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환(子桓) · 187년 ~ 226년 · 예주 패국 초현 · 조조 휘하
후한을 멸망시키고 조위의 초대 황제에 오른 냉혹한 야심가
출전 · 『삼국지』 위서 문제기와 배송지 주의 『위서』 · 『헌제전』 · 『전론』 · 『오력』 · 위서 후비전 · 진사왕전 · 가후전 · 최염전 · 모개전 · 형옹전 · 포훈전 · 진군전 · 조홍전 · 조휴전 · 우금전 · 장료전 · 가규전 · 신비전 · 왕찬전과 그 배송지 주의 『세어』 · 『전론』 · 무문세왕공전 평의 배송지 주 『원자』 · 오서 서성전 · 『후한서』 황후기
조비는 자가 자환이며 조조와 변씨의 아들로, 중평 4년(187) 겨울 초현에서 태어났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서』는 그가 여덟 살에 글을 지었고 옛 경전과 제자백가의 책을 두루 읽었으며 말 타고 활쏘기와 칼 쓰기를 좋아했다고 적습니다. 문제기 평의 배송지 주에 실린 『전론』 자서에 따르면 다섯 살에 활쏘기를 배워 여덟 살에 말 위에서 활을 쏘았고, 건안 초 완에서 장수가 배반해 형 조앙과 사촌 형 조안민이 죽을 때 열 살의 나이로 말을 타고 빠져나왔습니다. 건안 9년(204) 업이 떨어지자 원소의 아들 원희의 아내 견씨를 맞아들였고, 견씨는 뒷날의 명제 조예를 낳았습니다.
건안 16년(211) 오관중랑장이 되어 부승상을 겸했습니다. 아우 조식이 재주로 사랑받고 정의 · 정이 · 양수가 그를 도와 조조는 여러 번 조식을 태자로 세울 뻔했으나, 최염 · 모개 · 형옹은 맏이를 세워야 한다고 아뢰었습니다. 조비가 스스로를 지킬 방도를 묻자 가후는 덕을 넓히고 선비처럼 부지런히 하며 아들의 도리를 어기지 말라고 일렀습니다. 뒤에 조조가 좌우를 물리고 묻자 가후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원소와 유표 부자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답했고, 조조가 크게 웃은 뒤 태자가 정해졌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세어』는 조조가 싸움터로 떠날 때 조식은 공덕을 늘어놓았으나 조비는 오질의 귀띔대로 울며 절해 모두를 탄식하게 했다고 적습니다. 진수는 조식이 제멋대로 굴고 술을 절제하지 않은 반면 조비는 술수로 대하며 감정을 꾸며 스스로를 다잡았고, 궁인과 좌우가 모두 그를 위해 말해 주었다고 적습니다. 건안 22년(217) 조비는 위의 태자가 되었습니다.
건안 25년(220) 정월 조조가 낙양에서 죽자 조비는 승상과 위왕 자리를 잇고 기주목을 겸했으며, 연호를 연강으로 고쳤습니다. 가후를 태위, 화흠을 상국, 왕랑을 어사대부로 삼았고, 환관은 서령보다 높은 벼슬에 오르지 못한다는 영을 금책에 적어 석실에 간직했습니다. 상서 진군이 구품관인법을 세운 것도 이때이며, 조식을 편들던 정의 · 정이 형제는 집안의 남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해 10월 헌제가 사람들의 바람이 위에 있다며 제위를 넘기자, 배송지 주의 『헌제전』에 따르면 조비는 네 번 온 조서를 거듭 사양한 끝에 받았습니다. 번양에 쌓은 단에 올라 황제가 되어 연호를 황초로 바꾸었고, 헌제를 산양공으로 삼아 천자의 예로 제사 지내게 했으며, 조조를 무황제로 추존했습니다.
황초 2년(221) 공자의 후손 공선을 종성후로 삼아 끊긴 제사를 잇게 했습니다. 그해 원망하는 말을 한 견씨에게 사자를 보내 죽음을 내렸고, 손권이 번국을 칭하며 우금을 돌려보내자 손권을 오왕에 봉했습니다. 조비는 우금을 오에 사자로 보내기에 앞서 조조의 능에 참배하게 했는데, 미리 능의 전각에 관우가 이기고 방덕이 성내며 우금이 항복하는 모습을 그려 두어 이를 본 우금은 부끄러워하다 병들어 죽었습니다. 젊어서 빌리려던 것을 내주지 않은 조홍은 식객의 죄로 옥에 갇혀 죽을 뻔하다 변태후가 곽황후를 다그쳐 겨우 풀려났고, 곽황후 아우의 죄를 봐주지 않았던 포훈은 황초 7년에 작은 일로 끝내 죽임을 당했습니다. 기주의 사가 10만 호를 하남으로 옮기려 할 때는 신비가 옷자락을 붙잡고 말려 절반만 옮겼습니다. 황초 3년(222)에는 유비가 칠백 리에 걸쳐 진영을 잇대었다는 말을 듣고 병법을 모르는 짓이라며 그가 질 것을 내다보았습니다. 그해 9월 신하들이 태후에게 일을 아뢰지 못하게 하고 외척이 정사를 맡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렸고, 곽씨를 황후로 세웠습니다. 번왕이 된 형제들에게는 감국의 관리를 붙였는데, 조식은 감국알자 관균의 고발을 받았으나 태후 때문에 작위를 깎는 데 그쳤습니다.
