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중약(仲若) · 미상 ~ 258년 · 예주 초군 초현 · 조조 휘하
관구검과 함께 일어났다가 제갈탄의 손에 죽은 회남의 맹장
출전 · 『삼국지』 위서 관구검전 · 제갈탄전과 배송지 주의 『위서』 · 『위씨춘추』 · 『한진춘추』 · 『부자』 · 오서 삼사주전 · 『진서』 경제기
문흠은 자가 중약이며 초군 사람입니다. 『삼국지』에 제 전은 없고, 관구검전과 제갈탄전 본문의 몇 줄과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서』에 그의 일이 남아 있습니다. 『위서』에 따르면 아버지 문직은 건안 연간의 기장으로 용력이 있었고, 문흠은 젊어서 이름난 장수의 아들로 재주와 무용을 칭송받았습니다. 위풍의 반란에 말이 얽혀 옥에서 수백 대의 매를 맞고 죽게 되었으나 조조가 문직을 생각해 용서했습니다. 태화 연간 오영교독을 거쳐 아문장이 되었으나, 성품이 거칠고 예의가 없어 윗사람을 업신여기고 법을 따르지 않아 번번이 탄핵되었습니다.
뒤에 회남의 아문장을 거쳐 여강태수 · 응양장군이 되었는데, 왕릉이 그를 탐욕스럽고 잔인해 변방을 맡길 수 없다고 아뢰어 불려 돌아왔습니다. 조상은 같은 고을 사람이라 하여 그를 두텁게 대우하고 죄를 묻지 않은 채 여강으로 돌려보내며 관군장군을 더해 주었고, 문흠은 더욱 교만해져 용맹을 내세워 삼군에서 꽤 헛된 이름을 얻었습니다. 가평 원년(249) 조상이 죽은 뒤 조정은 그의 마음을 달래려 전장군으로 올렸고, 뒤에 제갈탄의 뒤를 이어 양주자사가 되었습니다. 관구검전은 그가 날래고 거칠어 싸움 공이 많았으나 노획을 부풀려 상을 바라다가 번번이 허락받지 못해 원망이 깊었다고 적습니다. 가평 5년(253)에는 관구검과 함께 제갈각이 에운 합비 신성을 막았습니다.
조상이 죽은 뒤 문흠은 늘 속으로 두려워했고 제갈탄과는 서로 미워했는데, 관구검이 그를 두텁게 대우하자 마음을 다해 따랐습니다. 정원 2년(255) 정월 둘은 태후의 조서를 꾸며 사마사의 죄를 알리고 수춘에서 군사를 일으켰고, 문흠은 항 밖에서 유격을 맡았습니다. 낙가에서 등애를 치러 밤에 나섰을 때, 『위씨춘추』에 따르면 아직 어린 아들 문앙이 적이 자리 잡기 전에 치자며 두 갈래로 협공했는데, 문앙이 장사들을 이끌고 먼저 이르러 크게 외치자 군중이 흔들렸으나 문흠은 때를 맞추지 못했습니다. 『진서』 경제기는 혹을 짼 지 얼마 안 된 사마사가 문앙이 쳐들어오자 놀라 눈알이 튀어나왔다고 적습니다. 날이 밝자 대군을 보고 물러난 문흠은 날랜 기병에게 크게 깨졌고, 밤낮으로 샛길을 달려 오로 들어갔습니다.
오는 그를 도호 · 가절 · 진북대장군 · 유주목 · 초후로 삼았습니다. 『위서』에 따르면 손준은 그를 두텁게 대우했으나, 문흠은 남의 나라에서도 몸을 굽히지 못해 여거 · 주이 등 여러 대장이 모두 그를 미워했고 손준만이 그를 감쌌습니다. 오서 삼사주전은 태평 원년(256) 손준이 문흠의 계책으로 위를 치려 하여 문흠과 여거 등을 강도에서 회수와 사수로 보냈다고 적습니다. 감로 2년(257) 제갈탄이 수춘에서 일어나자 오는 전역 · 전단 · 당자 등 3만과 함께 문흠을 보냈고, 문흠은 에움이 닫히기 전 당자 등과 성의 동북쪽 험한 길로 뛰어들었습니다.
