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당韓當

자 의공(義公) · 미상 ~ 226년 무렵 · 유주 요서군 영지현 · 손견 휘하

한당 초상

손씨 가문 3대를 모시며 오나라의 모든 전장을 누빈 백전노장

능력치

통솔76무력85지력59정치51매력68

카드

공격력 5체력 4비용 3값어치 11직군 맹장
수전 호령
소환물 수군 하나를 부른다 (1/2)

정사

출전 · 『삼국지』 오서 한당전과 배송지 주의 『오서』 · 태사자전 · 손토역전 주의 『오록』과 『강표전』 · 오주전 · 위서 장패전 · 오서 육손전 · 제갈각전 · 손량전

한당은 자가 의공이며 요서군 영지현 사람입니다. 『삼국지』 한당전은 그가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고 힘이 세어 손견의 아낌을 받았다고 적습니다. 손견을 따라 두루 정벌하며 여러 번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에 뛰어들어 적을 사로잡았고, 별부사마가 되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오서』에 따르면 한당은 부지런히 애써 공을 세웠으나, 군중에서 남의 아래 딸린 처지로 뛰어난 이들 틈에 있었기에 작위가 더해지지 않아 손견이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별부사마였습니다.

손책이 강을 건너 동쪽으로 가자 한당은 따라가 세 군을 쳤고, 선등교위로 옮겨 군사 2천과 말 50필을 받았습니다. 흥평 2년(195) 손책이 신정에서 태사자와 맞닥뜨렸을 때, 『삼국지』 태사자전은 손책을 따르던 열세 기가 한당 · 송겸 · 황개 같은 이들이었다고 적습니다. 그 뒤 손책을 따라 유훈을 치고 황조를 깨뜨렸는데, 『오록』에 실린 손책의 표는 건안 4년(199) 12월 사선 싸움에 행선등교위 한당이 주유 · 정보 · 황개 등과 함께 나아갔다고 적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건안 5년(200) 손책이 사냥하다 만난 허공의 식객 셋은 「한당의 군사로 사슴을 쏘러 왔다」고 둘러댔고, 손책은 「한당의 군사는 내가 다 아는데 너희는 본 적이 없다」 하고 한 사람을 쏘아 죽였으나 자신도 뺨에 화살을 맞았습니다. 배송지는 대장이 군사를 다 알아볼 수는 없다며 이 대목을 의심했습니다.

돌아와서는 파양을 치고 낙안장을 맡아 산월을 두려워 따르게 했습니다. 오주전은 건안 8년(203) 손권이 한당 · 주태 · 여몽 등을 다스리기 어려운 현의 수령으로 삼았다고 적습니다. 건안 13년(208)에는 중랑장으로 주유 등과 함께 조조를 막아 깨뜨렸습니다. 이듬해 장료가 진란을 칠 때, 위서 장패전은 장패가 따로 환으로 가서 오의 장수 한당을 쳐 손권이 진란을 구하지 못하게 했다고 적습니다. 건안 24년(219)에는 여몽과 함께 남군을 습격해 빼앗았고, 편장군이 되어 영창태수를 겸했습니다.

황무 원년(222) 유비가 쳐들어오자 손권은 육손을 대도독으로 삼아 주연 · 반장 · 송겸 · 한당 · 서성 등 5만 명을 거느리고 막게 했습니다. 한당은 육손 · 주연 등과 함께 탁향에서 촉군을 크게 깨뜨렸고, 위열장군으로 옮기고 도정후에 봉해졌습니다. 육손전은 이 싸움에서 손책 때의 옛 장수나 왕실의 친척인 장수들이 저마다 뽐내며 서생 육손의 영을 따르지 않다가, 유비를 깨뜨린 계책이 대부분 육손에게서 나온 것을 보고서야 복종했다고 적습니다. 그해 조진이 남군을 치자 한당은 동남쪽을 지켰습니다. 그는 밖에서 장수로 있으며 장병을 북돋워 한마음으로 굳게 지키게 했고, 감독하는 관원을 공경하며 법령을 받들어 손권이 그를 좋게 여겼습니다.

