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탄諸葛誕

자 공휴(公休) · 미상 ~ 258년 · 서주 낭야국 양도현 · 조조 휘하

제갈탄 초상

수춘에 홀로 서서 사마씨에게 마지막까지 굽히지 않은 위나라 정동대장군

능력치

통솔78무력71지력73정치75매력82

카드

공격력 4체력 4비용 3값어치 10직군 주공
진격 비용 1
아군 전체의 소환 멀미를 푼다. 낸 국면에 바로 친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제갈탄전과 배송지 주의 『위씨춘추』 · 『세어』 · 『한진춘추』 · 간보 『진기』 · 위서 삼소제기 · 제갈탄전 배송지 주의 『진제공찬』 · 촉서 제갈량전 · 오서 삼사주전 · 『진서』 문제기

제갈탄은 자가 공휴이며 낭야국 양도현 사람으로, 한나라 제갈풍의 후손입니다. 『삼국지』 제갈량전도 제갈량을 같은 양도 사람이자 제갈풍의 후손으로 적습니다. 처음에 상서랑으로 형양현령이 되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씨춘추』는 그가 복야 두기와 배를 시험하다 함께 물에 빠졌을 때, 구하러 온 호분에게 「두후를 먼저 구하라」 했다고 적습니다. 들어와 이부랑이 되어서는 누가 사람을 부탁하면 그 말을 드러내 놓고 받아 쓰고, 뒤에 그 사람의 잘잘못을 공론에 부쳐 칭찬과 꾸짖음을 정하니 관리들이 천거를 삼가게 되었습니다.

어사중승 · 상서를 지내며 하후현 · 등양 등과 사이가 좋아 조정에서 이름을 거두니 도읍이 그들에게 쏠렸습니다. 그러나 일을 아뢰는 이들이 제갈탄과 등양 등이 겉치레를 꾸미고 헛된 명성을 모은다고 하자, 명제는 이를 미워해 그의 벼슬을 거두었습니다. 『세어』에 따르면 당시 이름난 선비들이 서로 이름을 지어 높였는데 하후현 등 넷을 사총, 제갈탄 등 여덟을 팔달이라 했으며, 명제는 이들이 겉치레를 키운다 하여 모두 벼슬을 빼앗고 막았습니다. 명제가 죽고 정시 초 하후현 등이 다시 벼슬에 오르자 제갈탄도 다시 어사중승 · 상서가 되었고, 양주자사로 나가 소무장군이 더해졌습니다.

가평 3년(251) 왕릉의 음모 때 사마의가 몰래 군을 이끌고 동쪽을 치면서 제갈탄을 진동장군 · 가절 · 도독양주제군사로 삼고 산양정후에 봉했습니다. 이듬해(252) 오의 제갈각이 동관에 둑과 성을 쌓자 제갈탄이 여러 군을 감독해 쳤으나 싸움이 불리했고, 돌아와 진남장군으로 옮겨 관구검과 자리를 맞바꾸었습니다.

정원 2년(255) 관구검과 문흠이 일어나 사자를 보내 예주의 선비와 백성을 부르자, 제갈탄은 그 사자를 베고 천하에 포고를 돌려 그들의 흉역을 알렸습니다. 사마사가 동쪽을 칠 때 그는 예주의 군을 거느리고 안풍진을 건너 수춘으로 향했고, 관구검과 문흠이 깨지자 먼저 수춘에 이르렀습니다. 오래 회남에 있었다 하여 그는 다시 진동대장군 · 의동삼사 · 도독양주가 되었습니다. 오의 손준 · 여거 · 유찬 등이 문흠을 데리고 수춘으로 곧장 왔으나 제갈탄의 군이 이미 이르러 있어 물러났고, 제갈탄은 장군 장반을 보내 뒤쫓아 유찬을 베었습니다. 고평후로 올라 식읍 3,500호를 받고 정동대장군이 되었습니다.

제갈탄은 하후현 · 등양 등과 가까웠던 데다 왕릉과 관구검이 잇달아 멸족되자 두려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창고를 기울여 베풀어 무리의 마음을 맺고, 가까이 따르는 이와 양주의 협객 수천을 두텁게 길러 목숨을 바칠 군사로 삼았습니다. 감로 원년(256) 겨울 오가 서알로 향하려 하자, 거느린 군으로 넉넉히 막을 수 있는데도 10만을 더 청해 수춘을 지키고 임회에 성을 쌓겠다고 하니 속으로 회남을 차지하려 한 것입니다. 조정은 그가 스스로 의심하는 마음을 품은 줄 어렴풋이 알고 옛 신하라 하여 불러들여 헤아려 보려 했고, 감로 2년(257) 5월 그를 사공으로 불렀습니다. 『세어』에 따르면 이는 수춘에 다녀온 장사 가충이 「부르면 반드시 오지 않겠으나 화는 작고, 부르지 않으면 일은 늦어도 화가 클 것」이라 한 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조서를 받은 제갈탄은 더욱 두려워 마침내 일어나, 장수들을 모아 몸소 양주자사 악침을 쳐서 죽였습니다.

