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룡(子龍) · 미상 ~ 229년 · 기주 상산군 진정현 · 유비 휘하
장판에서 어린 후주를 안아 지키고 한수에서 온몸이 쓸개라 불린 장수
출전 · 『삼국지』 촉서 조운전과 배송지 주의 『조운별전』 · 선주전 · 후주전 · 목황후전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양희전의 『계한보신찬』
조운은 자가 자룡이며 상산 진정 사람입니다. 본래 공손찬에게 속했는데, 공손찬이 유비를 보내 전해를 도와 원소를 막게 하자 따라가 유비의 기병을 거느렸습니다. 조운전 본문은 짧고, 그의 일은 배송지 주에 인용된 『조운별전』에 더 자세합니다. 『조운별전』에 따르면 그는 키가 여덟 자에 모습이 웅장했고, 고을의 천거를 받아 의용 군사를 이끌고 공손찬에게 갔습니다. 그 무렵 공손찬에게 몸을 맡긴 유비는 늘 그를 따뜻이 맞았고, 형이 죽어 조운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손을 잡고 작별하자 조운은 「끝내 덕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유비가 원소에게 몸을 맡겼을 때 조운은 업에서 그를 만나 한 침상에서 자며 몰래 수백 명을 모았고, 그대로 유비를 따라 형주로 갔습니다.
건안 13년(208) 유비가 당양 장판에서 조조에게 쫓겨 처자를 버리고 남쪽으로 달아나자, 조운은 어린 아들 곧 뒷날의 후주를 몸소 안고 그 어머니 감부인을 지켜 모두 난을 면하게 했고 아문장군이 되었습니다. 선주전은 그때 조조의 날랜 기병 5천이 하루 밤낮에 3백여 리를 달려왔다고 적습니다. 『조운별전』에 따르면 조운이 북쪽으로 가 버렸다고 하는 이가 있자 유비는 손에 든 극을 던지며 「자룡은 나를 버리고 달아나지 않는다」고 했고, 얼마 뒤 조운이 돌아왔습니다.
『조운별전』에 따르면 유비가 강남을 평정하자 조운은 편장군이 되어 조범을 대신해 계양태수를 겸했습니다. 조범이 과부 형수 번씨를 짝지어 주려 하자 조운은 「서로 성이 같으니 그대의 형은 곧 내 형과 같다」며 물리쳤고, 조범은 과연 뒤에 달아났습니다. 유비가 익주로 들어가자 조운은 형주에 남았습니다. 『조운별전』에 따르면 그는 유영사마가 되었고, 손권의 누이인 손부인이 교만하게 법을 어기자 유비는 엄정한 조운에게 안의 일을 맡겼습니다. 손권이 배를 보내 누이를 맞이할 때 손부인이 후주를 데려가려 하자 조운은 장비와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강을 막아 후주를 되찾았습니다. 목황후전의 배송지 주에 인용된 『한진춘추』는 제갈량이 조운을 시켜 강을 끊었다고 적습니다.
유비가 가맹에서 돌아서 유장을 칠 때 조운은 제갈량 · 장비 등과 강을 거슬러 올라 군현을 평정했고, 강주에서 따로 외수를 따라 강양으로 올라가 성도에서 제갈량과 만났습니다. 건안 19년(214) 성도가 평정되자 익군장군이 되었습니다. 『조운별전』에 따르면 성도의 집과 밭을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자는 의논이 일자, 조운은 흉노를 없애기 전에는 집을 돌보지 않은 곽거병의 옛일을 들어 반박하고 싸움을 처음 겪은 익주 백성에게 밭과 집을 돌려주어야 그 마음을 얻는다고 했으며, 유비는 이를 따랐습니다.
