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사司馬師

자 자원(子元) · 208년 ~ 255년 · 사례 하내군 온현 · 사마의 휘하

사마사 초상

조위의 황제를 폐위하며 사마씨 가문의 권력을 확고히 다진 냉철한 정치가

능력치

통솔79무력64지력88정치84매력81

카드

공격력 4체력 4비용 4값어치 12직군 모사
화계 비용 3
적 전체에게 2 피해
역계 비용 3
비밀 · 적이 일부 피해 책략을 쓸 때 · 그 책략이 적 쪽으로 되돌아 걸린다

정사

출전 · 『진서』 경제기 · 선제기 · 문제기 · 후비전 · 문육왕전 · 『삼국지』 위서 삼소제기와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위서』 · 『위략』 · 『위씨춘추』 · 위서 하후현전 · 부하전과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관구검전과 배송지 주 · 오서 제갈각전

사마사는 자가 자원이며 사마의의 맏아들로, 집안은 하내군 온현 사람입니다. 어머니 장춘화는 그와 아우 사마소 · 사마간을 낳았습니다. 『진서』 경제기는 그가 풍채가 있고 침착하고 굳세며 큰 꾀가 많았다고 하고, 젊어서부터 좋은 이름이 나 하후현 · 하안과 이름을 나란히 했다고 적습니다. 하안은 늘 「오직 기미를 아는 이만이 천하의 일을 이룰 수 있으니, 사마자원이 그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위의 경초 연간에 산기상시가 되어 여러 번 옮겨 중호군에 이르렀습니다. 정시 8년(247) 어머니가 죽자 상을 치르며 지극한 효로 이름났습니다.

『진서』 후비전에 따르면 첫 아내 하후휘는 정남대장군 하후상의 딸로, 식견이 있어 사마사가 일을 꾸밀 때마다 미리 함께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남편이 위의 순수한 신하가 아님을 알았고 어머니가 위의 덕양향주인 조씨였으므로 사마사는 그녀를 깊이 꺼렸으며, 청룡 2년(234) 그녀는 끝내 짐독으로 죽었습니다. 나이 스물넷이었고 딸만 다섯을 두었습니다. 사마사는 이어 오질의 딸을 맞았다가 내쳤고, 다시 양휘유를 맞았으나 아들은 없었습니다.

가평 원년(249) 사마의는 조상을 벨 깊은 꾀와 비밀스러운 계책을 오직 사마사와만 몰래 짰고 사마소는 알지 못했습니다. 거사 전날 저녁에야 사마소에게 알리고 사람을 시켜 살펴보게 하니, 사마사는 여느 때처럼 잠들었으나 사마소는 자리에 편히 눕지 못했습니다. 새벽에 사마사가 사마문에 군사를 모아 안팎을 진정시키고 진을 매우 정연하게 치자 사마의는 「이 아이가 끝내 해낼 만하구나」 했습니다. 그가 몰래 길러 민간에 흩어 둔 죽음을 무릅쓸 무사 3천이 이날 하루아침에 모였으나 아무도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몰랐습니다. 일이 평정되자 장평향후에 봉해져 식읍 천 호를 받았고 곧 위장군이 더해졌습니다.

가평 3년(251) 사마의가 죽자 의논하는 이들이 모두 「이윤이 죽자 이척이 일을 이었다」고 하여, 천자는 그를 무군대장군 · 녹상서사로 삼아 정사를 보필하게 했습니다. 이듬해(252) 정월 대장군이 되어 시중 · 지절 · 도독중외제군 · 녹상서사를 더했고, 제도를 고치자는 이에게는 군사의 일이 아니면 세 조상의 법도를 함부로 고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해 12월 오를 친 위군이 동관에서 제갈각에게 크게 졌습니다. 『한진춘추』에 따르면 조정이 장수들을 내치려 하자 그는 「이는 내 허물이니 장수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하며 모두 용서하고 감군이던 아우 사마소의 작위만 깎았습니다. 습착치는 패배를 제 허물로 삼아 업이 오히려 높아졌다며 지혜롭다고 했습니다.

