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황徐晃

자 공명(公明) · 미상 ~ 227년 · 사례 하동군 양현 · 조조 휘하

서황 초상

관우의 거센 포위망을 박살 내어 조위의 붕괴를 막아낸 오자양장

능력치

통솔88무력90지력74정치48매력73

카드

공격력 6체력 6비용 4값어치 14직군 맹장
장구지계 호령
적 하나의 방벽을 걷고 친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서황전 · 무제기와 배송지 주의 『위서』 · 순유전 · 조인전 · 조진전 · 조엄전 · 동소전 · 삼소제기 · 촉서 관우전과 배송지 주의 『촉기』 · 유봉전

서황은 자가 공명이며 하동군 양현 사람입니다. 군의 아전으로 있다가 거기장군 양봉을 따라 도적을 쳐 공을 세우고 기도위가 되었습니다. 이각 · 곽사가 장안을 어지럽히자 서황은 양봉에게 천자를 모시고 낙양으로 돌아가라고 권해 양봉이 그 계책을 따랐고, 천자가 황하를 건너 안읍에 이르자 도정후에 봉해졌습니다. 낙양에서 한섬과 동승이 날마다 다투자 서황은 양봉에게 조조에게 가라고 권했는데, 양봉은 따르려다 뉘우쳤습니다. 건안 원년(196) 조조가 양에서 양봉을 치자 서황은 드디어 조조에게 갔습니다.

조조는 그에게 군사를 주어 권 · 원무의 도적을 깨뜨리게 하고 비장군으로 삼았습니다. 여포를 칠 때는 따로 여포의 장수 조서 · 이추 등을 항복시켰고, 건안 5년(200) 백마에서 안량을, 연진에서 문추를 깨뜨리는 데 따라가 편장군이 되었습니다. 관도에서 조조의 군량이 다해 가자 순유는 원소의 수송을 맡은 장수 한맹이 날래나 적을 가벼이 여기니 칠 만하다며 서황을 천거했고, 서황은 사환과 함께 고시에서 원소의 수송 수레를 쳐 불태워 공이 가장 많았습니다. 무제기는 그때 불태운 수레가 수천 대였다고 적습니다.

건안 9년(204) 조조가 업을 에워쌌을 때 역양령 한범이 거짓으로 항복했다가 성을 지키자, 서황은 성안으로 화살에 글을 매어 쏘아 이기고 지는 이치를 일러 항복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두 원씨가 아직 깨지지 않아 떨어지지 않은 성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오늘 역양을 없애면 내일은 모두 죽기로 지킬 것」이라며 역양의 항복을 받아 여러 성에 보이라고 권했고, 조조가 옳게 여겼습니다. 건안 12년(207) 답돈을 칠 때 따라가 횡야장군이 되었고, 형주를 칠 때는 번에 머물며 그 둘레의 도적을 쳤고 조인과 함께 강릉에서 주유와 싸웠습니다.

건안 16년(211) 한수 · 마초가 관중 서쪽에서 일어났을 때, 조조가 동관에 이르러 황하를 건너지 못할까 걱정하며 묻자 서황은 「적이 따로 포판을 지키지 않으니 꾀가 없음을 알 만합니다. 정병을 주시면 포판진을 건너 먼저 진을 치고 그 뒤를 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조조가 보병과 기병 4천을 주어 건너게 하자, 해자와 목책을 다 두르기도 전에 양흥이 밤에 5천여 명으로 쳐 왔으나 서황이 물리쳐 조조의 군이 건널 수 있었습니다. 마초 등을 깨뜨린 뒤 하후연과 함께 저를 평정했고, 이듬해 부 · 하양의 남은 도적을 쳐 양흥을 베었습니다. 건안 20년(215) 장로를 칠 때는 산의 저를 쳐 항복시키고 평구장군이 되었습니다. 그 뒤 하후연과 함께 양평에 남아 유비를 막았는데, 유비가 진식 등 열여 영을 보내 마명각의 잔도를 끊으려 하자 서황이 따로 나가 깨뜨렸고, 조조는 「이 잔도는 한중의 목구멍 같은 요충이니 장군이 적의 꾀를 단번에 꺾은 것은 잘한 일 가운데서도 잘한 일」이라며 그에게 부절을 빌려 주었습니다.

