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공달(公達) · 157년 ~ 214년 · 예주 영천군 영음현 · 조조 휘하
겉으로는 어리석어 보이나 속에는 천하를 담았던 조조 최고의 전술가
출전 · 『삼국지』 위서 순유전과 배송지 주의 『순씨가전』 · 『위서』 · 『부자』 · 위서 순욱전 · 무제기와 배송지 주의 『위씨춘추』 · 삼소제기 · 화흠전 · 『후한서』 하진전 · 정태전
순유는 자가 공달이며 영천 사람으로 순욱의 조카입니다. 할아버지 순담은 광릉태수였고, 배송지 주에 인용된 『순씨가전』은 아버지 순이가 주의 종사였으며 순욱과는 재종형제 사이였다고 적습니다. 『위서』가 적은 나이로 셈하면 순유가 순욱보다 여섯 살 위입니다. 일찍 아버지를 잃었는데, 할아버지가 죽자 옛 아전 장권이 무덤을 지키겠다고 청하자 열세 살의 순유가 숙부 순구에게 그 낯빛이 예사롭지 않다고 일렀고, 캐어 보니 과연 사람을 죽이고 달아난 자였습니다.
중평 6년(189) 영제가 죽고 정사를 잡은 하진이 온 나라의 이름난 선비 스무여 명을 부르자 순유는 그 가운데 하나로 황문시랑이 되었습니다. 동탁이 난을 일으켜 관동의 군사가 일어나고 도읍이 장안으로 옮겨지자, 순유는 정태 · 하옹 · 충집 · 오경 등과 「동탁의 무도함은 걸 · 주보다 심해 천하가 다 원망하니 강한 군사가 있어도 한 사내일 뿐이다. 곧장 찔러 죽여 백성에게 사죄하고 왕명을 도와 천하에 호령하자」고 꾀했습니다. 일이 거의 이루어질 즈음 드러나 하옹과 순유가 옥에 갇혔는데, 하옹은 근심과 두려움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순유는 말하고 먹고 마시는 것이 태연했고 마침 동탁이 죽어 풀려났습니다. 배송지는 순유가 사람을 시켜 동탁을 달래 풀려났다는 『위서』의 기록이 본문과 다르다고 달았습니다. 그 뒤 순유는 촉한 땅이 험하고 넉넉하다며 촉군태수가 되기를 청했으나 길이 끊겨 형주에 머물렀습니다.
건안 원년(196) 천자를 맞아 허에 도읍한 조조가 「지금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 지혜로운 선비가 마음을 수고롭힐 때인데, 촉한에서 변화만 살핀 지 너무 오래지 않소」 하는 편지를 보내 그를 여남태수로 불렀고, 곧 상서로 들였습니다. 이야기해 보고 크게 기뻐한 조조는 순욱과 종요에게 「공달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와 일을 꾀할 수 있으니 천하에 무엇을 걱정하겠는가」라 하고 그를 군사로 삼았습니다. 순욱전은 누가 그대를 대신해 꾀를 낼 수 있겠느냐는 조조의 물음에 순욱이 순유와 종요를 댔다고 적습니다.
건안 3년(198) 장수를 칠 때 순유는 장수와 유표가 서로 기대어 강하지만 떠도는 군사인 장수가 유표에게 먹을 것을 기대니 반드시 갈라질 것이라며, 군을 늦추고 기다려 꾀어 오자고 했습니다. 조조는 듣지 않고 양으로 나아갔다가 유표가 장수를 구해 이롭지 못하자 「그대의 말을 쓰지 않아 이 지경이 되었다」 하고, 기이한 군사를 두어 다시 싸워 크게 깨뜨렸습니다. 그해 하비에서 여포가 굳게 지키고 잇단 싸움에 군사가 지쳐 조조가 돌아가려 하자, 순유와 곽가는 「여포는 용맹하나 꾀가 없고 세 번 싸워 다 져서 기세가 꺾였다. 진궁은 지혜가 있으나 느리니 여포의 기운이 돌아오고 진궁의 꾀가 정해지기 전에 급히 치자」고 했습니다. 이에 기수와 사수를 끌어 성에 대니 성이 무너져 여포를 사로잡았고, 무제기는 물을 댄 것을 순유와 곽가의 계책으로 적습니다.