가평 5년(253) 5월 오의 태부 제갈각이 신성을 에우자, 조정은 그가 회수와 사수 쪽을 노릴까 걱정했으나 사마사는 그가 합비에 힘을 모을 것이라 했고 과연 그대로였습니다. 관구검과 문흠이 싸우기를 청하자 그는 「제갈각은 깊이 들어와 죽을 땅에 군을 던졌으니 그 칼끝을 당하기 쉽지 않고, 신성은 작아도 굳어 쳐서 떨어뜨리지 못할 것」이라며 보루를 높여 적을 지치게 했습니다. 몇 달 사이 제갈각은 죽거나 다친 이가 태반이었고, 『삼국지』 제갈각전은 오군에 더위로 설사와 부종을 앓는 이가 태반이었다고 적습니다. 물러나는 제갈각을 문흠이 크게 깨뜨려 1만여 목을 베었습니다.

가평 6년(254) 봄 중서령 이풍이 황후의 아버지 장집 등과 꾀해 태상 하후현에게 그의 자리를 맡기려 했습니다. 『삼국지』 하후현전은 그들이 귀인을 책봉하는 날 대장군을 베려 했다고 적습니다. 사마사는 몰래 이를 알고 사인 왕선을 보내 수레로 이풍을 데려와 꾸짖었고, 화가 미칠 줄 안 이풍이 험한 말을 퍼붓자 용사를 시켜 칼고리로 쳐 죽였습니다. 하후현 · 장집 등은 붙잡혀 모두 삼족이 멸해졌고, 3월 황후 장씨가 폐해졌습니다. 천자가 이 일로 마음을 놓지 못하자 사마사도 난이 날까 걱정해 몰래 폐립을 꾀했습니다. 9월 황제가 정사를 돌보지 않고 광대들과 놀며 인륜을 어지럽혔다는 태후의 영이 내리자, 그는 신하들을 모아 눈물을 흘리며 「태후의 영이 이러하니 여러분은 왕실을 어찌하겠소」 했고, 신하들은 이윤과 곽광의 옛일을 들어 명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황제의 옥새와 인끈을 거두고 제왕으로 돌려보내 하내의 중문에 머물게 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은 태후가 대장군을 만나 할 말이 있다고 하자 그가 보낸 곽지가 「어찌 뵐 수 있겠습니까, 옥새나 빨리 내주십시오」 하고 막았다고 적습니다. 사마사는 팽성왕 조거를 세우려 했으나 태후가 고귀향공 조모를 고집하자 굳이 다투다 따랐고, 새 천자가 내린 상국의 자리는 굳이 사양했습니다.

정원 2년(255) 정월 진동장군 관구검과 양주자사 문흠이 태후의 영을 꾸며 군사를 일으켰고, 2월 6만 무리로 회수를 건넜습니다. 배송지 주에 실린 두 사람의 표는 사마사의 죄를 열하나로 들었습니다. 장수들을 보내자는 의논이 많았으나 왕숙 · 부하 · 종회는 몸소 나서기를 권했습니다. 『한진춘추』는 이때 그가 눈의 혹을 갓 째어 상처가 심했는데, 장수들이 지면 대세를 잃는다는 부하의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병든 몸을 수레에 싣고라도 동쪽으로 가겠다」고 했다고 적습니다. 그는 중군 보병과 기병 10여만을 거느리고 나가 보루를 깊고 높게 하고는 오래 버티면 싸우지 않고 이긴다고 했고, 연주자사 등애를 낙가로 보내 약한 척 적을 꾀었습니다. 등애를 치러 온 문흠과 낙가에서 맞닥뜨리자, 열여덟 살로 용맹이 삼군에 으뜸이던 문흠의 아들 문앙이 세 번 북을 치고 고함을 질렀으나 문흠이 응하지 못했습니다. 사마사는 「한 번 북을 치면 기운이 일고 두 번이면 쇠하고 세 번이면 다한다」며 날랜 군사로 뒤쫓아 크게 깨뜨렸고, 문흠은 오로 달아났으며 관구검은 안풍진 도위에게 베였습니다.

