시킨 촉한의 무신(武神)
출전 · 『삼국지』 촉서 관우전 · 선주전 · 장비전 · 제갈량전 · 비시전 · 후주전 · 위서 무제기 · 이통전 · 우금전 · 서황전 · 오서 손견전 · 오주전 · 노숙전 · 여몽전 · 반장전과 배송지 주의 『부자』 · 『촉기』 · 『오력』 · 『강표전』
관우는 자가 운장이고 본래 자는 장생이며, 하동군 해현 사람입니다. 고향을 떠나 탁군으로 달아났는데 관우전은 그 까닭을 적지 않습니다. 유비가 고향에서 무리를 모으자 장비와 함께 그를 지켰고, 유비가 평원상이 되자 두 사람은 별부사마가 되어 부곡을 나누어 거느렸습니다. 유비는 두 사람과 한 침상에서 자며 형제처럼 아꼈지만,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두 사람은 온종일 곁에 서서 모셨고 어떤 험한 일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장비는 몇 살 위인 관우를 형으로 섬겼습니다.
건안 4년(199) 유비가 서주자사 차주를 죽이자 관우는 하비성을 지키며 태수의 일을 보았습니다. 이듬해 조조가 몸소 쳐 오자 유비는 원소에게 달아났고, 조조는 관우를 사로잡아 편장군으로 삼고 두텁게 대했습니다. 원소가 안량을 보내 백마를 치자 조조는 장료와 관우를 선봉으로 세웠고, 관우는 멀리 안량의 깃발과 일산을 바라보고 말을 달려 만 명의 무리 가운데서 그를 찌르고 목을 베어 돌아왔습니다. 백마의 포위가 풀리자 조조는 관우를 한수정후에 봉했습니다. 조조는 일찍부터 관우에게 오래 머물 마음이 없음을 알아채 장료에게 속을 떠보게 했는데, 관우는 「조공이 나를 두텁게 대하는 것은 잘 알지만 유장군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함께 죽기로 맹세했으니 저버릴 수 없다. 공을 세워 갚고 떠나겠다」고 답했습니다. 배송지 주의 『부자』는 조조가 이 말을 듣고 천하의 의사라 했다고 전합니다. 안량을 벤 뒤 조조가 상을 더 내렸으나 관우는 받은 것을 모두 봉해 두고 글을 올려 작별한 뒤 원소 진중의 유비에게 돌아갔고, 조조는 쫓자는 좌우를 「저마다 제 주인을 위하는 것」이라며 말렸습니다.
관우는 유비를 따라 유표에게 몸을 맡겼습니다. 건안 13년(208) 조조가 형주를 차지하자 관우는 배 수백 척을 이끌고 강릉으로 향하다 한진에서 쫓기던 유비를 만나 함께 하구에 이르렀습니다. 적벽 싸움 뒤 강릉의 조인을 에워쌀 때는 북쪽 길을 끊었고, 유비가 강남의 여러 군을 거두자 양양태수 · 탕구장군이 되어 강 북쪽에 머물렀습니다. 건안 16년(211) 유비가 익주로 들어가자 제갈량과 함께 형주를 지켰고, 건안 19년(214)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자 형주의 일을 도맡았습니다. 마초가 항복해 왔다는 말에 관우가 그를 누구와 견줄 만한지 묻자, 제갈량은 관우가 남에게 뒤지기 싫어하는 것을 알고 「익덕과 나란히 앞을 다툴 만하나 수염 난 분의 빼어남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답했고, 관우는 크게 기뻐하며 그 편지를 손님들에게 보였습니다.
건안 20년(215) 손권이 형주의 세 군을 달라며 보낸 관리를 관우가 모두 쫓아내자, 손권은 여몽을 보내 장사 · 영릉 · 계양을 빼앗았습니다. 관우는 3만을 이끌고 익양에서 노숙과 맞섰습니다. 양쪽 군사를 백 보 밖에 세우고 장군들만 칼 한 자루씩 차고 만난 자리에서 노숙은 땅을 돌려주지 않는다고 관우를 따졌고, 한 사람이 「땅이란 덕이 있는 이에게 있을 뿐」이라 하자 노숙이 크게 꾸짖었습니다. 관우는 칼을 들고 일어나 「이것은 나라의 일인데 이 사람이 무엇을 알겠는가」 하며 그를 내보냈습니다. 조조가 한중에 들어오자 두 나라는 상수를 경계로 형주를 나누었습니다.
관우는 예전에 날아온 화살에 왼팔을 꿰뚫린 뒤 흐리거나 비가 오면 뼈가 쑤셨습니다. 의원이 독이 뼈에 들었으니 팔을 째고 뼈를 긁어야 한다고 하자 곧 팔을 내밀었는데, 마침 장수들과 먹고 마시던 자리라 피가 쟁반에 넘쳐도 구운 고기를 베고 술을 들며 태연히 웃고 이야기했습니다. 관우전은 이 일의 해와 의원의 이름을 적지 않습니다.
