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원상(元常) · 151년 ~ 230년 · 예주 영천군 장사현 · 조조 휘하
관중을 다독여 조조의 등 뒤를 지킨 서예의 조종
종요는 후한 말과 위나라 초기의 중신으로, 조조가 원소와 관도에서 맞설 때 사례교위로 관중을 맡았습니다. 마등과 한수 등 관중의 여러 장수를 달래어 조조 편에 묶어 두고 말 이천여 필을 보내 군마를 대었으니, 조조가 등 뒤를 걱정하지 않고 원소와 싸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공입니다. 뒤에 흉노의 반란과 위나라의 형벌 제도를 두고도 큰 몫을 했고, 조비가 즉위한 뒤에는 태위에, 조예 때에는 태부에 올랐습니다. 아울러 그는 예서에서 해서로 넘어가는 길을 연 서예가로 이름이 높아 후대에 왕희지와 나란히 일컬어졌습니다. 아들 종회는 뒷날 촉을 멸망시키는 장수가 됩니다.
연의에서는 조조가 관도에서 원소와 힘을 겨루는 동안 관중을 안정시켜 군마를 보내오는 인물로 짧게 나오고, 뒤에는 조비와 조예를 섬기는 원로 대신으로 조정 장면에 등장합니다. 아들 종회가 등애와 함께 촉을 치러 갈 때 그 아버지의 이름이 다시 불려 나옵니다.
아들 종회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제 열전에서 한 자락씩 따 왔습니다.
종요가 붓을 놓고 왔소.
붓을 쥐던 손이오. 말도 그만큼은 다루오.
관중을 다독인 것도 결국은 말이었소.
…글씨는 획 하나에서 갈리는 법이오.
말 이천 필을 보낸 것은 내 손이었소.
획을 그르치지 않으면 글은 절로 서오.
붓을 놓아야 할 때를 알겠구려.
등 뒤가 편하면 앞은 절로 풀리는 법이오.
뒤를 지키지 못한 것이 내 허물이오.
글씨는 남을 것이오. 그것으로 되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