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열(子烈) · 235년 ~ 264년 · 양주 오군 부춘현 · 손견 휘하
권신 손침을 숙청하고 실권을 되찾았으나 국운을 살리지 못한 오의 3대 황제
출전 · 『삼국지』 오서 삼사주전(손휴전 · 손호전) · 손침전 · 복양흥전 · 정봉전 · 비빈전과 배송지 주의 『강표전』 · 『양양기』 · 『오록』
손휴는 자가 자열이며 손권의 여섯째 아들입니다. 어머니는 남양 사람 왕부인인데, 손화가 태자가 되어 그 어머니가 귀해지자 총애받던 다른 후궁들과 함께 궁 밖으로 나가 공안에서 죽었습니다. 손휴는 열세 살에 중서랑 사자와 낭중 성충에게 배웠습니다. 『삼국지』 비빈전에 따르면 아내 주씨는 주거의 딸로 손휴의 누이 주공주가 낳은 사람이며, 적오 말년에 손권이 그를 손휴의 비로 들였습니다.
태원 2년(252) 정월 낭야왕에 봉해져 호림에 머물렀습니다. 그해 4월 손권이 죽고 아우 손량이 뒤를 이어 제갈각이 정사를 쥐자, 제갈각은 여러 왕을 강가의 군사 요지에 두지 않으려고 손휴를 단양군으로 옮겼습니다. 단양태수 이형이 여러 번 일을 들어 그를 괴롭히자 손휴는 다른 군으로 옮겨 달라는 글을 올려 회계로 옮겨 갔습니다. 그곳에서 몇 해를 사는 동안 용을 타고 하늘에 올랐다가 돌아보니 꼬리가 보이지 않는 꿈을 꾸고 깨어나 이상히 여겼다고 합니다.
태평 3년(258) 손침이 손량을 폐하고 종정 손해와 중서랑 동조를 보내 손휴를 맞게 했습니다. 손휴는 처음에 의심했으나 두 사람이 손침이 그를 맞으려는 본뜻을 다 말하자 하루 이틀을 머문 뒤 길을 나섰습니다. 10월 곡아에 이르자 한 노인이 그 앞에 나와 머리를 조아리며 「일이 오래 끌면 변이 생기니 서둘러 가시라」고 했고, 손휴는 이를 옳게 여겨 그날로 포새정까지 나아갔습니다. 손침의 아우 손은이 백관을 거느리고 맞자 손휴는 세 번 사양한 끝에 옥새를 받았고, 손침이 군사 천 명과 길가에서 절하자 수레에서 내려 맞절했습니다. 그날로 정전에 올라 크게 사면하고 연호를 영안으로 고쳤습니다. 손침은 승상 · 형주목이 되었고, 손휴를 곁에서 도운 장수교위 장포는 보의장군 · 영강후가 되었습니다. 지난날 자신을 괴롭힌 이형이 스스로 옥에 갇히자 손휴는 그를 군으로 돌려보내 의심하지 말게 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양양기』에 따르면 이형은 위로 달아나려 했으나, 아내 습씨가 「낭야왕은 본디 선을 좋아하고 이름을 아끼니 사사로운 원한으로 그대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며 스스로 죄를 청하라고 권해 화를 면했습니다.
그러나 손침 일문은 다섯이 제후가 되어 모두 금군을 거느렸고 권세가 임금을 기울게 했습니다. 손휴는 변고가 날까 두려워 그의 아룀을 공경히 따르고 자주 상을 내렸습니다. 손침전에 따르면 손침이 소고기와 술을 바쳤으나 손휴가 받지 않자, 이를 좌장군 장포에게 가져가 마시던 손침은 「황제는 내가 아니었으면 서지 못했다」며 원망하는 말을 했습니다. 이를 들은 손휴는 장포와 몰래 꾀했고, 정봉전에 따르면 장포가 천거한 정봉은 납일의 모임을 틈타 폐하의 군사로 베자고 했습니다. 영안 원년(258) 12월 납일 모임에 손침은 병을 핑계로 오지 않다가 사자가 열 번 넘게 오자 마지못해 들어왔고, 정봉과 장포의 눈짓에 좌우가 그를 묶었습니다. 손침이 교주로 귀양 보내 달라 빌자 손휴는 「그대는 어찌 등윤과 여거를 귀양 보내지 않았느냐」 하며 베게 했고, 그 삼족을 멸하고 손준의 관을 파헤쳤습니다. 이어 제갈각 · 등윤 · 여거가 죄 없이 죽었다며 다시 장사 지내고 제사하게 했습니다.
