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중모(仲謀) · 182년 ~ 252년 · 양주 오군 부춘현 · 손견 휘하
적벽과 이릉을 승리로 이끈 오나라의 초대 황제
출전 · 『삼국지』 오서 오주전과 배송지 주의 『강표전』 · 『오력』 · 손성의 말 · 오서 손책전 · 장소전 · 주유전 · 노숙전 · 감녕전 · 능통전 · 육손전 · 오주오자전 · 위서 장료전 · 촉서 선주전 · 등지전
손권은 자가 중모이며 오군 부춘 사람 손견의 둘째 아들입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강표전』은 손견이 하비승으로 있을 때 그가 태어났는데, 턱이 모나고 입이 크며 눈에 광채가 있어 손견이 귀하게 될 상이라 여겼다고 적습니다. 형 손책이 강동에서 일어나자 늘 따라다녔고, 성품이 넓고 밝으며 어질면서 결단이 많았고 협객을 좋아해 선비를 길렀습니다. 손책은 빈객을 모을 때마다 그를 돌아보며 「이분들이 너의 장수들이다」라고 했습니다. 손책이 여러 군을 평정했을 때 열다섯 살로 양선현장이 되었고 효렴과 무재로 천거되었습니다. 한의 사자 유완은 손씨 형제가 모두 재주가 빼어나나 복록을 끝까지 누리지 못할 것이고, 둘째만이 크게 귀할 상에 수명도 가장 길 것이라 했습니다.
건안 5년(200) 손책은 옛 오군태수 허공의 빈객에게 다쳐 죽으며 열아홉 살의 손권에게 인수를 채우고 「강동의 무리를 들어 두 진 사이에서 승부를 가르며 천하와 겨루는 것은 네가 나만 못하지만, 어진 이를 뽑고 능한 이를 맡겨 저마다 마음을 다하게 하며 강동을 지키는 것은 내가 너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손권이 울음을 그치지 못하자 장사 장소가 「지금이 울 때입니까」라며 옷을 갈아입히고 부축해 말에 태워 군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그때 가진 땅은 회계 · 오 · 단양 · 예장 · 여릉뿐이었고 떠도는 선비들은 거취를 저울질할 뿐이었으나, 장소와 주유 등이 그와 함께 큰일을 이룰 만하다고 여겨 마음을 다해 섬겼습니다. 그는 장소를 스승의 예로 대하고 주유 · 정보 · 여범을 장수로 삼았으며 노숙 · 제갈근을 빈객으로 맞았습니다. 노숙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한실은 다시 일으킬 수 없고 조조는 곧 없앨 수 없으니 강동에 솥발처럼 버티며 천하의 틈을 보라고 권했습니다.
건안 7년(202) 어머니 오부인이 죽었습니다. 여러 해 강하의 황조를 치던 그는 건안 13년(208) 봄 감녕의 계책을 받아들여 다시 강하를 쳐 성을 도륙했고, 기병 풍칙이 달아나던 황조의 목을 베었습니다. 그해 조조가 형주를 얻자 신하들은 대부분 조조를 맞아들이자고 했으나 주유와 노숙만이 맞서자고 해 손권과 뜻이 같았습니다. 『강표전』은 조조가 수군 80만으로 오에서 사냥하자는 글을 보내왔고, 손권이 칼을 뽑아 앞의 책상을 내리치며 「다시 조조를 맞자고 하는 자는 이 책상과 같으리라」고 했다고 적습니다. 주유와 정보가 각각 1만을 이끌고 유비와 함께 적벽에서 조조의 군을 크게 깨뜨렸고, 조조는 남은 배를 불사르고 물러났습니다.
건안 14년(209) 형주목이 된 유비를 꺼려 누이를 시집보내 우호를 굳혔고, 16년(211) 말릉으로 옮겨 이듬해 이름을 건업으로 고쳤습니다. 18년(213) 유수로 쳐들어온 조조와 한 달 남짓 맞섰는데, 배송지 주의 『오력』은 조조가 손권의 배와 군대가 가지런한 것을 보고 「자식을 낳으려면 손중모 같아야 한다」고 탄식했다고 적습니다. 20년(215) 익주를 얻은 유비가 형주를 돌려주지 않자 여몽을 보내 세 군을 빼앗았고, 끝내 상수를 경계로 나누었습니다. 이어 10만 군으로 합비를 에워쌌으나 장료가 결사대 800명을 이끌고 대장기 아래까지 쳐들어오자 높은 무덤에 올라 몸을 지켰고, 물러나던 길에 소요진 북쪽에서 다시 장료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능통 등이 죽기로 막았고, 『강표전』은 판자가 걷힌 다리 앞에서 측근 곡리가 말 뒤에서 채찍질해 뛰어넘게 했다고 적습니다. 24년(219) 관우가 번성을 에워싸자 여몽을 보내 공안과 남군을 습격했고, 12월 반장의 사마 마충이 관우 부자를 사로잡아 형주를 평정했습니다.
