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楊儀

자 위공(威公) · 미상 ~ 235년 · 형주 양양군 · 유비 휘하

양의 초상

제갈량 사후 위연을 제거했으나 막말과 질투로 자멸한 속 좁은 행정관

능력치

통솔68무력40지력82정치79매력19

카드

공격력 3체력 3비용 2값어치 8직군 모사
둔전 비용 1
다음 세 국면 지휘력 +1

정사

출전 · 『삼국지』 촉서 양의전과 배송지 주의 『초국선현전』 · 위연전 · 후주전 · 비의전 · 장완전 · 제갈량전과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동윤전과 배송지 주의 『양양기』 · 양희전의 『계한보신찬』 · 『진서』 선제기 · 『화양국지』 유선주지 · 유후주지

양의는 자가 위공이며 양양 사람입니다. 건안 연간에 형주자사 부군의 주부였으나 부군을 등지고 양양태수 관우를 찾아갔고, 관우는 그를 공조로 삼아 서쪽의 유비에게 사자로 보냈습니다. 유비는 그와 군사와 나라의 계책, 정치의 잘잘못을 이야기해 보고 크게 기뻐하여 좌장군 병조연으로 삼았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초국선현전』은 그의 형 양려가 어려서부터 덕행이 있어 강남의 으뜸으로 꼽혔고 주와 군과 공들이 불러도 나가지 않았으나 열일곱에 죽어, 고을 사람들이 그를 덕행 양군이라 불렀다고 적습니다.

건안 24년(219)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양의는 상서로 발탁되었습니다. 유비가 황제가 되어 오를 치러 나설 무렵(221) 상서령 유파와 사이가 나빠, 위나라 땅인 홍농의 태수라는 이름만 받는 자리로 밀려났습니다. 건흥 3년(225) 승상 제갈량은 그를 참군으로 삼아 승상부의 일을 맡기고 남쪽 원정에 데려갔으며, 건흥 5년(227) 양의는 제갈량을 따라 한중으로 갔고 건흥 8년(230) 장사가 되어 수군장군이 더해졌습니다.

제갈량이 여러 번 군을 낼 때마다 양의는 늘 부대를 나누는 계획을 짜고 군량을 헤아렸는데, 오래 생각하지 않고 잠깐 사이에 끝냈으며 군대의 지휘와 절차가 모두 양의의 손에서 갖추어졌습니다. 제갈량은 양의의 재간을 깊이 아끼고 위연의 날쌔고 용맹함에 기대었기에, 두 사람이 화목하지 못한 것을 늘 한스러워하면서도 어느 한쪽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삼국지』 비의전은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다툴 때마다 위연이 때로 칼을 들어 겨누면 양의는 눈물을 줄줄 흘렸고, 비의가 그 사이에 들어가 타일러 제갈량이 살아 있는 동안 둘을 다 쓸 수 있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양양기』에 따르면 손권이 비의에게 「양의와 위연은 소치는 아이 같은 소인이라 제갈량이 없으면 반드시 화란이 될 것」이라 하자, 곁에 있던 동회가 두 사람의 불화는 사사로운 분노에서 일어났을 뿐 경포 · 한신처럼 다루기 어려운 마음은 없다고 답하게 일렀습니다.

건흥 12년(234) 양의는 제갈량을 따라 곡구에 나가 주둔했고, 제갈량은 적과 맞선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제갈량은 병이 깊어지자 양의 · 비의 · 강유 등과 몰래 물러갈 차례를 정해 두었고, 양의는 죽음을 숨긴 채 비의를 보내 위연의 뜻을 떠보았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한진춘추』는 양의 등이 군을 정돈해 나오자 사마의가 뒤쫓았는데, 강유가 양의에게 깃발을 돌리고 북을 울려 맞설 듯하게 하니 사마의가 물러났고 양의는 진을 지어 떠나 골짜기에 든 뒤에야 발상했다고 적습니다. 양의가 정해 둔 대로 군을 차례로 물리자 위연은 먼저 남쪽으로 가며 잔도를 불태웠고, 두 사람은 서로 상대가 반역했다고 표를 올렸는데 조정의 장완과 동윤은 양의를 믿었습니다. 양의 등은 산을 베어 길을 내며 밤낮으로 뒤따랐고, 남곡구에서 하평을 앞세워 위연의 군사를 흩어지게 했습니다. 양의는 마대를 보내 달아나는 위연을 쫓아 베게 하고, 바쳐 온 머리를 일어나 짓밟으며 「못난 놈, 또 나쁜 짓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한 뒤 위연의 삼족을 멸했습니다.