그달 손휴는 조서를 내려 「옛날 나라를 세울 때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먼저 했다」며 옛 제도대로 학관을 세우고 오경박사를 두어, 관리와 장수의 자제 가운데 뜻있는 이를 배우게 하고 해마다 시험해 상을 주게 했습니다. 영안 2년(259)에는 관리와 백성이 장강을 오르내리며 장사에 나서 좋은 밭이 묵어 간다며 밭을 넓히고 세금을 가볍게 해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하라고 명했습니다. 영안 3년(260) 회계에 손량이 다시 천자가 되리라는 소문이 돌고 손량이 무당을 시켜 나쁜 말로 빌었다는 고발이 들어오자 그를 후관후로 낮추어 보냈는데, 손량은 가는 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오록』은 손휴가 그를 독살했다는 말도 있다고 적습니다.
영안 5년(262) 주씨를 황후로, 아들을 태자로 세웠고, 옛 은혜가 있는 복양흥을 승상으로 삼아 군국의 일을, 좌장군 장포에게 궁중의 일을 맡겼습니다. 손휴는 책에 뜻을 두어 온갖 학자의 글을 다 읽으려 했고 꿩 사냥을 좋아했습니다. 박사좨주 위요 · 박사 성충과 학문을 강론하려 하자, 제 허물이 드러날까 꺼린 장포가 말을 꾸며 막았습니다. 손휴는 「책 읽는 일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이 걱정이지 좋아해서 해로울 것은 없다」며 나무랐으나, 그가 두려워 의심할까 걱정되어 끝내 그의 뜻대로 강론을 그만두었습니다. 『오록』에 따르면 이해 손휴는 네 아들의 이름과 자를 세상에 없는 글자로 지었는데, 배송지는 이를 두고 「무덤의 흙이 마르기도 전에 처자가 몰살되었다」며 나무랐습니다.
영안 6년(263) 교지의 관리 여흥 등이 태수 손서를 죽이고 위에 붙었습니다. 손서가 앞서 고을의 장인 천여 명을 건업으로 보냈는데, 공작과 큰 돼지를 거두러 찰전이 오자 또 잡혀갈까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해 10월 촉이 위의 침공을 알려 오자 대장군 정봉을 수춘으로, 유평을 남군으로, 손이 등을 면중으로 보내 촉을 구하게 했으나, 유선이 위에 항복했다는 소식이 이르자 군을 거두었습니다. 영안 7년(264) 7월 손휴는 서른에 죽어 경황제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병들어 말을 못 하게 되자 손으로 글을 써 승상 복양흥을 부르고, 태자를 나와 절하게 한 뒤 그의 팔을 잡고 태자를 가리켜 뒤를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촉이 막 망하고 교지가 등을 돌려 나라 안이 두려워하자 신하들은 나이 든 임금을 바라 손화의 아들 손호를 세웠고, 손호는 이듬해 주태후를 핍박해 죽이고 손휴의 아들 가운데 큰 둘도 죽였습니다.
진수는 손휴가 옛 정과 은혜로 복양흥 · 장포를 맡기고 어진 인재를 뽑아 쓰지 못했으니, 뜻이 좋고 학문을 좋아했다 한들 어지러움을 건지는 데 무슨 보탬이 되었겠느냐고 평했습니다. 또 이미 폐한 손량을 제명에 죽지 못하게 했으니 형제의 의리가 엷었다고 덧붙였습니다.
