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소司馬昭

자 자상(子上) · 211년 ~ 265년 · 사례 하내군 온현 · 사마의 휘하

사마소 초상

조위의 황제를 시해하고 촉을 정벌하여 사마씨 천하의 기틀을 완성한 진왕

능력치

통솔76무력57지력87정치90매력82

카드

공격력 4체력 4비용 4값어치 12직군 능리
저격 비용 2
지정한 아군이 적 하나를 제 공격력만큼 친다 (반격 없음)
역계 비용 3
비밀 · 적이 일부 피해 책략을 쓸 때 · 그 책략이 적 쪽으로 되돌아 걸린다

정사

출전 · 『진서』 문제기 · 경제기 · 선제기 · 무제기 · 후비전 · 선오왕전 · 문육왕전 · 가충전 · 『삼국지』 위서 삼소제기와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위씨춘추』 · 『위말전』 · 위서 제갈탄전 · 등애전 · 종회전 · 진태전 · 곽회전 · 촉서 후주전과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사마소는 자가 자상이며, 사마의의 아들로 형 사마사와 어머니가 같은 아우입니다. 집안은 하내군 온현 사람이고, 어머니 장춘화는 사마사 · 사마소 · 사마간과 남양공주를 낳았습니다. 경초 2년(238) 신성향후에 봉해졌고, 정시 초 낙양전농중랑장이 되어 명제의 사치 뒤에 번잡한 일을 덜고 농사철을 빼앗지 않아 백성이 크게 기뻐했습니다.

정시 5년(244) 조상이 촉을 칠 때 정촉장군으로 하후현의 버금이 되어 흥세까지 나아갔고, 비의가 험한 곳을 막고 있으니 서둘러 군을 돌리자고 권했습니다. 가평 원년(249) 조상을 벨 때에는 무리를 이끌고 두 궁을 지켰습니다. 『진서』 경제기는 거사를 전날 저녁에야 들은 사마소가 여느 때처럼 잠든 형과 달리 자리에 편히 눕지 못했다고 적습니다. 그해 안서장군으로 관중의 여러 군을 지휘했는데, 『진서』는 그가 낙곡으로 향하는 척하자 강유가 물러나 구원이 끊긴 촉의 구안이 항복했다고 적습니다. 가평 3년(251) 왕릉을 칠 때에는 회북의 군사를 감독했습니다. 가평 4년(252) 호준 · 제갈탄을 거느리고 오를 쳤으나 동관에서 크게 져 작위를 잃었고, 뒤에 강유를 막고 신평의 강족과 호족을 쳐부숴 다시 신성향후가 되었습니다.

정원 원년(254) 고귀향공 조모를 세우는 데 참여해 고도후가 되었습니다. 이듬해 관구검과 문흠이 일어나자 낙양에 남았다가 형의 병이 깊어지자 허창으로 가서 위장군이 되었습니다. 사마사가 죽자 천자는 그를 허창에 머물게 했으나, 사마소는 부하와 종회의 꾀를 좇아 스스로 군을 이끌고 돌아와 대장군 · 녹상서사가 되어 정사를 도왔습니다.

감로 2년(257) 제갈탄이 회남에서 일어나 오에 구원을 청하자, 사마소는 천자와 황태후를 받들고 나서 구두에 진을 쳤습니다. 『삼국지』 제갈탄전은 그 군사를 26만이라 적습니다. 서둘러 치자는 장수들에게 그는 「세 반역자가 외로운 성에 모였으니 긴 계책으로 묶어 두겠다」며 에움만 굳혔습니다. 이듬해 성안에서 제갈탄이 문흠을 죽이자 그 아들 문앙 · 문호가 넘어왔는데, 사마소는 죽이자는 군리들을 물리치고 그들을 장군으로 삼아 성을 돌며 외치게 했습니다. 2월 성을 떨어뜨려 제갈탄을 베었고, 오의 항병을 묻어 죽이자는 말에 「달아나 돌아가더라도 중국의 너그러움을 보일 뿐」이라며 삼하로 옮겼습니다. 5월 상국 · 진공 · 구석을 명받았으나 아홉 번 사양했습니다.

