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연魏延

자 문장(文長) · 미상 ~ 234년 · 형주 의양군 · 유비 휘하

위연 초상

한중을 지키고 북벌의 선봉에 섰으나 양의와 다투다 베인 촉의 장수

능력치

통솔84무력92지력69정치46매력39

카드

공격력 6체력 5비용 4값어치 14직군 맹장
자오곡 호령
국면이 지날 때마다 · 맞을 때마다(반격 포함) 공격력 +1 (영구)
반골 속성
아군이 쓰러질 때마다 공격력 +1 (영구)

정사

출전 · 『삼국지』 촉서 위연전과 배송지 주의 『위략』 · 선주전 · 후주전 · 제갈량전과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마량전 · 동윤전과 배송지 주의 『양양기』 · 유염전 · 왕평전 · 비의전 · 강유전 · 양희전의 『계한보신찬』 · 『화양국지』 공손술유이목지 · 유후주지

위연은 자가 문장이며 의양 사람입니다. 『삼국지』 위연전은 그가 부곡(제 거느린 사병)을 이끌고 유비를 따라 촉에 들어가 여러 번 싸움에서 공을 세워 아문장군이 되었다고 적습니다. 『화양국지』는 건안 17년(212) 유비가 양회 · 고패를 벤 뒤 황충 · 탁응 · 위연 등을 앞세워 나아가게 했다고 적습니다.

건안 24년(219) 한중왕이 된 유비는 성도로 돌아가며 한중을 지킬 무거운 장수를 두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반드시 장비가 맡으리라 여겼고 장비도 속으로 그리 여겼으나, 유비는 위연을 뽑아 독한중 진원장군으로 삼고 한중태수를 겸하게 하니 온 군중이 놀랐습니다. 유비가 신하들을 모아 놓고 「그대에게 무거운 일을 맡기니 어찌하려는가」 하고 묻자, 위연은 「조조가 천하를 들어 온다면 대왕을 위해 막아 내고, 편장이 십만의 무리로 온다면 대왕을 위해 삼켜 버리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유비는 좋다고 했고 사람들은 모두 그 말을 장하게 여겼습니다. 유비가 황제가 된 장무 원년(221) 진북장군이 되었고, 건흥 원년(223) 도정후에 봉해졌습니다. 강유전은 위연이 한중의 여러 둔영에 군사를 채워 적을 들이지 않았고 뒤에 왕평도 이 법으로 조상을 막았다고 적는데, 강유는 이 방비가 『주역』의 「겹문」 뜻에 맞으나 막을 뿐 큰 이득이 없다며 바꾸었습니다.

건흥 5년(227) 제갈량이 한중에 머물자 위연은 독전부가 되어 승상사마와 양주자사를 겸했습니다. 이듬해 기산으로 나설 때 사람들은 모두 위연 · 오의 같은 노장을 선봉으로 꼽았으나 제갈량은 마속을 뽑았습니다. 건흥 8년(230) 제갈량은 위연을 서쪽 강족의 땅으로 들여보냈고, 위연은 위나라 후장군 비요와 옹주자사 곽회를 양계에서 크게 깨뜨려 전군사 · 정서대장군이 되고 가절을 받아 남정후로 올랐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한진춘추』는 건흥 9년(231) 노성에서 사마의와 장합이 쳐 오자 제갈량이 위연 · 고상 · 오반을 보내 크게 깨뜨리고 갑옷 입은 머리 3천을 베었다고 적습니다.

