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효직(孝直) · 176년 ~ 220년 · 사례 우부풍 미현 · 유비 휘하
유비에게 익주를 바치고 한중을 정벌한 촉한 최고의 천재 모사
출전 · 『삼국지』 촉서 법정전과 배송지 주의 『삼보결록주』 · 손성 · 선주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유장전 · 방통전 · 선주목황후전 · 조운전 · 장비전 · 이적전 · 제갈량전 배송지 주 · 위서 하후연전 · 촉서 황권전 · 『화양국지』 유선주지
법정은 자가 효직이며 우부풍 미현 사람입니다. 할아버지 법진은 맑은 절개와 높은 이름이 있었는데, 배송지 주에 인용된 『삼보결록주』는 그가 여러 번 부름을 받고도 벼슬하지 않아 벗들이 현덕선생이라 불렀다고 적습니다. 아버지 법연은 사도연 · 정위좌감을 지냈습니다.
건안 초 천하에 흉년이 들자 법정은 같은 군의 맹달과 함께 촉에 들어가 유장에게 몸을 맡겼고, 오랜 뒤에 신도령이 되었다가 불려 군의교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쓰이지 못한 데다 고향에서 함께 떠돌아온 이들에게 행실이 없다는 헐뜯음까지 받아 뜻을 얻지 못했습니다. 익주별가 장송은 법정과 사이가 좋았는데, 유장이 함께 큰일을 할 사람이 못 된다고 헤아려 늘 몰래 탄식했습니다. 장송이 유장에게 조조와 끊고 유비와 손잡으라 권하자 유장은 누구를 보낼지 물었고, 장송이 법정을 들자 법정은 사양하다 마지못해 다녀왔습니다. 돌아온 법정은 장송에게 유비에게 웅대한 지략이 있다고 말했고, 두 사람은 몰래 꾀를 모아 함께 유비를 받들기를 바랐으나 아직 인연이 없었습니다.
건안 16년(211) 조조가 장로를 치려 한다는 말에 유장이 두려워하자, 장송은 유비를 맞아 장로를 치게 하자고 권했고 유장은 다시 법정에게 명을 맡겼습니다. 선주전에 따르면 법정은 군사 사천을 거느리고 유비를 맞으러 갔습니다. 법정은 뜻을 전한 뒤 유비에게 몰래 「장군의 뛰어난 재주로 유목의 나약함을 틈타고, 주의 팔다리인 장송이 안에서 호응한 뒤 익주의 넉넉함과 하늘이 내린 험한 땅에 기대면 일을 이루기가 손바닥을 뒤집듯 쉽다」는 계책을 바쳤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는 장송과 법정이 촉의 넓이와 곳간, 군사의 수와 길의 멀고 가까움을 모두 말하고 산천을 지도로 그려 보였다고 적습니다. 유비가 부에서 유장과 만나자 장송은 법정을 시켜 그 자리에서 유장을 덮치자고 아뢰게 했으나, 유비는 큰일이라 서두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유비가 가맹에서 돌아서 유장을 치자, 광한의 정도는 파서 · 재동의 백성을 부수 서쪽으로 옮기고 곳간과 들판의 곡식을 모두 태운 뒤 보루를 높이고 기다리면 유비의 군사가 백 일을 못 가 달아날 것이라고 유장에게 권했습니다. 이를 듣고 꺼리는 유비에게 법정은 유장이 끝내 쓰지 못할 테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했고, 유장은 과연 「적을 막아 백성을 편안히 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백성을 움직여 적을 피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며 정도를 물리쳤습니다. 낙성을 에워쌌을 때 법정은 유장에게 긴 글을 보내, 파동은 이미 다 차지되었고 광한 · 건위도 반이 넘게 평정되었으며 익주의 화복이 걸린 어복과 관두 두 문이 다 열렸으니 집안을 보전할 길을 찾으라고 권했습니다.