감로 5년(260) 5월, 스무 살의 황제 조모는 권세가 날로 빠져나가자 왕심 · 왕경 · 왕업을 불러 「사마소의 마음은 길 가는 사람도 다 안다. 앉아서 폐위의 욕을 당할 수는 없다」며 스스로 치러 나섰습니다. 왕심과 왕업이 달려가 알리자 사마소는 중호군 가충 등을 불러 대비했습니다.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는 조모가 하인 수백을 이끌고 북을 치며 나서 손수 칼을 휘두르자, 남궐 아래에서 맞선 가충이 태자사인 성제에게 「너희를 길러 둔 것은 바로 오늘을 위해서다」라고 했고 성제가 나아가 찌르니 칼날이 등 뒤로 나왔다고 적습니다. 이를 들은 사마소는 크게 놀라 땅에 몸을 던지며 「천하가 나를 뭐라 하겠는가」 했습니다.

이날의 기록은 사서마다 갈립니다. 『삼국지』 본문은 「고귀향공이 죽었다. 나이 스물이었다」 한 줄로 적고, 조모가 태후를 해치려다 앞선 군사에게 해를 입었다는 태후의 영과 성제가 제멋대로 진중에 뛰어들었다는 사마소의 상주를 싣습니다. 『위씨춘추』는 거사가 전날인 무자일 밤에 비로 미루어졌고 황제가 죽을 때 큰비와 우레로 날이 어두웠다고 하며, 『위말전』은 성제 형제가 함께 찔러 황제가 수레 아래로 넘어졌다고, 『진서』 문제기는 황제가 수레 안에서 죽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는 차례가 가장 반듯하다며 『한진춘추』를 앞에 실었습니다. 『진서』에 따르면 사마소가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묻자 진태는 가충을 허리 베어야 겨우 천하에 사죄할 수 있다고 했으나, 사마소는 성제에게 죄를 돌려 베고 그 가족을 정위에게 넘겼으며 상서 왕경도 죽였습니다. 조모는 사마소 등의 청으로 왕의 예로 장사 지내졌고, 연왕 조우의 아들 조환이 뒤를 이었습니다.

경원 4년(263) 사마소는 오를 치려면 배를 만들고 물길을 여는 데 품이 너무 드니 먼저 촉을 얻고 그 물길을 타고 물과 뭍으로 함께 나아가자는 계책을 내었습니다. 그는 18만을 모아 등애에게 답중의 강유를 붙들게 하고 제갈서에게 그 돌아갈 길을 끊게 하며 종회에게 낙곡으로 한중을 치게 했습니다. 서조속 소제가 종회는 믿기 어렵다고 하자 「촉을 멸한 뒤에는 중국의 장병은 돌아가기를 생각하고 촉의 남은 백성은 두려워 떨 것이니, 딴마음을 품어도 해낼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10월 비로소 상국 · 진공 · 구석을 받았고, 11월 등애가 음평의 험한 길을 넘어 면죽에서 제갈첨을 베자 유선이 항복했습니다.

함희 원년(264) 정월 종회의 참소로 등애를 함거로 불러들이고, 사마소는 천자를 받들고 장안까지 나아갔습니다. 성도에서 반란을 일으킨 종회는 제 장병들에게 죽었고, 잡혀 있던 등애도 이 난리 속에 위관이 보낸 전속에게 죽었습니다. 3월 사마소는 진왕에 올랐고, 같은 달 유선은 안락현공에 봉해졌습니다. 『한진춘추』는 사마소가 잔치에서 촉의 옛 놀이를 벌이자 유선만 웃으며 태연했고, 다른 날 촉이 생각나느냐는 물음에 「여기가 즐거워 촉이 생각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고 적습니다. 그해 5등작을 세웠고 맏아들 사마염이 진의 세자가 되었습니다. 『진서』 무제기에 따르면 그는 형의 뒤를 이은 아들 사마유를 아껴 「이것은 경왕의 천하이다」라고 말하곤 했으나, 하증 등이 굳이 다투어 맏아들로 정해졌습니다.