조비가 황제가 되자 번신을 칭하고 사로잡았던 우금 등을 돌려보냈으며, 황초 2년(221) 오왕에 봉해졌습니다. 『강표전』에서 그는 유비가 서쪽에서 오는데 위의 봉작마저 물리치면 두 쪽에서 적을 맞게 되므로 몸을 굽혔다고 밝혔습니다. 사신 조자는 조비가 오왕이 어떤 군주냐고 묻자 「평범한 무리 속에서 노숙을 받아들인 것은 총명함이요, 싸움터의 대오에서 여몽을 뽑아 올린 것은 밝음」이라 답했습니다. 유비가 쳐들어오자 화친을 청했으나 거절당하고 육손을 도독으로 삼아 막게 했으며, 황무 원년(222) 육손이 이릉에서 유비를 크게 깨뜨렸습니다. 위가 아들을 볼모로 보내라 하자 사양하고 세 길로 쳐들어온 위군을 막으며 스스로 연호를 세웠고, 223년 촉의 사신 등지의 말을 받아들여 위와 끊고 촉과 다시 손잡았습니다. 228년에는 주방의 거짓 항복에 끌려온 조휴를 육손이 석정에서 깨뜨렸습니다.
황룡 원년(229) 4월 남쪽 교외에서 황제에 올라 아버지를 무열황제로, 형을 장사환왕으로 높이고 손등을 황태자로 세웠으며, 제단에서 「옛날 노자경이 이것을 말했다」며 노숙을 떠올렸습니다. 촉은 사신을 보내 축하하고 천하를 나누는 맹약을 맺었고, 그해 가을 건업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가화 2년(233) 신하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위의 요동태수 공손연에게 1만 군과 함께 연왕의 인수를 보냈으나 공손연은 사신들의 목을 베어 위로 보냈고, 배송지는 간언을 물리친 도리 없는 짓이라 했습니다. 장소전은 끝까지 말리다 조회에 나오지 않은 장소의 문을 그가 흙으로 막고 불까지 질렀다가 뒤에 스스로 뉘우쳐 모셔 왔다고 적습니다. 적오 원년(238)에는 믿고 맡겼던 교사 여일의 죄가 드러나자 그를 죽이고 스스로 허물을 뉘우쳐 대신들에게 사과했습니다.
적오 4년(241) 태자 손등이 죽자 이듬해 손화를 태자로, 손패를 노왕으로 세웠으나 둘을 똑같이 아껴 신하들까지 두 편으로 갈렸습니다. 태자를 감싸던 승상 육손은 거듭 꾸짖음을 받다 245년 분해 죽었고, 250년 그는 손화를 폐하고 손패에게 죽음을 내린 뒤 막내 손량을 태자로 세웠으며, 이때 간하다 죽거나 쫓겨난 신하가 열을 넘었습니다. 태원 원년(251) 반씨를 황후로 세우고 스스로 신이라 하는 왕표를 맞아들였는데, 배송지 주의 손성은 나라가 망할 조짐이라 했습니다. 그해 겨울 남쪽 교외의 제사에서 돌아와 병이 들어 제갈각을 태자태부로 삼았고, 신봉 원년(252) 4월 일흔하나로 죽어 대황제라는 시호를 받고 장릉에 묻혔습니다.
진수는 「몸을 굽혀 욕됨을 참고 재주 있는 이를 맡기며 계책을 숭상해 구천 같은 비범함이 있었으니 영웅 가운데 뛰어난 이」라 하면서도, 의심과 시기가 많고 죽이기를 서슴지 않아 말년에 갈수록 심해졌으며 뒤에 나라가 엎어진 것도 이 때문이 아니라 할 수 없다고 평했습니다. 배송지는 나라가 기운 것은 손호의 포학 때문이라 했습니다.
