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돈夏侯惇

자 원양(元讓) · 미상 ~ 220년 · 예주 패국 초현 · 조조 휘하

하후돈 초상

조조의 든든한 후방을 책임진 위나라 군부의 최고 실력자

능력치

통솔89무력90지력60정치74매력88

카드

공격력 6체력 6비용 4값어치 14직군 맹장
발안 호령
공격력 +1 · 체력 +1 (영구)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하후돈전과 배송지 주의 『위략』 · 『위서』 · 무제기와 배송지 주의 『조만전』 · 『세어』 · 『위씨춘추』 · 문제기 · 명제기 · 여포전 · 순욱전 · 전주전 · 위진전 · 이전전 · 제하후조전 평 · 촉서 선주전 · 관우전

하후돈은 자가 원양이며 패국 초현 사람으로, 한 고조의 공신 하후영의 후손입니다. 열네 살에 스승에게서 배울 때 스승을 모욕한 자가 있자 그를 죽였고, 이 일로 사나운 기개로 이름이 났습니다. 『삼국지』 무제기 본문은 조조의 아버지 조숭이 환관 조등의 양자라 그 태어난 내력을 알 수 없다고만 적지만, 배송지 주에 인용된 『조만전』과 곽반의 『세어』는 조숭이 본디 하후씨의 아들로 하후돈의 숙부였으니 조조와 하후돈은 사촌 형제라고 전합니다.

조조가 처음 군사를 일으키자 하후돈은 늘 비장으로 따라 싸웠습니다. 초평 원년(190) 조조가 분무장군의 일을 맡자 그의 사마가 되어 백마에 따로 주둔했고, 무제기는 그해 형양에서 진 조조가 하후돈 등과 함께 양주로 가서 군사를 모았다고 적습니다. 뒤에 절충교위가 되어 동군태수를 겸했습니다. 흥평 원년(194) 조조가 서주의 도겸을 치러 가며 그에게 복양을 맡겼는데, 장막이 등을 돌려 여포를 맞아들였습니다. 조조의 식구가 견성에 있었으므로 하후돈은 가벼운 차림으로 달려가다 여포와 마주쳐 싸웠고, 물러난 여포는 복양에 들어가 하후돈 군의 짐을 빼앗았습니다. 이어 여포가 보낸 장수들이 거짓으로 항복해 와 하후돈을 붙잡고 보화를 내놓으라 하자 군중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부장 한호는 군사를 진영 문에 세우고 여러 장수에게 제자리를 지키게 한 뒤, 인질범들을 꾸짖고 울면서 하후돈에게 「나라의 법을 어찌하겠습니까」 하고는 군사를 불러 그들을 쳐서 모두 베었습니다. 이 일을 들은 조조는 한호에게 「그대의 이 일은 만세의 법이 될 만하다」 하고, 앞으로 인질을 잡는 자가 있으면 인질을 돌보지 말고 함께 치라는 영을 내렸습니다. 순욱전은 견성에 이른 하후돈이 그날 밤 모반을 꾀한 수십 명을 베어 무리를 안정시켰다고 적습니다.

서주에서 돌아온 조조를 따라 여포를 칠 때 하후돈은 흐르는 화살에 맞아 왼눈을 다쳤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은 군중에서 그를 「눈먼 하후」라 불렀고, 그가 이를 싫어해 거울을 볼 때마다 성이 나 거울을 땅에 내던졌다고 전합니다. 다시 진류 · 제음태수를 겸하고 건무장군이 되어 고안향후에 봉해졌습니다. 큰 가뭄에 누리 떼까지 일자 태수수를 막아 방죽을 만들고, 몸소 흙을 지며 장수와 군사를 이끌고 벼농사를 권해 백성이 그 덕을 보았습니다. 이어 하남윤을 맡았습니다. 위진전은 그가 진류태수로 있을 때 잔치에 아내를 불러냈다가 위진이 바른 예가 아니라고 하자 노해 그를 붙잡았다가 곧 풀어 주었다고 적습니다.

건안 3년(198) 여포가 고순을 보내 소패의 유비를 치자 조조는 하후돈을 보내 구하게 했으나, 하후돈은 고순에게 졌습니다. 뒤에 유표가 유비를 북쪽으로 올려 보내자 하후돈이 그를 막았습니다. 이전전에 따르면 유비가 하루아침에 진영을 불사르고 물러나자, 이전은 까닭 없이 물러나니 반드시 복병이 있고 남쪽 길이 좁고 풀과 나무가 깊다며 말렸으나 하후돈은 듣지 않고 우금과 함께 뒤쫓다가 과연 복병을 만나 불리해졌습니다. 이전이 구하러 오자 유비가 물러갔고, 선주전은 이 싸움을 박망에서의 일로 적습니다. 조조가 하북을 평정할 때 하후돈은 대군의 뒤를 막았고, 건안 9년(204) 업이 깨지자 복파장군이 되어 하남윤을 그대로 맡으며 법규에 얽매이지 않고 형편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건안 12년(207) 조조는 그의 앞뒤 공을 모아 봉읍 1,800호를 더해 모두 2,500호가 되게 했습니다. 전주전에 따르면 본디 전주와 사이가 좋던 하후돈은 벼슬을 마다하는 전주를 조조의 뜻으로 달래러 갔으나, 전주가 눈물을 흘리며 끝내 받지 않았습니다.

