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문박(文博) · 미상 ~ 미상 (228년 이후) · 기주 청하국 수현 · 조조 휘하
이름이 서황에 버금갔으나 조조에게 군사를 빼앗긴 장수
출전 · 『삼국지』 위서 서황전에 붙은 주령의 일과 배송지 주의 『구주춘추』 · 『위서』 · 우금전 · 무제기 · 하후연전 · 조엄전 · 만총전 · 명제기 · 삼소제기 · 촉서 선주전
주령은 자가 문박이며 청하 사람입니다. 『삼국지』에 제 전은 없고, 그의 일은 서황전 끝에 붙은 몇 줄과 배송지가 그 아래 끌어온 『구주춘추』 · 『위서』, 그리고 우금전 · 무제기 · 하후연전 등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는 처음 원소의 장수였습니다. 『구주춘추』에 따르면 청하의 계옹이 수현을 들어 원소를 배반하고 공손찬에게 붙자 원소가 주령을 보내 치게 했는데, 주령의 집안이 그 성 안에 있었습니다. 공손찬 쪽이 그의 어머니와 아우를 성 위에 세워 불러 꾀자, 주령은 성을 바라보며 울면서 「대장부가 한번 몸을 남에게 맡겼으면 어찌 다시 집을 돌아보겠는가」 하고 힘껏 싸워 성을 떨어뜨리고 계옹을 사로잡았으나, 그의 집안은 모두 죽었습니다.
조조가 서주의 도겸을 칠 때 원소는 주령에게 세 영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돕게 했고, 주령은 싸움에서 공을 세웠습니다. 원소가 보낸 장수들이 저마다 돌아갈 때 주령은 「내가 사람을 많이 보았으나 조공만 한 이가 없으니 이야말로 참된 밝은 주인이다. 이제 만났는데 또 어디로 가겠는가」 하며 남았고, 그가 거느린 군사들도 그를 사모해 모두 함께 남았습니다. 건안 4년(199) 원술이 하비를 거쳐 북으로 가려 하자 조조는 유비와 주령을 보내 막게 했으나, 닿기 전에 원술이 병으로 죽었습니다.
『위서』는 기주를 평정한 조조가 주령에게 새로 뽑은 병사 5천과 기병 1천을 주어 허의 남쪽을 지키게 하면서, 기주의 새 병사는 오래 느슨하게 지내 불만을 품기 쉬우니 엄하다는 이름이 있는 그가 도리로 너그럽게 이끌라고 일렀다고 적습니다. 양적에 이르자 과연 중랑장 정앙 등이 반란을 일으켰고, 주령은 곧 정앙을 베고 그 일을 알렸습니다. 조조는 손수 쓴 글에서 옛날 등우도 광무제의 군사를 나누어 가다 난을 겪었지만 그 이름이 줄지 않았다며, 허물을 많이 끌어대는 주령을 달랬습니다.
그 뒤 주령은 조조를 따라 여러 싸움에 나섰습니다. 조조가 형주를 칠 때 조엄이 감독한 일곱 군 가운데 하나를 거느렸고, 건안 16년(211) 마초와 싸울 때는 서황과 함께 밤에 포판진을 건너 하서에 진을 쳤으며, 하후연 밑에서 유미 · 견의 저를 평정하고 장안에 머물며 남산의 도적 유웅을 깨뜨렸습니다. 건안 20년(215) 조조가 장로를 치러 갈 때는 장합과 함께 먼저 나가 길을 막은 저를 깨뜨렸습니다. 서황전은 그가 뒤에 좋은 장수가 되어 이름이 서황 등에 버금갔다고 적습니다.
그러나 우금전은 조조가 늘 주령을 못마땅히 여겨 그의 진영을 빼앗으려 했다고 적습니다. 조조는 위엄 있는 우금에게 기병 수십을 딸려 명령서를 들고 곧장 주령의 진영에 들어가 그 군사를 빼앗게 했는데, 주령과 그 무리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고 주령은 우금 밑의 부하독이 되었습니다. 조조가 그를 못마땅히 여긴 까닭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조비가 황제가 되자 주령을 수후에 봉하고 봉읍을 늘렸습니다. 조서에서 조비는 그가 선제를 도와 여러 해 군사를 맡았으니 위엄은 방숙 · 소호를 넘고 공은 강후 · 관영을 넘는다고 기리며,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습니다. 주령이 「고당은 오래 바라던 곳」이라고 하자 조비는 그를 고당후로 고쳐 봉했고, 그는 후장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태화 2년(228) 조휴가 석정에서 오군에게 졌을 때, 만총전은 주령 등이 뒤에서 와서 길을 끊다 오군과 마주치니 오군이 놀라 달아나 조휴의 군이 돌아올 수 있었다고 적습니다. 그 뒤 죽어 시호를 위후라 했으나 죽은 해는 사서에 없고, 정시 4년(243) 후장군 주령은 조조의 사당 뜰에 함께 모셔졌습니다. 진수가 그에게 따로 남긴 평은 없습니다.
靈觀人多矣,無若曹公者,此乃眞明主也。今已遇,復何之?丈夫一出身與人,豈復顧家耶『삼국연의』 제21회 · 제58~59회
연의에서 주령은 제21회에 처음 나옵니다. 원술이 제호를 원소에게 넘기고 옥새를 가지고 북으로 가려 하자 유비가 서주에서 막겠다고 청하고, 조조는 유비에게 5만을 맡기며 주령 · 노소 두 사람을 딸려 보냅니다. 정욱 · 곽가가 유비를 보낸 것을 걱정하자 조조는 주령 · 노소가 곁에 있으니 유비가 마음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 여깁니다. 주령과 노소는 유비와 함께 원술의 군을 맞아 왼쪽 진을 맡습니다. 원술이 죽자 유비는 조정에 표를 올리고 주령 · 노소만 허도로 돌려보낸 채 군마는 서주에 남겨 둡니다. 두 사람이 돌아와 이를 알리자 조조는 노하여 베려 하지만, 순욱이 병권이 유비에게 있었으니 두 사람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해 용서받습니다.
제58회 동관에서는 서황이 포판진을 몰래 건너 적의 뒤를 끊자는 꾀를 내자, 조조가 서황에게 정병 4천을 주어 주령과 함께 하서로 가서 숨어 있게 합니다. 제59회에서 조조는 두 사람을 하서에 진 치게 해 마초를 앞뒤로 쳤고, 적이 동관 앞만 지키는 사이 서황 · 주령이 건널 수 있었다고 풀이합니다. 연의에서 주령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어머니와 아우(수현의 싸움에서 집안이 모두 죽음)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공은 세우고 보겠소.
미움받아도 소임은 다하는 법이오.
공으로 말하겠소. 사사로움은 접으시오.
…또 공이 묻히는가.
묵묵히 갈 뿐이오.
서황에 못지않다 했소.
공을 세워도 알아주는 이가 없구려.
공은 세웠소이다.
…미움받는 데는 익숙하오.
미움받아도 공은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