황무 2년(223) 한당은 석성후에 봉해지고 소무장군으로 옮겨 관군태수를 겸했으며, 뒤에 도독이라는 이름도 더해졌습니다. 결사대와 해번병 1만 명을 이끌고 단양의 도적을 쳐서 깨뜨렸고, 마침 병으로 죽었습니다. 한당전은 그가 죽은 해에 손권이 석양을 쳤다고 적는데, 오주전은 손권이 석양을 에워싼 것을 황무 5년(226) 가을의 일로 적습니다. 아들 한종이 후작을 잇고 군사를 거느렸습니다.

손권은 석양을 칠 때 한종이 상중이라 하여 무창을 지키게 했는데, 한종은 음란하고 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손권은 그 아버지를 보아 묻지 않았으나 한종은 속으로 두려워했습니다. 『오서』에 따르면 한종은 배반하려 했으나 측근들이 따르지 않을까 걱정해, 그들에게 노략질을 부추기고 짐짓 봐주어 서로 본받게 하니 길손들의 큰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조서를 받았다고 속여 부곡이 도적질한 일로 장수와 아전 이하가 모두 잡혀 다스림을 받게 되었다 하고, 죄가 자기에게도 미칠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측근들이 떠날 수밖에 없다고 하자, 아버지를 장사 지낸다는 핑계로 친척의 고모와 누이들을 모두 불러 장수와 아전들에게 시집보내고 피를 마셔 함께 맹세했습니다. 마침내 한종은 아버지의 관을 싣고 어머니와 가솔, 부곡의 남녀 수천 명을 이끌고 위나라로 달아났고, 오주전은 이를 황무 6년(227) 윤달의 일로 적습니다. 위나라는 그를 장군으로 삼아 광양후에 봉했고, 그는 여러 번 오의 변경을 침범해 백성을 해쳐 손권이 늘 이를 갈았습니다. 건흥 원년(252) 동흥 싸움에서 한종은 위군의 선봉이 되었다가 싸움에 져 죽었고, 제갈각은 그 머리를 베어 보내 손권의 사당에 고했습니다.

진수는 한당을 비롯한 이 전의 장수들을 두고 「모두 강동의 범 같은 신하로, 손씨가 두터이 대우한 이들」이라고 평했습니다.

凡此諸將,皆江表之虎臣,孫氏之所厚待也
무릇 이 여러 장수는 모두 강동의 범 같은 신하로, 손씨가 두터이 대우한 이들이다『삼국지』 오서 정황한장주진동감능서반정전 평
在外爲帥,厲將士同心固守,又敬望督司,奉遵法令,權善之
밖에서 장수로 있으며 장병을 북돋워 한마음으로 굳게 지키게 하고, 감독하는 관원을 공경하며 법령을 받드니 손권이 좋게 여겼다『삼국지』 오서 한당전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5~7회 · 제15회 · 제29회 · 제44~45회 · 제48~51회 · 제55~56회 · 제61회 · 제75~76회 · 제82~84회

연의에서 한당은 제5회에 손견의 네 장수 가운데 셋째로 나옵니다. 연의는 그가 요서 영지 사람이며 큰 칼을 쓴다고 소개합니다. 제7회에서는 유표의 군에 에워싸인 손견을 정보 · 황개와 함께 죽기로 싸워 구하고, 번성에서는 황조의 장수 장호와 서른 합 남짓 싸우다 칼로 머리를 벱니다. 양양을 에워쌌을 때 바람에 깃대가 부러지자 길하지 않으니 군사를 물리자고 하지만 손견은 듣지 않습니다. 제15회에서는 손책을 따라 강을 건너 신정령에 오른 열세 기 가운데 하나가 되고, 제29회에서는 손책을 노린 허공의 식객들이 「한당의 군사」 라고 속입니다.