건안 21년(216) 겨울 손권을 치러 나선 조조를 따랐다가, 이듬해 조조가 돌아갈 때 스물여섯 군을 거느리고 거소에 머물렀습니다. 조조는 그에게 기악과 이름난 광대를 내리며, 옛날 진나라의 위강은 융족과 화친한 공으로도 음악을 받았는데 하물며 장군이야 하는 영을 내렸습니다. 건안 24년(219) 조조는 마피에 머물 때 하후돈을 불러 늘 수레를 함께 탔고, 특히 가까이하고 귀하게 여겨 침실까지 드나들게 하니 여러 장수 가운데 견줄 이가 없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서』에 따르면 그때 여러 장수가 위나라의 벼슬을 받았으나 하후돈만 한나라의 벼슬에 있었으므로, 그는 신하로 대하지 않는 예를 받는 것이 옳지 않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조조는 「가장 높은 임금은 신하를 스승으로 삼고 그다음은 벗으로 삼는다 하니, 보잘것없는 위나라가 어찌 그대를 신하로 굽히겠소」 했으나, 하후돈이 굳이 청해 전장군이 되었습니다. 그 뒤 여러 군을 거느리고 수춘으로 돌아갔다가 소릉으로 옮겨 주둔했습니다.

연강 원년(220) 조비가 위왕의 자리에 오르자 대장군이 되었으나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제기는 그가 3월에 대장군이 되고 4월에 죽었다고 적고,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서』는 조비가 흰 옷을 입고 업의 동쪽 성문에 나가 곡했다고 전합니다. 그가 조조에게 한 말은 기록이 갈립니다. 『위씨춘추』는 하후돈이 한의 운이 이미 다했으니 하늘과 백성을 따르라고 권했다 하고, 『조만전』과 『세어』는 그가 먼저 촉을 멸하면 오가 따를 것이니 그 뒤에 순임금과 우임금의 길을 따르라 했으며 조조가 죽자 그 말을 뉘우치다 병이 나 죽었다고 합니다. 손성은 한의 벼슬을 부끄러워해 위의 인을 받기를 청한 하후돈을 들어 『세어』를 망령되다고 했습니다.

하후돈은 싸움터에 있으면서도 몸소 스승을 맞아 배웠고, 성품이 맑고 검소해 남는 재물이 있으면 곧 나누어 주고 모자라면 관에서 받아 쓰며 재산을 불리지 않았습니다. 시호는 충후이고 아들 하후충이 뒤를 이었습니다. 조비는 그의 공을 기려 봉읍 1,000호를 떼어 일곱 아들과 두 손자에게 관내후를 내렸고, 아우 하후렴과 아들 하후무는 일찍부터 따로 열후였습니다. 조조의 딸 청하공주가 하후무의 아내입니다. 청룡 원년(233) 명제는 그를 조인 · 정욱과 함께 조조의 사당 뜰에 모셔 제사 지내게 했습니다. 진수는 하후씨와 조씨가 대대로 혼인한 집안이라 하후돈 · 하후연 · 조인 · 조홍 등이 가까운 친척으로 그때 귀하게 쓰였고, 곁에서 공업을 도와 모두 힘을 보탰다고 평했습니다.

夏侯、曹氏,世爲婚姻,故惇、淵、仁、洪、休、尚、真等並以親舊肺腑,貴重於時,左右勳業,咸有効勞
하후씨와 조씨는 대대로 혼인한 집안이라, 하후돈 · 하후연 · 조인 · 조홍 등이 가까운 친척으로 귀하게 쓰이며 곁에서 공업을 도와 모두 힘을 보탰다『삼국지』 위서 제하후조전 평
惇雖在軍旅,親迎師受業。性清儉,有餘財輒以分施,不足資之於官,不治產業
하후돈은 군중에 있으면서도 몸소 스승을 맞아 배웠다. 맑고 검소해 남는 재물은 곧 나누어 주고, 모자라면 관에서 받아 쓰며 재산을 불리지 않았다『삼국지』 위서 하후돈전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5~79회

연의에서 하후돈은 제5회에 처음 나옵니다. 조조가 진류에서 의병을 모으자, 하후영의 후손으로 어려서 창과 봉을 익혔고 열네 살에 스승을 욕한 자를 죽이고 달아났던 하후돈이 족제 하후연과 함께 저마다 장사 천 명을 이끌고 옵니다. 연의는 조조의 아버지 조숭이 본디 하후씨의 아들이었으므로 두 사람이 본래 조조의 형제라고 못 박습니다. 제6회에서는 형양에서 여포에게 먼저 창을 들고 달려들었다가 밀려나고, 서영의 복병에 쫓기던 조조를 하후연과 함께 구하며 서영을 찔러 떨어뜨립니다.

