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정방(正方) · 미상 ~ 234년 · 형주 남양군 · 유비 휘하
제갈량과 함께 유비의 뒷일을 맡았으나 군량 일을 거짓으로 덮다 쫓겨난 대신
출전 · 『삼국지』 촉서 이엄전과 배송지 주의 『제갈량집』 · 제갈량의 공문 · 습착치의 말 · 촉서 선주전 · 후주전 · 진진전 · 여개전 · 이적전 · 양희전 · 『화양국지』 파지 · 유후주지
이엄은 자가 정방이며 남양 사람입니다. 젊어서 군의 관리가 되어 일을 처리하는 재간으로 이름이 났고, 형주목 유표는 그에게 여러 군현을 두루 맡겼습니다. 건안 13년(208) 조조가 형주에 들어올 때 자귀현을 다스리던 그는 서쪽으로 촉에 들어갔고, 익주목 유장이 그를 성도현령으로 삼자 여기서도 일을 잘한다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건안 18년(213) 유장은 그를 호군으로 삼아 면죽에서 유비를 막게 했으나, 이엄은 무리를 이끌고 유비에게 항복해 비장군이 되었고 선주전은 이로써 유비의 군세가 더욱 강해졌다고 적습니다. 성도가 평정된 뒤(214) 그는 건위태수 · 흥업장군이 되었고, 제갈량 · 법정 · 유파 · 이적과 함께 촉의 법령인 『촉과』를 지었습니다.
건안 23년(218) 도적 마진 · 고승 등이 처현에서 일어나 수만의 무리를 모아 자중현까지 이르렀습니다. 유비가 한중에 나가 있던 때라 이엄은 군사를 더 일으키지 않고 군의 군사 오천만 거느리고 가서 마진과 고승의 목을 베었고, 흩어진 무리를 모두 백성의 호적으로 되돌렸습니다. 또 월수의 이민족 우두머리 고정이 신도현을 에워싸자 말을 달려 구하러 가서 적을 모두 쫓아냈고, 이 공으로 보한장군이 더해졌습니다.
장무 2년(222) 오를 치다 지고 영안에 머물던 유비가 그를 불러 상서령으로 삼았습니다. 이듬해 병이 깊어진 유비는 승상 제갈량에게 아들을 맡기고 이엄을 그 버금으로 삼았고, 이엄은 제갈량과 함께 유조를 받아 어린 임금을 돕게 되었습니다. 그는 중도호가 되어 안팎의 군사를 거느리며 영안에 남아 지켰고, 후주가 즉위한 뒤 도향후에 봉해지고 부절을 받았으며 광록훈이 더해졌습니다. 여개전에 따르면 이 무렵 남중의 옹개가 날뛰자 이엄이 여섯 장의 편지로 이해를 따져 달랬으나, 옹개는 천하에 정삭이 셋이라 먼 곳 사람들은 어디로 돌아갈지 모르겠다는 한 장의 답만 보냈습니다.
건흥 4년(226) 전장군이 된 이엄은 제갈량이 한중으로 군사를 내려 하자 뒷일을 맡아 강주로 옮겨 머물렀고, 영안에 남긴 호군 진도도 그의 밑에 두었습니다. 후주전은 이해 봄 그가 강주에 큰 성을 쌓았다고 적고, 『화양국지』 파지는 그가 다섯 군을 떼어 파주를 두자고 청했으나 제갈량이 들어주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이엄은 위에 가 있던 맹달에게 「나는 공명과 함께 뒷일을 부탁받아 근심은 깊고 책임은 무거우니 좋은 짝을 얻고 싶다」고 편지를 썼고, 제갈량도 맹달에게 「일을 나누어 맡기는 것이 물 흐르듯 하고 나아가고 물러남에 막힘이 없는 것이 정방의 성품」이라고 써 보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제갈량집』에는 이엄이 제갈량에게 구석을 받고 왕을 일컬으라고 권한 편지와 이를 사양한 제갈량의 답이 실려 있습니다.
건흥 8년(230) 표기장군이 된 이엄은 위의 조진이 세 길로 한중을 치려 하자 제갈량의 명으로 군사 이만을 이끌고 한중으로 갔고, 제갈량은 그의 아들 이풍을 강주도독으로 삼아 뒷일을 맡겼습니다. 이듬해 군사를 낼 제갈량은 이엄에게 중도호로서 승상부의 일을 맡겼고, 이엄은 이때 이름을 평으로 고쳤습니다.
건흥 9년(231) 봄 제갈량이 기산으로 나가자 이평은 군량 나르는 일을 감독했습니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장마가 져 군량이 이어지지 못하자, 그는 참군 호충과 독군 성번을 보내 뜻을 전하고 제갈량을 불러들였고 제갈량은 이를 받아 군사를 물렸습니다. 그런데 군사가 물러났다는 말을 듣자 이평은 짐짓 놀란 체하며 「군량이 넉넉한데 어찌 돌아오셨는가」 하고, 후주에게는 「군사가 거짓으로 물러나 적을 꾀어 싸우려는 것」이라고 아뢰었습니다. 제 책임을 벗고 제갈량이 나아가지 않은 허물을 드러내려 한 것입니다. 제갈량이 이평이 앞뒤로 손수 써 보낸 편지와 글을 모두 꺼내 보이자 어긋난 것이 뚜렷해졌고, 이평은 말이 막혀 머리를 숙이고 죄를 빌었습니다. 『화양국지』 유후주지는 그가 책망이 두려워 군량 운반을 감독하던 잠술을 죽이려 했다고 달리 적습니다.