위연은 제갈량을 따라 나설 때마다 군사 1만을 얻어 길을 달리해 동관에서 만나기를 한신의 옛일처럼 하자고 청했으나, 제갈량은 이를 누르고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위연은 늘 제갈량이 겁이 많다고 하며 제 재주를 다 쓰지 못함을 한탄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은 안서장군 하후무가 장안을 지킬 때 위연이 「하후무는 어리고 임금의 사위라 겁이 많고 꾀가 없다」며 정예병 5천과 군량을 질 5천을 얻어 포중에서 자오곡으로 나가면 열흘이 안 되어 장안에 닿으리라 했으나, 제갈량은 위태롭다 여겨 평탄한 길로 농우를 차지하는 편이 낫다며 쓰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위연은 군사를 잘 기르고 남보다 용맹했으나 성품이 거만해 당시 사람들이 모두 그를 피해 낮추었습니다. 오직 장사 양의만이 그에게 양보하지 않아 둘은 물과 불 같았습니다. 비의전은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다툴 때마다 위연이 때로 칼을 들어 양의에게 겨누고 양의는 눈물을 줄줄 흘렸으며, 비의가 그 사이에 들어가 타일러 제갈량이 살아 있는 동안 두 사람을 다 쓸 수 있었다고 적습니다. 건흥 10년(232)에는 유염과도 사이가 나빴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양양기』에 따르면 오나라의 손권은 비의에게 「양의와 위연은 소치는 아이 같은 소인이라, 하루아침에 제갈량이 없으면 반드시 화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건흥 12년(234) 제갈량이 북곡구로 나가자 위연은 선봉이 되었습니다. 그때 머리에 뿔이 돋는 꿈을 꾸자 해몽가 조직은 싸우지 않고도 적이 무너질 조짐이라고 속여 말하고는, 남에게는 뿔이라는 글자가 칼 아래 쓸 용 자를 쓴 꼴이라 머리 위에 칼을 쓰니 몹시 흉하다고 했습니다. 가을 제갈량은 병이 깊어지자 양의 · 비의 · 강유 등과 몰래 죽은 뒤 군을 물릴 차례를 정해, 위연에게 뒤를 끊게 하고 강유를 그다음에 두며 위연이 명을 따르지 않으면 군은 그대로 떠나라고 했습니다. 제갈량이 죽자 죽음을 숨긴 채 양의가 비의를 보내 뜻을 떠보게 하니, 위연은 「승상은 돌아가셨어도 나는 여기 있으니 여러 군을 거느리고 적을 치겠다. 어찌 한 사람이 죽었다고 천하의 일을 그만두겠는가. 또 위연이 어떤 사람이기에 양의의 지휘를 받아 뒤를 끊는 장수가 되겠는가」라고 했습니다. 비의는 장사는 문관이라 군사 일을 잘 모르니 명을 어기지 않게 하겠다고 속이고 말을 달려 떠났고, 위연은 곧 뉘우쳤으나 쫓을 수 없었습니다.

양의 등이 제갈량이 정해 둔 대로 군영마다 차례로 물러가려 하자, 크게 노한 위연은 제 군사를 이끌고 먼저 남쪽으로 돌아가며 지나는 곳의 잔도를 불살랐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상대가 반역했다고 표를 올려 하루 사이에 급한 글이 번갈아 이르자, 후주가 시중 동윤과 유부장사 장완에게 물었고 두 사람은 모두 양의를 믿고 위연을 의심했습니다. 양의 등이 산을 베어 길을 내며 밤낮으로 뒤따르자, 먼저 닿은 위연은 남곡구를 차지하고 군사를 보내 맞받아쳤습니다. 앞에서 막아선 하평(왕평)이 「공께서 돌아가시어 몸이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너희가 어찌 감히 이러느냐」고 꾸짖자, 위연의 군사들은 잘못이 위연에게 있음을 알고 모두 흩어졌습니다. 위연은 아들 몇과 한중으로 달아났고, 양의가 보낸 마대가 쫓아가 베었습니다. 양의는 바쳐 온 머리를 일어나 짓밟으며 「못난 놈, 또 나쁜 짓을 할 수 있겠느냐」고 했고 위연의 삼족을 멸했습니다.

