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균(子均) · 미상 ~ 248년 · 익주 파서군 탕거현 · 유비 휘하
가정의 패전을 수습하고 위의 십만 대군에게서 한중을 지킨 촉한의 명장
출전 · 『삼국지』 촉서 왕평전과 구부의 기록 · 배송지 주의 『화양국지』 · 제갈량전과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마량전 · 위연전 · 후주전 · 장완전 · 비의전 · 양홍전 · 위서 장합전 · 조상전과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화양국지』 파지 · 유후주지
왕평은 자가 자균이며 파서군 탕거 사람입니다. 본래 외가인 하씨 집안에서 자라다가 뒤에 왕씨 성을 되찾았으니, 위연전과 배송지가 끌어온 『한진춘추』는 그를 하평이라 적습니다. 두호와 박호를 따라 낙양에 가서 교위 대리가 되었고, 조조를 따라 한중을 치러 왔다가 유비에게 항복해 아문장 · 비장군이 되었습니다.
건흥 6년(228) 제갈량이 첫 북벌에 나서자 왕평은 참군 마속의 선봉에 속했습니다. 마속이 물가를 버리고 산 위로 올라가 어지럽게 움직이자 왕평은 거듭 간했으나 마속은 듣지 않았고, 가정에서 크게 졌습니다. 무리가 모두 별처럼 흩어졌는데 왕평이 거느린 천 명만은 북을 울리며 버티니, 위의 장수 장합은 복병이 있을까 의심해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왕평은 천천히 여러 진영의 흩어진 군사를 거두어 장병을 이끌고 돌아왔고, 『화양국지』도 왕평만이 무리를 거두어 뒤를 막았다고 적습니다. 제갈량은 마속과 장군 장휴 · 이성을 베고 장군 황습 등의 군사를 빼앗았으나, 왕평만은 특별히 높여 참군으로 삼아 오부를 거느리고 진영의 일을 함께 맡게 했으며 토구장군으로 올리고 정후에 봉했습니다.
건흥 9년(231) 제갈량이 기산을 에워쌀 때 왕평은 따로 남쪽 포위진을 지켰습니다. 위의 대장군 사마의가 제갈량을 치고 장합이 왕평을 쳤으나, 왕평이 굳게 지키며 움직이지 않아 장합은 이기지 못했습니다. 『한진춘추』는 이때 그를 무당감 하평이라 부릅니다. 건흥 12년(234) 제갈량이 무공에서 죽고 군이 물러날 때 위연이 난을 일으켰으나 한 번 싸움에 무너졌으니, 왕평전은 이것을 그의 공으로 적습니다. 위연전은 위연이 남곡 어귀를 차지하고 양의 등을 맞받아치자 앞에서 막던 하평이 위연의 선두를 꾸짖어 「공께서 돌아가시어 몸이 아직 식지 않았는데 너희가 어찌 감히 이러느냐」 하니, 위연의 군사들이 잘못이 위연에게 있음을 알고 모두 흩어졌다고 적습니다.
그 뒤 왕평은 후전군 · 안한장군이 되어 거기장군 오의의 버금으로 한중에 머물고 한중태수를 겸했습니다. 건흥 15년(237) 안한후에 봉해지고 오의를 대신해 한중을 감독했습니다. 연희 원년(238) 대장군 장완이 면양에 머물자 전호군으로 장완의 부의 일을 맡았고, 연희 6년(243) 장완이 부로 돌아가자 전감군 · 진북대장군이 되어 한중을 거느렸습니다.
연희 7년(244) 봄 위의 대장군 조상이 보병과 기병 십여만을 이끌고 한천으로 향해 선봉이 이미 낙곡에 이르렀습니다. 한중을 지키는 군사는 3만이 채 못 되어 장수들이 크게 놀랐고, 어떤 이는 한성과 낙성 두 성을 굳게 지키며 적을 들어오게 두면 그 사이에 부의 군사가 관을 구하러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왕평은 「그렇지 않다. 한중에서 부까지는 천 리 가깝다. 적이 관을 얻으면 곧 화가 된다」며, 호군 유민과 참군 두씨를 먼저 보내 흥세를 차지하게 하고 자신은 뒤를 막겠다고 했습니다. 적이 군사를 나누어 황금(땅 이름)으로 향하면 자신이 천 명을 이끌고 내려가 맞을 것이고, 그 사이에 부의 군사가 이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호군 유민만이 뜻을 같이해 곧 그대로 했고, 부의 군사들과 대장군 비의가 성도에서 잇달아 이르자 위군은 물러가니 모두 왕평의 계책대로였습니다. 장완전에 딸린 유민의 기록은 흥세에 깃발을 많이 벌여 백여 리를 덮었다고 적고, 조상전은 조상이 군사 6~7만을 일으켜 낙곡으로 들어갔으나 촉이 산을 의지해 굳게 지켜 나아가지 못하고 물러났다고 적습니다. 이때 등지는 동쪽에, 마충은 남쪽에, 왕평은 북쪽 경계에 있어 모두 이름난 자취를 남겼습니다.
