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백녕(伯寧) · 미상 ~ 242년 · 연주 산양군 창읍현 · 조조 휘하
조홍의 협박에도 법을 집행하고 합비를 지켜낸 위나라의 철벽 노장
출전 · 『삼국지』 위서 만총전과 배송지 주의 『세어』 · 배송지의 말 · 명제기 · 삼소제기 · 서황전 · 전예전
만총은 자가 백녕이며 산양군 창읍현 사람입니다. 열여덟 살에 군의 독우가 되어, 저마다 사병을 거느리고 백성을 해치던 이삭 등을 다스리니 그들이 죄를 빌고 다시 노략하지 않았습니다. 고평현령의 일을 맡았을 때는 군의 독우 장포가 재물을 탐해 고을의 다스림을 어지럽히자, 그가 역참에 묵는 틈에 잡아 죄를 따지고 그날로 끝까지 다스린 뒤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습니다.
조조가 연주에 오자 그를 불러 종사로 삼았고, 뒤에 허현의 현령으로 삼았습니다. 종실의 귀한 친척인 조홍의 빈객이 여러 번 법을 어기자 만총이 잡아 다스렸고, 조홍이 글을 보내도 듣지 않았습니다. 조홍이 조조에게 아뢰어 조조가 허현의 담당자를 부르자, 만총은 풀어 주려는 뜻임을 알고 서둘러 그를 죽였습니다. 조조는 「일을 맡은 자는 이래야 하지 않겠는가」 하며 기뻐했습니다. 옛 태위 양표가 현의 옥에 갇히자 순욱과 공융이 고문하지 말라고 부탁했으나 만총은 대답 없이 법대로 고문했고, 며칠 뒤 조조에게 양표에게서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으며 이름이 온 나라에 난 사람이니 죄가 밝지 않으면 백성의 신망을 잃는다고 아뢰어 조조가 그날로 양표를 풀어 주었습니다. 처음에 노했던 순욱과 공융은 이 일로 그를 더 좋게 여겼습니다. 배송지는 이를 두고 「이를 능하다 여긴 것은 혹독한 관리의 마음일 뿐이니, 뒤에 잘했다 해서 앞의 모짊이 풀리겠는가」라고 꾸짖었습니다.
원소가 하북에서 강성할 때 원소의 본고장인 여남에서 그 문생과 빈객이 군사를 끼고 버티자, 조조는 만총을 여남태수로 삼았습니다. 그는 따르는 이 5백 명을 모아 이십여 개의 보루를 떨어뜨리고, 항복하지 않은 우두머리들을 꾀어 자리에서 십여 명을 베어 한꺼번에 평정했습니다. 건안 13년(208) 조조를 따라 형주를 쳤고 대군이 돌아갈 때 분위장군의 일을 맡아 당양에 남았으며, 서황전은 서황이 그와 함께 한진에서 관우를 쳤다고 적습니다. 손권이 동쪽을 자주 어지럽히자 다시 여남태수가 되어 관내후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건안 24년(219) 관우가 양양을 에워싸자 만총은 정남장군 조인을 도와 번성에 주둔했는데, 우금 등의 군이 장마로 불어난 물에 잠겨 관우에게 넘어갔습니다. 번성도 물에 잠겨 곳곳이 무너지자 어떤 이가 조인에게 가벼운 배로 밤에 달아나면 성은 잃어도 몸은 온전할 것이라 했습니다. 만총은 「산의 물은 빨라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관우가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우리 군이 그 뒤를 칠까 두려워서입니다. 지금 달아나면 황하 남쪽은 다시 나라의 땅이 아닐 것이니 기다리셔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조인이 옳다 하자 만총은 흰 말을 물에 가라앉혀 군사들과 맹세했고, 서황 등의 구원군이 이르자 힘써 싸워 공을 세웠으며 관우는 물러났습니다. 그는 안창정후로 올랐습니다.
조비가 위왕이 되자(220) 양무장군이 되었고, 강릉에서 오를 깨뜨린 공으로 복파장군이 되었습니다. 대군이 남쪽을 칠 때 정호에서 앞장서 적과 물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는데, 오늘 밤은 바람이 세니 적이 반드시 불을 지르러 올 것이라며 대비하게 했고, 밤중에 과연 적이 숨어 오자 덮쳐 깨뜨려 남향후가 되었습니다. 황초 5년(224) 전장군이 되었고, 명제가 즉위하자 창읍후로 올랐으며 태화 2년(228) 예주자사를 겸했습니다.