적벽을 앞두고 제44회에서 한당은 황개와 함께 전부 선봉이 되고, 제45회 삼강구 싸움에서는 왼쪽 날개를 맡아 조조의 수군을 들이칩니다. 제48회에서는 조조의 장수 초촉을 창으로 찔러 죽이고 주태와 함께 문빙을 몰아냅니다. 제49회 화공의 날에는 화선 스무 척을 앞세운 첫째 부대를 이끌고, 제50회에서 물에 빠진 채 「의공, 나를 구하라」 고 외치는 황개를 알아듣고 건져 화살촉을 빼 주고 제 전포를 입혀 보냅니다. 제51회 남군 싸움에서는 조홍과 맞서고, 조인이 진영을 습격하자 매복해 있다가 칩니다. 제61회 유수에서는 주태와 함께 조조에게 곧장 달려들다가 허저에게 막힙니다. 제75~76회에서는 여몽의 형주 습격에 일곱 장수의 하나로 따라가 달아나는 관우를 골짜기에서 칩니다.

제82회에서 유비가 쳐들어오자 장소의 천거로 한당이 정장, 주태가 부장이 되어 이릉으로 나섭니다. 제83회에서 한당은 부장 하순을 잃고 크게 지며, 서생 육손이 대도독이 되어 오자 「이런 어린애를 장수로 삼다니 동오는 끝났다」며 업신여깁니다. 굳게 지키라는 육손의 영에 「나는 손장군을 따라 강남을 평정하며 수백 번 싸웠다」며 나가 싸우자고 맞서고, 유비를 치자고 해도 육손이 말리자 겉으로만 따르고 속으로는 복종하지 않습니다. 제84회에서 육손이 불로 칠 때 한당은 강 북쪽 언덕의 촉 진영을 맡아 불을 지릅니다. 연의에서 한당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그 죽음과 한종의 배반은 그리지 않습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95손책을 따르던 열세 기의 하나로 신정에서 태사자와 맞닥뜨렸습니다.
  2. 199행선등교위로 손책을 따라 사선에서 황조를 쳤습니다.
  3. 203파양을 치고 낙안장을 맡아 산월을 두려워 따르게 했습니다.
  4. 208중랑장으로 주유 등과 함께 적벽에서 조조를 깨뜨렸습니다.강동 삼대 노장
  5. 219여몽과 함께 남군을 습격해 빼앗고 편장군 · 영창태수가 되었습니다.
  6. 222육손 · 주연 등과 함께 탁향에서 촉군을 크게 깨뜨려 도정후에 봉해졌습니다.이릉의 두 노장
  7. 223석성후에 봉해지고 소무장군 · 관군태수가 되었습니다.
  8. 226결사대와 해번병 1만을 이끌고 단양의 도적을 깨뜨린 뒤 병으로 죽었습니다.
  9. 227아들 한종이 아버지의 관을 싣고 가솔과 부곡 수천 명을 이끌고 위나라로 달아났습니다.
  10. 252한종이 동흥 싸움에서 죽자 제갈각이 그 머리를 손권의 사당에 바쳤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들 한종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강동의 옛 장수요.

말을 열며

손씨 삼대의 전장을 다 밟아 본 몸이오.

되받으며

풋내 나는 말은 전장에서 안 통하오.

말문이 막혀

…오래 싸우면 상처도 늘지.

말문이 막혀

그래도 노장은 안 죽소.

설전을 이기고

백 번 싸운 몸은 다르오.

설전에 지고

다음 전장에서 갚으면 되오.

이긴 뒤

오래 산 보람이 있소.

진 뒤

…이 몸도 오래되었구려.

쓰러지며

삼대를 따랐으니 되었다.

같은 기치 아래

주유여몽손견손책육항육손노숙황개주태서성손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