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창王昶

자 문서(文舒) · 미상 ~ 259년 · 태원 · 사마의 휘하

법령 개혁을 주장하고 오나라 정벌과 반란 진압에 활약한 위나라의 문무겸비

능력치

통솔74무력64지력79정치80매력75

카드

공격력 4체력 4비용 3값어치 10직군 능리
호위 비용 1
지정한 아군에게 방벽 2와 도발, 퇴각할 때까지

정사

왕창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수이자 정치가로, 태원 출신입니다. 조비가 태자 시절일 때 발탁되어 태자문학을 지냈으며, 이후 연주자사 등의 관직을 거쳤습니다. 사마의의 추천을 받기도 한 그는 조방 즉위 후 정남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 243년에는 주둔지였던 완이 위급 상황에 신속히 대처하기 어렵다고 보고 신야로 주둔지를 옮겼습니다. 250년 손권 말기의 혼란을 기회로 삼아 오나라를 공격할 것을 조정에 청하여 출병하였고, 강릉을 지키던 시적을 유인해 격파하는 공을 세워 정남대장군과 경릉후에 봉해졌습니다. 252년 제갈탄의 건의로 시작된 오나라 정벌에 동참하여 강릉을 공격했으나 위군이 대패하자 퇴각하였습니다. 이후 관구검과 제갈탄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고, 258년 사공에 임명된 후 25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호는 목후입니다. 그는 학식도 깊어 가혹한 법률 제도를 개혁하고자 《치론》 20여 편을 저술했고 병법에 관한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의 아들 왕혼은 훗날 진나라의 장수가 되어 오나라를 정벌하는 공을 세우게 됩니다.

삼국지연의

연의 기록 없음

가족

아들 왕혼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제 열전에서 한 자락씩 따 왔습니다.

싸움터에 들며

법대로 하겠소.

말을 열며

법이 서야 나라가 서오. 말에도 법도가 있소.

되받으며

조리 없는 말은 법령보다 쉽게 무너지오.

말문이 막혀

…조문이 하나 어긋났구려.

말문이 막혀

고쳐 쓰면 될 일이오.

설전을 이기고

다스림이란 이런 것이오.

설전에 지고

내 법에 빈틈이 있었구려.

이긴 뒤

기강이 이겼소.

진 뒤

…법령을 더 고쳐야겠구려.

쓰러지며

법령은 고쳐 두었다. 지켜라.

근거 · 위의 사공. 치론을 올려 법령·인사 개혁을 주장했고 오 정벌과 반란 진압에 공을 세움. · 법령 개혁을 주장한 위의 사공. · 법령 개혁을 주장한 문무겸비의 명신. 259년 죽음. · 법령 개혁을 주장.

같은 기치 아래

사마의양호곽회사마사사마소왕준손례진태왕기가충두예

이 무장을 더 읽으려면 · 한국어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