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姜維

자 백약(伯約) · 202년 ~ 264년 · 옹주 천수군 기현 · 한 세력의 주인

강유 초상

제갈량에게 발탁되어 그 뜻을 이어 북벌을 거듭한 촉의 대장군

능력치

통솔91무력89지력90정치67매력80

카드

공격력 6체력 6비용 5값어치 16직군 모사
구벌 비용 4
이미 쓴 내 책략을 전부 다시 쓸 수 있게 한다
내응 비용 4
비밀 · 적이 비용 3 이하 장수를 소환할 때 · 그 장수가 내 편으로 선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촉서 강유전과 배송지 주의 『위략』 · 『한진춘추』 · 『화양국지』 · 『세어』 · 손성의 논 · 촉서 후주전 · 장완전 · 제갈량전 · 위연전 · 장익전 · 위서 종회전 · 등애전 · 『화양국지』 유후주지

강유는 자가 백약이며 천수군 기현 사람입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살았으며 정현의 학문을 좋아했습니다. 군의 상계연을 거쳐 주의 종사가 되었는데, 아버지 강경이 군의 공조로 있을 때 강족과 융족의 반란 속에 태수를 몸으로 지키다 싸움터에서 죽었으므로 중랑 벼슬을 받고 본군의 군사에 참여했습니다.

건흥 6년(228) 제갈량이 기산으로 나오자, 고을을 돌아보던 천수태수는 따르던 강유 등이 모두 딴마음을 품었다고 의심해 밤에 상규로 달아났습니다. 뒤쫓아 간 강유 등은 닫힌 성문에 막혔고 기현도 그들을 들이지 않자 함께 제갈량에게 갔으며, 마속이 가정에서 지자 제갈량을 따라 촉으로 들어가 어머니와 헤어졌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은 태수 마준이 「그대들은 다 도적이다」 하며 떠났고 기현의 관리와 백성이 강유를 떠밀어 제갈량을 만나게 했으며, 위나라는 그가 본디 떠날 뜻이 없었음을 알고 붙잡은 어머니와 처자를 가두어만 두었다고 달리 적습니다. 제갈량은 스물일곱의 강유를 창조연으로 삼고 봉의장군을 더해 당양정후에 봉했고, 장예와 장완에게 「강백약은 충성스럽고 부지런하며 생각이 치밀해 이소 · 마량 같은 이들도 그만 못하니 양주의 뛰어난 선비다」, 「군사에 밝고 담력과 의리가 있으며 마음이 한 황실에 있다」고 써 보냈습니다.

건흥 12년(234) 병이 깊어진 제갈량은 양의 · 비의 · 강유와 죽은 뒤 군을 물릴 차례를 정해 위연에게 뒤를 끊게 하고 강유를 그다음에 두었습니다. 『한진춘추』는 사마의가 뒤쫓자 강유가 양의에게 깃발을 돌리고 북을 울리게 해 사마의를 물러가게 했다고 적습니다. 성도로 돌아온 강유는 보한장군으로 여러 군을 거느렸고 평양후에 봉해졌습니다. 연희 원년(238)부터 장완을 따라 한중에 머물며 여러 번 한 갈래 군을 이끌고 서쪽으로 들어갔고, 연희 6년(243) 장완의 천거로 진서대장군 · 양주자사가 되었습니다. 연희 10년(247) 위장군이 되어 비의와 함께 상서의 일을 맡았고, 조서에서 곽회 · 하후패와 싸웠습니다. 연희 12년(249)에는 서평으로 나갔으나 이기지 못했습니다. 강유는 강족과 호족을 날개로 삼으면 농 서쪽을 끊어 가질 수 있다고 여겼지만, 큰 군을 일으키려 할 때마다 비의가 눌러 1만이 넘는 군사를 주지 않았습니다.