건안 5년(200) 백마의 유연을 구하러 갈 때 순유는 연진으로 가서 강을 건너 뒤를 칠 듯 보이면 원소가 서쪽으로 응할 것이니 그 틈에 가벼운 군사로 백마를 덮치자고 했고, 조조는 그대로 하여 안량을 베었습니다. 백마에서 치중(군수품을 실은 짐수레)을 강을 따라 서쪽으로 보내는데 원소가 강을 건너 쫓아오자 장수들은 진영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순유가 「이것이 적을 사로잡는 길인데 어찌 버리는가」 하자 조조는 그를 보고 웃었고, 치중을 미끼로 삼으니 적이 다투어 달려들어 진이 어지러워졌습니다. 그 틈에 크게 깨뜨려 기병 장수 문추를 베었습니다. 관도에서 군량이 다해 갈 때는 원소의 군량 수레를 치자며 서황을 천거해 그 수레를 불태우게 했고, 허유가 넘어와 오소의 군량을 치라고 하자 모두 의심했으나 순유와 가후만이 권했습니다. 조조가 몸소 나간 사이 순유는 조홍과 함께 진영을 지켰고, 원소의 장수 장합이 항복해 오자 의심하는 조홍에게 「장합은 제 꾀가 쓰이지 않아 성나서 온 것」이라며 받게 했습니다.
건안 8년(203) 원담과 원상이 기주를 다투다 원담이 신비를 보내 항복하고 구원을 청하자, 여러 신하는 유표가 강하니 먼저 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순유는 유표는 강수와 한수 사이에 앉아 지키기만 하니 사방에 뜻이 없고, 네 주를 차지한 원씨 형제가 서로 미워하니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아우르기 전에 그 어지러움을 타서 취하면 천하가 정해진다고 했습니다. 조조는 원담의 청을 받아들여 원상을 깨뜨렸고, 순유는 뒤에 배반한 원담을 남피에서 베는 싸움까지 따랐습니다. 기주가 평정되자 조조는 「군사 순유는 처음부터 신을 도와 따르지 않은 싸움이 없고, 앞뒤로 적을 이긴 것이 다 순유의 꾀」라는 표를 올려 그를 능수정후에 봉했습니다. 건안 12년(207) 크게 공을 논할 때는 「충성스럽고 바르며 깊은 꾀로 안팎을 편안케 한 이는 문약이고, 공달이 그다음」이라 하여 봉읍이 700호가 되었고, 순유는 중군사를 거쳐 위나라가 처음 세워지자(213) 상서령이 되었습니다.
순유는 속이 깊고 치밀해 늘 장막 안에서 꾀를 냈으나 그때 사람들과 자제들조차 그가 한 말을 알지 못했습니다. 조조는 늘 「공달은 겉은 어리석으나 속은 슬기롭고, 겉은 겁 많으나 속은 용감하며, 겉은 약하나 속은 굳세다. 잘한 것을 자랑하지 않고 수고를 내세우지 않으니, 그 슬기는 따를 수 있어도 그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다」고 일컬었습니다. 또 조비에게 순공달은 사람의 스승이자 본보기이니 예를 다해 공경하라고 일렀고, 순유가 앓을 때 조비는 문병을 가서 홀로 침상 아래에서 절했습니다. 순유가 앞뒤로 낸 기이한 계책은 모두 열둘인데 오직 가까운 벗 종요만이 알았고, 종요가 이를 엮다가 마치지 못하고 죽어 세상에 다 전하지 못합니다.
건안 19년(214) 순유는 손권을 치러 가는 조조를 따르다 길에서 죽었으니, 『위서』에 따르면 쉰여덟이었습니다. 조조는 그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고, 『위서』에 실린 영에서 「내가 순공달과 스무 해 남짓 함께 다녔으나 털끝만큼도 나무랄 것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맏아들 순집은 일찍 죽었고 둘째 순적이 이었으나 아들이 없어 끊겼으며, 황초 연간에 손자 순표가 능수정후에 봉해졌습니다. 정시 연간에 경후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정시 5년(244) 조조의 사당 뜰에 함께 모셔졌습니다. 진수는 「순유와 가후는 셈에 빠뜨린 것이 거의 없고 권도와 변화에 통달했으니, 장량 · 진평의 다음일 것」이라 평했고, 『부자』는 순영군(순욱)의 어짊과 순군사(순유)의 슬기를 가까운 세상의 큰 현인이자 군자로 꼽았습니다.