건안 24년(219) 하후연이 무너진 뒤 조조가 한중을 다투며 북산 아래로 쌀을 나르자, 조운의 군사는 쌀을 빼앗으러 가는 황충을 따랐습니다. 『조운별전』에 따르면 황충이 약속한 때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조운은 수십 기로 나가 살피다 크게 몰려나온 조조의 군과 맞닥뜨렸고, 싸우며 물러나 진영으로 돌아왔습니다. 면양장 장익은 문을 닫고 지키려 했으나 조운은 도리어 진영의 문을 크게 열고 깃발을 눕히고 북을 멈추었고, 복병을 의심한 조조군이 물러가자 북을 울리며 쇠뇌로 뒤에서 쏘아 한수에 빠져 죽은 이가 많았습니다. 이튿날 유비는 조운의 진영에 와서 싸움터를 둘러보고 「자룡은 온몸이 쓸개로구나」 했고, 군중에서는 조운을 호위장군이라 불렀습니다.
손권이 형주를 습격해 관우가 죽자 유비는 손권을 치려 했습니다. 『조운별전』에서 조운은 「나라의 도적은 조조이지 손권이 아닙니다」라며 먼저 위를 없애면 오는 저절로 굴복한다고 간했으나, 유비는 듣지 않고 조운을 강주에 남겨 두고 동쪽으로 떠났습니다. 유비가 자귀에서 지자 조운은 영안까지 나아갔으나 오의 군사는 이미 물러간 뒤였습니다.
건흥 원년(223) 조운은 중호군 · 정남장군이 되어 영창정후에 봉해졌고 진동장군으로 옮겼습니다. 건흥 5년(227) 제갈량을 따라 한중에 주둔했고, 이듬해 제갈량이 사곡 길로 나간다고 소문을 내자 조진이 대군을 보내 맞섰습니다. 제갈량은 조운과 등지에게 이를 막게 하고 몸소 기산을 쳤습니다. 조운과 등지는 군사가 약하고 적이 강해 기곡에서 졌으나 무리를 거두어 굳게 지켜 크게 지지는 않았고, 군이 물러난 뒤 조운은 진군장군으로 깎였습니다. 『조운별전』에서 등지는 조운이 몸소 뒤를 끊어 군수품을 거의 버리지 않았다고 했고, 남은 비단을 장병에게 나누라는 제갈량에게 조운은 「싸움에 이로움이 없었는데 어찌 상을 내리십니까」 하며 창고에 넣었다가 겨울 선물로 주자고 해 칭찬을 받았습니다.
조운은 건흥 7년(229)에 죽었습니다. 유비 때는 법정만, 후주 때는 제갈량 · 장완 · 비의 등 몇 사람만 시호를 받았는데, 뒤에 관우 · 장비 · 마초 · 방통 · 황충과 조운에게 시호가 내려지자 당시 사람들이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후주전은 조운의 시호를 경요 4년(261)에 내렸다고 적고, 『조운별전』에 따르면 대장군 강유 등이 시법에 따라 순평후로 하자고 의논했습니다. 맏아들 조통이 뒤를 이었고, 둘째 아들 조광은 강유를 따라 답중에서 싸우다 죽었습니다. 진수는 「황충과 조운은 굳세고 사나워 함께 발톱과 이빨이 되었다」고 평했고, 양희의 『계한보신찬』은 조운을 두텁고 무겁다고 기려 진도와 한 찬에 묶었습니다.
黃忠、趙雲強摯壯猛,並作爪牙先主明旦自來至雲營圍視昨戰處,曰:「子龍一身都是膽也。」『삼국연의』 제7~97회
연의에서 조운은 제7회에 처음 나옵니다. 반하에서 문추에게 쫓겨 말에서 떨어진 공손찬 앞에 한 소년 장군이 뛰어들어 문추와 오륙십 합을 싸우는데, 그는 자신을 상산 진정 사람 조운이라 밝히고 본래 원소의 관할에 있었으나 원소에게 임금에게 충성하고 백성을 구할 마음이 없어 찾아왔다고 말합니다. 이튿날 계교 싸움에서는 국의를 한 창에 찔러 떨어뜨리고, 싸움을 도우러 온 유비와 서로 아끼다가 헤어질 때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립니다. 제28회에서 와우산의 배원소를 죽이고 산채에 머물던 조운은 원소에게서 빠져나온 유비와 다시 만나 비로소 그를 따릅니다.