함희 2년(265) 5월 천자의 면류관과 깃발을 받고 왕비를 왕후로, 세자를 태자로 높였습니다. 그해 8월 병들어 누웠다가 노침에서 죽으니 나이 쉰다섯이었고, 시호는 문왕이었습니다. 『진서』 가충전은 사마염이 뒷일을 묻자 「너를 아는 이는 가공려다」라고 했다고 적습니다. 12월 사마염이 위의 선양을 받아 진을 세운 뒤 그를 문황제로 추존하고 묘호를 태조라 했습니다. 『진서』는 「태조는 뛰어난 재주로 일을 이루었다」고 평하면서도, 찬에서 「역적을 쳤다고는 하나 끝내 임금을 죽인 이가 되었다」고 맺었습니다.

太祖無外,靈關靜氛。反雖討賊,終為弑君。
태조(사마소)는 온 천하를 품어 촉 땅 영관의 난리를 잠재웠으나, 역적을 쳤다고는 해도 끝내 임금을 죽인 이가 되었다『진서』 문제기 찬
司馬昭之心,路人所知也
사마소의 마음은 길 가는 사람도 다 안다『삼국지』 위서 삼소제기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94~95회 · 제102~104회 · 제106~119회

연의에서 사마소는 제94회에 사마의의 둘째 아들로 처음 나옵니다. 형 사마사와 함께 큰 뜻을 품고 병서에 밝았다고 소개되고, 조정에서 밀려난 아버지가 탄식하자 곧 부르러 올 것이라며 웃습니다. 제95회에서는 아버지의 명으로 가정을 살피고 돌아와 촉군이 길목에 영채 없이 모두 산 위에 있으니 깨뜨릴 수 있다고 알리고, 성문을 활짝 연 서성 앞에서는 제갈량이 군사가 없어 일부러 꾸민 것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제103회 상방곡에서는 아버지 · 형과 함께 불길에 갇혔다가 소나기 덕에 살아나고, 제106회에는 양평에서 공손연의 길을 막으며, 제107회 고평릉의 변에서는 조상의 집 앞에서 쏟아지는 화살 속에 아버지를 지키며 지나가 낙수의 부교를 지킵니다.

제108회에서 사마의가 죽자 연의의 사마소는 표기상장군이 되고, 대도독으로 세 갈래 군을 거느리고 동흥으로 나섰다가 눈 속에서 정봉의 짧은 칼에 선봉이 무너져 물러납니다. 제109회에서는 대도독으로 농서에 나가 강유와 싸우다 철롱산에 갇혀 물이 떨어지자, 산꼭대기의 샘에 절하며 빌어 물을 얻고 곽회와 진태의 계책으로 풀려납니다. 제110회에서 사마사는 아우에게 인수를 넘기고 눈알이 튀어나와 죽고, 사마소는 종회의 말대로 군을 이끌고 낙수 남쪽으로 돌아와 대장군 · 녹상서사가 됩니다.

제111~112회에서 사마소는 가충을 보내 제갈탄의 속을 떠보고, 제갈탄이 일어나자 가충의 권으로 태후와 천자를 모시고 26만으로 나서 수춘을 에웁니다. 옛 원수 문앙을 베려다 종회의 간언으로 살려 장수로 삼고, 성이 떨어진 뒤 끝내 항복하지 않는 제갈탄의 부하 수백을 모두 베고는 깊이 탄식합니다. 오의 항병을 묻어 죽이자는 말은 종회가 막고, 사마소는 그 말을 좇아 그들을 돌려보냅니다.

제114회는 조모의 죽음을 그립니다. 가충이 조모의 「잠룡시」를 일러바치자 사마소는 칼을 찬 채 전각에 올라 진공과 구석을 받아 내며, 시에서 자기들을 미꾸라지와 드렁허리로 보았느냐고 따집니다. 조모는 「사마소가 찬역을 품은 것은 모두가 안다」며 나섰다가 성제의 창에 죽고, 사마소는 놀란 척하며 웁니다. 진태가 가충을 베라고 하자 그다음을 묻고는, 「내 죄가 아니라 가충이 네 명을 전한 것」이라 외치는 성제의 혀를 먼저 자르고 삼족을 멸합니다. 가충 등이 선양을 받으라 권하자 은을 섬긴 주 문왕과 한에게서 선양을 받지 않은 조조를 들어 사양하고, 상도향공 조환을 세웁니다.

