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백규(伯珪) · 미상 ~ 199년 · 유주 요서군 영지현 · 한 세력의 주인
백마의종을 이끌며 하북을 호령했으나 역경루에 은둔하다 자멸한 북방의 맹주
출전 · 『삼국지』 위서 공손찬전과 배송지 주의 『전략』 · 『영웅기』 · 원소전 · 무제기 · 선주전 · 『후한서』 공손찬전 · 유우전 · 원소전 · 헌제기
공손찬은 자가 백규이며 요서군 영지현 사람입니다. 『후한서』는 집안이 대대로 이천 석 벼슬을 지냈으나 어머니의 신분이 낮아 군의 낮은 관리가 되었다고 적습니다. 생김새가 아름답고 목소리가 컸으며 일을 아뢰는 말이 막힘이 없었습니다. 그 재주를 기이하게 여긴 태수 후씨가 딸을 아내로 주고 탁군의 노식에게 보내 경서를 배우게 했습니다. 『삼국지』 선주전은 열다섯 살의 유비가 공손찬과 함께 노식을 섬겼고, 공손찬이 나이가 많아 유비가 그를 형으로 섬겼다고 적습니다.
다시 군의 관리가 되었을 때 유 태수가 일에 걸려 함거로 불려 가자, 관리가 가까이 따르는 것을 법이 막았으므로 공손찬은 옷차림을 바꾸고 졸개라 속여 몸소 수레를 몰고 시중을 들었습니다. 태수가 일남으로 귀양 가게 되자 북망산에서 조상에게 제사하며 「일남은 장기가 많아 돌아오지 못할까 두려우니 여기서 하직한다」고 빌어 보는 이들이 모두 탄식했는데, 태수는 가는 길에 사면을 받았습니다. 효렴으로 천거되어 요동속국 장사가 되었을 때는 수십 기로 변경을 돌다 선비의 기병 수백을 만나자 빈 정자로 물러나 「지금 치고 나가지 않으면 다 죽는다」며 양쪽에 날을 단 창을 들고 달려 나가 수십 명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고 빠져나왔습니다. 『삼국지』는 이 뒤로 선비가 두려워 다시 변경에 들지 못했다고 적습니다.
중평 4년(187) 어양의 장순이 오환과 손잡고 반란을 일으켜 계를 노략하자, 오환의 돌기병을 거느리던 공손찬은 장순 등을 쫓아 쳐서 기도위가 되었습니다. 이어 석문에서 오랑캐를 크게 깨뜨렸으나 깊이 들어갔다가 관자성에서 이백여 일을 에워싸였고, 말과 쇠뇌 · 방패까지 삶아 먹다가 흩어져 돌아왔습니다. 항로교위가 되고 도정후에 봉해진 뒤로는 경보를 들을 때마다 원수를 만난 듯 성내며 먼지를 바라보고 쫓아가 밤까지 싸웠으므로, 오랑캐는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감히 맞서지 못했습니다. 『후한서』에 따르면 그는 활 잘 쏘는 군사들을 모두 흰 말에 태워 좌우 날개로 삼고 「백마의종」이라 불렀으며, 오환은 서로 「백마 장사를 피하라」고 일렀습니다. 공손찬은 오환을 쓸어 없애려 했으나 유주목 유우는 은혜와 믿음으로 달래 항복받으려 하여 두 사람은 이로부터 어긋났고, 『후한서』 유우전은 유우가 오랑캐에게 내린 상을 공손찬이 여러 번 빼앗았다고 적습니다.
초평 2년(191) 청주 · 서주의 황건 30만이 발해로 들어오자 공손찬은 보병과 기병 2만으로 동광 남쪽에서 맞아 크게 깨뜨리고 강을 건너는 적을 다시 쳐서 7만여 명을 사로잡아 위세를 크게 떨쳤고, 분무장군이 되고 계후에 봉해졌습니다. 그 무렵 그는 사촌 아우 공손월에게 기병 천을 주어 원술에게 보냈는데, 공손월이 손견을 따라 원소의 장수를 치다 화살에 맞아 죽자 「내 아우가 죽은 화는 원소에게서 비롯되었다」며 반하에 군사를 내고 원소의 죄 열 가지를 들어 표를 올렸습니다. 기주의 여러 성이 그를 따랐고, 원소가 발해태수의 인수를 준 사촌 아우 공손범도 발해의 군사로 그를 도왔습니다. 공손찬은 엄강을 기주자사로, 전해를 청주자사로 두는 등 세 주에 자사를 제멋대로 두었습니다.
