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요鍾繇

자 원상(元常) · 151년 무렵 ~ 230년 · 예주 영천군 장사현 · 조조 휘하

종요 초상

관중을 다독여 조조의 등 뒤를 지킨 서예의 조종

능력치

통솔70무력24지력76정치91매력77

카드

공격력 2체력 4비용 3값어치 10직군 능리
원군 비용 2
무작위 아군 하나를 비용 없이 소환한다. 멀미 없이 바로 친다
격려 비용 2
아군 전체 공격력 +1 (이번 국면)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종요전과 배송지 주의 『선현행장』 · 사승의 『후한서』 · 『위략』 · 『위서』 · 『삼국지』 위서 무제기 · 문제기 · 명제기 · 순욱전 · 순유전 · 호소전 · 방덕전 배송지 주의 『위략』 · 종회전 배송지 주 · 『진서』 위항전 · 왕희지전

종요는 자가 원상이며 영천군 장사현 사람입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선현행장』은 그의 증조부 종호가 학문과 덕행으로 이름나 가르친 문하생이 천여 명이었고, 이응이 순숙 등과 함께 스승으로 받든 고을의 큰 어른이었다고 적습니다. 어려서 집안 아저씨 종유와 낙양에 가던 길에 관상 보는 이가 「귀한 상이지만 물에서 액운을 만날 것」이라 했는데, 십 리도 못 가 다리를 건너다 말이 놀라 물에 빠져 죽을 뻔했습니다. 그 말이 맞은 것을 본 종유는 그를 더욱 귀히 여겨 비용을 대고 공부에만 힘쓰게 했습니다. 사승의 『후한서』는 영천태수 음수가 공조 종요를 순욱 · 순유 · 곽도 등과 함께 뽑아 조정을 빛냈다고 적습니다. 효렴으로 천거되어 상서랑 · 양릉령이 되었다가 병으로 물러났고, 다시 불려 정위정 · 황문시랑이 되었습니다.

이 무렵 헌제는 장안에 있었고 이각 · 곽사가 도성을 어지럽혀 관동과 길이 끊겼습니다. 연주목이 된 조조가 처음 사자를 보내 글을 올리자 이각 · 곽사는 관동이 따로 천자를 세우려 한다며 사자를 붙잡아 두려 했습니다. 종요가 「영웅들이 저마다 명을 핑계로 제멋대로 하는데 오직 조 연주만이 왕실에 마음을 두고 있으니, 그 충정을 거스르면 뒷날의 바람에 맞지 않는다」고 달래자 두 사람은 후히 답했고, 이로써 조조의 사명이 조정에 닿았습니다. 순욱에게서 여러 번 종요의 칭찬을 들었던 조조는 이 일을 듣고 더욱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뒤에 이각이 천자를 위협하자 종요는 상서랑 한빈과 꾀를 모았고, 흥평 2년(195) 천자가 장안을 빠져나오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어사중승을 거쳐 시중 상서복야가 되었고 앞의 공으로 동무정후에 봉해졌습니다.

관중의 마등 · 한수 등이 저마다 강한 군사를 끼고 다투자 산동의 일에 매인 조조는 서쪽을 걱정했고, 순욱은 서쪽 일을 종요에게 맡기면 걱정이 없다고 했습니다. 조조는 표를 올려 그를 시중으로 사례교위를 맡게 하고 부절을 주어 관중의 여러 군을 감독하게 했으며, 뒷일을 맡기면서 법규에 얽매이지 않게 했습니다. 장안에 이른 종요가 마등 · 한수에게 글을 보내 화와 복을 일깨우자 두 사람은 저마다 아들을 조정에 들여보냈습니다. 건안 5년(200) 조조가 관도에서 원소와 맞설 때 종요는 말 2천여 필을 보내 군에 대었고, 조조는 편지에서 「보내 준 말이 급한 때에 딱 맞았다. 관의 서쪽이 평정되어 조정에 서쪽 걱정이 없으니 그대의 공이다. 옛날 소하가 관중을 지켜 양식을 대고 군을 이룬 것이 바로 이러했다」고 했습니다.

