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중달(仲達) · 179년 ~ 251년 · 사례 하내군 온현 · 한 세력의 주인
제갈량의 북벌을 막고 고평릉의 변으로 진나라의 기틀을 놓은 지략가
출전 · 『진서』 선제기 · 후비전 · 선오왕전 · 『삼국지』 위서 문제기 · 명제기 · 삼소제기 · 공손연전 · 조진전 · 조상전 · 사마랑전 · 양준전 · 장합전 · 신비전 · 왕릉전 · 등애전과 배송지 주의 『위략』 · 『위씨춘추』 · 『한진춘추』 · 『위말전』 · 간보의 글 · 촉서 제갈량전과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사마의는 자가 중달이며 하내군 온현 효경리 사람입니다. 할아버지 사마준은 영천태수, 아버지 사마방은 경조윤을 지냈고, 사마방의 여덟 아들 가운데 맏이가 사마랑, 둘째가 사마의입니다. 『진서』 선제기는 그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큰 꾀가 많았으며 한말의 난리에 늘 천하를 걱정했다고 하고, 같은 군 사람 양준은 스무 살도 안 된 그를 범상치 않은 그릇이라 했습니다.
건안 6년(201) 사공 조조가 그를 불렀으나, 『진서』는 그가 한의 운이 쇠해 가는 줄 알고 조씨에게 몸을 굽히고 싶지 않아 풍비(몸이 저리고 마비되는 병)를 핑계로 사양했고, 조조가 밤에 사람을 보내 몰래 찔러 보게 했어도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고 적습니다. 『진서』 후비전은 볕에 말리던 책을 소나기에 저도 모르게 일어나 거두는 것을 본 여종을 아내 장춘화가 죽여 입을 막았다고 전합니다. 조조가 승상이 되어 「또 머뭇거리면 잡아들이라」며 다시 부르자 그는 두려워 문학연이 되었습니다.
태자중서자가 된 그는 큰 의논마다 뛰어난 꾀를 내어 조비의 믿음을 얻었고, 진군 · 오질 · 주삭과 함께 「사우」로 불렸습니다. 건안 24년(219) 관우가 번을 에우고 우금의 군사가 물에 잠기자 조조가 도읍을 옮기려 했는데, 그는 관우가 뜻을 얻는 것을 손권이 바라지 않으니 손권에게 그 뒤를 치게 하자며 말렸고, 손권이 여몽을 보내 관우를 사로잡았습니다.
위가 한의 선양을 받자 상서가 되었고, 황초 5년(224) 조비가 오를 치러 나서자 허창에 남아 무군대장군 · 녹상서사가 되었습니다. 황초 7년(226) 조비는 죽음을 앞두고 조진 · 진군 · 조휴와 그에게 유조를 내려 명제를 보필하게 했습니다. 명제 때 표기장군으로 완에 머물던 그는 신성태수 맹달이 오 · 촉과 몰래 통하자 달래는 글로 머뭇거리게 해 놓고, 길을 곱절로 재촉해 여드레 만에 상용성 아래 이르렀습니다. 표를 올려 오가는 데 한 달은 걸리리라 여겼던 맹달은 「어찌 이리 귀신같이 빠른가」 했고, 그는 열엿새를 쳐 태화 2년(228) 정월 맹달을 베었습니다.