진수는 「위연의 뜻을 헤아려 보면 북쪽으로 위에 항복하지 않고 남쪽으로 돌아온 것은 양의 등을 없애려 했을 뿐이다. 평소 장수들과 뜻이 맞지 않았으니 당시의 여론이 반드시 자신을 제갈량의 대신으로 삼으리라 바랐다. 본뜻이 이러했으니 배반하려 한 것은 아니다」라고 적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은 제갈량이 위연에게 제 일을 대신 맡겼는데 양의가 해를 입을까 두려워 위연이 북쪽 위에 붙으려 한다고 떠들며 쳤고, 위연은 본디 그럴 마음이 없어 싸우지 않고 달아났다고 적지만, 배송지는 이것이 적국에서 전해 들은 말이라 본전과 견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양희는 『계한보신찬』에서 「문장은 굳세고 거칠었으나 어려울 때 명을 받아 밖의 적을 꺾고 나라의 경계를 지켰다. 화합하지 못해 절개를 잊고 난을 말했으니 그 끝을 미워하고 처음을 아까워하는 것은 실로 그 성품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진수는 평에서 위연이 용맹과 지략으로 쓰였으나 화를 부르고 허물을 산 것은 모두 스스로에게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覽其舉措,跡其規矩,招禍取咎,無不自己也
그 하는 일을 살피고 몸가짐을 따져 보면, 화를 부르고 허물을 산 것이 모두 스스로에게서 나왔다『삼국지』 촉서 유팽요이유위양전 평
原延意不北降魏而南還者,但欲除殺儀等
위연의 뜻을 헤아려 보면, 북쪽으로 위에 항복하지 않고 남쪽으로 돌아온 것은 양의 등을 없애려 했을 뿐이다『삼국지』 촉서 위연전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41회 · 제53회 · 제55~56회 · 제60~65회 · 제70~73회 · 제81회 · 제85~105회

연의에서 위연은 제41회에 처음 나옵니다. 조조에게 쫓긴 유비가 양양성 아래에 이르렀으나 채모와 장윤이 화살을 쏘아 막자, 키가 여덟 자에 얼굴이 대추처럼 붉은 의양 사람 위연이 두 사람을 나라를 판 도적이라 꾸짖으며 문지기를 베고 성문을 열어 유비를 부릅니다. 유비가 백성을 다치게 할까 하여 들어가지 않고 떠나자, 문빙과 한나절을 싸우다 군사를 다 잃은 위연은 유비를 찾지 못해 장사태수 한현에게 몸을 맡깁니다.

제53회에서 한현이 관우와 싸우고 돌아온 황충을 의심해 베려 하자, 위연은 황충을 구하고 백성을 이끌어 한현을 두 동강 낸 뒤 관우에게 항복합니다. 제갈량은 「녹을 먹고 주인을 죽였으니 불충이요, 그 땅에 살며 땅을 바쳤으니 불의」라며 「뒤통수에 반골이 있어 뒷날 반드시 배반할 것」이라고 목을 베려 하지만, 유비가 항복한 이들이 저마다 불안해한다며 말려 살려 줍니다.

익주를 칠 때는 제61회 부성의 잔치에서 방통의 뜻대로 칼춤을 추며 유장을 노리다 유비에게 제지당하고, 제62회에서는 황충이 늙었다며 공을 다투다 몰래 먼저 떠나 냉포의 영채를 치다 말에서 떨어져 죽을 뻔한 것을 황충이 구해 주고, 달아나는 냉포를 사로잡아 죄를 씻습니다. 제72회 한중에서는 조조를 활로 쏘아 인중을 맞혀 앞니 두 개를 부러뜨리고, 제73회에서 한중왕이 된 유비가 그를 한중태수로 삼습니다.

제갈량의 남쪽 원정에서는 제90회에서 명을 받아 보름 동안 열다섯 번을 지고 영채 일곱을 버려 올돌골의 등갑군을 반사곡으로 끌어들여 불태우게 합니다. 제92회 첫 북벌에서는 하후무가 부잣집 자제라 겁이 많고 꾀가 없다며 정예병 5천으로 자오곡을 지나 열흘 안에 장안에 닿겠다고 하지만, 제갈량이 만전의 계책이 아니라며 쓰지 않자 못마땅해합니다.