荀攸、賈詡,庶乎筭無遺策,經達權變,其良、平之亞與公達外愚内智,外怯内勇,外弱内彊,不伐善,無施勞『삼국연의』 제2~66회
연의에서 순유는 제2회에 처음 나옵니다. 영제가 죽자 하진이 하옹 · 순유 · 정태 등 대신 서른여 명을 거느리고 들어가 태자를 황제로 세웁니다. 제10회에서는 연주에서 인재를 모으는 조조에게 숙부 순욱과 함께 찾아오는데, 황문시랑을 지내다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 있던 이름난 선비로 소개되고 조조는 그를 행군교수로 삼습니다. 제14회에서 조조가 천자를 허도로 맞은 뒤에는 군사가 됩니다.
제18회에서는 유표와 장수가 막 깨졌으니 여포가 원술과 손잡기 전에 치자고 하고, 제19회 하비에서는 돌아가려는 조조를 붙잡아 진궁은 꾀가 있으나 느리니 여포의 기운이 돌아오기 전에 치라고 합니다. 이때 물을 대는 꾀는 곽가가 내고 순욱이 알아맞힙니다. 제23회에서는 유표를 달랠 사자로 공융을 천거해 예형이 나오는 실마리가 됩니다. 제26회 연진에서 조조가 앞세운 군량과 치중을 군사들이 버리고 흩어지자 장수들이 백마로 물러나자고 하는데, 순유만 「이것은 적을 낚을 미끼」라며 말리고, 조조는 뒤에 군량을 앞세운 것이 미끼였다며 「오직 순공달만이 내 마음을 알았다」고 합니다. 제30회 관도에서는 한맹의 군량 수레를 치자며 서황을 천거하고, 오소를 칠 때는 가후 · 조홍과 본영을 지키며, 싸움 끝에는 업과 여양을 친다는 소문을 퍼뜨려 원소가 군사를 나누게 합니다. 제32회에서는 원담의 항복을 받아 원씨 형제의 어지러움을 타자고 정사의 말을 거의 그대로 옮겨 권합니다.
그 뒤로도 제33회에서 고간을 거짓 항복으로 치자고 하고, 제34회에서는 땅에서 나온 구리 참새를 순임금의 옛일에 견주어 길한 조짐이라 풀어 동작대를 짓게 합니다. 적벽을 앞두고는 제41회에서 채모 · 장윤에게 수군을 맡기는 것을 걱정하고, 제42회에서 손권에게 강하에서 함께 사냥하자는 격문을 보내자고 하며, 제46회에서 채중 · 채화를 거짓으로 항복시키자고 합니다. 제48회에서는 배를 사슬로 묶은 뒤 화공을 걱정하는 정욱의 말이 옳다고 거듭니다. 제57회에서는 마등을 도읍으로 불러들여 없애자는 꾀를 내고, 제59회에서는 위수 가에 흙으로 성을 쌓자고 했다가 모래흙이 무너져 이루지 못합니다.
제66회에서 조조를 위왕으로 높이자는 의논이 일자, 중서령 순유는 승상이 이미 위공에 올라 구석을 받아 자리가 끝에 이르렀으니 왕위에 오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며 반대합니다. 조조가 「이 사람이 순욱을 본받으려 하는가」 하고 노했다는 말을 들은 순유는 근심과 분에 병이 나 열흘 남짓 누웠다가 쉰여덟으로 죽고, 조조는 그를 후히 장사 지내고 위왕의 일을 거둡니다. 연의에서 순유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할아버지 순담 · 아버지 순이 · 숙부 순구 · 숙부뻘 순욱 · 맏아들 순집 · 둘째 아들 순적 · 손자 순표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드릴 계책이 남았소.
순공달이오. 어리석어 보인다면 다행이오.
속으로 세어 두었소. 말해 보시오.
…한 수를 놓쳤는가.
겉을 더 감춰야겠구려.
드러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계책이오.
…말을 아꼈어야 했소.
열둘 중 하나만 썼소.
…말하지 않은 것이 늦었구려.
…말하지 않은 계책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