그는 회남과 회북의 둔전민 10여만의 관병과 양주에서 새로 붙은 정병 4, 5만을 모으고 한 해 먹을 곡식을 쌓아 성문을 닫고 지켰습니다. 장사 오강에게 막내아들 제갈정을 데리고 오에 가서 구원을 청하게 하니, 오는 크게 기뻐하며 전역 · 전단 · 당자 · 왕조 등에게 3만을 주어 문흠과 함께 오게 하고 제갈탄을 좌도호 · 대사도 · 표기장군 · 청주목 · 수춘후로 삼았습니다. 진남장군 왕기가 막 이르러 에움이 아직 닫히지 않았을 때, 당자와 문흠 등은 성의 동북쪽에서 산의 험한 곳을 타고 무리를 이끌고 성에 뛰어들었습니다.

6월 황제가 동쪽으로 나서 항에 이르렀고, 대장군 사마소가 중앙과 지방의 군 26만을 거느리고 회수에 이르러 구두에 진을 쳤습니다. 왕기와 안동장군 진건 등이 사방을 겹겹이 에우고 해자와 보루를 높이 쌓았으며, 감군 석포와 연주자사 주태 등이 유격군을 꾸려 밖의 적에 대비했습니다. 문흠 등이 여러 번 에움을 치고 나왔으나 쫓겨 들어갔고, 오의 주이가 두 번 대군으로 구하러 왔으나 번번이 꺾이자 손침이 그를 죽였습니다. 성안의 먹을 것이 줄고 밖의 구원은 오지 않는데, 제갈탄의 심복 장수 장반과 초이가 그를 버리고 성을 넘어 항복했습니다. 이어 사마소가 반간으로 전역 등을 달래니 그들이 수천을 이끌고 성문을 열고 나가 성안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감로 3년(258) 정월 제갈탄 · 문흠 · 당자 등은 공성 기구를 크게 만들어 대엿새 밤낮으로 남쪽 에움을 쳤으나, 에움 위의 군이 투석기와 불화살로 기구를 불사르고 화살과 돌을 비처럼 퍼부어 죽은 이가 땅을 덮었습니다. 성으로 돌아온 뒤 먹을 것은 바닥나 항복해 나가는 이가 수만이었습니다. 문흠은 북방 사람을 모두 내보내 먹을 것을 아끼고 오의 군사와 굳게 지키자고 했으나 제갈탄이 듣지 않아 다투었고, 본디 사이가 나빴던 두 사람은 일이 급해질수록 서로 의심하다가 끝내 제갈탄이 일을 의논하러 온 문흠을 죽였습니다. 문흠의 아들 문앙과 문호가 성을 넘어 항복하자, 사마소는 그들을 장군으로 삼아 성을 돌며 「문흠의 아들도 죽지 않았는데 나머지야 무엇을 두려워하랴」 외치게 했습니다.

2월 사마소가 몸소 에움에 나와 사방에서 북을 치며 성에 오르니 성안에서 감히 움직이는 이가 없었습니다. 몰린 제갈탄은 홀로 말을 타고 휘하를 거느려 작은 성문으로 뚫고 나가다 대장군사마 호분의 군에게 베였고, 삼족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휘하 수백 명은 항복하지 않는다 하여 베이면서도 모두 「제갈공을 위해 죽으니 한이 없다」고 했으니, 진수는 그가 사람의 마음을 얻음이 이와 같았다고 적습니다. 간보의 『진기』에 따르면 그들은 손을 맞잡고 늘어서서 한 사람을 벨 때마다 항복하라 했으나 끝내 바꾸지 않고 다 죽어, 당시 사람들이 전횡의 무리에 견주었습니다. 『삼국지』는 이때 수춘에 모여 함께 잡힌 제갈탄 · 문흠 · 당자를 「세 반역자」라 부릅니다. 진수는 그가 엄하고 굳세며 위엄이 무거웠으나, 왕릉 · 관구검 · 종회와 함께 마음은 크고 뜻은 엇나가 화를 헤아리지 않다가 일족을 망쳤다고 평했습니다.