제115~116회에서 사마소는 종회에게 오를 치러 가겠느냐고 떠보다가 본뜻이 촉에 있음을 알아챈 종회를 진서장군으로 삼고, 촉을 칠 수 없다는 등돈을 벤 뒤 계책을 밝힙니다. 종회를 걱정하는 소제에게는 촉이 깨지면 종회가 딴마음을 품어도 도울 이가 없다고 일러 줍니다. 제118회에서는 등애의 글에 의심을 품고, 종회가 등애의 반역을 아뢰자 「이번 걸음은 등애가 아니라 종회 때문」이라며 조환과 함께 친히 나섭니다.

제119회에서 사마소는 낙양에 온 유선을 꾸짖은 뒤 안락공에 봉하고 황호를 능지처참합니다. 이튿날 잔치에서 촉의 음악에도 웃는 유선에게 촉이 생각나느냐고 묻고, 「여기가 즐거워 촉이 생각나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을 듣고는 그를 의심하지 않게 됩니다. 진왕이 된 뒤 사마유를 세자로 세우려다 산도 · 가충 · 하증 · 배수 · 왕상 · 순의의 간언으로 사마염을 세우고, 양무현에 거인이 나타났다는 상서로움을 듣고 속으로 기뻐하다가 중풍으로 말을 잃어 이튿날 손으로 사마염을 가리키고 죽습니다. 연의도 그날을 8월 신묘일로 적습니다. 연의에서 사마소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뒤에 아들 사마염이 제위에 올라 그를 문제로 높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38경초 2년 신성향후에 봉해졌습니다.
  2. 244정촉장군으로 하후현을 도와 촉을 치러 나갔다가 군을 돌리자고 권했습니다.
  3. 249고평릉의 변에서 무리를 이끌고 두 궁을 지켜 식읍 천 호를 더했습니다.사마씨 두 아들
  4. 249안서장군으로 관중의 여러 군을 지휘했고, 강유가 물러나자 촉의 구안이 항복했습니다.
  5. 251왕릉을 칠 때 회북의 군사를 감독해 항에서 모였습니다.
  6. 252동관에서 오와 싸우다 두 군이 크게 져 작위를 잃었습니다.
  7. 255형 사마사가 죽자 군을 이끌고 낙양으로 돌아와 대장군으로 정사를 도왔습니다.
  8. 257제갈탄이 회남에서 일어나자 천자와 태후를 받들고 나가 수춘을 에웠습니다.
  9. 258수춘을 떨어뜨려 제갈탄을 베고 오의 항병을 죽이지 않고 삼하로 옮겼습니다.
  10. 260황제 조모가 그를 치러 나섰다가 성제에게 죽자 성제에게 죄를 돌려 베고 그 가족을 정위에게 넘겼습니다.칼을 든 황제
  11. 263종회 · 등애 · 제갈서를 보내 촉을 치게 하고 상국 · 진공 · 구석을 받았습니다.
  12. 264종회의 반란에 대비해 천자를 받들고 장안으로 나아갔고, 종회는 제 장병들에게 죽었습니다.
  13. 264진왕에 올랐고 5등작을 세웠으며 맏아들 사마염을 세자로 두었습니다.
  14. 265병들어 쉰다섯에 죽었고, 12월 아들 사마염이 위의 선양을 받아 진을 세웠습니다.진이 서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사마의 · 어머니 장춘화 · 형 사마사 · 아우 사마간 · 아내 왕원희 · 아들 아홉(사마염 · 사마유 등) · 딸 경조공주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천하가 곧 우리 것이다.

말을 열며

내 마음은 길 가는 사람도 안다 하더군.

되받으며

굳이 감추지 않겠소. 들어 보시오.

말문이 막혀

…아직 때가 아닌가.

말문이 막혀

서두를 것 없소.

설전을 이기고

촉은 이미 내 것이오. 다음은 오요.

설전에 지고

…아직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구려.

이긴 뒤

천하의 셈이 하나 줄었다.

진 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군.

쓰러지며

…진의 자리는 염이 앉는다.

같은 기치 아래

사마의양호곽회사마사왕준손례진태위관왕기왕창가충두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