태화 5년(231) 조진이 병들자 명제는 그에게 옹주 · 양주의 군사를 맡겼고, 이때부터 그는 제갈량과 맞섰습니다. 노성까지 제갈량을 쫓은 싸움을 『진서』는 크게 이긴 것으로 적지만,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는 「공은 촉을 범처럼 두려워한다」는 장수들의 성화에 못 이겨 싸웠다가 크게 져 3천의 목을 잃었다고 적습니다. 물러나는 제갈량을 쫓던 장합이 목문에서 화살에 맞아 죽었는데, 『위략』은 「돌아가는 군대는 쫓지 않는다」는 장합의 말을 그가 듣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청룡 2년(234) 제갈량이 오장원에 진을 치자 명제는 굳게 지키면 적이 군량이 다해 물러갈 것이라 명했습니다. 제갈량이 여인의 머리쓰개와 꾸미개를 보내자 그는 노하여 싸우기를 청했으나, 명제가 보낸 신비가 부절을 들고 군문에 서자 나가지 않았습니다. 제갈량이 먹는 것은 몇 되뿐이고 스무 대 이상의 매질은 몸소 살핀다는 말을 사자에게서 듣고는 「제갈공명이 어찌 오래가겠는가」 했습니다. 백여 일을 맞선 끝에 8월 제갈량이 병으로 죽었고, 뒤쫓던 그는 강유가 깃발을 돌리고 북을 울리게 하자 물러났습니다. 백성들이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을 달아나게 했다」는 속담을 짓자 그는 「나는 산 사람은 헤아려도 죽은 사람은 헤아리지 못한다」며 웃었습니다.
청룡 3년(235) 태위가 된 그는 경초 2년(238) 요동의 공손연을 치러 보병과 기병 4만을 이끌고 나섰습니다. 요수를 지키는 적을 두고 곧장 양평으로 향해 뒤쫓아 온 적과 세 번 싸워 다 이겼고, 한 달 넘는 장맛비에도 진영을 옮기자는 자를 베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8월 공손연은 아들과 함께 에움을 뚫고 달아나다 양수 가에서 베였고, 『진서』는 그가 성에 들어가 열다섯 살 이상의 남자 7천여 명을 죽여 경관(시체를 쌓아 올린 무더기)을 만들었다고 적습니다.
경초 3년(239) 정월 명제는 그의 손을 잡고 「그대를 기다리며 죽음을 참았다」 하며 여덟 살 난 조방을 조상과 함께 보필하게 했습니다. 처음에 그를 아버지처럼 섬기던 조상은 정밀의 꾀로 그를 태부로 올려 겉으로 높이고 실권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정시 2년(241) 번성을 에운 오군을 물리쳤고, 그가 알아본 등애의 건의로 물길을 넓혀 회수 북쪽에 크게 둔전했습니다. 정시 8년(247) 조상이 하안 · 등양 · 정밀과 함께 정사를 휘두르자 그는 5월부터 병을 핑계로 물러났습니다.
정시 9년(248) 겨울 형주자사로 떠나는 이승이 찾아오자, 그는 여종의 부축을 받으며 죽을 흘려 가슴을 적시고 형주를 병주로 잘못 알아듣는 척했습니다. 『위말전』은 조상 등이 이승을 보내 그를 엿보게 했다고 하며, 이승이 「태부는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 하자 조상 등은 대비를 풀었습니다. 가평 원년(249) 정월 황제가 명제의 능인 고평릉에 참배하고 조상 형제가 모두 따라간 틈에, 그는 태후에게 아뢰어 조상 형제를 물리게 하고 낙수의 부교에 진을 쳤으니 이것이 고평릉의 변입니다. 환범이 조상에게 달려가자 그는 「둔한 말은 여물통의 콩을 그리워한다」며 조상이 그 꾀를 쓰지 못하리라 했는데, 간보는 이것을 장제의 말로 적습니다. 그가 벼슬만 내놓으면 된다며 낙수를 가리켜 맹세하자 조상은 「부잣집 늙은이는 될 수 있다」며 칼을 내려놓았습니다. 며칠 뒤 황문 장당이 조상 등의 모반을 털어놓았다 하여 조상 형제와 그 무리가 모두 죽고 삼족이 멸해졌으며, 『진서』는 남녀와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가평 3년(251) 태위 왕릉이 초왕 조표를 세우려 꾀하자 그는 몸소 물길로 나아갔고, 몸을 묶고 맞은 왕릉이 편지 한 장이면 왔을 것이라 하자 「그대가 편지 한 장으로 올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왕릉은 끌려가던 길에 독을 마시고 죽었습니다. 그해 8월 그는 일흔셋으로 죽어 유언대로 수양산에 봉분 없이 묻혔고, 손자 사마염이 진을 세운 뒤 선황제로 높여졌습니다.