건안 19년(214) 성도를 에워쌌을 때 유장의 촉군태수 허정이 성을 넘어 항복하려다 들켰습니다. 유장이 항복한 뒤 유비가 이 일로 허정을 업신여겨 쓰지 않자, 법정은 허정이 헛된 이름뿐이지만 그 이름이 온 세상에 퍼졌으니 예우하지 않으면 천하가 주공이 어진 이를 천하게 여긴다고 할 것이라며, 옛 연왕이 곽외를 대하듯 공경해 멀고 가까운 이들에게 보이라고 권했습니다. 유비는 그 말대로 허정을 두텁게 대우했습니다. 익주가 평정되자 법정은 제갈량 · 관우 · 장비와 함께 금 오백 근을 받았고, 촉군태수 · 양무장군이 되어 밖으로는 도읍 둘레를 거느리고 안으로는 모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법정은 한 끼 밥의 은덕과 눈 흘긴 원한까지 모두 갚아, 자기를 헐뜯은 몇 사람을 마음대로 죽였습니다. 어떤 이가 제갈량에게 주공께 아뢰어 그 위세를 누르라고 하자, 제갈량은 공안 시절 유비가 북으로는 조조를, 동으로는 손권을 꺼리고 가까이는 손부인의 변을 두려워할 때 법정이 날개가 되어 날아오르게 했으니 어찌 그의 뜻을 막겠느냐고 답했습니다. 진수는 제갈량이 유비가 법정을 아끼고 믿는 것을 알았기에 그렇게 말했다고 적습니다. 법정은 제갈량 · 유파 · 이엄 · 이적과 함께 촉의 법률인 『촉과』를 지었고, 유비가 같은 종실 유모의 아내였던 오씨를 맞기를 꺼리자 진 문공과 자어의 옛일을 들어 권했습니다.
건안 22년(217) 법정은 조조가 장로를 한 번에 항복시키고도 파와 촉을 도모하지 않은 채 하후연 · 장합만 남기고 몸소 북으로 돌아간 것은 안에 걱정이 있어서라며, 지금 치면 반드시 이기니 하늘이 준 때를 놓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유비는 이 계책을 옳게 여겨 장수들을 이끌고 한중으로 나아갔고 법정도 따라갔습니다. 건안 24년(219) 유비가 양평에서 남쪽으로 면수를 건너 정군산에 진을 치자 하후연이 그 땅을 다투러 왔고, 법정이 「칠 만합니다」라고 하자 유비는 황충에게 높은 곳을 타고 북을 울리며 치게 해 하후연을 베었습니다. 서쪽으로 나선 조조는 법정의 계책을 듣고 「내 원래 현덕이 이런 일을 해낼 수 없음을 알았으니 반드시 누가 가르친 것이다」라고 했고, 『화양국지』는 조조가 「간웅들을 거의 다 거두었는데 유독 법정만 얻지 못했구나」라고도 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에 실린 이야기로는, 싸움이 불리한데도 성이 난 유비가 물러나지 않아 화살이 비처럼 쏟아질 때 법정이 유비 앞을 막아섰고, 유비가 「효직은 화살을 피하라」 하자 「명공께서 몸소 화살과 돌을 맞으시는데 하물며 소인이겠습니까」라고 답해 함께 물러났다고 합니다.
그해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법정은 상서령 · 호군장군이 되었고, 이듬해 마흔다섯에 죽었습니다. 유비는 여러 날 눈물을 흘리며 익후라는 시호를 내렸는데, 조운전은 유비 때 시호를 받은 이는 법정뿐이었다고 적습니다. 아들 법막은 관내후를 받고 봉거도위 · 한양태수에 이르렀습니다. 제갈량과 법정은 좋아하는 바가 달랐으나 공의로써 서로를 받아들였고, 제갈량은 늘 법정의 지략을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장무 2년(222) 유비가 여러 신하의 간언을 물리치고 오를 쳤다가 크게 져서 백제로 물러나자, 제갈량은 「법효직이 살아 있었다면 주상을 말려 동쪽으로 가지 않게 했을 것이고, 다시 갔더라도 반드시 이처럼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탄식했습니다. 진수는 법정이 이루고 무너짐을 밝게 내다보고 기이한 계책이 있었으나 덕과 바탕으로 일컬어지지는 않았다며, 위의 신하에 견주면 정욱 · 곽가의 짝이라고 평했습니다.
