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공복(公覆) · 미상 ~ 미상 (208년 이후) · 형주 영릉군 천릉현 · 손견 휘하
거짓 항복한 불붙인 배로 적벽에서 조조의 배를 태운 손씨 삼대의 노장
출전 · 『삼국지』 오서 황개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주유전과 배송지 주의 『강표전』 · 손토역전 주의 『오록』 · 태사자전 · 손교전
황개는 자가 공복이며 영릉군 천릉현 사람입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에 따르면 그는 옛 남양태수 황자렴의 후손으로, 집안이 갈라져 할아버지 때 영릉으로 옮겨 와 살게 되었습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온갖 고생을 겪었으나 큰 뜻이 있어, 가난하게 살면서도 범상한 무리와 같이 굴지 않았고 땔나무를 지는 틈틈이 글과 문서를 배우고 병법을 익혔습니다. 처음에 군의 관리가 되었다가 효렴으로 천거되어 삼공의 부에 불려 갔습니다.
손견이 의병을 일으키자 황개는 그를 따랐습니다. 손견이 남쪽에서 산적을 깨뜨리고 북쪽에서 동탁을 몰아낼 때 별부사마가 되었습니다. 손견이 죽은 뒤에는 손책과 손권을 따라 갑옷을 입고 두루 싸우며 칼날을 밟고 성을 무찔렀습니다. 흥평 2년(195) 손책이 신정에서 태사자와 맞닥뜨렸을 때, 『삼국지』 태사자전은 손책을 따르던 열세 기가 한당 · 송겸 · 황개 같은 이들이었다고 적습니다. 『오록』에 실린 손책의 표는 건안 4년(199) 12월 사선에서 황조를 칠 때 행무봉교위 황개가 주유 · 정보 · 한당 등과 함께 나아갔다고 적습니다.
산월이 복종하지 않아 도적의 난리가 있는 현마다 황개를 그 현의 수령으로 삼았습니다. 석성현의 아전들이 특히 다스리기 어렵자, 황개는 두 아전을 두어 여러 부서를 나누어 맡기고 영을 내렸습니다. 자신은 무공으로 벼슬을 얻었을 뿐 문서를 다루는 관리로 이름난 이가 아니고 지금은 도적이 평정되지 않아 군사의 일이 있으니, 문서는 모두 두 아전에게 맡기며 간사하게 속이는 일이 있더라도 끝내 매질하지는 않을 테니 각자 마음을 다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그 위엄을 두려워해 밤낮으로 일했으나, 오래되자 황개가 문서를 보지 않는다 하여 차츰 사사로운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황개도 느슨해진 것을 싫어해 때때로 살펴보다가 두 아전이 법을 받들지 않은 일 몇 가지를 찾아냈습니다. 그는 아전들을 모두 불러 술과 음식을 내리고 그 일을 내밀어 따졌고, 두 아전이 말이 막혀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자 「앞서 매로 다스리지 않겠다고 했으니 속인 것이 아니다」 하고 그들을 죽였습니다. 온 현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뒤에 춘곡장과 심양령으로 옮겼으며, 모두 아홉 현을 맡아 가는 곳마다 평정했습니다. 단양도위가 되어서는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 산월이 그를 따랐습니다.
황개는 생김새가 엄하고 굳세었으며 군사를 잘 길러, 싸우러 나갈 때마다 군사들이 다투어 앞장섰습니다. 건안 13년(208) 주유를 따라 적벽에서 조조를 막을 때 그가 불로 치는 계책을 내놓았습니다. 주유전에 따르면 첫 싸움에 진 조조의 군이 강 북쪽에 머물자, 주유의 부장 황개는 적은 많고 우리는 적어 오래 버티기 어렵지만 조조 군의 배들이 머리와 꼬리를 잇대고 있으니 태워서 쫓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몽충과 투함 수십 척에 섶과 풀을 싣고 기름을 부은 뒤 휘장으로 싸고 깃발을 세웠으며, 먼저 조조에게 편지를 보내 항복하겠다고 속였습니다. 『강표전』에 실린 그 편지에서 황개는 강동 여섯 군의 군사로 중원의 백만 무리를 당해 낼 수 없음은 온 세상이 아는 바이니, 싸우는 날 앞장서서 형편에 따라 목숨을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큰 배마다 날랜 거룻배를 매달고 나아가자 조조의 군사들은 모두 목을 빼고 바라보며 황개가 항복해 온다고 가리켰고, 황개가 배들을 풀어 한꺼번에 불을 놓자 바람이 사나워 불길이 언덕 위의 진영까지 번졌습니다. 『강표전』은 그날 황개가 가볍고 날랜 배 열 척에 마른 억새와 나무를 싣고 생선 기름을 부어 붉은 휘장을 덮었으며, 동남풍이 거셀 때 강 한가운데서 돛을 올리고 군사들에게 「항복한다」고 크게 외치게 한 뒤 북군에서 2리 남짓 떨어진 곳에서 불을 놓았다고 전합니다.
『오서』에 따르면 적벽 싸움에서 황개는 날아온 화살에 맞아 추운 물에 빠졌는데, 그를 건진 오의 군사들은 황개인 줄 모르고 측간의 평상에 두었습니다. 황개가 힘을 짜내 한 번 한당을 부르자, 한당은 「이것은 공복의 목소리다」 하고 그에게 가서 눈물을 흘리며 옷을 벗겨 갈아입혔고, 그 덕에 황개는 살아났습니다.