건안 24년(219)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관우는 전장군이 되어 절월을 받았는데, 비시전은 그가 황충과 한 줄에 서기를 꺼려 「대장부는 끝내 늙은 병사와 한 줄에 서지 않는다」며 버티다 비시의 타이름에 받았다고 적습니다. 그해 관우는 번성의 조인을 쳤습니다. 가을 장마에 한수가 넘쳐 구원 온 우금의 일곱 군이 모두 물에 잠기자, 관우는 큰 배를 타고 쳐서 우금을 항복받고 장군 방덕을 베었습니다. 오주전은 이때 사로잡은 보병과 기병이 3만이었다고 적습니다. 양 · 겹 · 육혼의 도적 가운데 몇몇이 멀리서 관우의 인수를 받을 만큼 위세가 중원을 떨쳤고, 조조는 허도를 옮겨 그 기세를 피할 것을 의논했습니다. 사마의와 장제는 관우가 뜻을 이루는 것을 손권도 바라지 않으니 강남을 떼어 주고 그 뒤를 치게 하자고 권했고, 조조는 그 말을 따랐습니다.
이보다 앞서 관우는 아들의 짝으로 딸을 달라는 손권의 사자를 꾸짖고 욕해 손권을 크게 노하게 했습니다. 남군태수 미방과 공안의 장군 사인은 관우가 자신들을 가볍게 여긴다며 꺼려 왔는데, 군수품을 제대로 대지 못해 관우에게 「돌아가면 다스리겠다」는 말을 듣고 두려워했습니다. 여몽은 병을 핑계로 물러나 관우가 뒤의 수비군을 번성으로 옮기게 했고, 관우가 양식이 모자란다며 상관의 쌀을 멋대로 가져가자 손권이 군사를 움직였습니다. 여몽은 정병을 배 안에 숨긴 채 흰옷 입은 이들에게 노를 젓게 해 장사꾼으로 꾸미고 강가의 망루를 모두 사로잡았습니다. 사인과 미방이 항복하고 손권이 강릉을 차지해 관우 군사들의 처자를 손에 넣었고, 서황이 번성의 포위를 깨뜨리자 관우는 물러났습니다. 식구가 무사하다는 소식에 군사들은 싸울 마음을 잃었고, 관우는 맥성을 지키다 거짓으로 항복하는 척하며 성 위에 깃발과 허수아비를 세우고 빠져나갔으나 열 남짓한 기병만 남았습니다. 그해 12월 반장의 사마 마충이 장향에서 관우와 아들 관평을 사로잡았고, 관우전은 임저에서 두 사람을 베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의 『촉기』는 손권이 관우를 살려 두려다 좌우의 말에 죽였다고 전하지만, 배송지는 붙잡는 대로 곧 베었을 것이라며 믿지 않았습니다. 무제기는 이듬해 정월 손권이 관우의 머리를 전해 왔다고 적고, 『오력』은 그 주검을 제후의 예로 장사지냈다고 전합니다. 경요 3년(260) 촉한은 장무후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아들 관흥은 제갈량이 아꼈으나 일찍 죽었고, 손자 관통이 아들 없이 죽자 관흥의 서자 관이가 뒤를 이었습니다. 『촉기』는 촉이 망할 때 방덕의 아들 방회가 관씨 집안을 모두 없앴다고 전합니다. 진수는 관우와 장비가 만 명을 대적한다 일컬어진 세상의 범 같은 신하였고 관우가 조조에게 공으로 갚은 데에 국사의 풍모가 있다고 하면서도, 관우는 굳세나 스스로를 뽐내 단점으로 패했다고 평했습니다. 장비전은 관우가 병졸은 잘 대했으나 사대부에게는 교만했다고 적고, 『강표전』은 그가 『좌씨전』을 즐겨 거의 다 외웠다고 전합니다.
羽報效曹公,飛義釋嚴顏,並有國士之風。然羽剛而自矜,飛暴而無恩,以短取敗,理數之常也吾極知曹公待我厚,然吾受劉將軍厚恩,誓以共死,不可背之『삼국연의』 제1~78회 · 제83회
연의에서 관우는 제1회에 처음 나옵니다. 탁군의 주막에 수레를 끌고 들어온 그는 키가 아홉 자, 수염이 두 자에 대추처럼 붉은 얼굴을 한 하동 해량 사람으로, 고향에서 세도를 부리던 자를 죽이고 대여섯 해를 떠돌았다고 밝힙니다. 이튿날 장비의 집 뒤 복숭아밭에서 검은 소와 흰 말로 하늘과 땅에 제사하고 같은 날 죽기를 바란다고 맹세해 유비 · 장비와 형제를 맺고, 냉염거라고도 부르는 여든두 근의 청룡언월도를 벼립니다.