성안에서 문흠은 여러 번 에움을 치고 나왔으나 쫓겨 들어왔고, 『한진춘추』에 따르면 장반 · 초이가 한쪽을 뚫고 나가자고 하자 오의 구원이 반드시 온다며 노했습니다. 감로 3년(258) 정월 남쪽 에움을 치다 실패하고 먹을 것이 바닥나자, 그는 북방 사람을 다 내보내 먹을 것을 아끼고 오의 군사와 지키자고 했으나 제갈탄이 듣지 않았습니다. 본디 사이가 나빴던 둘은 꾀로만 합쳤던 터라 일이 급해질수록 서로 의심했고, 문흠은 일을 의논하러 갔다가 제갈탄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들 문앙과 문호는 성을 넘어 사마소에게 항복해 장군이 되었고, 성이 떨어진 뒤 사마소는 그들에게 문흠의 주검을 거두어 옛 무덤에 묻게 했습니다. 『부자』는 「문흠은 날마다 제사를 지내 하늘을 섬겼으나 남의 손에 베였다」고 적습니다.
驍果粗猛,數有戰功,好增虜獲,以徼寵賞文欽日祠祭事天,斬於人手『삼국연의』 제109~112회
제109회 끝에서 양주자사 문흠은 관구검과 함께 폐주를 명분으로 일어났다는 급보로 처음 이름이 나옵니다. 제110회에서 연의는 그를 조상의 문하객이라 소개하고, 관구검이 눈물로 뜻을 밝히자 목숨을 걸고 돕겠다며 「가운데 아들 문숙은 어릴 적 이름이 아앙인데 만 명도 당하지 못할 용맹이 있다」고 선봉으로 내세웁니다. 둘은 태후의 밀조를 꾸며 맹세하고, 문흠은 2만으로 밖에서 유격을 맡습니다.
문흠은 문앙과 5천으로 낙가성을 지키겠다고 나서고, 문앙의 말대로 각각 2,500을 거느리고 남북 두 갈래로 사마사의 진영을 치기로 하지만, 산길에서 골짜기로 잘못 들어 밤새 헤매다 날이 밝아서야 나와 싸우지도 않고 물러납니다. 그사이 문앙은 홀로 진영을 휘저어 사마사의 눈알이 튀어나오게 하고, 쫓아오는 위의 장수들을 홀로 몇 번이고 물리칩니다. 뒤쫓아 온 윤대목이 「며칠만 참지 못하오」 하고 넌지시 일렀으나 문흠은 알아듣지 못하고 꾸짖으며 활을 당기고, 수춘은 이미 제갈탄에게 떨어지고 항성에는 세 갈래 군이 이르자 오의 손준에게 갑니다.
제111회에서 오는 제갈탄을 구하러 나서며 문흠을 길잡이로 삼고, 회 끝에서 문흠은 문앙 · 문호와 함께 제갈탄을 따라 사마소를 맞으러 나섭니다. 제112회에서 그는 오른쪽을 맡아 싸우다 크게 지고, 뒤에 전역 · 전단 등과 함께 남문으로 수춘에 들어갑니다. 식량이 다하자 작은 성에서 두 아들과 지키던 그는 제갈탄에게 북방 군사를 다 내보내 먹을 것을 아끼자고 했다가 「나를 해치려 하느냐」는 노여움을 사서 베이고, 문앙 · 문호는 수십 명을 죽이고 성을 뛰어넘어 항복합니다. 연의에서 문흠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문직 · 아들 문앙(이름 문숙) · 문호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양주의 문흠이 왔소.
두 번 일어난 사람이오. 말로도 물러서지 않소.
내 아들이 사마사의 눈을 튀어나오게 했소.
…수춘에서 두 번이나 성을 지켰소.
같은 편에게 죽을 줄은 몰랐소.
창을 든 손이 말도 잡을 줄 아오.
이번에도 안에서 갈렸구려.
아들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소.
군사보다 사람이 먼저 갈렸소.
같은 편의 칼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