손권이 다시 등지자 조비는 그해 겨울 허창에서 남쪽으로 나서 세 길로 오를 쳤습니다. 조휴는 동포에서 여범 등을 깨뜨렸으나 강릉의 포위는 이듬해 역병이 돌자 풀었습니다. 황초 5년(224) 태학을 세우고 오경의 시험법을 정한 뒤, 가을에 용주를 타고 회수를 따라 광릉까지 나아갔습니다. 오서 서성전은 서성이 건업부터 울타리를 쌓고 그 위에 가짜 누각을 세워 수백 리에 뻗게 하자 조비가 이를 보고 놀랐고, 강물마저 불어나 군사를 물렸다고 적습니다. 황초 6년(225)에도 광릉의 옛 성에서 10여만 군사를 강가에 벌여 보였으나 그해 몹시 추워 물길이 얼자 돌아왔습니다.
조비는 수양산 동쪽을 제 능으로 정하며 봉분을 쌓거나 금은을 넣지 말고 뒷세상이 그 자리를 모르게 하라는 종제를 남겼습니다. 황초 7년(226) 정월 허창의 남문이 까닭 없이 무너지자 들어가지 않고 낙양으로 돌아왔고, 5월 병이 깊어지자 조진 · 진군 · 조휴 · 사마의를 불러 뒤를 이을 임금을 보필하라는 유조를 남긴 뒤 이튿날 가복전에서 마흔으로 죽어 수양릉에 묻혔습니다. 시호는 문황제이고, 명제 때 그의 묘호를 고조로 정했습니다. 그는 글을 좋아해 손수 지은 글이 백 편에 이르렀고, 선비들에게 경전을 갈래대로 모으게 해 『황람』을 엮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전론』에서는 공융 · 진림 · 왕찬 등 당대의 문인 일곱을 들어 저마다의 장단을 따졌고, 『오력』은 그가 흰 비단에 쓴 『전론』과 시부를 손권에게 보냈다고 적습니다. 진수는 그가 글재주를 타고나 붓을 들면 글이 되었고 널리 듣고 잘 기억해 재주를 두루 갖추었으나, 넓은 도량과 공평한 정성을 더했더라면 옛 어진 임금에 멀지 않았으리라고 평했습니다.
文帝天資文藻,下筆成章,博聞彊識,才藝兼該若加之曠大之度,勵以公平之誠,邁志存道,克廣德心,則古之賢主,何遠之有哉『삼국연의』 제32~91회
연의에서 조비는 제32회 끝에 처음 나옵니다. 열여덟 살의 그는 업이 떨어지자 칼을 들고 원소의 집에 들어갔다가 제33회에서 원희의 아내 견씨를 보고 그 집안을 지켜 주고, 조조는 「참으로 내 며느리로구나」 하며 견씨를 그에게 맞아들이게 합니다. 제68회에서는 조식에게 뒤를 빼앗길까 두려워 가후에게 꾀를 물어, 조조가 싸움터로 떠날 때 울며 절하고 가까운 신하들을 매수합니다. 가후가 「원소와 유표 부자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답하자 조조는 그를 왕세자로 세웁니다. 제72회에서는 조가의 현장 오질을 큰 바구니에 숨겨 들였다가 양수에게 들키자, 이튿날 비단만 실어 들여 조조가 양수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제78회에서 조조가 죽자 화흠이 헌제를 윽박질러 받아 낸 조서로 위왕이 되고, 제79회에서는 군사를 이끌고 온 아우 조창을 가규가 달래 돌려보냅니다. 조조의 능을 돌보러 간 우금은 전각의 벽에 목숨을 비는 제 모습이 그려진 것을 보고 부끄러워 병들어 죽습니다. 문상을 오지 않은 조식을 잡아들여 정의 · 정이를 죽인 조비는 일곱 걸음 안에 시를 지으라 다그치고 이어 형제를 두고 곧바로 시를 지으라 하는데, 조식은 「콩을 삶는데 콩대를 태우니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 본디 한 뿌리에서 났거늘 어찌 이리 급히 볶아 대는가」라고 읊습니다. 조비는 눈물을 흘리고 어머니 변씨의 말에 조식을 안향후로 깎는 데 그칩니다.
제80회에서는 화흠 · 왕랑이 헌제를 몰아붙이고 조홍 · 조휴가 칼을 차고 들어가 옥새를 거두며, 조비는 사마의와 가후의 꾀대로 두 번 사양한 뒤 번양에 쌓은 수선대에 올라 황제가 됩니다. 「순과 우의 일을 이제 알겠다」고 말하지만 이내 괴이한 바람에 놀라 쓰러집니다. 제84회에서는 유비의 칠백 리 진영을 보고 그가 질 것을 내다보고, 제85회에서는 세 길로 오를 쳤다가 크게 지며 사마의의 꾀를 따라 다섯 길로 촉을 치게 합니다. 제86회에서는 황초 5년 용주를 타고 광릉에 이르렀으나, 하룻밤 새 수백 리에 걸쳐 선 서성의 가짜 성을 보고 놀라고 사나운 바람에 배가 뒤집힐 뻔하며 손소 · 정봉에게 쫓겨 크게 집니다.
제91회에서 곽귀비의 참소를 믿고 견씨에게 죽음을 내린 그는, 사냥에서 새끼 사슴을 쏘지 못하겠다고 우는 조예를 보고 활을 던지며 그를 평원왕으로 삼습니다. 병이 깊어지자 조진 · 진군 · 사마의와 뒤이어 들어온 조휴에게 아들을 부탁하고 마흔에 죽습니다. 연의에서 조비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조조 · 어머니 변씨 · 아내 견씨 · 곽씨 · 아들 아홉(조예 등)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짐이 친히 나섰다.
위의 황제요. 말도 법도 내가 정하오.
짐 앞에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어 보겠소.
…아우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천하를 얻고도 마음이 무겁구려.
한의 하늘은 저물고 위가 섰소.
…아버님만 못하다는 말이 옳았는가.
위의 깃발이 섰다.
…아직 짐의 때가 아닌가.
…사십도 못 넘기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