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상 ~ 미상 (209년 이후) · 미상 · 한 세력의 주인
정사에서는 조용히 항복한 장사태수, 연의에서는 위연의 칼에 쓰러진 인물
출전 · 『삼국지』 촉서 선주전과 배송지 주의 『삼보결록주』 · 황충전 · 요립전 · 『화양국지』 유선주지
한현은 후한 말 형주 장사군의 태수였습니다. 자와 출신, 태어나고 죽은 해는 전하지 않고, 『삼국지』 선주전과 황충전, 『화양국지』에 이름이 한 번씩 나올 뿐입니다.
황충전에 따르면 형주목 유표는 황충을 중랑장으로 삼아 조카 유반과 함께 장사의 유현을 지키게 했고, 건안 13년(208) 조조가 형주를 차지하자 황충은 비장군의 일을 임시로 맡아 옛 자리를 그대로 지키며 장사태수 한현에게 속했습니다. 한현이 언제, 누구의 손으로 장사태수가 되었는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해 겨울 적벽에서 진 조조가 북으로 돌아간 뒤, 선주전은 유비가 유기를 형주자사로 올리고 남쪽의 네 군을 치자 무릉태수 김선 · 장사태수 한현 · 계양태수 조범 · 영릉태수 유도가 모두 항복했다고 적습니다. 『화양국지』도 네 사람이 모두 항복했다고 적습니다. 싸움이 있었는지는 적혀 있지 않고, 배송지 주에 인용된 『삼보결록주』가 김선이 유비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고 하여 본문과 갈릴 뿐 한현에 대해서는 다른 말이 없습니다. 황충은 이때 유비에게 몸을 맡겨 따랐습니다.
사서에 남은 것은 이것뿐입니다. 항복한 뒤 한현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하지 않습니다. 요립전은 유비가 형주목이 된 뒤 서른이 안 된 요립을 장사태수로 발탁했다고 적습니다.
武陵太守金旋、長沙太守韓玄、桂陽太守趙範、零陵太守劉度皆降及曹公克荊州,假行裨將軍,仍就故任,統屬長沙守韓玄『삼국연의』 제41회 · 제53회 · 제70회
연의에서 한현의 이름은 제41회에 처음 나옵니다. 양양에서 유비를 놓친 위연이 장사태수 한현에게 몸을 맡기러 갔다는 대목입니다. 제53회에서 조운이 계양을, 장비가 무릉을 얻자 관우가 장사를 치겠다고 나섭니다. 제갈량은 한현은 말할 것도 없으나 그 밑의 황충이 예순 가까운 나이에도 만 명을 당해 낼 용맹이 있다고 일러 두고, 관우는 교도수 오백만 데리고 떠납니다.
연의는 한현이 평소 성질이 급하고 사람 죽이기를 가벼이 여겨 모두가 그를 미워했다고 소개합니다. 관우가 오자 관군교위 양령이 사로잡겠다고 나섰다가 관우의 칼에 죽고, 놀란 한현은 황충을 내보낸 뒤 몸소 성 위에 올라 지켜봅니다. 첫날 황충과 관우가 백여 합을 겨루자 한현은 황충이 다칠까 징을 쳐 거두고, 이튿날 황충의 말이 앞발을 헛디뎌 떨어졌으나 관우가 목숨을 살려 보내자, 백 번 쏘아 백 번 맞히는 활로 왜 쏘지 않았느냐며 제가 타던 푸른 말을 내줍니다. 사흘째 황충이 빈 시위만 두 번 당기다가 세 번째 화살로 관우의 투구 술 밑동만 맞히자, 한현은 사흘을 지켜보니 네가 나를 속였다며 안팎으로 통한 것이라 여겨 황충의 목을 베라 하고, 살려 달라고 청하는 자도 같은 죄로 다스리겠다고 합니다.
황충이 성문 밖으로 끌려 나가 칼이 떨어지려는 순간, 한현이 오만하다며 쓰지 않던 위연이 뛰어들어 칼잡이를 죽이고 황충을 구합니다. 위연은 한현이 사납고 어질지 못하다며 백성을 불러 모아 성 위로 올라가 한현을 두 동강 내고, 그 머리를 들고 관우에게 항복합니다. 황충은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다가 유비가 몸소 찾아가자 항복하고, 한현의 주검을 장사 동쪽에 묻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제70회에서는 한현의 아우 한호가 조조 쪽 장수로 나와, 황충과 위연이 성을 바치고 친형을 해쳤으니 원수를 갚겠다고 나섰다가 천탕산에서 황충의 칼에 죽습니다. 연의에서 한현의 일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장사는 내 땅이다.
장사의 태수요. 의심이 많다는 말은 들었소.
그 말, 어딘가 수상하구려.
…이자도 나를 배신하려나.
아무도 못 믿겠군.
의심이 나를 살렸소.
위연… 그자를 조심하시오.
장사는 흔들리지 않았다.
…의심한 값을 치르는가.
황충을 의심한 값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