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의봉(義封) · 182년 ~ 249년 · 양주 단양군 고장현 · 손견 휘하
관우를 사로잡고 강릉을 철통같이 지켜낸 오나라의 불굴의 명장
출전 · 『삼국지』 오서 주연전 · 시적전과 배송지 주의 『이동평』 · 오주전 · 여몽전 · 반장전 · 육손전 · 주이전 · 주치주연여범주환전 평
주연은 자가 의봉이며 주치의 누이의 아들로, 본디 성은 시씨입니다. 주치에게 아들이 없던 시절, 주치는 열세 살의 그를 대를 이을 아들로 삼게 해 달라고 손책에게 청했습니다. 손책은 단양군에 명해 양과 술로 그를 부르게 했고, 주연이 오에 이르자 예를 갖추어 축하했습니다. 주연은 일찍이 손권과 함께 글을 배워 정이 두터웠습니다. 손권이 일을 맡자 열아홉 살에 여요현장이 되었고, 산음현령을 거쳐 절충교위가 되어 다섯 현을 감독했습니다. 손권은 그 재능을 기이하게 여겨 단양을 나누어 임천군을 두고 그를 태수로 삼아 군사 2천을 주었고, 마침 산적이 크게 일어나자 주연은 한 달 만에 평정했습니다. 조조가 유수로 나왔을 때는 큰 보루와 세 관의 둔영을 지켜 편장군이 되었습니다.
건안 24년(219) 관우를 칠 때 주연은 따로 반장과 함께 임저에 이르러 관우를 사로잡았고, 소무장군이 되어 서안향후에 봉해졌습니다. 오주전과 여몽전은 손권이 주연과 반장을 보내 관우가 달아날 길을 끊게 했다고 적고, 반장전은 관우를 직접 사로잡은 이가 반장의 사마 마충이었다고 적습니다. 호위장군 여몽의 병이 깊어지자 손권이 「경이 일어나지 못하면 누가 대신할 수 있겠소」 하고 물었고, 여몽은 「주연은 담력과 지키는 힘이 넉넉하니 맡길 만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여몽이 죽자 손권은 주연에게 부절을 빌려주어 강릉을 지키게 했습니다.
황무 원년(222) 유비가 군사를 일으켜 의도를 치자 주연은 5천 명을 거느리고 육손과 힘을 합쳐 막았습니다. 그는 따로 유비의 선봉을 깨뜨리고 그 뒷길을 끊었고, 유비는 마침내 무너져 달아났습니다. 주연은 정북장군이 되어 영안후에 봉해졌습니다.
그해 위나라는 조진 · 하후상 · 장합 등을 보내 강릉을 쳤고, 위 문제는 완에 머물며 뒤를 받쳤습니다. 손권은 장군 손성에게 1만 명을 주어 강 가운데 섬에 보루를 쌓고 주연의 바깥 구원이 되게 했으나, 장합이 건너와 손성을 몰아내고 섬을 차지하자 주연은 안팎이 끊겼습니다. 반장 · 양찬 등을 보냈어도 포위는 풀리지 않았고, 성안의 군사는 붓는 병에 걸린 이가 많아 싸울 수 있는 이가 겨우 5천이었습니다. 조진 등은 흙산을 쌓고 땅굴을 파고 망루를 세워 성을 내려다보며 화살을 비 오듯 쏘았고 장수와 군사들은 모두 낯빛을 잃었으나, 주연은 태연하여 두려운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군사들을 독려해 틈을 엿보아 두 진영을 깨뜨렸습니다. 위군이 여섯 달 동안 에워쌌을 때, 북문을 지키던 강릉현령 요태가 적이 많고 성안 사람은 적으며 곡식이 떨어져 가는 것을 보고 적과 통해 안에서 호응하려 했는데, 일을 벌이기 직전에 드러나 주연이 그를 처형했습니다. 하후상 등은 끝내 이기지 못하고 물러갔고, 이 싸움으로 주연의 이름은 적국에까지 떨쳤으며 당양후로 고쳐 봉해졌습니다.
손권이 몸소 석양을 치고 돌아갈 때 반장이 뒤를 맡았는데, 밤에 나서다 어지러워져 적의 추격을 막지 못했습니다. 주연이 곧 되돌아 머물러 적을 막으며 앞의 배들이 멀리 빠져나가게 한 뒤 천천히 뒤따라 나왔습니다. 황룡 원년(229) 거기장군 · 우호군 · 연주목이 되었으나, 연주가 촉의 몫으로 나뉘어 곧 목의 자리를 풀었습니다. 가화 3년(234) 손권이 촉과 때를 맞추어 크게 일어나 몸소 신성으로 향할 때, 주연은 전종과 함께 부월을 받아 좌우 독이 되었으나 군사들이 병들어 치지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적오 4년(241)에는 위의 번성을 에워쌌고, 함께 간 주이가 꾀를 내어 그 바깥 포위를 깨뜨렸습니다.