연희 16년(253) 비의가 죽자 강유는 수만을 이끌고 남안을 에워쌌으나 진태가 구원하러 오자 군량이 다해 물러났습니다. 이듬해 중외의 군사를 감독하며 농서로 나가 적도장 이간의 항복을 받고 양무에서 위장 서질을 깨뜨렸습니다. 연희 18년(255)에는 나라가 작고 백성이 지쳤다는 장익의 반대를 물리치고 적도로 나가 조서에서 옹주자사 왕경을 크게 깨뜨렸으나, 적도성을 떨어뜨리지 못하고 진태와 등애가 구원하러 오자 종제로 물러났습니다. 연희 19년(256) 봄 대장군이 되었지만 상규에서 만나기로 한 호제가 오지 않아 단곡에서 등애에게 크게 졌고, 백성이 원망하고 농 서쪽이 어지러워지자 허물을 인정해 스스로 후장군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연희 20년(257)에는 제갈탄의 반란을 틈타 낙곡으로 나가 장성 가까이까지 이르렀으나 사마망과 등애가 싸움에 응하지 않았고, 이듬해 제갈탄이 깨졌다는 말에 성도로 돌아가 다시 대장군이 되었습니다. 강유전이 해를 밝혀 적은 그의 출병은 연희 10년(247)부터 경요 5년(262)까지 여덟 번이고, 후주전과 『화양국지』는 연희 12년의 옹주 출병과 13년(250)의 서평 출병을 나누어 적습니다. 『화양국지』는 이 무렵 싸움이 오래 이어져 백성이 지쳤다고 적습니다.

경요 5년(262) 강유는 후화로 나갔다가 등애에게 깨져 답중으로 물러났습니다. 떠돌다 나라에 몸을 맡긴 그는 여러 해를 싸웠으나 공을 세우지 못했고, 안에서는 환관 황호가 권세를 부리며 우대장군 염우와 한편이 되어 강유를 물리고 염우를 세우려 했습니다. 이를 의심한 강유는 두려워 다시 성도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화양국지』는 그가 황호를 죽이자고 청했다가 유선이 「황호는 심부름하는 하찮은 신하일 뿐」이라 하자 물러났고, 답중에서 보리를 심겠다고 청해 안의 핍박을 피했다고 적습니다.

경요 6년(263) 강유는 종회가 관중에서 군사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장익과 요화를 보내 양안관 어귀와 음평 교두를 지키게 하자고 아뢰었으나, 무당을 믿은 황호가 적이 오지 않는다며 그 일을 덮었습니다. 등애에게 꺾여 음평으로 물러난 사이 종회는 관 어귀를 떨어뜨렸고, 강유는 요화 · 장익 · 동궐과 함께 검각으로 물러나 진을 벌이고 험한 곳을 지켰습니다. 종회가 글을 보내 달랬으나 답하지 않았고, 종회는 이기지 못한 채 군량 길이 멀어 돌아갈 일을 의논했습니다. 그러나 등애가 음평에서 경곡도로 비껴 들어와 면죽에서 제갈첨을 깨뜨리자 유선은 항복했습니다. 강유는 사정을 살피다가 유선의 칙령을 받고 창과 갑옷을 버린 채 부현의 종회 진영에 가서 항복했고, 장병들은 모두 노해 칼을 뽑아 돌을 내리쳤습니다.

종회는 강유를 후히 대해 나갈 때는 수레를 함께 타고 앉을 때는 자리를 나란히 했습니다. 종회는 등애를 모함해 함거로 불려 가게 한 뒤 성도에서 반란했습니다. 『한진춘추』는 강유가 종회의 딴마음을 알아보고 어지러움을 일으켜 촉을 되찾으려 그를 부추겼다고 하고, 『화양국지』는 강유가 종회에게 북에서 온 장수들을 죽이게 한 뒤 종회마저 죽여 촉을 되살리려 했으며 유선에게 며칠의 치욕을 참으면 사직을 다시 편안하게 하겠다는 밀서를 보냈다고 적습니다. 종회전에 따르면 경원 5년(264) 정월 18일 위의 장병들이 들고일어나자 강유는 종회의 좌우를 이끌고 싸워 손수 대여섯을 베었으나 끝내 무리에게 베였고, 그의 아내와 자식도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세어』는 죽은 강유의 배를 가르니 쓸개가 말만큼 컸다고 적습니다.