제103회에서는 상방곡으로 사마의를 꾀어 들이는 미끼가 되지만 큰비에 불이 꺼져 사마의가 빠져나가고, 오장원에서 제갈량이 목숨을 늘리려 등을 밝혀 빌던 여섯째 밤에 적이 왔다고 급히 뛰어들다 주등을 꺼뜨립니다. 제104회에서 머리에 뿔이 돋는 꿈을 꾸자 조직은 기린과 창룡의 뿔이라 크게 길하다고 풀이해 주고 뒤에서는 흉하다고 말합니다. 제갈량이 죽자 위연은 장사에 지나지 않는 양의 밑에서 뒤를 끊을 수 없다며 마대를 끌어들여 남쪽으로 갑니다.

제105회에서 위연은 잔도를 불사르고 남곡에 진을 쳐 길을 막지만, 하평이 승상의 뼈와 살이 아직 식지 않았다고 꾸짖으며 촉의 군사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자 군사가 태반 흩어집니다. 마대와 함께 남정으로 간 위연 앞에 양의가 나와, 제갈량이 남긴 비단 주머니의 꾀대로 말 위에서 「누가 감히 나를 죽이겠느냐」고 세 번 외치면 한중을 바치겠다고 합니다. 위연이 크게 웃으며 외치는 첫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뒤에 있던 마대가 「내가 너를 죽이겠다」며 그를 벱니다. 후주는 그의 지난 공을 생각해 관을 내려 장사 지내게 합니다. 연의에서 위연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12유비가 양회 · 고패를 벤 뒤 황충 · 탁응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앞서 나아갔습니다.
  2. 219모두 장비를 꼽았으나 유비가 그를 뽑아 독한중 진원장군 · 한중태수로 삼았습니다.
  3. 219조조가 오면 막고 편장이 십만으로 오면 삼키겠다고 답해 사람들이 장하게 여겼습니다.
  4. 221유비가 황제가 되자 진북장군이 되었습니다.
  5. 223도정후에 봉해졌습니다.
  6. 227제갈량이 한중에 머물자 독전부가 되어 승상사마와 양주자사를 겸했습니다.
  7. 228사람들이 선봉으로 위연 · 오의를 꼽았으나 제갈량은 마속을 뽑았습니다.
  8. 230강족의 땅에 들어가 양계에서 곽회 · 비요를 깨뜨리고 정서대장군 · 남정후가 되었습니다.양계의 싸움
  9. 231『한진춘추』에 따르면 노성에서 고상 · 오반과 함께 위군을 크게 깨뜨렸습니다.
  10. 232유염과 사이가 나빠 제갈량이 유염을 꾸짖었습니다.
  11. 234제갈량을 따라 북곡구로 나가 선봉이 되었고, 머리에 뿔이 돋는 꿈을 꾸었습니다.
  12. 234제갈량이 죽은 뒤 뒤를 끊으라는 차례를 따르지 않고 먼저 남쪽으로 가며 잔도를 불살랐습니다.오장원의 별
  13. 234남곡구에서 군사가 흩어져 한중으로 달아나다 마대에게 베였고 삼족이 멸해졌습니다.위연의 최후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들 몇 사람(이름은 전하지 않음)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자오곡을 아는 자다.

말을 열며

위문장이오. 뒤통수 이야기는 그만두시오.

되받으며

말이 길면 싸움이 늦어지오.

말문이 막혀

…내 뜻을 알아주는 자가 없구려.

말문이 막혀

이래서 답답하다는 것이오.

설전을 이기고

자오곡으로 갔으면 장안은 벌써 내 것이오.

설전에 지고

…누가 감히 나를 죽이겠는가.

이긴 뒤

내 계책이 옳았소!

진 뒤

…내 계책을 들었더라면.

쓰러지며

누가 감히 나를… 아.

같은 기치 아래

관우제갈량조운장비방통장완서서왕평관색마속법정이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