건안 24년(219) 한수가 크게 불어 우금 등이 물에 잠기고 관우가 번에서 조인을 에워싸자, 조조는 서황을 보내 조인을 구하게 했습니다. 서황의 군사는 새로 뽑은 병졸이 많아 관우와 맞서기 어려웠으므로 양릉파에 머물렀다가, 뒤따라온 군사를 더해 나아갔습니다. 관우의 군이 언성에 머물자 서황은 긴 해자를 파 그 뒤를 끊으려는 듯 보여 언성을 얻었고, 양쪽으로 진영을 이으며 조금씩 나아갔습니다. 관우의 군은 위두와 사총에 따로 둔영을 두었는데, 서황은 위두를 치겠다고 소리를 내고 몰래 사총을 쳤습니다. 사총이 무너지려 하자 관우가 몸소 보병과 기병 5천을 이끌고 나왔으나 서황이 물리쳤고, 달아나는 적을 쫓아 함께 에움 안으로 들어가 깨뜨렸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촉기』는 서로 아끼던 두 사람이 멀리서 지난 이야기만 나누다가, 서황이 말에서 내려 「관운장의 머리를 얻는 자에게 금 천 근을 준다」고 명하자 관우가 놀라 「대형, 이게 무슨 말이오」 하고 물었고, 서황이 「이것은 나라의 일일 뿐」이라 답했다고 전합니다.

조조는 「적의 에움과 해자와 녹각이 열 겹인데 장군이 싸워 온전히 이겼다. 내가 군사를 부린 지 서른 해 남짓이나, 옛날 군사를 잘 부린 이 가운데도 적의 에움 속으로 곧장 몰아 들어간 이는 없었다」며 그 공이 손무 · 사마양저를 넘는다고 했습니다. 서황이 마피로 돌아오자 조조는 7리 밖까지 나가 맞이하고 술자리를 벌였으며, 여러 진영을 돌아볼 때 다른 군사들은 진을 떠나 구경했으나 서황의 진영만은 가지런해 장수와 군사가 움직이지 않자 「서 장군은 주아부의 풍모가 있다고 할 만하다」고 감탄했습니다.

건안 25년(220) 조비가 위왕이 되자 서황은 우장군이 되었고, 황제가 되자 양후에 봉해졌습니다. 하후상과 함께 상용에서 유봉을 깨뜨린 뒤 양평을 지키며 양평후로 옮겨 봉해졌고, 명제가 즉위하자 양양에서 오의 제갈근을 막았습니다. 서황은 검소하고 조심스러워, 늘 척후를 멀리 두고 먼저 적이 이길 수 없는 형세를 갖춘 뒤에 싸웠으며 달아나는 적을 쫓을 때는 군사들이 밥 먹을 틈도 없었습니다. 그는 「옛사람은 밝은 임금을 만나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나는 다행히 만났으니, 공으로 보답할 뿐 사사로운 명예를 어디에 쓰겠는가」라며 끝내 널리 사귀지 않았습니다.

병이 깊어지자 평소의 옷으로 염하라는 유언을 남겼고, 태화 원년(227)에 죽으니 시호는 장후입니다. 아들 서개와 손자 서패가 차례로 뒤를 이었고, 정시 4년(243) 그는 조조의 사당 뜰에 함께 모셔졌습니다. 진수는 조조의 무공을 이룬 그 시대의 좋은 장수로 장료 · 악진 · 우금 · 장합 · 서황 다섯을 으뜸으로 꼽고, 장료 · 서황의 일은 기록이 자세히 갖추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太祖建茲武功,而時之良將,五子爲先
조조가 무공을 이룰 때 그 시대의 좋은 장수로는 이 다섯이 으뜸이었다『삼국지』 위서 장료악진우금장합서황전 평
徐將軍可謂有周亞夫之風矣
서 장군은 주아부의 풍모가 있다고 할 만하다『삼국지』 위서 서황전에 실린 조조의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3~94회

연의에서 서황은 제13회에 양봉의 장수로 처음 나옵니다. 큰 도끼를 들고 나가 곽사의 장수 최용을 베고, 양봉은 그를 하동 양군 사람 서황이라고 천자에게 소개합니다. 제14회에서는 조조가 천자를 모셔 가자 양봉 · 한섬과 함께 길을 막고 나서 허저와 쉰 합 넘게 싸워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그 날램을 아낀 조조가 보낸 옛 벗 만총이 밤에 찾아와 밝은 주인을 고르라고 달래자 조조에게 넘어갑니다. 이때 만총이 양봉 · 한섬을 죽여 선물로 삼으라고 하자 「신하로서 주인을 죽이는 것은 큰 불의」라며 물리칩니다.