제41회 장판에서 미방이 조운이 조조에게 항복했다고 하자 유비는 자룡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며 믿지 않습니다. 조운은 감부인을 찾아 보내고 붙잡힌 미축을 구한 뒤, 하후은을 찔러 조조의 보검 청강검을 빼앗습니다. 불탄 담장 아래 마른 우물가에서 다리를 다친 미부인을 찾지만 부인은 말을 사양하고 아두를 건넨 뒤 우물에 몸을 던지고, 조운은 담을 무너뜨려 우물을 덮고 아두를 품에 안은 채 포위를 뚫습니다. 장합에게 쫓겨 흙구덩이에 빠졌을 때는 붉은 빛과 함께 말이 뛰어오르고, 경산 위의 조조는 산 채로 잡으라며 화살을 쏘지 못하게 합니다. 이 싸움에서 조운은 큰 깃발 둘을 베고 창 셋을 빼앗으며 이름난 장수 쉰 남짓을 죽이고, 제42회에서 아두를 받은 유비는 이 아이 때문에 대장 하나를 잃을 뻔했다며 땅에 던집니다.
제52회에서 계양을 얻을 때 조범이 과부 형수를 짝지어 주려 하자 조운은 의형제를 맺었으니 그대의 형수는 곧 내 형수라며 크게 노해 물리칩니다. 제54회에서는 제갈량의 비단 주머니 세 개를 품고 유비를 호위해 오로 가고, 제61회에서는 아두를 안고 오로 돌아가려는 손부인의 배에 뛰어올라 아두를 빼앗고 뒤따라온 장비와 함께 되찾아 옵니다. 제71회 한수에서는 황충을 구해 낸 뒤 진영 문을 활짝 열고 홀로 창을 든 채 문 밖에 서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치니, 유비는 자룡은 온몸이 쓸개라며 그를 호위장군이라 부릅니다. 제73회에서 오호대장의 하나가 되고, 제81회에서는 나라의 도적은 조조이지 손권이 아니라고 간하지만 유비는 듣지 않습니다. 제84회에서는 강주에서 달려와 불길에 쫓기던 유비를 구하고 주연을 창으로 찔러 죽인 뒤 백제성으로 모십니다.
제87회에서 남만의 첫 싸움에 나가 금환삼결을 한 창에 쓰러뜨리고, 제91회에서는 늙었다고 쓰지 않으려는 제갈량에게 선봉을 맡기지 않으면 섬돌에 머리를 찧어 죽겠다고 버텨 등지와 함께 선봉에 섭니다. 제92회 봉명산에서 한덕의 네 아들을 차례로 꺾고 한덕마저 찌르는데, 연의는 이때 그를 일흔에 이른 나이로 읊습니다. 제95회 기곡에서 물러날 때 몸소 뒤를 끊어 소옹을 찌르고, 제96회에서 한 사람 한 필도 잃지 않고 돌아와 제갈량이 내린 금과 비단을 창고에 맡겨 겨울에 군사들에게 주자며 사양합니다. 제97회에서 두 번째 출사를 앞둔 제갈량에게 조운이 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오자 제갈량은 한쪽 팔을 잃었다며 울고, 후주는 대장군을 추증하고 순평후라는 시호를 내립니다. 연의에서 조운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조통 · 조광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장판의 길을 다시 연다!
조자룡이오. 창끝은 늘 앞을 향하오.
물러선 적이 없으니 오늘도 그러하리다.
장판의 백만 군중도 뚫고 나왔소.
…등에 업은 것이 무거워지는구려.
이 몸은 온통 담뿐이라 하였소.
지킬 것을 지키지 못했구려.
한 사람도 잃지 않았다.
…이 창이 무뎌졌는가.
상산의 조자룡… 여기까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