극정은 강유가 상장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집이 허술하고 남은 재산이 없었으며 첩과 풍악을 두지 않았다며 「학문을 즐겨 게을리하지 않고 맑고 검소하니 한때의 본보기」라고 논했습니다. 손성은 그가 위와 어머니를 저버렸다고 꾸짖었으나, 배송지는 본전과 『위략』이 모두 그가 배반할 마음 없이 몰려서 촉으로 갔다고 적으니 지나치다고 했습니다. 『화양국지』는 강유가 재주는 제갈량에 미치지 못했으나 그 큰 길을 이으려 했고, 백성이 그 수고로움을 싫어해 나라도 망했다고 적습니다. 진수는 「강유는 문무를 대강 갖추고 공명을 세우는 데 뜻을 두었으나, 무리를 가벼이 부리고 군사를 함부로 써서 밝은 판단이 두루 미치지 못해 끝내 죽음에 이르렀다」고 평했습니다.

姜維粗有文武,志立功名,而玩眾黷旅,明斷不周,終致隕斃
강유는 문무를 대강 갖추고 공명을 세우는 데 뜻을 두었으나, 무리를 가벼이 부리고 군사를 함부로 써서 밝은 판단이 두루 미치지 못해 끝내 죽음에 이르렀다『삼국지』 촉서 장완비의강유전 평
姜伯約忠勤時事,思慮精密,考其所有,永南、季常諸人不如也。其人,涼州上士也。
강백약은 그때의 일에 충성스럽고 부지런하며 생각이 치밀하니, 헤아려 보면 영남 · 계상 같은 이들도 그만 못하다. 그는 양주의 뛰어난 선비다『삼국지』 촉서 강유전에 실린 제갈량의 글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92~105회 · 제107~120회

연의에서 강유는 제92회 끝에 천수태수 마준의 막하에서 처음 나옵니다. 천수 기현 사람으로 자는 백약이고, 아버지 강경은 천수군의 공조로 강족의 난에 죽었으며, 그는 어려서부터 책을 두루 읽어 병법과 무예에 통하지 않은 것이 없고 어머니를 지극히 섬겨 고을 사람들이 공경했다고 소개됩니다. 그는 남안에서 구원을 청하러 왔다는 사자가 촉의 장수가 꾸민 것임을 꿰뚫어 봅니다. 제93회에서는 성을 치러 온 조운과 맞붙어 조운이 「이런 인물이 여기 있을 줄이야」 하고 놀라게 하고, 밤에 제갈량의 진을 불로 흔들어 제갈량이 「참된 장수의 재목」이라 감탄하게 합니다. 제갈량은 기현에 있는 그의 어머니를 빌미로 강유를 기현으로 끌어내고 그를 닮은 군사에게 천수성을 치게 해 마준이 그를 의심하게 만들고, 천수와 상규의 성에서 모두 화살로 쫓겨난 강유는 앞뒤가 막히자 말에서 내려 항복합니다. 제갈량은 초가를 나선 뒤로 평생의 학문을 전할 사람을 찾다가 이제야 백약을 만났다며 기뻐하고, 하후무를 놓아준 것은 오리 한 마리를 놓아준 것이고 백약을 얻은 것은 봉황 한 마리를 얻은 것이라 합니다.

그 뒤 강유는 제갈량의 북벌을 따르며, 제97회에서는 조진에게 거짓 항복하는 밀서를 보내 비요를 꾀어 깨뜨립니다. 제103회 끝에서 위연이 수명을 비는 등불을 꺼뜨리자 제104회 첫머리에서 칼을 뽑았다가 제갈량에게 말려지고, 제갈량은 여러 장수를 두루 보아도 줄 만한 이가 없고 너만이 내 책을 이을 수 있다며 평생 지은 책 스물네 편과 연노 만드는 법을 강유에게 전합니다. 제갈량이 죽은 뒤 강유는 천 명으로 뒤를 끊으며 군을 물립니다.

제107회에서 강유는 위에서 넘어온 하후패에게서 종회와 등애의 이름을 듣고, 비의의 만류를 물리치고 옹주를 치다 우두산에서 물러납니다. 제109회에서는 철롱산에 사마소를 가두어 물이 떨어지게 하고, 제110회에서는 조수를 등지고 진을 쳐 왕경을 크게 깨뜨리지만, 제111회에서는 등애가 단곡에 숨겨 둔 군사에게 크게 집니다. 제112회에는 장성으로 나가 등애의 아들 등충과 맞붙고, 제113회에는 등애와 진법을 겨룹니다. 제115회에는 황호의 참소로 기산에서 하루에 세 번 조서를 받고 불려 와, 황호를 죽이라고 유선에게 울며 아뢰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극정의 권으로 답중에 가서 둔전하며 화를 피합니다.