주연전은 적오 5년(242) 그가 사중을 칠 때 위장 포충과 호질이 각각 수천 명을 거느리고 험한 곳을 막아 뒤를 끊으려 하자, 군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는데도 장막 아래의 8백 명만으로 맞받아쳐 포충을 꺾고 호질 등을 물러나게 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이동평』은 이 싸움이 경초 원년(237)의 일이며 진수가 해를 잘못 적었다고 봅니다. 적오 9년(246) 다시 사중을 쳤을 때 위장 이흥 등이 보병과 기병 6천으로 뒷길을 끊자 주연은 밤에 나가 맞받아 이기고 돌아왔습니다. 이에 앞서 귀순했던 마무가 모반하다 죽자 손권이 크게 분해했는데, 주연은 떠나기 전에 「이번에 얻는 것을 배에 실어 강을 메우게 해 위아래의 분을 풀겠다」고 표를 올렸습니다. 손권은 그 표를 내놓지 않았다가 승전 소식이 오자 신하들 앞에 내보이며 「일을 밝게 보았다」고 했고, 그를 좌대사마 · 우군사로 삼았습니다.
주연은 키가 일곱 자가 못 되었으나 기상이 분명했고 몸가짐이 깨끗했습니다. 꾸밈은 군기에만 했을 뿐 나머지는 다 질박했고, 하루 종일 삼가며 늘 싸움터에 있는 듯했으며 급한 때일수록 담이 굳어 남보다 뛰어났습니다. 나라에 일이 없을 때에도 아침저녁으로 북을 엄히 울려 진영의 군사들이 행장을 꾸려 대열에 서게 했고, 적이 무엇을 대비해야 할지 모르게 했기에 나설 때마다 공을 세웠습니다. 제갈근의 아들 제갈융과 보즐의 아들 보협이 아버지의 자리를 이었으나 손권은 특별히 주연에게 다시 대독을 맡겼고, 육손마저 죽은 뒤 공신 명장으로 남은 이는 주연뿐이었습니다.
병으로 두 해를 누워 점점 깊어지자 손권은 낮에는 반찬을 줄이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의원과 약과 먹을 것을 실어 나르는 사자가 길에 잇달았습니다. 창업 공신이 병들었을 때 손권이 마음을 쏟은 것은 여몽 · 능통이 가장 무거웠고 주연이 그다음이었다고 합니다. 적오 12년(249) 예순여덟으로 죽자 손권은 흰옷을 입고 곡하며 크게 슬퍼했습니다. 아들 주적이 뒤를 이었는데, 주연은 주치의 상을 마친 뒤 본디 성으로 돌아가기를 청했으나 손권이 허락하지 않았고, 주적은 오봉 연간에 표를 올려 시씨로 돌아갔습니다. 진수는 「주연과 주환은 용맹과 굳셈으로 이름이 드러났다」고 평했습니다.
朱然、朱桓以勇烈著聞終日欽欽,常在戰場,臨急膽定。尤過絕人『삼국연의』 제75회 · 제77회 · 제82회 · 제84회
연의에서 주연은 제75회에 여몽이 흰옷을 입힌 군사로 형주를 칠 때 뒤따라 나아가는 일곱 장수 가운데 하나로 처음 이름이 보입니다. 제77회에서 여몽은 관우가 큰길을 버리고 맥성 북쪽의 험한 샛길로 달아날 것이라 보고, 주연에게 정병 5천을 주어 맥성 북쪽 20리에 숨어 있다가 뒤를 몰아치게 하고 반장을 임저의 샛길에 숨게 합니다. 관우가 북문으로 나오자 주연은 산모퉁이에서 「운장은 달아나지 마라, 일찌감치 항복하면 죽음은 면한다」고 외치며 맞서다가 달아나는 척하고, 사방의 복병이 일어나자 관우는 임저 길로 달아납니다. 주연이 뒤를 몰아쳐 관우를 따르는 군사는 점점 줄고, 결석에서 반장의 부장 마충이 관우를 사로잡으며, 뒤이어 반장과 주연이 관평을 에워싸 사로잡습니다.
제82회에서 유비가 동쪽으로 쳐들어오자 손환이 나서고, 호위장군 주연이 함께 가겠다고 청해 손환은 좌도독, 주연은 우도독이 되어 수륙 5만을 거느립니다. 주연의 수군은 강 위에 진을 치는데, 촉의 거짓 항복병이 오늘 밤 손환의 진영을 친다고 알리자 부장 최우를 보냈다가 관흥 · 장포에게 사로잡히게 하고, 주연은 배를 강 아래로 50~60리 물립니다. 제84회에서 육손이 불로 촉의 진영을 칠 때 주연은 물길로 나아가고, 달아나는 유비를 강가에서 가로막아 유비가 「짐이 여기서 죽는구나」 하고 외치게 합니다. 그때 조운이 달려와 주연과 맞붙어 한 합도 안 되어 창으로 찔러 죽입니다. 연의의 주연은 여기서 죽어 강릉 싸움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양아버지 주치(외숙) · 아들 주적(뒤에 시적으로 성을 되돌림)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오의 주의봉이오.
강릉의 성벽은 말로도 못 넘소.
포위가 두려웠다면 애초에 성문을 열었겠지.
…성가퀴가 하나 무너졌군.
버티는 것이라면 자신 있소.
철벽이란 이런 것이오.
성은 지켜도 말은 뚫리는구려.
한 발도 들이지 못했소.
…빗장 하나가 헐거웠군.
강릉의 문은 끝내 안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