군을 거느리고 돌아온 데다 위연까지 친 양의는 공이 가장 크니 제갈량을 대신해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여겼고, 도위 조정을 불러 『주역』으로 점을 치게 해 가인괘를 얻자 말없이 언짢아했습니다. 그러나 제갈량은 평소 양의의 성품이 성급하고 좁다 하여 뜻을 장완에게 두고 있었습니다. 장완전은 제갈량이 몰래 후주에게 「신이 불행하면 뒷일은 장완에게 맡기소서」라는 표를 올렸다고 적습니다. 장완이 상서령 · 익주자사가 되었고, 돌아온 양의는 중군사가 되었으나 거느린 것 없이 한가할 뿐이었습니다.

처음 양의가 유비의 상서였을 때 장완은 상서랑이었고, 뒤에 둘 다 승상의 참군과 장사를 지냈으나 양의는 늘 원정을 따라다니며 힘든 일을 맡았습니다. 벼슬도 먼저이고 재능도 낫다고 여긴 양의는 원망과 분노를 낯빛과 말에 드러냈고, 사람들은 그가 말을 삼가지 않는 것을 두려워해 가까이하지 않았으며 후군사 비의만이 찾아가 위로했습니다. 양의는 비의에게 원망을 늘어놓다가 「지난날 승상이 돌아가셨을 때 내가 군을 들어 위나라로 갔더라면 세상살이가 이처럼 영락했겠는가. 뒤늦게 뉘우쳐도 되돌릴 수 없다」고 했고, 비의는 이 말을 몰래 표로 올렸습니다.

건흥 13년(235) 정월 양의는 벼슬을 빼앗겨 서인이 되고 한가군으로 옮겨졌습니다. 옮겨 간 곳에서도 다시 글을 올려 조정을 헐뜯었는데 말뜻이 몹시 격했으므로, 조정은 한가군에 명해 그를 잡아들이게 했고 양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아내와 자식은 촉으로 돌아왔습니다. 『화양국지』는 이 일들을 모두 건흥 13년에 적습니다. 양희는 『계한보신찬』에서 「위공은 성급하고 좁아 뭇사람과 달랐다. 한가할 때는 이치에 닿았으나 몰리면 남을 해치고 스스로 다쳤으니, 순함을 버리고 흉함에 든 것은 『주역』이 말한 바와 같다」고 했습니다. 진수는 평에서 양의가 맡은 일을 잘해 이름이 났으나 화를 부르고 허물을 산 것은 모두 스스로에게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楊儀以當官顯,劉琰舊仕,並咸貴重。覽其舉措,跡其規矩,招禍取咎,無不自己也
양의는 맡은 일을 잘해 이름이 났고 유염은 오랜 신하라 모두 귀하게 쓰였으나, 하는 일을 살피면 화를 부르고 허물을 산 것은 모두 스스로였다『삼국지』 촉서 유팽요이유위양전 평
威公狷狹,取異眾人;閒則及理,逼則傷侵
위공은 성급하고 좁아 뭇사람과 달랐다. 한가할 때는 이치에 닿았으나 몰리면 남을 해치고 스스로 다쳤다『삼국지』 촉서 양희전의 『계한보신찬』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91회 · 제95회 · 제97~98회 · 제100~102회 · 제104~105회