法正著見成敗,有奇畫策算,然不以德素稱也法孝直若在,則能制主上,令不東行;就復東行,必不傾危矣『삼국연의』 제60~65회 · 제70~71회 · 제73회 · 제77회 · 제79회 · 제81회
연의에서 법정은 제60회에 처음 나옵니다. 조조에게 푸대접을 받고 형주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은 장송은 유비에게 서천의 지도를 바치며 속을 터놓을 벗으로 법정과 맹달을 일러 주고, 연의는 법정을 우부풍 사람으로 어진 선비 법진의 아들이라 소개합니다. 돌아온 장송이 익주를 유비에게 주기로 했다고 하자 법정은 유장이 무능하다며 반기고, 뒤이어 온 맹달까지 셋이 손뼉을 치며 웃습니다. 사자가 되어 형주에 간 법정은 익주는 하늘이 내린 곳간이라 어지러움을 다스릴 주인이 아니면 지킬 수 없다며, 토끼는 먼저 쫓는 이가 얻는다는 말로 결단을 재촉합니다.
부에서 두 유씨가 만나자 법정은 장송의 밀서를 들어 방통과 함께 유장을 도모하자고 하고, 제61회에서는 위연에게 칼춤을 추게 해 틈을 노리지만 유비가 막습니다. 제63회에서는 찾아온 팽양을 알아보고 방통에게 소개하며 낙성으로 가는 길을 땅에 그려 보입니다. 제64회에서 낙성이 떨어지자 유장에게 항복을 권하는 글을 보내고, 유장은 글을 찢으며 주인을 팔아 영화를 구한 도적이라 욕합니다. 제65회에서 유장이 들판을 태우자는 정도의 계책을 쓰지 못하리라 내다보는 것도 법정입니다. 익주가 평정되자 촉군태수가 된 법정은 제갈량이 법을 엄하게 세우자 한 고조의 약법삼장을 들어 형벌을 늦추라 권했다가 제갈량의 답을 듣고 절하고, 한 끼 밥의 은덕과 눈 흘긴 원한까지 갚다가 제갈량이 공안 시절의 공을 들어 그냥 두었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몸을 삼갑니다.
제70회에서 천탕산을 얻었다는 소식에 법정은 조조가 하후연 · 장합만 남기고 돌아간 것은 실책이라며 한중을 치자고 하고, 제71회에서 황충과 함께 정군산으로 나갑니다. 진식이 사로잡히자 걸음마다 진을 치며 나아가 하후연을 끌어내는 반객위주의 꾀를 내고, 정군산 서쪽의 높은 산을 빼앗은 뒤 자신은 산꼭대기에 올라 흰 깃발을 들면 기다리고 붉은 깃발을 들면 치라고 황충과 약속합니다. 하후연의 군사가 지쳐 말에서 내려 쉬자 법정이 붉은 깃발을 흔들고, 황충이 달려 내려가 하후연을 벱니다.
제73회에서 법정은 제갈량과 함께 유비에게 제위를 권하고, 한중왕의 자리에 오를 때 허정과 함께 관과 옥새를 올리며 상서령이 됩니다. 제77회에서는 유모의 아내였던 오의의 누이를 왕비로 맞으라 권하며 진 문공의 옛일을 듭니다. 연의는 법정의 죽음을 따로 그리지 않고, 제79회에서 맹달이 효직은 이미 죽었다고 말하는 데서 드러냅니다. 제81회에서 유비가 오를 치러 떠나자 성도로 돌아온 제갈량은 법효직이 살아 있었다면 주상의 동정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울적해합니다. 연의에서 법정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할아버지 법진 · 아버지 법연 · 아들 법막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익주의 길은 내가 안다.
은혜도 원한도 나는 반드시 갚소.
그 말, 잘 적어 두겠소. 갚을 날이 오겠지.
…셈이 하나 어긋났군.
판을 다시 짜면 그만이오.
정군산의 셈법이 여기서도 통하는구려.
이 원한도 언젠가 갚으리다.
한 수 앞서 두었소.
…계책이 통하지 않았소.
한중을 얻고… 오래 못 사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