孫權屈身忍辱,任才尚計,有勾踐之奇,英人之傑矣然性多嫌忌,果於殺戮,暨臻末年,彌以滋甚『삼국연의』 제7~108회 · 제120회
연의에서 손권은 제7회에 손견의 네 아들 가운데 둘째로 처음 이름이 나오고, 제15회에서는 선성을 지키다 한밤에 산적에게 에워싸였다가 온몸에 창을 열두 군데 맞은 주태의 도움으로 살아납니다. 제29회에서 우길의 원혼에 시달리던 손책이 죽으며 인수를 넘기고 어머니에게 안의 일은 장소에게, 밖의 일은 주유에게 물으라 이르자, 손권은 침상 앞에서 울다 장소의 말에 눈물을 거둡니다. 연의는 이때 그를 턱이 모나고 입이 크며 푸른 눈에 자줏빛 수염을 한 모습으로 그리고, 주유의 천거로 노숙을, 노숙의 천거로 제갈근을 맞아들이게 합니다.
제38회에서는 어머니 오태부인이 건안 12년 겨울에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황조를 떠나 온 감녕을 받아들여 강하를 칩니다. 제43회에서 제갈량은 그를 보고 말로 달래기보다 격동시켜야 할 사람이라 여기고, 제44회에서 손권은 주유의 말을 들은 뒤 칼을 뽑아 책상 한 모서리를 베며 다시 항복을 말하는 자는 이 책상과 같으리라고 합니다. 제54회에서는 주유의 꾀를 따라 누이를 유비에게 시집보내는 척하다가, 감로사에서 사위를 본 오국태가 유비를 마음에 들어 해 참으로 혼인이 맺어집니다.
제61회 유수에서는 가지런히 늘어선 배들 한가운데 앉은 손권을 본 조조가 「자식을 낳으려면 손중모 같아야 한다」고 탄식하고, 손권은 봄물이 불어나니 빨리 돌아가라는 글을 보냅니다. 제67회 합비의 소요진에서는 장료의 기병에게 쫓기다 판자가 뜯겨 나간 소사교 앞에 이르러, 아장 곡리가 외친 대로 말을 뒤로 물렸다가 채찍질해 뛰어넘습니다. 제68회에서는 두 번이나 목숨을 구해 준 주태의 옷을 벗기고 흉터마다 짚으며 한 곳에 술 한 잔씩을 내립니다.
제75~77회에서는 흰 옷 입은 장사꾼으로 꾸민 여몽의 군사로 형주를 빼앗고, 사로잡은 관우에게 항복을 권했다가 주부 좌함의 말을 듣고 벱니다. 잔치 자리에서 관우의 혼에 씐 여몽이 그를 「푸른 눈의 어린놈, 자줏빛 수염의 쥐새끼」라 꾸짖고 죽자, 장소의 말을 따라 관우의 머리를 조조에게 보냅니다. 제82회에서 위의 책봉을 받아 오왕이 되고, 제83회에서는 감택의 천거로 서생 육손에게 제 칼을 내리고 제단을 쌓아 대도독으로 세웁니다. 제86회에서는 끓는 기름 솥 앞에서도 웃으며 들어온 촉의 사신 등지의 말을 듣고 다시 촉과 손잡습니다.
제98회에서 무창의 남쪽 교외에서 황제에 오르고, 제108회에서는 큰바람에 놀라 병을 얻은 뒤 제갈각과 여대에게 뒷일을 맡기고 일흔하나로 죽어 대황제라는 시호를 받습니다. 연의는 태자 손화가 전공주의 참소로 폐해져 근심 끝에 죽었다고만 적고 노왕 손패는 그리지 않으며, 제120회에서는 그를 대제라 부릅니다. 연의에서 손권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손견 · 어머니 오부인 · 형 손책 · 아내 보부인 · 반황후 · 아들 일곱(손등 · 손화 · 손패 · 손휴 · 손량 등)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강동 삼대의 주인이 왔다.
강동 삼대의 이름을 걸고 마주하겠소.
아버지와 형이 남긴 땅이오.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책상을 벨 때의 마음이 무디어졌는가.
형님이라면 어찌하셨을까.
강동은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않소.
…내가 아직 형만 못하구려.
강동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버지와 형께 면목이 없구나.
…강동을 지킨 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