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미상 · 미상 ~ 미상 · 사례 하동군 해현 · 유비 휘하
손권이 며느리로 청했으나 아버지가 꾸짖어 물리친 관우의 딸
출전 · 『삼국지』 촉서 관우전과 배송지 주의 『촉기』 · 오서 오주전
관은병이라는 이름은 사서에 나오지 않습니다. 『삼국지』 촉서 관우전은 그를 「관우의 딸」 이라고만 적고, 배송지 주에도 『삼국연의』 에도 은병이라는 이름은 없습니다. 자와 태어나고 죽은 해,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관우는 하동 해현 사람으로, 고향을 떠나 탁군으로 달아났다가 유비를 섬겼습니다. 아들로는 관평과 관흥이 있었습니다. 건안 24년(219) 관우는 번성에서 조인을 에워쌌고, 큰비로 한수가 넘쳐 구원하러 온 우금의 일곱 군이 물에 잠기자 우금은 관우에게 항복했습니다. 조조가 허의 도읍을 옮겨 그 날카로움을 피하자고 의논하자, 사마의와 장제는 관우가 뜻을 얻는 것을 손권이 반드시 바라지 않을 것이니 손권에게 그 뒤를 밟게 하자고 했습니다. 관우전은 바로 이 대목에 「이보다 앞서 손권이 사자를 보내 아들을 위해 관우의 딸을 청했는데, 관우가 그 사자를 꾸짖고 욕보이며 혼인을 허락하지 않으니 손권이 크게 노했다」 고 적습니다. 손권의 어느 아들이었는지, 그 일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 뒤 손권은 관우가 자신들을 가볍게 여긴다며 꺼리던 남군태수 미방과 장군 사인을 몰래 꾀어 강릉과 공안을 얻었습니다. 물러나던 관우는 그해 12월 장향에서 아들 관평과 함께 반장의 사마 마충에게 사로잡혔고(오주전), 손권은 두 사람을 임저에서 베었습니다. 관우의 뒤는 관흥이 이었습니다.
관우의 딸이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사서에 남은 것은 이것뿐입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촉기』 는 촉이 망할 때 방덕의 아들 방회가 종회 · 등애를 따라와 관씨 집안을 모두 죽였다고 적지만, 그때 이 딸이 살아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先是,權遣使為子索羽女,羽罵辱其使,不許婚,權大怒。『삼국연의』 제73회 · 제77회 · 제82회
연의에도 관우의 딸은 이름 없이 나옵니다. 제73회에서 유비가 한중왕에 오른 건안 24년(219), 조조는 사마의의 꾀를 따라 만총을 보내 손권에게 함께 형주를 치자고 권합니다. 손권이 신하들과 의논하자 제갈근이 나서서, 관우가 형주에 온 뒤 유비가 아내를 맺어 주어 먼저 아들 하나를 낳고 다음에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이 아직 어려 혼처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자신이 가서 세자를 위해 혼인을 청해 보고, 관우가 허락하면 함께 조조를 치고 허락하지 않으면 그때 조조를 도와 형주를 치자고 합니다.
형주에 간 제갈근이 「오후께 총명한 아들이 하나 있고 장군께 딸이 하나 있다 하니, 두 집안이 맺어 힘을 합쳐 조조를 깨뜨리자」 고 하자, 관우는 크게 노하여 「내 범 같은 딸을 어찌 개 같은 자식에게 시집보내겠느냐. 네 아우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면 당장 네 목을 베었을 것이다」 하고 좌우를 시켜 내쫓습니다. 돌아온 제갈근에게서 사실을 들은 손권은 어찌 이리 무례하냐며 크게 노해 형주를 빼앗을 꾀를 의논합니다.
제77회에서는 동오가 관우에게 혼인을 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소식이 성도에 닿자, 제갈량이 「형주가 위태롭다」 며 사람을 보내 관우와 바꾸자고 합니다. 제82회에서 유비를 찾아간 제갈근은 관우가 형주에 있을 때 오후가 여러 번 혼인을 청했으나 관우가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연의에서 관우의 딸이 언급되는 것은 이 세 곳뿐이고, 그 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연의도 적지 않습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관우 · 형제 관평 · 관흥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관우의 딸이오.
아버지의 이름으로 서지는 않겠소.
혼담 한 번이 나라를 갈랐소.
…아버지는 크게 웃고 사자를 돌려보내셨소.
그 웃음의 값을 형주가 치렀소.
관씨의 딸이라 불릴 만하오.
아직 아버지께는 못 미치는구려.
이 집안은 물러서지 않소.
이번은 내 힘이 모자랐소.
아버지의 뒤를 잇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