그 뒤 황개는 무봉중랑장이 되었습니다. 무릉의 만이가 일어나 성읍을 치자 황개가 무릉태수를 맡았는데, 그때 군의 군사는 겨우 5백 명이었습니다. 그는 맞서 이길 수 없다고 보고 성문을 열어 두었다가 적이 절반쯤 들어오자 쳐서 수백 명의 목을 베었고, 나머지는 모두 달아나 제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우두머리를 베고 따른 자는 용서하니 봄부터 여름 사이에 난리가 모두 평정되었고, 깊은 골짜기의 여러 읍후와 군장들이 마음을 바꾸어 예를 갖추고 뵙기를 청해 군의 경계가 맑아졌습니다. 뒤에 장사군 익양현이 산적에게 공격받자 다시 쳐서 평정했고, 편장군이 더해졌으며 벼슬자리에 있다가 병으로 죽었습니다. 손교전은 황개와 손유가 죽자 손교가 그 군사를 아울렀다고 적습니다.
황개는 벼슬에 있으며 일을 결단해 미루는 일이 없어 나라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했고, 『오서』에 따르면 그의 모습을 그려 두고 사철 제사를 지냈습니다. 황룡 원년(229) 손권은 황제에 오르자 그의 공을 되짚어 아들 황병에게 관내후의 작위를 내렸습니다. 진수는 황개를 비롯한 이 전의 장수들을 두고 「모두 강동의 범 같은 신하로, 손씨가 두터이 대우한 이들」이라고 평했습니다.
今寇眾我寡,難與持久。然觀操軍船艦,首尾相接,可燒而走也蓋當官決斷,事無留滯,國人思之『삼국연의』 제5~7회 · 제15회 · 제43~44회 · 제46~47회 · 제49~50회 · 제55~56회
연의에서 황개는 제5회에 손견의 네 장수 가운데 둘째로 나옵니다. 연의는 그가 영릉 사람이며 쇠 채찍인 철편을 쓴다고 소개합니다. 제6회에서는 손견을 따라 원술의 진영에 가고, 옥새를 두고 원소와 다툴 때 정보 · 한당과 함께 칼을 뽑아 듭니다. 제7회에서는 손견이 유표의 군에 에워싸이자 정보 · 한당과 죽기로 싸워 구해 냅니다. 손견이 유표를 치러 나설 때는 먼저 강가에 가서 싸움배를 마련하고, 손견이 현산에서 죽던 밤 수군을 이끌고 와서 황조를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사로잡은 황조를 손견의 시신과 맞바꾸자고 손책에게 권합니다. 제15회에서는 손책을 따라 강을 건너 신정령에 오른 열세 기 가운데 하나가 되고, 가흥을 빼앗으며 회계에서는 왕랑의 장수 주흔과 맞섭니다.
제43회에서 황개는 동오의 군량을 맡은 관리로 다시 나와, 제갈량을 말로 몰아세우는 선비들을 꾸짖고 제갈량을 손권에게 데려갑니다. 제44회에서는 장수들과 함께 주유를 찾아가 「내 머리는 잘릴지언정 맹세코 조조에게 항복하지 않겠다」고 외칩니다. 제46회에서 황개는 밤에 주유를 찾아가 적은 많고 우리는 적으니 불로 치자고 하고, 스스로 거짓 항복을 맡겠다고 나섭니다. 이튿날 여러 장수가 모인 자리에서 일부러 항복을 입에 올려 주유의 노여움을 사고, 등에 곤장 쉰 대를 맞아 살이 터집니다. 이것이 연의의 고육계이며, 황개는 참모 감택에게만 속을 털어놓고 거짓 항복 편지를 맡깁니다. 제47회에서 감택이 그 편지를 들고 조조를 찾아가 믿게 합니다.
제49회에서 황개는 뱃머리에 큰 못을 박고 갈대와 마른 나무에 생선 기름을 붓고 유황과 염초를 얹은 화선 스무 척을 마련합니다. 「선봉 황개」 라고 쓴 깃발을 셋째 배에 달고 나아가 조조의 수채에 불을 놓고, 작은 배로 옮겨 타 조조를 쫓다가 장료의 화살에 어깨를 맞고 물에 떨어집니다. 제50회에서 한당이 「의공, 나를 구하라」 는 외침을 듣고 그를 건져 화살촉을 빼고 제 전포를 입혀 큰 진영으로 보냅니다. 제55~56회에서는 유비를 쫓다 크게 진 주유를 한당과 함께 배로 구해 냅니다. 연의에서 황개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그 죽음은 그리지 않습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황병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이 등을 보아라!
황공복이오. 늙었으나 매는 견딜 만하오.
말로 때리시겠소? 나는 이골이 났소.
…등짝이 쑤시는구려.
이만한 매는 맞아 본 적 있소.
살을 내주고 뼈를 얻는 법이오.
…이번엔 헛매를 맞았구려.
이 등의 매가 값을 했소.
…한 번 더 맞아야겠구려.
이 등의 매 자국이 값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