조휴가 여강에서 남쪽으로 들어갈 때 만총은 조휴가 군사를 써 본 일이 드물고 그 길은 호수를 등지고 강을 끼어 나아가기는 쉬워도 물러나기는 어렵다고 아뢰었으나, 답이 오기 전에 깊이 들어간 조휴는 과연 돌아올 길을 끊겨 지고 물러났습니다. 조휴가 죽자 만총이 도독양주제군사를 대신 맡았는데, 여남의 군사와 백성이 그를 그리워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길을 따라나서 막을 수 없었습니다. 태화 4년(230) 정동장군이 되었고, 그해 겨울 합비로 오겠다던 손권이 물러가자 거짓으로 물러나 우리 군사를 파하게 하려는 것이라며 군사를 파하지 않았는데, 열흘 남짓 뒤 손권은 과연 다시 왔다가 돌아갔습니다. 이듬해 오의 장수 손포가 항복하겠다며 군사를 보내 맞아 달라고 하자 만총은 거짓이라 보고 군사를 주지 않았으나, 양주자사 왕릉이 따로 보낸 보기병 7백은 손포의 밤 습격에 절반 넘게 죽고 다쳤습니다. 왕릉의 무리가 그를 늙고 어지럽다고 헐뜯어 명제가 불렀으나, 와서 보니 기운이 굳세어 돌려보냈습니다. 『세어』는 명제 앞에서 그가 술을 한 섬이나 마시고도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청룡 원년(233) 만총은 합비성이 강과 호수에 닿아 적이 물에 기대어 버틸 수 있으니, 서쪽 30리의 험한 곳에 새로 성을 쌓아 적을 물에서 끌어내자고 아뢰었습니다. 장제가 약함을 보이는 것이라며 반대했으나, 만총은 군사는 속이는 길이라는 손자의 말을 들어 거듭 아뢰어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해 손권은 새 성이 물에서 멀어 스무 날 동안 배에서 내리지 못했는데, 만총은 그가 반드시 뭍에 올라 군세를 뽐내리라 보고 보기병 6천을 숨겨 두었다가 수백의 목을 베었습니다. 이듬해(234) 손권이 몸소 10만을 일컬으며 합비 신성에 이르자, 만총은 장사 수십 명을 모아 소나무 횃불에 삼씨 기름을 부어 바람 위에서 불을 놓아 공성 기구를 태웠고 손권의 조카 손태를 쏘아 죽여 적을 물러가게 했습니다. 명제기는 이해 만총이 신성의 군사를 빼서 적을 수춘으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명제가 듣지 않았고 장군 장영 등이 신성을 지켜 힘써 싸웠다고 적어 결이 다릅니다.
경초 2년(238) 늙었다 하여 불려 돌아와 태위가 되었는데, 삼소제기는 그가 태위가 된 것을 경초 3년(239) 3월로 적습니다. 그는 살림을 돌보지 않아 집에 남은 재물이 없었으므로, 조서는 밭 10경과 곡식 5백 곡, 돈 20만을 내려 그 맑고 검소한 절개를 밝혔습니다. 정시 3년(242) 죽어 시호를 경후라 했고, 아들 만위가 이어 위위에 이르렀습니다. 진수는 「만총은 뜻을 세움이 굳세고, 용감하면서도 꾀가 있었다」고 평했습니다.
滿寵立志剛毅,勇而有謀今若遁去,洪河以南,非復國家有也;君宜待之『삼국연의』 제10회 · 제14회 · 제20~21회 · 제23회 · 제31~32회 · 제73~74회 · 제96회 · 제98회 · 제103회
연의에서 만총은 제10회에 처음 나옵니다. 연주에서 인재를 모으던 조조에게 유엽이 산양 창읍 사람 만총과 무성 사람 여건을 천거하고, 조조는 둘을 군중종사로 삼습니다. 제14회에서 조조가 서황의 무예를 아끼자 행군종사 만총이 서황과 한 번 만난 일이 있다며 졸병으로 꾸며 밤에 그 진영에 들어가 「좋은 새는 나무를 골라 깃든다」며 달랩니다. 양봉과 한섬을 죽여 선물로 삼으라는 말을 서황이 의롭지 않다며 물리치자 「참된 의사」라 하고 그를 데려오며, 허도로 옮긴 뒤 허도령이 됩니다.
제20회에서 조조는 양표를 옥에 가두고 만총에게 다스리게 하고, 제23회에서 예형은 「만총은 술과 지게미나 먹일 만하다」고 비웃습니다. 제31회에서는 하후돈과 함께 여남을 지켜 유표를 막습니다. 제73회에서 조조의 사신으로 손권에게 가서 형주를 함께 치자고 하고, 이어 번성에 가서 조인의 참모가 됩니다. 관우를 가볍게 보지 말고 지키자는 말을 조인이 듣지 않아 양양을 잃고, 제74회에서 성이 물에 잠기자 배를 타고 달아나려는 조인을 「산의 물은 열흘이 안 되어 빠질 것」이라며 말려, 조인은 흰 말을 타고 성에 올라 성을 버리자는 자는 베겠다고 맹세합니다.
제96회에서는 전장군으로 가규를 따라 조휴를 도우러 나서고, 제103회에서 조예와 함께 합비를 구하러 가서 소호 어귀에 늘어선 오군의 수채를 밤에 덮쳐 배와 군량을 불사르니 오군이 공 없이 물러납니다. 연의에서 만총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만위 · 손자 만장무 · 만분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성은 이미 옮겨 두었다.
법에는 예외가 없소. 알아 두시오.
사사로운 말은 접어 두시오.
…원칙만으로는 안 되는가.
성을 옮겨야 할지도 모르겠군.
법을 세운 자리가 끝내 남는 법이오.
…고집이 지나쳤는가.
성벽은 옮겨서라도 지킨다.
…성을 한 번 더 물려야겠군.
합비의 성벽은 내가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