원소가 죽은 뒤 흉노 선우가 평양에서 난을 일으켜 종요가 여러 군을 이끌고 에워쌌는데, 원상이 세운 하동태수 곽원이 큰 무리를 이끌고 오자 장수들은 포위를 풀고 떠나자고 했습니다. 종요는 관중이 몰래 곽원과 통하면서도 아직 다 배반하지 않은 것은 우리의 위세를 꺼리기 때문이니, 버리고 떠나면 싸우기도 전에 스스로 지는 것이라 했습니다. 또 곽원은 고집이 세고 이기기를 좋아해 분수를 가볍게 건널 것이니 반쯤 건넜을 때 치자고 했습니다. 장기가 마등을 달래 마초가 날랜 군사를 이끌고 왔고, 곽원은 과연 분수를 건너다 크게 깨져 목이 베였으며 선우도 항복했습니다. 『위략』은 곽원이 종요의 생질이었는데, 방덕이 그 목을 내놓자 종요는 울면서도 「생질이지만 나라의 도적」이라며 방덕을 탓하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뒤에 하동의 위고 등이 일어났을 때도 종요는 장수들을 이끌고 깨뜨렸습니다. 천자가 서쪽으로 옮겨 간 뒤 낙양에 사람이 끊기자 종요는 관중의 백성을 옮기고 달아난 이들을 불러 모아 채웠으니, 몇 해 만에 집들이 제법 찼습니다. 조조는 관중을 칠 때 이것을 밑천으로 삼았고 그를 전군사로 삼았습니다. 무제기는 건안 16년(211) 조조가 종요에게 한중의 장로를 치게 하자 관중의 장수들이 그가 자기들을 치려는 것이라 의심했고, 마초가 한수 등과 함께 들고일어났다고 적습니다.

건안 18년(213) 위나라가 처음 서자 대리가 되었고 건안 21년(216) 상국이 되었습니다. 동궁에 있던 조비는 그에게 다섯 맛을 한꺼번에 익히는 솥을 내리고 「그 재상은 종씨이니 참으로 심장과 등뼈를 맡았다」는 명을 새겼습니다. 건안 24년(219) 서조연 위풍이 모반한 일에 걸려 벼슬을 내놓고 집으로 물러났습니다. 연강 원년(220) 조비가 위왕이 되자 다시 대리가 되었고, 황제에 오르자 정위로 바뀌어 숭고향후에 봉해졌습니다. 황초 4년(223) 태위가 되었는데, 그때 사도 화흠 · 사공 왕랑도 모두 앞 시대의 이름난 신하라 조비는 조회를 마치고 「이 세 공은 한 시대의 위인이니 뒷날 잇기 어려울 것」이라 했습니다. 황초 7년(226) 조예가 즉위하자 정릉후로 올려 봉하고 봉읍을 더해 모두 1천8백 호가 되었으며 태부로 옮겼습니다. 무릎에 병이 있던 종요와 늙고 병든 화흠은 조회 때 수레를 타고 호분이 메어 전각에 올라 앉았는데, 이 뒤로 삼공이 병들면 이를 관례로 삼았습니다.

종요는 일찍이 조조가 사형 가운데 궁형으로 바꿀 만한 것을 의논하게 했을 때 옛 육형을 되살려 사형을 대신하자고 했으나 백성을 기쁘게 하는 길이 아니라는 의논에 밀렸고, 조비 때도 매듭짓지 못했습니다. 태화 연간에 다시 상소해 사형 대신 오른발을 자르는 형을 쓰면 해마다 3천 명을 살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도 왕랑은 육형을 되살린다는 소문이 먼저 적국의 귀에 들어가 먼 곳 사람을 불러들이는 데 이롭지 않다며 사형에서 한 등급을 덜자고 했고, 의논한 백여 명 가운데 왕랑을 따르는 이가 많아 조예는 오와 촉이 아직 평정되지 않았다며 멈추었습니다.

태화 4년(230) 종요가 죽자 조예는 흰 옷을 입고 몸소 조문했고 시호를 성후라 했습니다. 맏아들 종육이 뒤를 이었고, 황초 6년(225)에 태어난 막내아들 종회는 뒷날 촉을 멸망시킨 장수가 되었습니다. 종요는 순유와 가까워 무슨 일이든 거듭 생각한 뒤 순유에게 물으면 늘 제 생각을 넘었다고 했고, 순유의 기이한 계책 열두 가지를 홀로 알아 모으다가 끝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삼국지』 호소전은 그가 호소 · 한단순 · 위기 · 위탄과 함께 글씨로 이름나 그 편지 글씨가 본보기가 되었다고 적고, 『진서』 위항전에 실린 『사체서세』는 위나라 초에 종요와 호소 두 집안이 행서의 법을 이루었다고 적습니다. 『진서』 왕희지전에서 왕희지는 「내 글씨를 종요에 견주면 맞설 만하다」고 했습니다. 진수는 「종요는 트이고 일을 다스리는 재간이 있었고, 화흠은 맑고 순수하며 덕이 소박했고, 왕랑은 글이 넓고 넉넉했으니, 참으로 모두 한 시대의 준걸」이라 평했습니다.