제10회에서는 사냥을 나갔다가 거둔 전위를 조조에게 천거하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러 서주로 가는 조조의 선봉이 됩니다. 제11회와 제12회에서는 복양에서 여포와 맞서고, 제14회에서는 선봉으로 먼저 낙양에 이르러 헌제를 지키며 이각 · 곽사를 깨뜨립니다. 제18회에서 여포의 장수 고순을 쫓던 하후돈은 조성이 몰래 쏜 화살에 왼눈을 맞습니다. 급히 화살을 뽑자 눈알까지 딸려 나오고, 그는 「아비의 정기요 어미의 피이니 버릴 수 없다」 외치며 눈알을 삼킨 뒤 창으로 조성의 얼굴을 꿰뚫습니다. 제23회에서 예형은 조조의 장수들을 헐뜯으며 그를 「완체장군」이라 부릅니다.

제25회에서는 하비성의 관우를 싸움으로 꾀어내 토산에 가두는 데 앞장서고, 제28회에서는 부장 진기를 벤 관우를 쫓아가 맞붙었다가, 보내 주라는 조조의 공문을 든 사자가 잇달아 오고 장료가 와서 말리자 물러납니다. 제39회에서는 도독이 되어 우금 · 이전 · 하후란 · 한호와 군사 10만으로 신야를 치러 가며, 서서가 높이 산 제갈량을 풀과 티끌처럼 여긴다고 큰소리칩니다. 조운이 꾀어내는 것이니 복병을 조심하라는 한호의 말도 듣지 않고 뒤쫓다가, 박망파의 좁은 길에서 불길에 싸여 연기와 불을 무릅쓰고 달아납니다. 제40회에서는 스스로 몸을 묶고 조조 앞에 엎드려 죽기를 청하지만 조조는 그를 용서합니다. 제51회에서는 양양을 지키다가 제갈량이 보낸 거짓 병부에 속아 군사를 이끌고 나선 사이 관우에게 양양을 빼앗깁니다.

뒤에 하후돈은 제66회에서 한중의 장로를 먼저 치자고 하고, 제69회에서는 허도 밖을 지키다 경기 · 위황의 난을 누르며, 제72회에서는 조조에게서 「계륵」 이라는 암호를 받아 전합니다. 제78회에서 병이 깊은 조조가 그를 부르자, 궁문 앞에서 복황후 · 동귀인 · 동승 등이 검은 구름 속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쓰러져 병을 얻습니다. 제79회에서 조비가 고향 초현에 가 있을 때 대장군 하후돈이 위독하다는 말이 오고, 조비가 업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어 조비가 상복을 입고 후히 장사 지냅니다. 연의에서 하후돈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90조조가 분무장군의 일을 맡자 그의 사마가 되어 백마에 따로 주둔했습니다.하후씨 형제
  2. 194장막이 여포를 맞아들이자 견성으로 달려가다 거짓 항복한 적에게 붙잡혔으나 부장 한호 덕에 풀려났습니다.
  3. 194견성에 이르러 그날 밤 모반을 꾀한 수십 명을 베어 무리를 안정시켰습니다.
  4. 194여포를 치다 흐르는 화살에 왼눈을 다쳐 군중에서 「눈먼 하후」라 불렸습니다.
  5. 198고순에게 공격당한 유비를 구하러 갔으나 고순에게 졌습니다.
  6. 204업이 깨지자 복파장군이 되어 하남윤을 그대로 맡으며 법규에 얽매이지 않고 일을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7. 207앞뒤의 공으로 봉읍 1,800호를 더 받아 모두 2,500호가 되었습니다.
  8. 217손권을 치고 돌아가는 조조의 명으로 스물여섯 군을 거느리고 거소에 머물렀습니다.
  9. 219마피에서 조조와 늘 수레를 함께 탔고, 굳이 청해 위나라의 전장군이 되었습니다.
  10. 220조비가 위왕이 되자 대장군이 되었으나 그해 4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1. 233명제의 조서로 조인 · 정욱과 함께 조조의 사당 뜰에 모셔졌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우 하후렴 · 아들 하후충(뒤를 이음) · 하후무(청하공주의 남편) 등 · 손자 하후이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조공의 오른팔이 나간다!

말을 열며

하후원양이오. 한 눈으로도 충분히 보오.

되받으며

돌려 말하지 마시오. 나는 싫어하오.

말문이 막혀

…남은 눈마저 흐려지는가.

말문이 막혀

이깟 것으로 물러설까.

설전을 이기고

부모가 주신 것을 버릴 수 없어 삼켰소.

설전에 지고

…승상께 면목이 없구려.

이긴 뒤

한쪽 눈으로도 다 보인다.

진 뒤

…이 눈마저 흐려졌는가.

쓰러지며

눈 하나로도 아깝지 않았다.

같은 기치 아래

조조하후연서황학소허저조인전위문앙우금악진조진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