제5회에서는 마궁수의 몸으로 나서 조조가 따라 준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머리를 베어 오고, 호로관에서 장비와 함께 여포와 싸웁니다. 제20회 허전의 사냥에서는 천자를 가로막는 조조를 베려다 유비의 눈짓에 멈춥니다. 제25회에서 하비를 지키다 꾐에 빠져 토산에 갇힌 관우는 한의 황제에게만 항복한다는 것을 비롯한 세 가지를 약조받고 조조에게 몸을 맡깁니다. 조조가 준 새 전포를 헌 전포 안에 입고, 수염 주머니를 받아 미염공이라 불리며, 여포가 타던 적토마를 받고는 형의 소식을 들으면 하루에 달려갈 수 있다며 절합니다. 백마에서 안량을 한칼에 찔러 떨어뜨린 그는 제26회에서 연진의 문추까지 벤 뒤, 금은을 봉하고 한수정후의 인을 걸어 둔 채 두 형수를 모시고 떠납니다.
제27회에서 통행증이 없는 관우는 동령관 · 낙양 · 사수관 · 형양 · 황하 나루에서 앞을 막는 장수 여섯을 벱니다. 제28회에서는 고성에서 그를 의심하는 장비 앞에서 북이 한 번 다 울리기도 전에 채양의 목을 베고, 관정의 아들 관평을 양자로 삼고 주창을 거둡니다.
제49회에서 관우는 군령장을 쓰고 화용도로 나가지만, 제50회에서 옛 은혜를 호소하는 조조와 울며 엎드린 군사들을 보고 말머리를 돌려 조조와 장료를 놓아주고, 제51회에서 군령대로 그를 베려는 제갈량을 유비가 말립니다. 제53회에서는 장사의 황충과 겨루다 말이 넘어진 그를 살려 주고, 황충은 투구의 술 밑동만 쏘아 맞혀 은혜를 갚습니다. 제63회에서 형주를 맡으며 제갈량에게 「북으로 조조를 막고 동으로 손권과 화친하라」는 여덟 글자를 받고, 제66회에서는 주창과 장정 여덟아홉만 거느리고 노숙의 잔치에 건너가 노숙의 손을 붙든 채 유유히 돌아옵니다.
제73회에서 오호대장의 으뜸이 되자 늙은 병졸과 한 반열에 설 수 없다고 성을 내다 비시의 말에 받아들이고, 손권의 혼담에는 범의 딸을 개의 아들에게 줄 수 없다고 꾸짖습니다. 제74회에서 관을 메고 나온 방덕의 화살에 왼팔을 맞으나, 가을비를 내다보고 물목을 막아 두었다가 터뜨려 우금의 칠군을 물에 잠기게 하고 우금을 항복받고 방덕을 벱니다. 번성을 치다 독화살을 오른팔에 맞자 제75회에서 화타가 팔을 째고 뼈를 긁는 동안 술과 고기를 들며 마량과 바둑을 둡니다. 그러나 육손의 낮춘 편지에 마음을 놓고 군사를 번성으로 옮긴 사이, 여몽이 흰옷 입은 장사꾼으로 꾸며 강을 건너 형주를 빼앗습니다.
제76회에서 옛 벗 서황에게 「나라의 일」이라는 말을 듣고 밀린 관우는 형주를 잃고 작은 맥성으로 들어가지만, 유봉과 맹달은 구원을 거절합니다. 제77회에서 맥성을 빠져나가다 결석에서 마충에게 사로잡힌 관우는 항복을 권하는 손권을 푸른 눈의 어린놈이라 꾸짖고 아들 관평과 함께 죽으니, 건안 24년 12월이요 나이 쉰여덟입니다. 그 혼은 옥천산에서 「내 머리를 돌려 달라」고 외치다 스님 보정의 말에 깨닫고, 손권의 잔치에서 여몽에게 씌어 여몽이 일곱 구멍으로 피를 쏟고 죽게 합니다. 머리가 든 상자를 연 조조 앞에서 입과 눈이 움직이자 조조는 향나무로 몸을 깎아 붙여 왕후의 예로 장사지냅니다. 제78회에서 조조는 밤마다 관우를 보다 병이 깊어지고, 제83회에서는 아들 관흥이 원수 반장을 쫓을 때 관우의 혼령이 나타나 관흥이 반장을 벱니다. 연의에서 관우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관평 · 관흥, 딸(손권이 며느리로 청했다), 손자 관통 · 관이(관흥의 서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관운장이 여기 있다!
도원에서 맺은 의를 걸고 말하겠소.
이 붉은 얼굴이 부끄러웠던 적은 없소.
뼈를 긁는 동안에도 바둑을 두었소.
형주를 잃던 날의 바람이 부는구려.
의로운 말 앞에 굽지 않을 자는 없소.
…맥성의 길이 이러하였던가.
의로운 군세를 누가 막겠는가.
…의로도 못 막는 것이 있구나.
…맥성의 달이 차갑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