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한승(漢升) · 미상 ~ 220년 · 형주 남양군 · 한현 휘하
정군산에서 위나라 명장 하후연을 참수하며 기세를 떨친 촉한의 전설적인 노장
출전 · 『삼국지』 촉서 황충전 · 선주전 · 법정전 · 비시전 · 후주전 · 조운전 배송지 주의 『조운별전』 · 양희전의 『계한보신찬』 · 위서 하후연전 · 오서 태사자전
황충은 자가 한승이며 남양 사람입니다. 형주목 유표는 그를 중랑장으로 삼아 조카 유반과 함께 장사의 유현을 지키게 했습니다. 태사자전은 날래고 용맹한 유반이 여러 번 애현 · 서안 등지를 노략하자 손책이 태사자를 건창도위로 삼아 막게 했다고 적습니다. 건안 13년(208) 조조가 형주를 차지하자 황충은 비장군의 일을 임시로 맡아 옛 자리를 그대로 지키며 장사태수 한현에게 속했습니다.
유비가 남쪽의 여러 군을 평정할 때 무릉태수 금선 · 장사태수 한현 · 계양태수 조범 · 영릉태수 유도가 모두 항복했고, 황충은 마침내 몸을 맡겨 유비를 따랐습니다. 황충전은 그때 싸움이 있었는지, 그의 나이가 몇이었는지 적지 않습니다. 황충은 유비를 따라 촉으로 들어갔고, 건안 17년(212) 유비가 가맹에서 돌아서 유장을 칠 때 선주전에 따르면 탁응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유장에게로 향했습니다. 황충전은 이때 그가 늘 앞장서 적진을 무너뜨려 그 용맹이 삼군에서 으뜸이었다고 적습니다. 건안 19년(214) 익주가 평정되자 토로장군이 되었습니다.
건안 22년(217) 법정은 조조가 한중을 얻고도 하후연 · 장합만 남기고 북으로 돌아갔으니 치면 이긴다고 유비에게 권했습니다. 건안 24년(219) 정월 유비가 양평에서 남쪽으로 면수를 건너 산을 따라 조금씩 나아가 정군산과 흥세에 진을 치자 하후연이 그 땅을 다투러 왔습니다. 법정전에 따르면 법정이 칠 만하다고 하자 유비는 황충에게 높은 곳을 타고 북을 치고 고함치며 내리치게 했습니다. 황충전은 하후연의 군사가 매우 날랬으나 황충이 칼끝을 앞세워 반드시 나아가며 군사를 북돋우니, 징과 북 소리가 하늘을 흔들고 고함이 골짜기를 울렸고 한 번 싸움에 하후연을 베어 그 군이 크게 무너졌다고 적습니다. 하후연전은 유비가 밤에 녹각을 불태우자 하후연이 장합에게 동쪽을 맡기고 스스로 남쪽을 지키다가, 밀리는 장합에게 군사 절반을 나누어 보낸 사이 습격을 받아 싸우다 죽었다고 적습니다. 황충은 정서장군이 되었습니다. 무제기에 따르면 그해 3월 조조가 몸소 장안에서 사곡으로 나와 양평에 이르렀으나 유비는 험한 곳을 지키며 맞섰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조운별전』은 조조가 한중을 다투며 북산 아래로 쌀을 나르자 황충이 빼앗을 만하다며 나섰다가 약속한 때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조운이 맞으러 나갔다고 전합니다. 5월 조조가 군을 돌려 장안으로 돌아가 한중은 유비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해 한중왕이 된 유비가 황충을 후장군으로 삼으려 하자, 제갈량은 「황충의 명망은 본래 관우 · 마초와 같은 무리가 아닌데 이제 같은 반열에 둡니다. 마초 · 장비는 가까이서 그 공을 보았으니 타이를 수 있으나, 관우는 멀리서 듣고 반드시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걱정했습니다. 유비는 「내가 스스로 풀겠다」 하고 황충을 관우 등과 나란히 세우고 관내후를 주었습니다. 비시전에 따르면 과연 관우는 황충이 후장군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대장부는 끝내 늙은 병사와 한 줄에 서지 않는다」며 전장군의 임명을 받지 않으려 했다가, 비시가 한 고조의 어릴 적 벗 소하 · 조참도 뒤늦게 망명해 온 한신이 가장 윗자리에 섰다고 원망하지 않았다며, 한중왕이 한때의 공으로 황충을 높였어도 마음의 무게가 어찌 관우와 같겠느냐고 타이르자 크게 깨닫고 받았습니다. 황충전은 그의 나이를 적지 않습니다.