休以舊愛宿恩,任用興、布,不能拔進良才,改絃易張,雖志善好學,何益救亂乎古者建國,教學爲先,所以道世治性,爲時養器也『삼국연의』 제113회 · 제117회 · 제119~120회
연의에서 손휴는 제113회에 처음 나옵니다. 손침은 손량을 폐한 뒤 종정 손해와 중서랑 동조를 호림으로 보내 낭야왕 손휴를 맞게 하는데, 연의는 그를 손권의 여섯째 아들이라 소개하고 호림에서 용을 타고 하늘에 올랐다가 꼬리가 보이지 않는 꿈을 꾸었다고 적습니다. 곡아에서는 성은 간, 이름은 휴라고 스스로 밝힌 노인이 서둘러 가시라 하고, 손휴는 감히 어가를 타지 못해 작은 수레로 들어가며 길가의 백관에게 내려서 답례합니다. 즉위한 그는 손침을 승상 · 형주목으로 삼고 형의 아들 손호를 오정후에 봉하지만, 손침 일문의 다섯 제후가 금군을 쥐자 겉으로 은총을 보이며 속으로 막습니다.
12월 손침이 바친 소고기와 술을 받지 않자 손침은 장포에게 원망을 늘어놓고, 장포가 이를 아뢰자 손휴는 크게 두려워합니다. 손침이 무창으로 군사와 무기를 빼돌린다는 위막 · 시삭의 밀고에 장포는 늙은 장수 정봉을 천거하고, 정봉은 납일에 크게 잔치를 연다며 손침을 부르자는 꾀를 냅니다. 밤새 큰바람이 불고 아침에 까닭 없이 넘어진 손침이 마지못해 들어오자 손휴는 자리에서 내려와 맞고, 술이 몇 순배 돈 뒤 궁 밖에 불이 났다는 말에 손침이 일어나려 하자 말립니다. 장포가 칼을 빼 들고 무사 서른여 명과 올라와 그를 잡고, 손휴는 교주로 보내 달라 비는 손침에게 「너는 어찌 등윤 · 여거 · 왕돈을 귀양 보내지 않았느냐」 하며 베게 합니다. 이어 손침의 형제와 일족 수백을 베고 손준의 무덤을 파헤치며, 제갈각 등의 무덤을 다시 세워 줍니다.
제113회 끝에서는 촉에서 돌아온 설후가 환관 황호가 권세를 쥐어 곧은 말이 들리지 않는다고 아뢰자 「제갈무후가 살아 있었다면 어찌 이 지경이 되었겠는가」 하고 탄식합니다. 제117회에서는 제갈첨이 보낸 사자의 구원 요청에 「어찌 앉아서 보고만 있겠는가」 하며 정봉에게 군사 5만을 주어 세 길로 촉을 구하게 하고, 제119회에서는 촉이 망하자 화핵의 말을 따라 육항에게 강 어귀를 지키게 하고 정봉에게 강가의 진영을 거느리게 합니다. 제120회에서 그는 사마염이 위를 빼앗았다는 소식에 반드시 오를 치리라 여겨 근심하다 병들어 눕고, 승상 복양흥을 불러 태자를 나와 절하게 한 뒤 그의 팔을 잡고 태자를 가리키며 숨을 거둡니다. 연의에서 손휴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손권 · 어머니 왕부인 · 아내 주황후(주거의 딸) · 아들 넷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권신은 이미 걷었다.
책 속에서 배운 수를 오늘 써 보겠소.
짐을 허수아비로 아는가?
…권신 밑에서 참던 때 같군.
때를 기다리면 되오.
손침도 이렇게 잡았느니라.
책을 더 읽고 오겠소.
권신을 걷고 나라를 세운다.
…국운을 못 돌리는가.
손침은 베었으나 나라는 못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