연의에서 양의는 제91회 제갈량이 첫 북벌을 앞두고 장수들의 자리를 매길 때 영장사 수군장군으로 처음 이름이 나옵니다. 제95회에서 마속이 가정에서 길목을 버리고 산 위에 진을 쳤다는 것을 안 제갈량에게 자신이 마속을 대신하러 가겠다고 나서지만, 떠나기도 전에 가정을 잃었다는 소식이 옵니다. 제97회에서는 두 번째 출사표를 들고 성도로 가 후주에게 올립니다. 제100회에서는 군량을 열흘 늦게 댄 구안을 베려는 제갈량에게 이엄이 쓰는 사람이고 군량이 서천에서 나오니 베면 뒤에 군량을 보낼 사람이 없다고 말려 곤장만 치게 하고, 물러갈 때 아궁이를 늘리는 까닭을 묻습니다. 제101회에서는 군사를 두 무리로 나누어 백 일마다 번갈아 싸우게 하자고 하고, 마충과 함께 목문도에 궁노수를 숨겨 두는 일을 맡습니다. 제102회에서는 검각에서 군량을 실어 오기 어렵다고 걱정하다 목우와 유마를 보게 됩니다.

제104회에서 병이 깊어진 제갈량은 양의에게 비단 주머니를 주며 자신이 죽으면 위연이 반드시 배반할 것이니 그와 맞설 때 열어 보라 하고, 죽은 뒤 발상하지 말고 군영마다 천천히 물러가며 사마의가 쫓아오면 깎아 둔 나무 인형을 수레에 앉혀 내보이라고 맡깁니다. 제갈량이 죽자 양의는 위연이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 강유에게 뒤를 끊게 하며 영구를 모시고 먼저 물러갑니다. 제105회에서 위연이 잔도를 불사르고 길을 막자 양의는 후주에게 표를 올리고 하평을 앞세워 샛길로 뒤를 돕니다. 남정 앞에서 비단 주머니를 연 양의는 위연에게 「누가 감히 나를 죽이겠느냐」고 세 번 외치면 한중을 바치겠다고 하고, 위연이 첫마디를 외치자 뒤에 있던 마대가 그를 벱니다.

성도로 돌아온 양의는 스스로 몸을 묶고 죄를 청하지만, 후주는 승상의 가르침대로 영구를 모셔 오고 위연을 없앤 공을 기려 중군사로 삼습니다. 그러나 벼슬이 장완보다 아래가 되자 비의에게 「승상이 처음 돌아가셨을 때 내가 온 군을 들어 위에 항복했다면 이처럼 쓸쓸했겠는가」라고 원망합니다. 비의가 이를 몰래 아뢰자 후주는 노해 그를 옥에 가두고 베려 하지만, 장완이 그간 승상을 따라 세운 공을 들어 서인으로 내치자고 합니다. 서인으로 쫓겨난 양의는 부끄러워 스스로 목을 찔러 죽습니다. 연의에서 양의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19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상서로 발탁되었습니다.
  2. 221상서령 유파와 사이가 나빠 홍농태수라는 이름만 받는 자리로 밀려났습니다.
  3. 225제갈량의 참군이 되어 승상부의 일을 맡고 남쪽 원정에 따라갔습니다.
  4. 227제갈량을 따라 한중으로 갔습니다.
  5. 230장사가 되고 수군장군이 더해져, 부대를 나누고 군량을 헤아리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6. 234제갈량이 죽자 정해 둔 대로 군을 물리고 마대를 보내 위연을 베게 했습니다.공을 세우고 원망을 얻다
  7. 234제갈량을 대신하리라 여겼으나 장완이 상서령이 되고 자신은 거느린 것 없는 중군사가 되었습니다.
  8. 235비의에게 한 원망의 말이 알려져 서인이 되고 한가군으로 옮겨졌습니다.
  9. 235옮겨 간 곳에서 다시 글을 올려 헐뜯다가 잡아들이라는 명이 내리자 스스로 죽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형 양려 · 아내와 자식(이름은 전하지 않음)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장부는 내가 쥔다.

말을 열며

장부의 일은 셈이 맞아야 하는 법이오.

되받으며

군량과 문서를 다루는 사람이오. 어긋남은 없소.

말문이 막혀

…내 공을 알아주는 자가 없구려.

말문이 막혀

셈이 어디서 틀렸는가.

설전을 이기고

뒤를 맡은 자가 판을 마무리하는 법이오.

설전에 지고

…차라리 그때 위로 갈 것을.

이긴 뒤

내 몫은 다 했소.

진 뒤

…이 혀가 또 앞섰구려.

쓰러지며

혀가… 나를 죽였구나.

같은 기치 아래

관우제갈량조운장비위연방통장완서서왕평관색마속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