제갈량은 표를 올려, 이평이 제 몸과 이름만 구했을 뿐 나라를 걱정한 일이 없고, 북으로 나갈 때 한중을 지키러 오라 하자 핑계를 대며 다섯 군으로 파주를 만들어 그 자사가 되기를 구했으며, 지난해 한중을 맡기려 하자 사마의 등이 부를 열어 관원을 부른다고 말했다고 적었습니다. 그 속셈을 알면서도 큰일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아들에게 강주를 맡기며 후하게 대했는데 이처럼 뒤집힐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배송지 주에 실린 공문에 따르면 제갈량은 위연 · 양의 · 비의 · 강유 등 스무 명이 넘는 장수와 관리와 의논해 그의 직임과 부절 · 인수를 거두고 작위와 봉토를 깎았습니다. 이평은 서민이 되어 재동군으로 옮겨졌고, 제갈량은 이풍에게 글을 보내 도호가 뉘우치면 떠난 것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타일렀습니다. 진진전에 따르면 제갈량은 진진이 예전에 정방의 뱃속에 비늘이 있다고 했을 때 건드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여겼는데 뜻밖의 일이 생겼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건흥 12년(234) 제갈량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이평은 병이 나서 죽었습니다. 진수는 그가 늘 제갈량이 스스로 자신을 다시 불러 써 주기를 바랐는데 뒷사람은 그리하지 못하리라 헤아렸기에 격분했던 것이라고 적습니다. 습착치는 제갈량이 이평을 죽음에 이르게 하면서도 원망을 사지 않은 것은 사사로움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평했습니다. 아들 이풍은 주제태수에 이르렀습니다. 양희전에 진수가 덧붙인 글은 이엄이 스스로를 높이 여겨 나이와 자리가 비슷한 이들과도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고 적고, 진수는 평에서 그가 일을 다루는 재간과 국량으로 높이 올랐으나 이 전에 실린 이들이 화를 부르고 허물을 산 것은 모두 스스로에게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覽其舉措,跡其規矩,招禍取咎,無不自己也部分如流,趨舍罔滯,正方性也『삼국연의』 제64~65회 · 제85회 · 제87회 · 제91회 · 제94회 · 제100~101회 · 제104회
연의에서 이엄은 제64회에 처음 나옵니다. 법정의 편지를 찢은 유장이 처남 비관에게 면죽을 지키게 하자, 비관은 남양 사람 이엄을 천거해 둘이 군사 삼만으로 면죽을 지킵니다. 제65회에서 유비의 군사가 오자 이엄은 나가 황충과 사오십 합을 겨루고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제갈량은 그의 무예를 보고 힘으로는 잡을 수 없다며 꾀를 씁니다. 이튿날 황충이 거짓으로 져 달아나자 이엄은 뒤쫓다 산골짜기에 들어서 위연에게 앞을 막히고, 산 위의 제갈량이 「항복하지 않으면 양쪽에 숨긴 쇠뇌로 방통의 원수를 갚겠다」고 하자 말에서 내려 갑옷을 벗고 항복합니다. 유비가 그를 후하게 대하자 이엄은 면죽성으로 돌아가 비관을 달래 항복하게 합니다.
제85회에서 병이 깊어진 유비는 승상 제갈량과 상서령 이엄 등을 영안궁으로 불러 유명을 남깁니다. 뒤에 제갈량은 이엄이 맹달과 생사를 같이하기로 맺은 사이라며 이엄의 필적처럼 꾸민 편지를 맹달에게 보내 그가 군사를 내지 않게 합니다. 제87회에서 남쪽 정벌을 앞둔 제갈량은 「이엄이 백제성에 있으니 이 사람이면 육손을 당할 만하다」며 동오를 걱정하는 후주를 안심시키고, 제91회에서 북벌에 나서며 이엄 등에게 촉으로 드는 어귀를 지켜 동오를 막게 합니다. 제94회에는 아들 이풍이 기산으로 와서 맹달이 돌아오려 한다는 뜻을 전합니다.
제100회에서 이엄이 군량을 나르게 보낸 도위 구안은 술을 좋아해 열흘이나 늦게 이르고, 곤장을 맞자 위로 달아나 성도에 헛소문을 퍼뜨립니다. 제101회에서 군량이 이르지 않던 때 이엄은 동오가 위와 손잡고 촉을 치려 한다는 급한 편지를 보내 제갈량을 물러나게 하고는, 후주에게는 군량을 다 갖추었는데 승상이 까닭 없이 돌아왔다고 아뢰어 제 허물을 덮습니다. 비의가 한중에 와서 사정이 드러나자 제갈량은 그를 베려다 비의의 말에 그치고, 후주도 그를 베게 하다가 장완이 선제의 탁고 대신이라며 빌자 서민으로 내쳐 재동군으로 보냅니다. 제갈량은 아들 이풍을 장사로 씁니다. 제104회에서 제갈량이 죽자 이엄은 크게 울다 병들어 죽는데, 연의는 그가 늘 제갈량이 다시 거두어 주기를 바랐으나 제갈량이 죽은 뒤로는 자신을 써 줄 사람이 없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라고 적습니다. 연의에서 이엄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이풍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영안의 문을 아는 자다.
탁고를 함께 받은 사람이오. 가벼이 보지 마시오.
내 말에도 무게가 있소.
…군량이 늦었다 하겠구려.
변명할 말을 찾아야겠군.
둘이 받든 유명이오. 나도 한 축이오.
…거짓말이 나를 삼켰구려.
강을 등지고 버텼소.
…승상께 뭐라 아뢰나.
승상이 가셨다니 나도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