諸葛誕嚴毅威重
제갈탄은 엄하고 굳세며 위엄이 무거웠다『삼국지』 위서 왕관구제갈등종전 평
皆曰:「為諸葛公死,不恨。」其得人心如此
「제갈공을 위해 죽으니 한이 없다.」 그가 사람의 마음을 얻음이 이와 같았다『삼국지』 위서 제갈탄전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10~112회

제110회에서 진동장군 제갈탄은 사마사의 명으로 예주의 군을 이끌고 안풍진에서 수춘을 차지하고, 관구검이 죽은 뒤 정동대장군 · 도독양주가 됩니다. 제111회에서 연의는 그를 「낭야 남양 사람으로 무후의 족제」라 소개하며, 제갈량이 촉의 승상이라 위에서 크게 쓰이지 못하다가 그가 죽은 뒤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합니다. 위로를 핑계로 찾아온 가충이 술자리에서 사마씨에게 선양하자는 말을 떠보자, 제갈탄은 「너는 가예주의 아들로 대대로 위의 녹을 먹고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고 꾸짖고 「조정에 난이 있으면 죽음으로 갚겠다」고 합니다.

사공으로 부르는 조서가 오자 그는 사자를 다그쳐 악침이 밀서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사자를 벤 뒤, 군사 천을 이끌고 양주를 쳐서 누각으로 달아난 악침을 「네 아비 악진은 위의 큰 은혜를 입었다」 꾸짖으며 벱니다. 둔전민 10여만과 새로 항복한 4만여를 모으고 아들 제갈정을 오에 볼모로 보내 구원을 청하니, 오는 전역 · 전단 등 7만을 보냅니다. 제112회에서 그는 오군과 함께 나가 싸우다 종회의 꾀에 걸려 크게 지고 수춘에 들어가 지킵니다. 장반 · 초이가 결전을 권하자 「내가 지키려는데 너희가 싸우자 하니 딴마음이 있는가」 꾸짖고, 둘은 성을 넘어 항복합니다.

흙성을 무너뜨릴 큰물을 기다렸으나 비가 오지 않고 식량이 떨어지자, 북방 군사를 내보내자는 문흠을 「나를 해치려 하느냐」며 베고, 문앙 · 문호가 넘어가 항복을 외치자 성안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수장 증선이 북문을 바치자 휘하 수백을 이끌고 작은 길로 뚫고 나가다 조교 곁에서 호준의 칼에 죽고, 사로잡힌 부하 수백은 「제갈공과 함께 죽을지언정 항복하지 않겠다」며 하나씩 베일 때까지 아무도 항복하지 않습니다. 연의에서 제갈탄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40명제 때 겉치레를 꾸민다 하여 쫓겨났다가 정시 초 다시 어사중승 · 상서가 되었습니다.
  2. 251왕릉의 일 뒤 진동장군 · 도독양주제군사가 되고 산양정후에 봉해졌습니다.
  3. 252동관에서 오의 제갈각과 싸워 불리했고, 진남장군으로 옮겨 관구검과 자리를 바꾸었습니다.
  4. 255관구검의 사자를 베고 수춘에 먼저 이르렀으며, 오의 유찬을 베어 고평후가 되었습니다.
  5. 257사공으로 부르는 조서에 양주자사 악침을 죽이고 수춘에서 일어나 오에 구원을 청했습니다.수춘의 두 사람
  6. 258에움 속에서 다투던 문흠을 죽였습니다.
  7. 258성이 떨어지자 작은 성문으로 뚫고 나가다 호분의 군에게 베였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들 제갈정 · 딸(동안공 사마요의 어머니)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수춘의 제갈탄이오.

말을 열며

낭야 제갈씨요. 그 이름값은 하겠소.

되받으며

굽히는 법을 배우지 못하였소.

말문이 막혀

…수춘의 성벽이 아직 눈에 선하오.

말문이 막혀

이십육만이 둘러쌌어도 문은 열지 않았소.

설전을 이기고

굽히지 않으면 지는 것이 아니오.

설전에 지고

말이 막혔을 뿐 뜻은 그대로요.

이긴 뒤

따르는 이들이 있어 여기까지 왔소.

진 뒤

성이 무너져도 뜻은 남는 것이오.

쓰러지며

나는 끝내 굽히지 않았소.

같은 기치 아래

조조하후연하후돈서황학소허저조인전위문앙우금악진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