초평 3년(192) 봄 공손찬은 계교에서 원소와 크게 싸웠습니다. 『영웅기』에 따르면 공손찬은 보병 3만여를 네모진 진으로 세우고 기병을 좌우 날개로, 백마의종을 가운데로 삼았는데, 원소는 국의에게 군사 8백을 앞세우고 강한 쇠뇌 천 장으로 받치게 했습니다. 적은 수를 얕본 기병이 짓밟으러 달려들자 방패 밑에 엎드려 있던 국의의 군사가 한꺼번에 일어나 쇠뇌를 퍼부었고, 엄강이 베였습니다. 공손찬은 계로 돌아갔다가 거마수에서 원소의 장수 최거업을 쫓아 쳐서 7, 8천을 죽이고 평원까지 내려가 전해를 제 땅에 두었습니다. 같은 해 원술의 청을 받아 유비를 고당에, 도겸을 발간에 두어 원소를 압박했으나 조조와 원소에게 모두 깨졌습니다. 유비는 이 무렵 공손찬에게 몸을 맡겨 별부사마가 되었고 뒤에 평원상이 되었습니다.
초평 4년(193) 겨울 유우가 군사 10만을 이끌고 먼저 공손찬을 쳤습니다. 군사가 밖에 흩어져 있던 공손찬은 달아나려 했으나, 유우가 백성의 집을 아껴 불태우지 말라 한 틈에 날랜 군사 수백으로 바람을 타고 불을 놓아 들이쳐 크게 이겼고, 거용으로 달아난 유우를 사로잡아 돌아왔습니다. 마침 천자의 사자 단훈이 와서 공손찬을 전장군 · 역후로 삼자, 공손찬은 유우가 원소 등과 황제를 칭하려 했다고 모함해 단훈을 을러 계의 저자에서 유우를 베게 했습니다. 『후한서』는 은혜로 무리를 얻은 유우를 북쪽 백성들이 모두 슬퍼했다고 적습니다.
그 뒤로 공손찬은 교만해져 남의 허물은 기억하고 착한 일은 잊었으며, 자기보다 이름난 선비는 법으로 해치고 장사치 같은 범상한 무리만 가까이했습니다. 유우의 종사였던 선우보 등이 오환 · 선비, 원소의 장수 국의, 유우의 아들 유화와 힘을 합쳐 쳐들어왔고, 흥평 2년(195) 포구에서 공손찬의 군 2만여가 베였습니다. 공손찬은 「연나라 남쪽 끝, 조나라 북쪽 가」에 세상을 피할 곳이 있다는 동요를 역 땅에 맞추어 역경을 지켰습니다. 열 겹의 참호 안에 대여섯 길의 흙 언덕을 쌓아 누각을 올리고 가운데 것은 열 길로 높여 그 위에 살며 곡식 3백만 섬을 쌓았습니다. 『후한서』는 쇠로 문을 달고 일곱 살 넘은 남자를 문 안에 들이지 않았으며, 문서는 줄로 끌어 올리고 여인들에게 큰 소리를 익히게 해 명령을 전했다고 적습니다. 그는 농사에 힘쓰며 원소가 지치기를 기다렸습니다.
건안 3년(198) 원소가 크게 쳐들어오자 공손찬은 아들 공손속을 흑산의 장수들에게 보내 구원을 청하고 스스로 돌기병을 이끌고 나가려 했으나, 장사 관정이 「장군이 떠나면 역경의 위태로움은 서서 기다릴 일」이라 말려 그만두었습니다. 이듬해 봄 흑산의 장연이 공손속과 10만을 이끌고 세 길로 구하러 오자 공손찬은 아들에게 때를 정해 불을 올리면 안에서 나가겠다는 글을 보냈습니다. 원소의 척후가 그 글을 얻어 때맞춰 불을 올렸고, 구원이 온 줄 알고 나간 공손찬은 매복에 크게 져 돌아왔습니다. 원소는 땅굴을 파 누각을 무너뜨리며 다가왔고, 공손찬은 반드시 질 줄 알고 처자를 다 죽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후한서』는 누이와 처자를 목 졸라 죽이고 불을 놓아 스스로 탔으며 원소의 군사가 올라가 그를 베었다고 적습니다. 관정은 원소의 군에 뛰어들어 죽었고, 공손속은 도각에게 죽었습니다.