황충은 이듬해인 건안 25년(220)에 죽었고, 아들 황서가 일찍 죽어 뒤가 끊겼습니다. 경요 3년(260) 후주는 관우 · 장비 · 마초 · 방통과 함께 황충에게 강후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진수는 「황충과 조운은 굳세고 사나워 함께 발톱과 이빨이 되었다」고 평했고, 양희의 『계한보신찬』은 「장군은 두텁고 굳세어 봉우리를 꺾고 어려움에 올랐으며, 공을 세우고 일을 이루어 그 시대의 줄기가 되었다」고 기렸습니다.
黃忠、趙雲強摯壯猛,並作爪牙忠推鋒必進,勸率士卒,金鼓振天,歡聲動谷,一戰斬淵『삼국연의』 제53~83회
연의에서 황충은 제53회에 처음 나옵니다. 장사를 치러 가는 관우에게 제갈량은 한현 밑에 남양 사람 황충이 있는데, 유표의 중랑장으로 유반과 함께 장사를 지키다 한현을 섬겼고 예순 가까운 나이에도 만 명을 당해 낼 용맹이 있으니 가볍게 보지 말라고 이릅니다. 두 섬 힘의 활을 당겨 백 번 쏘아 백 번 맞히는 황충은 첫날 관우와 백여 합을 겨루고, 이튿날 말이 앞발을 헛디뎌 땅에 떨어지자 관우는 목숨을 살려 줄 테니 말을 바꿔 와서 싸우자고 외칩니다. 사흘째 거짓으로 달아나던 황충은 두 번 빈 시위만 튕기다가 조교에서 관우의 투구 술 밑동을 쏘아 맞혀 은혜를 갚습니다. 이를 내통으로 본 한현이 그의 목을 베려 하자 위연이 뛰어들어 황충을 구하고 한현을 베어 관우에게 항복합니다. 황충은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다가 유비가 몸소 그의 집을 찾아가자 비로소 항복하고, 한현의 주검을 장사 동쪽에 묻게 해 달라고 청하며 유반을 천거해 장사를 맡게 합니다.
제62회 익주에서는 자신을 늙었다고 깎아내리는 위연과 공을 다투다가, 말이 거꾸러져 떨어진 위연을 노리던 등현을 활로 쏘아 떨어뜨리고 위연을 구합니다. 제70회에서 조운 · 맹달 등이 늙은 장수 둘을 보냈다고 비웃는 가운데 엄안과 함께 장합을 깨고 천탕산을 빼앗고, 정군산을 앞두고 제갈량이 하후연은 장합과 다르다며 일부러 긁자 염파가 여든에도 쌀 한 말에 고기 열 근을 먹었다며 하물며 자신은 일흔도 안 되었다고 발끈합니다. 제71회에서 법정이 산꼭대기에서 흰 깃발과 붉은 깃발로 때를 알리자, 위군이 지쳐 쉬는 한낮에 달려 내려가 하후연을 머리에서 어깨까지 한 칼에 두 동강 냅니다. 이어 한수 북산의 군량을 빼앗으러 갔다가 장합 · 서황에게 에워싸이고 조운에게 구출됩니다. 제73회에서 오호대장의 하나가 되지만, 관우는 늙은 병졸과 한 반열에 설 수 없다며 성을 냅니다.
제82회 이릉 싸움에서 유비가 옛 장수들은 다 늙어 쓸모가 없다고 하자, 제83회에서 황충은 일흔이 넘었어도 고기 열 근을 먹고 두 섬 활을 당긴다며 몇 사람만 거느리고 나가 반장의 부장 사적을 베고 반장과 싸웁니다. 이튿날 반장을 쫓아 삼십여 리를 들어갔다가 사방에서 일어난 복병에 에워싸여 마충의 화살을 어깨에 맞고, 관흥 · 장포에게 구출되어 유비의 진영으로 옮겨집니다. 유비가 등을 쓰다듬으며 늙은 장군을 다치게 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자, 황충은 일흔다섯이니 목숨은 넉넉하다며 중원을 도모하라고 당부하고 그날 밤 숨을 거둡니다. 유비는 오호대장 가운데 벌써 셋을 잃었다고 탄식합니다. 연의에서 황충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황서(일찍 죽어 뒤가 끊겼다)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늙었다 얕보지 마라!
늙었다 하지 마시오. 활시위는 여전하오.
나이는 숫자요. 겨눠 보면 알 것이오.
…팔이 예전 같지 않구려.
정군산에서는 이러지 않았소.
백 보 밖의 버들잎도 맞히오.
…이제는 정말 늙었는가.
늙은 활이 아직 팽팽하오!
…이 활도 늙기는 늙었구려.
이 늙은 활도… 여기까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