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연夏侯淵

자 묘재(妙才) · 미상 ~ 219년 · 예주 패국 초현 · 조조 휘하

하후연 초상

사흘에 오백 리를 달리는 기동전의 달인이자 관서 평정의 주역

능력치

통솔92무력91지력55정치61매력79

카드

공격력 6체력 6비용 4값어치 14직군 맹장
신속 호령
멀미 없이 서고 즉시 한 번 더 친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하후연전과 배송지 주의 『위략』 · 『위서』 · 『세어』 · 무제기 · 삼소제기 · 장합전과 배송지 주의 『위략』 · 장료전 · 곽회전 · 제하후조전 평 · 촉서 선주전 · 법정전 · 황충전

하후연은 자가 묘재이며 하후돈의 족제로, 패국 초현의 하후씨 사람입니다. 조조가 고향에 있을 때 현의 관가 일에 걸리자 하후연이 대신 무거운 죄를 떠맡았고, 조조가 힘써 구해 풀려났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은 연주와 예주가 크게 어지러울 때 굶주린 하후연이 제 어린 아들을 버리고 죽은 아우가 남긴 외딸을 살렸다고 적습니다. 하후연의 아내는 조조의 처제입니다.

조조가 군사를 일으키자 별부사마 · 기도위로 따랐고, 진류태수와 영천태수를 지냈습니다. 건안 5년(200) 관도에서 원소와 싸울 때 독군교위를 대행했고, 원소를 깨뜨린 뒤에는 연주 · 예주 · 서주의 군량을 맡아 모자라던 군량을 잇달아 날라 군을 다시 일으켰습니다. 창희가 등을 돌려 우금이 치다 떨어뜨리지 못하자 조조는 하후연을 보내 힘을 합치게 했고, 그는 창희의 둔영 열 남짓을 항복시켜 창희가 우금에게 항복하게 했습니다. 돌아와 전군교위가 되었는데,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서』는 그가 급한 곳으로 빨리 달려가 늘 적의 뜻밖을 치니 군중에서 「전군교위 하후연, 사흘에 오백, 엿새에 천」이라 불렀다고 전합니다. 이어 제남과 낙안의 황건 서화 · 사마구 등이 성을 치고 벼슬아치를 죽이자, 태산 · 제 · 평원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크게 깨뜨려 서화를 베고 여러 현을 평정했으며 그들의 곡식을 거두어 군사를 먹였습니다.

건안 14년(209) 영군의 일을 대행했고, 손권을 치고 돌아온 조조의 명으로 여강에서 등을 돌린 뇌서를 깨뜨렸습니다. 다시 정서호군의 일을 맡아 서황을 거느리고 태원의 도적을 쳐 우두머리 상요를 베었습니다. 건안 16년(211) 위남에서 한수 · 마초와 싸운 조조를 따랐고, 안정에서 조조와 만나 양추의 항복을 받은 뒤 장안에 남았습니다. 이듬해 호군장군의 일을 맡아 장안에 주둔하며 남산의 도적 유웅을 깨뜨리고, 한수 · 마초의 남은 무리 양흥을 호현에서 에워싸 베어 박창정후에 봉해졌습니다. 마초가 기현에서 양주자사 위강을 에웠을 때는 구하러 나섰으나 이르기 전에 위강이 무너졌고, 마초와 싸워 이롭지 못한 데다 견현의 저족마저 들고일어나 군을 돌렸습니다.

건안 19년(214) 강서 등이 들고일어나 한중으로 달아났던 마초가 다시 기산을 에우자, 여러 장수는 조조의 지시를 기다리자고 했습니다. 하후연은 「공은 업에 계시니 오가는 데 사천 리라, 알려 드리는 사이에 강서 등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라며 곧 나섰고, 장합에게 보병과 기병 5천을 주어 앞세우니 마초는 싸우지도 않고 달아났습니다. 이어 한수를 쫓던 그는 흥국성이 굳으니 차라리 장리의 강족을 치면 한수의 군에 든 강족이 제 집을 구하러 돌아가리라 보고, 가벼운 군사로 장리의 강족 진영을 불태웠습니다. 과연 한수가 장리를 구하러 와 진을 치자 여러 장수는 진영과 참호를 쌓은 뒤에 싸우자고 했지만, 하후연은 「천 리를 싸우며 왔는데 다시 진영과 참호를 쌓으면 군사가 지쳐 오래 버틸 수 없다」 하고 북을 울려 한수의 군을 크게 깨뜨렸습니다. 이어 흥국을 에워 저족의 왕 천만을 마초에게로 달아나게 하고 고평의 도각을 흩어 버린 뒤 부절을 받았습니다. 앞서 부한의 송건이 하수평한왕을 자칭한 지 서른 해 남짓이었는데, 하후연은 부한을 한 달 남짓 에워싸 떨어뜨리고 송건을 베었습니다. 장합 등을 보내 황하를 건너 소황중에 들어가니 하서의 강족이 모두 항복해 농우가 평정되었습니다. 조조는 영을 내려 하후연이 송건을 한 번에 멸하였으니 「관의 서쪽을 범처럼 누벼 가는 곳마다 앞을 막는 이가 없다」 하고, 공자의 말을 빌려 「나와 너도 그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무도의 저족과 강족을 하변에서 쳐 곡식 10만 섬 남짓을 거두었습니다. 건안 20년(215) 조조가 장로를 치러 서쪽으로 오자 양주의 장수들을 거느리고 휴정에서 맞았는데, 조조는 강족과 호족을 만날 때마다 하후연을 내세워 그들을 두렵게 했습니다. 장로가 항복하자 도호장군의 일을 맡아 장합 · 서황 등을 거느리고 파군을 평정했고, 그해 12월 조조가 돌아가며 그를 한중에 남겨 지키게 하고 정서장군으로 삼았습니다. 건안 21년(216) 봉읍 300호를 더해 모두 800호가 되었습니다.