진수는 「공손찬은 경을 지키며 앉아서 멸망을 기다렸다」고 평했고, 『후한서』를 쓴 범엽은 「백규는 성기고 거칠었으나 무재는 날래고 사나웠다」고 적었습니다.
公孫瓚保京,坐待夷滅伯珪疏獷,武才趫猛『삼국연의』 제1~2회 · 제5~7회 · 제11회 · 제21회
연의에서 공손찬은 제1회에 유비가 열다섯에 정현과 노식을 스승으로 섬기며 벗한 사람으로 처음 이름이 나오고, 제2회에서는 유비의 공을 아뢰어 별부사마 · 평원현령으로 천거합니다. 제5회에서 동탁을 치는 제후의 제14진인 북평태수로 정병 1만 5천을 이끌고 가다 평원현에서 유비를 만나, 마궁수 · 보궁수에 머문 관우 · 장비를 두고 「영웅을 묻어 두었다」며 함께 데려갑니다. 호뢰관에서는 창을 휘둘러 여포와 맞섰다가 몇 합 만에 쫓기는데, 여포의 화극이 등에 닿으려는 순간 장비가 뛰어들어 목숨을 건집니다. 제6회에서 「원소는 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며 군을 거두고 유비를 평원상으로 둡니다.
제7회에서 공손찬은 기주를 나누자는 원소의 편지에 군사를 일으켰다가 원소에게 기주를 빼앗기고, 아우 공손월이 동탁의 군사라 칭하는 자들의 화살에 죽자 반하로 쳐들어갑니다. 다리 위에서 원소를 꾸짖고 문추와 싸우다 쫓겨 말에서 떨어지는데, 상산 진정에서 온 소년 장군 조운이 나타나 그를 구합니다. 이튿날 강족과 싸울 때 흰 말을 골라 선봉으로 삼아 「백마장군」이라 불렸다는 군사를 좌우로 벌이지만, 국의의 궁수 8백이 엄강을 베고 깃발을 꺾어 쫓깁니다. 조운이 국의를 찔러 떨어뜨리고 유비 · 관우 · 장비가 달려와 원소를 물리치자 「현덕이 멀리 와서 구하지 않았다면 낭패를 볼 뻔했다」고 말합니다. 동탁이 보낸 마일제 · 조기의 화해를 받아들여 군을 거두고 유비를 평원상으로 천거하는데, 조운은 「공손찬을 영웅으로 잘못 알았다」고 탄식합니다.
제11회에서 서주를 구하러 가겠다는 유비에게 「조조와 원수진 일도 없는데 왜 남을 위해 힘쓰느냐」고 묻고는 마보군 2천과 조운을 빌려 줍니다. 제21회에서 그의 최후는 만총의 보고로만 전해집니다. 원소에게 밀려 높이 열 길의 역경루를 쌓고 곡식 30만을 모아 지켰으나 에워싸인 장수를 구하지 않아 많은 이가 원소에게 항복했고, 장연에게 보낸 편지가 붙잡혀 원소가 놓은 불에 속아 나갔다가 크게 졌으며, 땅굴로 누각 밑까지 들어온 원소에게 몰려 처자를 죽이고 스스로 목을 매어 온 집안이 불에 탔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유비는 자기를 천거해 준 옛 은혜를 떠올리며 슬퍼합니다. 연의에서 공손찬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공손속 · 사촌 아우 공손월 · 공손범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백마의종이다!
백마의 주인이오. 북방은 내 것이오.
오랑캐를 쫓던 사람이오. 겁줄 생각 마시오.
…역경루가 그리워지는군.
성을 더 높이 쌓아야겠소.
백마를 보면 오랑캐가 달아났소.
…스스로 쌓은 누각에 갇혔구려.
북방의 기병이 이겼다!
…역경루로 물러나야겠군.
역경루에 불을 놓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