『진서』는 그가 속으로 꺼리고 겉으로 너그러웠다고 하고, 이리처럼 돌아보는 상(낭고상)이 있다는 말을 들은 조조가 말 셋이 한 구유에서 먹는 꿈까지 꾸자 조비에게 「사마의는 남의 신하로 있을 사람이 아니니 반드시 네 집안일에 끼어들 것」이라 했다고 적습니다. 선제기 끝의 평은 공손연을 백 일에 없애고 맹달을 열흘 남짓에 사로잡은 꾀를 기리면서도, 제갈량이 살았을 때는 실한 것을 겁내 나아가지 못했고 죽은 뒤에는 헛것을 의심해 달아났다고 꼬집었으며, 「당대에는 허물을 숨겼으나 끝내 뒷세상의 비웃음을 샀다」고 맺었습니다.
殄公孫於百日,擒孟達於盈旬,自以兵動若神,謀無再計矣天子在外,內起甲兵,陵土未乾,遽相誅戮,貞臣之體,寧若此乎『삼국연의』 제39회 · 제67회 · 제69회 · 제73회 · 제75회 · 제77~78회 · 제80회 · 제85~86회 · 제91회 · 제94~108회
연의에서 사마의는 제39회에 처음 나옵니다. 조조가 삼공을 없애고 스스로 승상이 되며 문학연으로 삼은 이로, 하내 온현 사람이고 영천태수 사마준의 손자, 경조윤 사마방의 아들, 주부 사마랑의 아우라고 소개됩니다. 제67회에서는 주부로서 한중을 얻은 조조에게 곧장 촉을 치자고 했다가 「농을 얻고 또 촉을 바라는가」 하는 말을 듣고, 제73회에서는 손권을 부추겨 형주를 치게 하자고 합니다. 제75회에서는 우금이 사로잡히자 도읍을 옮기려는 조조를 말리고, 제77회에서는 손권이 보낸 관우의 머리를 「동오가 화를 옮기려는 꾀」라 풀어 향나무로 몸을 깎아 붙여 후히 장사 지내라고 권합니다. 제78회에서는 말 셋이 한 구유에서 먹는 꿈을 마등 부자의 일로 여긴 조조가 병들어 눕자 그 머리맡에서 뒷일을 부탁받고, 제80회에서는 조비에게 선양의 조서를 곧바로 받지 말고 한 번 사양하라고 권합니다. 제85회에서는 유비가 죽자 다섯 갈래로 촉을 치자는 꾀를 내고, 제86회에서는 상서복야가 되어 허창에 남아 나랏일을 맡습니다.
제91회에서 조비가 죽으며 조진 · 진군과 함께 조예를 부탁받은 그는 스스로 청해 옹주와 양주의 군사를 맡습니다. 마속의 꾀로 그가 모반한다는 방이 업성에 붙자 화흠은 「태조께서 사마의는 매처럼 보고 이리처럼 돌아보니 병권을 맡기지 말라 하셨다」고 아뢰고, 그는 벼슬을 빼앗겨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제94회에서 조진이 거듭 지자 종요의 천거로 평서도독이 되어 돌아오고, 맹달의 모반을 알자 「성지를 기다리면 한 달이 걸린다」며 하루에 이틀 길을 달려 신성을 에웁니다. 연의의 맹달은 신탐의 창에 죽고, 앞장선 서황은 맹달의 화살에 맞아 죽습니다. 제95회에서는 아들 사마소가 살펴 온 대로 산 위에 진을 친 마속의 물길을 끊어 가정을 빼앗고, 서성에서 성문을 열고 거문고를 뜯는 제갈량을 보고는 복병을 의심해 물러났다가 뒤에 「나는 공명만 못하다」며 탄식합니다.