건안 23년(218) 유비가 양평관으로 나오자 하후연은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막아 해를 넘기며 맞섰습니다. 건안 24년(219) 정월 유비가 밤에 에움의 녹각을 불태우자, 하후연은 장합에게 동쪽 에움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 가벼운 군사로 남쪽 에움을 지켰습니다. 유비가 장합에게 싸움을 걸어 장합의 군이 불리해지자 하후연은 거느린 군사의 절반을 나누어 장합을 돕게 했고, 그 사이 유비의 습격을 받아 싸우다 죽었습니다. 장합전은 하후연이 불을 끄러 나섰다가 다른 길에서 유비와 맞닥뜨려 짧은 병기로 싸우다 죽었다고 적고, 촉서 법정전은 땅을 다투러 온 하후연을 두고 법정이 「칠 만합니다」 하자 유비가 황충에게 높은 곳을 타고 북을 울리며 치게 했다고 하며, 황충전은 한 번 싸움에 하후연을 베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은 하후연이 도독이었으나 유비는 장합을 꺼리고 하후연을 가볍게 보았다고 전합니다. 사마 곽회가 흩어진 군사를 거두어 장합을 우두머리로 받들고서야 군이 안정되었습니다.

시호는 민후입니다. 하후연이 여러 번 이겼어도 조조는 늘 「장수는 겁낼 때가 있어야 하고 용맹만 믿어서는 안 된다. 용맹을 바탕으로 하되 지혜와 꾀로 행해야 하니, 용맹만 알면 한 사내의 적일 뿐이다」 하고 타일렀습니다. 맏아들 하후형이 작위를 이었고, 둘째 하후패는 뒤에 촉으로 달아났으며, 하후위 · 하후혜 · 하후화도 자사 · 태수 · 하남윤에 올랐습니다. 배송지 주에 실린 하후담의 글은 다섯째 아들 하후영이 한중의 싸움에서 열세 살의 나이로 달아나기를 마다하고 칼을 휘두르며 싸우다 죽었다고 전합니다. 『위략』에 따르면 장비의 아내가 된 조카딸 하후씨가 하후연이 죽었을 때 청해 그 장례를 치렀습니다. 정시 4년(243) 하후연은 조조의 사당 뜰에 모셔졌습니다. 진수는 하후씨와 조씨가 대대로 혼인한 집안이라 하후돈 · 하후연 등이 가까운 친척으로 귀하게 쓰이며 모두 공을 세웠다고 평했습니다.

宋建造爲亂逆三十餘年,淵一舉滅之,虎步關右,所向無前
송건이 난을 일으킨 지 서른 해가 넘었는데 하후연이 한 번에 멸하였으니, 관의 서쪽을 범처럼 누벼 가는 곳마다 앞을 막는 이가 없다『삼국지』 위서 하후연전에 실린 조조의 영
將當以勇爲本,行之以智計;但知任勇,一匹夫敵耳
장수는 용맹을 바탕으로 삼되 지혜와 꾀로 행해야 한다. 용맹만 알면 한 사내의 적일 뿐이다『삼국지』 위서 하후연전 · 조조의 경계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5~71회

연의에서 하후연은 제5회에 족형 하후돈과 함께 저마다 장사 천 명을 이끌고 조조에게 오며 처음 나오고, 연의는 두 사람을 조조와 한 핏줄의 형제라 소개합니다. 제6회 형양의 싸움에서는 덮쳐 오는 이각을 막아 서고, 서영에게 쫓기던 조조를 하후돈과 함께 구합니다. 제18회에서는 눈을 다친 하후돈을 감싸 달아나고, 제19회에서 조조에게 형이 한쪽 눈을 잃고 누워 있다고 알립니다.