『진서』는 앞서 그의 눈에 혹이 있어 의원에게 째게 했는데, 문앙이 쳐들어오자 놀라 눈알이 튀어나왔다고 적습니다. 그는 군사들이 두려워할까 이불을 덮어쓰고 물어뜯으며 아픔을 견뎌 곁의 사람들도 몰랐습니다. 윤달에 병이 깊어지자 아우 사마소에게 여러 군을 거느리게 했고, 신해일 허창에서 죽으니 나이 마흔여덟이었습니다. 시호는 충무였습니다. 진나라가 세워지자 경왕으로, 조카 사마염이 선양을 받은 뒤에는 경황제로 높여졌고 능은 준평, 묘호는 세종이었습니다. 아들이 없어 사마소의 아들 사마유가 그의 뒤를 이었습니다. 『진서』의 사관은 「세종(사마사)은 밝은 꾀로 기틀을 열었고 태조(사마소)는 뛰어난 재주로 일을 이루었다」고 평했고, 찬에서는 「세종이 뒤를 이으니 나라의 권세가 나뉘지 않았고 삼천의 무사가 구름처럼 따랐다」고 했습니다.

世宗以睿略創基,太祖以雄才成務
세종(사마사)은 밝은 꾀로 기틀을 열었고, 태조(사마소)는 뛰어난 재주로 일을 이루었다『진서』 경제기 · 문제기 끝의 사관의 평
惟幾也能成天下之務,司馬子元是也
오직 기미를 아는 이만이 천하의 일을 이룰 수 있으니, 사마자원이 그 사람이다『진서』 경제기에 실린 하안의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94회 · 제102~104회 · 제106~110회 · 제119회

연의에서 사마사는 제94회에 사마의의 맏아들로 처음 나옵니다. 자는 자원이고 아우 사마소와 함께 큰 뜻을 품고 병서에 밝았다고 소개되며, 맹달의 모반을 안 아버지에게 표를 올려 천자에게 아뢰라고 했다가 「성지를 기다리면 한 달이 걸린다」는 대답을 듣습니다. 제102회에서는 정문의 글만 믿고 몸소 촉의 진영을 치려는 아버지를 말려 다른 장수를 먼저 보내게 하고, 제103회에서는 촉군이 위수 가에서 위의 백성과 섞여 둔전하는 것을 걱정하며, 위연을 쫓다 아버지 · 아우와 함께 상방곡의 불길에 갇힙니다. 제106회에서는 양평에서 아우와 함께 공손연의 길을 막고, 이승 앞에서 병든 척한 아버지가 두 아들을 거느리고 조상을 치러 나섭니다.

제107회 끝에서 연의는 그를 둥근 얼굴에 큰 귀, 왼눈 아래 검은 혹이 있고 혹 위에 검은 털이 수십 가닥 난 표기장군으로 그립니다. 강유의 퇴로를 막았다가 세 합 만에 지고, 제108회에서는 양평관에서 연노에 쫓겨 겨우 목숨을 건집니다. 사마의가 「삼가고 삼가라」 이르고 죽자 대장군이 되어 상서의 기밀을 모두 맡습니다. 손권이 죽자 부하가 말리는데도 「천도는 서른 해에 한 번 바뀐다」며 오를 치게 하나 동흥에서 지고, 신성을 에운 제갈각에게는 오군이 멀리 와 양식이 적으니 다하면 물러난다는 우송의 말을 좇습니다.