제116~117회에서 종회와 등애가 쳐들어오자 강유는 검각으로 물러나 제갈서를 깨뜨리고 관을 지킵니다. 제118회에서 유선의 항복 칙명이 오자 장수들이 칼을 뽑아 돌을 내리치고, 강유는 내게 한 계책이 있으니 한 황실을 되살릴 수 있다며 그들을 달랜 뒤 종회에게 가서 나라의 온 군사가 내게 있으니 오늘 여기 온 것도 빠르다고 말합니다. 제119회에서 그는 한신과 문종의 일을 들어 종회를 부추기고, 유선에게 며칠의 욕을 참으면 사직을 다시 편안하게 하겠다는 밀서를 보냅니다. 거사를 앞두고 갑자기 가슴을 앓아 쓰러졌다가, 위군이 밀려들자 칼을 뽑아 싸우던 끝에 「내 계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하늘의 뜻이다」 외치고 스스로 목을 벱니다. 연의는 그때 나이를 쉰아홉이라 하고, 위병이 배를 가르니 쓸개가 달걀만 했다고 적습니다. 제120회 끝의 시는 그가 중원을 아홉 번 쳤으나 헛되이 애만 썼다고 읊습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28천수태수의 의심을 받아 돌아갈 곳을 잃고 제갈량에게 가서 봉의장군이 되었습니다.기산의 젊은이
  2. 234제갈량이 죽자 정해 둔 차례대로 군을 물렸고, 성도로 돌아와 보한장군이 되었습니다.오장원의 별
  3. 243장완의 천거로 진서대장군이 되어 양주자사를 겸했습니다.
  4. 247위장군이 되어 비의와 함께 상서의 일을 맡고 조서에서 곽회 · 하후패와 싸웠습니다.
  5. 249부절을 받고 서평으로 나갔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6. 253비의가 죽자 수만을 이끌고 남안을 에워쌌으나 군량이 다해 물러났습니다.
  7. 254농서로 나가 적도장 이간의 항복을 받고 양무에서 위장 서질을 깨뜨렸습니다.
  8. 255조서에서 왕경을 크게 깨뜨렸으나 진태와 등애가 구원하러 오자 종제로 물러났습니다.서로를 가장 잘 안 둘
  9. 256대장군이 되었으나 단곡에서 등애에게 크게 져 스스로 후장군으로 내려앉았습니다.
  10. 257제갈탄의 반란을 틈타 낙곡으로 나가 장성 가까이에서 사마망 · 등애와 맞섰습니다.
  11. 258제갈탄이 깨졌다는 말에 성도로 돌아와 다시 대장군이 되었습니다.
  12. 262후화에서 등애에게 깨져 답중으로 물러났고, 황호를 두려워해 성도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13. 263검각에서 종회를 막았으나 유선의 칙령을 받고 부현의 종회 진영에 가서 항복했습니다.검각
  14. 264성도에서 반란한 종회와 손잡았다가 위의 장병들이 들고일어나 종회와 함께 죽었습니다.종회의 난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강경 · 어머니 · 아내와 자식(264년에 함께 죽임을 당함)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승상의 뜻을 잇는다.

말을 열며

승상의 뜻을 이어받은 자요. 물러섬은 없소.

되받으며

중원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끝까지 듣겠소.

말문이 막혀

…아홉 번을 나갔으나.

말문이 막혀

촉의 하늘이 이리 좁았던가.

설전을 이기고

한 번 더 기산으로 나아가겠소.

설전에 지고

내 계책이 이루어지지 않음은 하늘의 뜻이오.

이긴 뒤

북벌은 아직 끝나지 않았소.

진 뒤

…이룰 수 없음은 하늘의 뜻인가.

쓰러지며

내 뜻이 못 이룬 것은 하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