鍾繇開達理幹,華歆清純德素,王朗文博富贍,誠皆一時之俊偉也
종요는 트이고 일을 다스리는 재간이 있었고, 화흠은 맑고 순수하며 덕이 소박했고, 왕랑은 글이 넓고 넉넉했으니, 참으로 모두 한 시대의 준걸이다『삼국지』 위서 종요화흠왕랑전 평
關右平定,朝廷無西顧之憂,足下之勳也
관의 서쪽이 평정되어 조정에 서쪽을 돌아볼 걱정이 없으니, 그대의 공이다『삼국지』 위서 종요전에 실린 조조의 편지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56회 · 제58회 · 제68~69회 · 제91회 · 제94회 · 제107회

연의에서 종요는 제56회에 처음 나옵니다. 건안 15년 동작대가 이루어져 조조가 잔치를 열었을 때 왕랑 · 왕찬 · 진림과 함께 조조의 공덕을 기리는 시를 바치는 문관으로 이름이 불립니다.

제58회에서는 장안군수로서, 한수와 함께 20만 대군을 일으킨 마초를 맞습니다. 들에 진을 치고 나섰다가 마대와 한 합도 못 되어 크게 지고 성으로 들어가 지키는데, 장안은 성이 굳어 열흘을 에워싸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방덕의 꾀로 마초가 짐짓 물러나자 종요는 적이 멀리 간 것을 확인하고 백성이 땔나무와 물을 구하러 드나들게 성문을 열었다가, 닷새째 마초가 다시 오자 성문을 닫습니다. 그러나 한밤중에 성안에서 불이 일고 방덕이 서문을 지키던 아우 종진을 베어 성문을 열자, 종요는 동문으로 성을 버리고 동관으로 물러나 조조에게 알립니다.

제68회에서 헌제는 종요에게 조서를 짓게 해 조조를 위왕으로 세우고, 제69회에서 조조는 종요를 상국, 화흠을 어사대부로 삼습니다. 제91회에서 조비가 죽고 조예가 즉위하자 태부가 됩니다. 제94회에서는 조진이 거듭 촉군에 지자 화흠이 천자의 친정을 청하는 가운데, 태부 종요가 「신이 온 집안을 걸고 한 사람을 천거하겠다」며 유언비어에 속아 내쳤던 사마의를 다시 쓰자고 아룁니다. 조예는 그 말을 따라 완성에 물러나 있던 사마의를 평서도독으로 불러냅니다.

제107회에서는 위나라에서 넘어온 하후패가 강유에게 종회를 소개하며, 종요가 두 아들을 데리고 문제를 뵈었을 때 형 종육은 땀을 흘렸으나 종회는 「두려워 떨려 땀이 감히 나지 못한다」고 답했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연의에서 종요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95이각에게 위협받던 천자가 장안을 빠져나오는 데 힘을 보태 어사중승이 되었습니다.
  2. 200사례교위로 관중을 다독이고 관도에서 원소와 맞선 조조에게 말 2천여 필을 보냈습니다.획 하나에서 갈린다
  3. 202평양에서 분수를 건너던 곽원을 깨뜨려 베고 흉노 선우의 항복을 받았습니다.
  4. 211조조의 명으로 장로를 치려 하자 관중의 장수들이 의심해 마초와 한수가 들고일어났습니다.
  5. 213위나라가 처음 서자 대리가 되었습니다.
  6. 216위나라의 상국이 되었습니다.
  7. 219서조연 위풍의 모반에 걸려 벼슬을 내놓고 물러났습니다.
  8. 220조비가 즉위하자 대리를 거쳐 정위가 되고 숭고향후에 봉해졌습니다.
  9. 223태위가 되어 사도 화흠 · 사공 왕랑과 함께 삼공의 자리에 섰습니다.
  10. 225막내아들 종회가 태어났습니다.
  11. 226조예가 즉위하자 정릉후로 올려 봉해지고 태부가 되었습니다.
  12. 230태화 4년에 죽자 조예가 흰 옷을 입고 조문했고 시호를 성후라 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들 종육 · 종회 · 아우 종연 · 종회의 어머니 장창포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종요가 붓을 놓고 왔소.

말을 열며

붓을 쥐던 손이오. 말도 그만큼은 다루오.

되받으며

관중을 다독인 것도 결국은 말이었소.

말문이 막혀

…글씨는 획 하나에서 갈리는 법이오.

말문이 막혀

말 이천 필을 보낸 것은 내 손이었소.

설전을 이기고

획을 그르치지 않으면 글은 절로 서오.

설전에 지고

붓을 놓아야 할 때를 알겠구려.

이긴 뒤

등 뒤가 편하면 앞은 절로 풀리는 법이오.

진 뒤

뒤를 지키지 못한 것이 내 허물이오.

쓰러지며

글씨는 남을 것이오. 그것으로 되었소.

같은 기치 아래

조조하후연하후돈서황학소허저조인전위문앙우금악진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