제109회에서 사마사는 아우와 함께 조정을 쥐어 조방이 그를 볼 때마다 떨었고, 칼을 찬 채 전각에 오릅니다. 조방이 피로 쓴 밀조를 하후현 · 이풍 · 장집에게 건네자, 동화문에서 그들을 만나 붉은 눈을 따지고 장집의 몸에서 밀조를 찾아내 셋을 저잣거리에서 허리 베고 삼족을 멸합니다. 이어 장황후를 흰 비단으로 목 졸라 죽이고, 이윤과 곽광의 법을 들어 조방을 제왕으로 돌려보냅니다. 팽성왕 조거를 세우려다 태후의 뜻을 좇아 고귀향공 조모를 세웁니다.

제110회에서 관구검 · 문흠이 일어날 때 그는 왼눈의 혹을 째고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종회의 말에 벌떡 일어나 몸소 나섭니다. 낙가에서 밤에 문앙이 진영으로 뛰어들자 놀라 혹을 짼 자리로 눈알이 튀어나오고, 군심이 흔들릴까 이불을 물어 이불이 다 해집니다. 허창으로 물러난 그는 밤마다 이풍 · 장집 · 하후현이 머리맡에 서 있는 것을 보다가, 달려온 사마소에게 「대사를 남에게 가벼이 맡기지 말라」며 인수를 넘기고 크게 소리친 뒤 눈알이 튀어나와 죽습니다. 연의는 그날을 정원 2년 2월로 적습니다. 연의에서 사마사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제119회에서 조카 사마염이 제위에 올라 그를 경제로 높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34그가 깊이 꺼리던 첫 아내 하후휘가 짐독으로 죽었습니다.
  2. 247어머니 장춘화가 죽자 지극한 효로 상을 치러 이름났습니다.
  3. 249아버지와 단둘이 고평릉의 변을 꾀하고 몰래 기른 무사 3천을 하루아침에 모았습니다.사마씨 두 아들
  4. 251아버지 사마의가 죽자 무군대장군 · 녹상서사로 정사를 보필했습니다.사마씨
  5. 252정월 대장군이 되어 안팎의 군을 모두 거느리고 상서의 일을 맡았습니다.
  6. 252동관에서 오에 진 것을 제 허물로 돌리고 장수들을 모두 용서했습니다.
  7. 253신성을 에운 제갈각을 보루를 높여 지치게 하고 문흠에게 쫓아 깨뜨리게 했습니다.
  8. 254이풍 · 장집 · 하후현의 꾀를 알아채 이풍을 죽이고 그 무리의 삼족을 멸했습니다.
  9. 254태후의 영으로 황제 조방을 폐해 제왕으로 돌려보내고 고귀향공 조모를 세웠습니다.
  10. 255몸소 나가 낙가에서 문흠을 깨뜨리고 관구검의 난을 평정했습니다.
  11. 255문앙의 습격에 눈알이 튀어나온 뒤 병이 깊어져 허창에서 마흔여덟으로 죽었습니다.
  12. 265조카 사마염이 진을 세운 뒤 경황제로 높여지고 묘호를 세종이라 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사마의 · 어머니 장춘화 · 아우 사마소 · 사마간 · 아내 하후휘 · 오씨 · 양휘유 · 딸 다섯 · 뒤를 이은 조카 사마유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길을 비켜라.

말을 열며

말은 짧게 하시오. 나는 결단만 남기오.

되받으며

쓸모 있는 말이라면 듣겠소.

말문이 막혀

…눈이 쑤시는구나.

말문이 막혀

이 정도로 흔들릴 내가 아니오.

설전을 이기고

결단이 곧 권력이오.

설전에 지고

…아우에게 맡길 수밖에 없구려.

이긴 뒤

길을 막는 자는 치웠다.

진 뒤

…아우에게 맡길 일이 남았군.

쓰러지며

…눈이 터졌다. 소에게 전하라.

같은 기치 아래

사마의양호곽회사마소왕준손례진태위관왕기왕창가충두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