제56회 동작대 잔치의 활쏘기에서는 조휴 · 문빙 · 조홍 · 장합이 잇달아 과녁 한복판을 맞히자, 몸을 틀어 쏜 화살을 네 화살의 한가운데에 꽂고 비단 전포를 달라고 외치지만, 전포는 버들가지를 쏘아 떨어뜨린 서황에게 돌아갑니다. 제58회와 제59회의 마초와의 싸움에서는 마초의 장수 성의를 베고, 조조가 「마초가 죽지 않으면 내가 묻힐 땅이 없다」고 탄식하자 분을 참지 못해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마초를 없애겠다며 천여 명을 이끌고 뛰쳐나갑니다. 싸움이 끝나자 장안에 남아 지키며 장기를 경조윤으로 천거합니다. 제64회에서는 조조의 명이 없다며 위강을 구하러 가지 않다가, 뒤에 명을 받고 나서 마초를 쫓아내고 서쪽의 여러 고을을 달랩니다.

제67회의 한중 싸움에서는 양평관 앞에서 양앙 · 양임에게 밤에 진채를 습격당해 조조에게 꾸지람을 듣지만, 짙은 안개 속에 양앙의 빈 진채를 빼앗고 쫓아오던 양임을 거짓으로 달아나다 되돌아 베어 조조를 남정으로 이끕니다. 조조는 돌아가며 그에게 정군산 길목을 맡깁니다. 제71회에서 조조는 편지를 보내 장수는 굳셈과 부드러움을 함께 써야 하니 용맹만 믿지 말고 그대의 이름 묘재 두 글자를 욕되게 하지 말라고 이르고, 기뻐한 하후연은 굳게 지키자는 장합의 말을 물리치고 나섭니다. 그는 하후상을 앞세워 황충의 부장 진식을 사로잡았다가 사로잡힌 하후상과 맞바꾸고, 황충이 맞은편 높은 산을 빼앗자 분해 산을 에워싸고 욕을 퍼붓습니다. 한낮이 지나 군사들이 지쳐 말에서 내려 쉴 때 산 위의 법정이 붉은 깃발을 흔들고, 달려 내려온 황충의 칼에 하후연은 머리에서 어깨까지 두 동강이 납니다. 소식을 들은 조조는 소리 내어 크게 울고 원수를 갚으러 몸소 나섭니다. 연의에서 하후연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제102회에서 사마의가 그의 네 아들을 천거하며 그 이름을 부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90조조가 군사를 일으키자 별부사마 · 기도위로 따랐습니다.하후씨 형제
  2. 200관도에서 독군교위를 대행했고, 원소를 깬 뒤 세 주의 군량을 이어 날라 군을 다시 일으켰습니다.
  3. 209영군의 일을 대행했고, 여강에서 등을 돌린 뇌서를 깨뜨렸습니다.
  4. 211위남의 싸움 뒤 안정에서 양추의 항복을 받고 장안에 남아 주둔했습니다.
  5. 212장안에서 남산의 유웅을 깨뜨리고 호현의 양흥을 베어 박창정후가 되었습니다.
  6. 213기현에 에워싸인 위강을 구하러 나섰으나 이르기 전에 위강이 무너졌습니다.
  7. 214장합을 앞세워 기산을 에운 마초를 쫓고, 장리의 강족을 쳐서 한수를 크게 깨뜨렸습니다.
  8. 214부한을 한 달 남짓 에워싸 서른 해를 버틴 송건을 베고 농우를 평정했습니다.
  9. 215장로가 항복하자 파군을 평정했고, 한중에 남아 정서장군이 되었습니다.
  10. 216봉읍 300호를 더 받아 모두 800호가 되었습니다.
  11. 218양평관으로 나온 유비를 막아 해를 넘기며 맞섰습니다.
  12. 219정군산에서 군사 절반을 장합에게 보낸 사이 유비의 습격을 받아 싸우다 죽었습니다.정군산
  13. 243정시 4년에 조조의 사당 뜰에 모셔져 함께 제사를 받았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내(조조의 처제) · 아들 하후형 · 하후패 · 하후칭 · 하후위 · 하후영 · 하후혜 · 하후화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사흘에 오백 리다!

말을 열며

하후묘재요. 사흘에 오백 리를 달리는 사람이오.

되받으며

빠른 것이 곧 힘이오. 곧 끝내겠소.

말문이 막혀

…너무 앞서 나갔는가.

말문이 막혀

숨을 돌릴 틈이 없구려.

설전을 이기고

적이 헤아리기 전에 닿는 것이 병법이오.

설전에 지고

…정군산의 그늘이 짙구나.

이긴 뒤

적이 채비하기 전에 끝났다.

진 뒤

…빨랐으나 얕았구나.

쓰러지며

정군산의 칼이… 빨랐다.

같은 기치 아래

조조하후돈서황학소허저조인전위문앙우금악진조진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