왕평은 군중에서 자라 손으로 글을 쓰지 못했고 아는 글자가 열 자를 넘지 않았으나, 입으로 불러 쓰게 한 글은 모두 조리가 있었습니다. 남에게 『사기』와 『한서』의 본기와 열전을 읽게 해 듣고서 큰 뜻을 다 알았고, 이따금 따져 말하는 것도 그 요지를 잃지 않았습니다. 법도를 따르고 말에 농이 없었으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단정히 앉아 있어 무장다운 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왕평전은 그의 성품이 좁고 남을 의심하며 스스로를 가볍게 여긴 것이 흠이었다고 적습니다. 『화양국지』는 그가 글을 잘 알지 못했으나 성품이 날카롭고 밝으며 생각에 조리가 있어 마충과 함께 공을 남겼다고 적습니다. 연희 11년(248)에 죽었고 아들 왕훈이 뒤를 이었습니다.
같은 군 한창 사람 구부도 충성스럽고 용맹하며 너그러워 여러 번 싸움에 공을 세웠는데, 공명과 작위가 왕평 다음이라 좌장군 · 탕거후에 이르렀습니다. 배송지가 끌어온 『화양국지』는 뒤에 장익과 요화가 대장군이 되자 당시 사람들이 「앞에는 왕평과 구부, 뒤에는 장익과 요화」라고 했다고 전합니다. 진수는 「왕평은 충성스럽고 용맹하며 엄정했다」고 평했습니다.
王平忠勇而嚴整惟平所領千人鳴鼓自持,魏將張郃疑其伏兵,不往逼也『삼국연의』 제71~73회 · 제87~105회
연의에서 왕평은 제71회에 처음 나옵니다. 한수에서 촉군과 맞선 조조가 서황을 선봉으로 삼자, 파서 탕거 사람으로 조조 밑의 아문장군인 왕평이 땅의 이치를 잘 안다며 나서서 부선봉이 됩니다. 서황이 한신을 본떠 물을 등지고 진을 치려 하자 왕평은 급히 물러나야 할 때는 어찌하느냐, 한신은 적에게 꾀가 없음을 헤아리고 그 꾀를 썼는데 장군은 조운과 황충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느냐며 말립니다. 제72회에서 강을 건넌 서황이 황충과 조운에게 크게 지고 돌아와 왜 구하지 않았느냐며 그를 죽이려 하자, 왕평은 그날 밤 진영에 불을 지르고 한수를 건너 조운에게 항복합니다. 유비는 「내가 왕자균을 얻었으니 한중을 얻는 것은 틀림없다」며 기뻐하고 그를 편장군으로 삼아 길잡이를 맡깁니다. 제73회에서는 유봉 · 맹달과 함께 상용의 여러 군을 칩니다.
제87회부터 왕평은 제갈량의 남쪽 정벌에 부장으로 따라나서고, 제89회에서는 수백 군사를 이끌고 앞장서 샛길을 찾다가 군사들이 아천의 물을 마셔 말을 잃자 제갈량과 함께 안락천을 찾아가 고칩니다. 제92회에서는 첫 북벌에 나서 위의 부마 하후무를 한 합에 사로잡습니다.
제95회에서 제갈량은 가정을 지키러 가는 마속에게 왕평을 딸려 보내며 그가 평소에 신중함을 알아 무거운 일을 맡긴다고 합니다. 가정에 이른 마속이 산 위에 진을 치려 하자 왕평은 다섯 길이 모이는 어귀에 진을 치고 나무를 베어 울을 세우자고 거듭 말리지만, 마속은 듣지 않고 군사 오천만 떼어 줍니다. 왕평은 산에서 십 리 떨어진 곳에 진을 치고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밤새 제갈량에게 보내고, 사마의는 장합을 시켜 그의 길을 막은 뒤 물 긷는 길을 끊어 가정을 빼앗습니다. 왕평은 장합과 수십 합을 싸우다 물러나고, 에워싸인 위연과 고상을 구해 함께 양평관으로 돌아갑니다. 제96회에서 제갈량이 왜 말리지 않았느냐고 먼저 꾸짖자 왕평은 거듭 권했으나 참군이 크게 노해 따르지 않았다고 자초지종을 아룁니다.
그 뒤로도 왕평은 제97회 진창에서 왕쌍의 유성추에 맞은 장억을 요화와 함께 구하고, 제98회에서 음평을 치러 가 제99회에 빼앗으며, 같은 회에서 목숨을 걸고 복병을 맡겠다고 나서 제갈량에게 참된 충신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제102회에서는 위병으로 꾸며 북원의 군량 수레 행렬에 섞여 들어가 목우유마를 몰고 오고, 목우유마의 혀를 비틀어 멈추게 하는 꾀로 곽회를 따돌립니다. 제104회에서 제갈량은 죽기 전 양의에게 마대 · 왕평 · 요화 · 장익 · 장억을 충의로운 장수로 부탁합니다. 제105회에서 위연이 남곡 어귀를 막자 양의의 선봉 하평이 나서 승상께서 막 돌아가시어 뼈와 살이 아직 식지 않았는데 어찌 반역하느냐고 꾸짖고 위연의 군사 태반이 흩어지는데, 연의는 이 사람을 하평이라고만 부릅니다. 같은 회에서 장완이 오의 움직임에 대비해 왕평과 장억을 영안에 두자고 아뢰는 것을 끝으로 왕평은 연의에서 사라집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왕훈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가정의 일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왕자균이오. 글은 몰라도 이치는 아오.
들은 것은 잊지 않소. 말해 보시오.
…내 말을 들었어야 했소.
진을 다시 세워야겠군.
산 위에 진을 치지 말라 하지 않았소.
…지킬 곳을 지키지 못했구려.
한중은 그대로다.
…흥세의 진을 다시 짜야겠군.
한중은 내가 지켰다.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