그 뒤 서황은 조조의 장수로 거의 모든 싸움에 나옵니다. 제19회 하비에서 진궁을 사로잡고, 제25회에는 백마에서 안량에게 스무 합 만에 지며, 제27회는 조조의 장수 가운데 장료 말고는 서황만이 관우와 사이가 두터웠다고 적습니다. 제30회 관도에서는 순유의 천거로 사환과 함께 원소의 장수 한맹의 군량 수레를 불태우고, 제32회에서 원담의 장수 왕소를 베고 업에서 심배를 사로잡습니다. 제56회 동작대의 활쏘기에서는 버들가지를 쏘아 끊어 비단 전포를 차지했다가 허저와 뒤엉켜 다투고, 제58회 동관에서는 마초의 도발에 나가려는 조홍을 말리며, 포판진을 몰래 건너 적의 뒤를 끊자는 꾀를 내어 주령과 함께 하서로 건너갑니다. 제71~72회 한수에서는 한신을 본떠 물을 등지고 진을 쳤다가 황충 · 조운에게 크게 지고, 말리던 부선봉 왕평을 죽이려다 그가 진영에 불을 놓고 조운에게 넘어가게 합니다.

제75~76회에서 서황은 번성을 구하겠다고 나서 양릉파에 머물다가, 부장 서상 · 여건을 제 깃발 아래 언성으로 보내고 스스로 그 뒤를 쳐 언성과 둔영들을 빼앗습니다. 몸소 나온 관우에게 지난날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고 인사하고는, 돌아서서 「운장의 머리를 얻는 자에게 천금을 상으로 주겠다」고 외치고, 놀란 관우에게 「오늘은 나라의 일이라 사사로운 정으로 공을 저버릴 수 없다」며 큰 도끼로 여든 합 넘게 싸웁니다. 조조는 대오를 지켜 돌아오는 그의 군을 보고 「서 장군은 참으로 주아부의 풍모가 있다」며 평남장군으로 삼습니다. 제79회에서는 하후상과 함께 상용의 유봉을 깨뜨리고, 제94회에서 사마의의 앞장이 되어 신성의 맹달을 치러 갔다가 해자 가에서 항복하라고 외치던 중 맹달이 쏜 화살에 이마를 맞고 그날 밤 쉰아홉의 나이로 죽습니다. 연의에서 서황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95이각 · 곽사가 장안을 어지럽히자 양봉에게 천자를 모시고 낙양으로 돌아가라고 권했습니다.
  2. 196조조가 양봉을 치자 조조에게 가서 권 · 원무의 도적을 깨뜨리고 비장군이 되었습니다.
  3. 198여포를 칠 때 따로 여포의 장수 조서 · 이추 등을 항복시켰습니다.
  4. 200백마와 연진에서 안량 · 문추를 깨뜨리는 데 따라가 편장군이 되었습니다.
  5. 200관도에서 사환과 함께 원소의 군량 수레를 쳐 불태워 공이 가장 많았습니다.
  6. 204역양령 한범의 항복을 받고, 항복한 성을 살려 두어야 여러 성이 따른다고 조조에게 권했습니다.
  7. 207답돈을 치는 데 따라가 횡야장군이 되었습니다.
  8. 208형주를 칠 때 번에 머물렀고, 조인과 함께 강릉에서 주유와 싸웠습니다.
  9. 211동관에서 포판진을 먼저 건너자고 하고, 4천으로 건너 양흥의 밤 습격을 물리쳤습니다.
  10. 212하후연과 함께 부 · 하양의 남은 도적을 쳐 양흥을 베었습니다.
  11. 215장로를 칠 때 산의 저를 항복시키고 평구장군이 되었습니다.
  12. 218양평에서 마명각의 잔도를 끊으려던 유비의 장수 진식 등을 깨뜨렸습니다.
  13. 219번을 구하러 가서 위두를 치는 척하고 사총을 쳐 관우의 에움을 깨뜨렸습니다.
  14. 219마피에서 조조가 7리 밖까지 나와 맞이하고 주아부의 풍모가 있다고 칭찬했습니다.
  15. 220조비가 위왕이 되자 우장군이 되었고, 하후상과 함께 상용의 유봉을 깨뜨렸습니다.
  16. 226명제가 즉위하자 양양에서 오의 제갈근을 막았습니다.
  17. 227평소의 옷으로 염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으니 시호는 장후입니다.
  18. 243정시 4년, 조조의 사당 뜰에 함께 모셔졌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들 서개(뒤를 이음) · 손자 서패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포위는 내가 깬다.

말을 열며

서공명이오. 군령대로 하겠소.

되받으며

군진이 흐트러지지 않으면 그만이오.

말문이 막혀

…대오가 흔들리는군.

말문이 막혀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소.

설전을 이기고

승상께서 주아부의 풍모라 하셨소.

설전에 지고

…군령을 다하지 못했구려.

이긴 뒤

포위를 깨는 것이 내 일이오.

진 뒤

…이번 진은 두꺼웠소.

쓰러지며

…번성의 길을 열었으면 됐다.

같은 기치 아래

조조하후연하후돈학소허저조인전위문앙우금악진조진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