제98회에서 병든 조진에게서 도독의 인수를 넘겨받아 제갈량과 맞서고, 제100회에서는 진법을 겨루다 지며, 구안을 시켜 제갈량이 딴마음을 품었다는 소문을 성도에 퍼뜨려 그를 불러들이게 하고도 아궁이를 늘려 가는 꾀에 속아 쫓지 못합니다. 제101회에서는 「성미가 급하다」며 말리는데도 쫓아간 장합이 목문도에서 쇠뇌에 맞아 죽습니다. 제103회에서는 상방곡에서 두 아들과 함께 불길에 갇혀 「우리 부자 셋이 여기서 죽는구나」 하며 울다가 소나기 덕에 살아납니다. 오장원에서 제갈량이 머리쓰개와 흰 여인의 옷을 보내오자 속으로 크게 노하면서도 웃음을 꾸며 받고, 사자에게 먹고 자는 것만 물어 「먹는 것은 적고 일은 번거로우니 어찌 오래가겠는가」 합니다. 싸우자고 들끓는 장수들을 누르려고 싸움을 청하는 표를 올리고는, 부절을 들고 온 신비에게 「공이 참으로 내 마음을 안다」고 속삭입니다. 제104회에서는 별이 떨어진 것을 보고도 속임수일까 망설이다가 촉군이 물러갔다는 말에 뒤쫓았으나, 수레에 앉은 제갈량을 보고 놀라 50여 리를 달아난 뒤 「내 머리가 있느냐」며 머리를 만지고, 그것이 나무로 깎은 사람이었음을 알고는 「나는 산 사람은 헤아려도 죽은 사람은 헤아리지 못한다」 합니다.
제106회에서는 요동을 쳐 장맛비 속에 서두르지 않는 까닭을 진군(정사에서는 사마 진규)에게 풀어 주고, 에워싸이자 말에서 내려 항복한 공손연 부자를 벤 뒤 그 일족과 함께 꾀한 관원 70여 명을 죽입니다. 명제의 유언을 받은 뒤 조상이 권력을 쥐자 병을 핑계로 들어앉고, 찾아온 이승 앞에서 귀가 먹은 척하며 형주를 병주로 알아듣고 탕을 흘려 옷깃을 적십니다. 제107회에서는 조상이 조방을 모시고 명제의 무덤에 간 사이 태후에게 아뢰어 도성을 쥐고, 낙수를 가리킨 맹세로 조상을 돌아오게 한 뒤 장당의 공초를 들어 그 삼족을 멸합니다. 조상의 부하들은 「각기 제 주인을 섬긴 의인」이라며 살려 주지만, 하후패를 불러들이려다 그를 촉으로 달아나게 만듭니다. 제108회에서 가평 3년 8월 병이 깊어지자 두 아들을 불러 「사람들이 내게 딴마음이 있다고 의심해 늘 두려웠다. 내가 죽은 뒤 너희는 나랏일을 잘 다스리되 삼가고 삼가라」 이르고 숨을 거둡니다. 연의에서 사마의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제119회에서 손자 사마염이 제위에 올라 그를 선제로 높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사마방 · 형 사마랑 · 아우 사마부 등 · 아내 장춘화 · 아들 아홉(사마사 · 사마소 · 사마륜 등) · 딸 남양공주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서두를 것 없다. 자리를 잡아라.
서두르지 않겠소. 나는 기다리는 데 익숙하오.
말은 적을수록 좋소. 어디 들어 보리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는가.
물러설 때를 아는 것도 재주요.
끝을 보는 것은 기다린 자요.
오늘은 성문을 닫겠소. 그뿐이오.
기다린 자가 가져가는 법이오.
…물러나는 것도 수요.
…이 몸은 끝까지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