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미상 · 238년 ~ 291년 · 예주 초군 · 조조 휘하
열여덟에 사마사의 본영을 흔들고 뒷날 진에서 모함으로 죽은 회남의 맹장
출전 · 『삼국지』 위서 관구검전(문흠 붙음) · 제갈탄전과 배송지 주의 『위씨춘추』 · 『위서』 · 『진제공찬』 · 습착치의 말 · 오서 손량전 · 『진서』 경제기 · 문제기 · 무제기 · 혜제기 · 부풍왕 사마준전 · 동안왕 사마요전
문앙은 위의 양주자사 문흠의 아들입니다. 『삼국지』 관구검전의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씨춘추』는 그를 문흠의 가운데 아들 문숙이라 하고 어릴 적 이름이 앙이라 적으며, 배송지도 「앙은 달리 숙이라고도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집안은 초군 사람으로,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서』에 따르면 할아버지 문직은 건안 연간에 기장으로 용맹이 있었습니다. 『위씨춘추』는 문앙이 나이는 어렸으나 용맹과 힘이 남보다 뛰어났다고 적고, 『진서』 경제기는 열여덟 살의 그를 「용맹이 삼군에서 으뜸」이라고 했습니다.
정원 2년(255) 정월 진동장군 관구검과 양주자사 문흠이 수춘에서 일어나 회수를 건너 서쪽으로 나아갔습니다. 대장군 사마사는 연주자사 등애를 낙가에 보내 약한 척 꾀어내고, 문흠이 등애를 치러 오자 몰래 대군을 몰아 그곳에 이르렀습니다. 문앙은 아버지에게 「적이 자리를 잡기 전에 치면 깨뜨릴 수 있다」고 했고, 『위씨춘추』에 따르면 부자는 군을 둘로 나누어 밤에 양쪽에서 치기로 했습니다. 문앙은 장사들을 이끌고 먼저 이르러 대장군을 크게 부르짖었고 진중이 흔들렸으나, 문흠은 때를 놓쳐 응하지 않았고 날이 밝자 문앙은 물러났습니다. 『진서』 경제기는 그가 세 번 북을 울렸으나 문흠이 응하지 못했다고 적습니다. 문흠이 달아나려 하자 문앙은 「먼저 그 기세를 꺾지 않으면 떠날 수 없다」 하고, 날랜 기병 십여 기와 적의 앞을 꺾고 진을 무너뜨려 가는 곳마다 쓰러뜨린 뒤 물러났습니다.
『진서』 경제기는 사마사가 그 무렵 눈의 혹을 째어 낸 참이었는데 문앙이 쳐들어오자 놀라 눈알이 튀어나왔고, 군이 두려워할까 이불을 덮어쓴 채 아픔을 참다가 이불을 물어뜯었으나 곁의 사람은 아무도 몰랐다고 적습니다. 사마사는 윤달에 병이 깊어져 허창에서 죽었습니다. 뒤쫓은 날랜 기병이 사양에서 문흠의 군을 크게 깨뜨렸고, 문흠 부자는 항성으로 물러났다가 오로 달아났습니다.
감로 2년(257) 위의 정동대장군 제갈탄이 수춘에서 일어나자, 오는 전역 · 전단 · 당자 등에게 3만을 주어 문흠과 함께 보냈고 이들은 포위가 닫히기 전에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성안의 양식이 다해 가자 본디 사이가 나빴던 문흠과 제갈탄은 서로 의심하다가 감로 3년(258) 정월 제갈탄이 문흠을 죽였습니다. 소성에서 군사를 거느리던 문앙과 문호는 이를 듣고 군사를 몰아 달려갔으나 군사들이 따르지 않았고, 둘은 홀로 성을 넘어 사마소에게 갔습니다. 『진서』 문제기는 문앙이 제갈탄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고 성을 넘어 항복했다고 적습니다. 군리들이 그들을 죽이자고 했으나 사마소는 「문흠의 죄는 죽음으로도 모자라고 그 아들도 마땅히 죽어야 하나, 궁지에 몰려 목숨을 맡겨 왔고 성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으니 죽이면 성안의 마음만 굳힌다」며 살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수백 기를 주어 성 둘레를 달리며 「문흠의 아들도 죽지 않았는데 나머지가 무엇을 두려워하랴」 외치게 하고, 표를 올려 장군으로 삼고 관내후의 작위를 주었습니다. 성은 2월에 떨어졌고, 사마소는 문앙 형제가 아버지의 주검을 거두어 옛 무덤에 묻도록 수레와 소를 내주었습니다.
위가 진에 자리를 넘긴 뒤 문앙은 진의 장수가 되었습니다. 『진서』 무제기는 함녕 3년(277) 3월 평로호군 문앙이 반란한 수기능 등을 쳐서 모두 깨뜨렸다고 적고, 부풍왕 사마준전은 함녕 초 사마준이 평로호군 문앙에게 량주 · 진주 · 옹주의 군사를 거느려 나아가 위세를 보이게 하자 수기능이 볼모를 들여보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진제공찬』은 그가 뒤에 장군이 되어 량주의 오랑캐를 깨뜨려 이름이 천하에 알려졌다고 합니다.
『진제공찬』에 따르면 문앙은 태강 연간에 동이교위 · 가절이 되었는데, 부임하러 무제에게 하직하러 들어가자 무제가 그를 보고 미워해 다른 일을 핑계로 벼슬을 거두었습니다. 영평 원년(291) 3월 혜제의 조정에서 태부 양준이 죽임을 당하던 날, 제갈탄의 외손인 동안공 사마요는 문앙이 외가의 걱정거리가 될까 하여 그가 모반을 꾀했다고 모함해 죄 없이 죽였고, 그 삼족도 멸해졌습니다.
欽子鴦,年十八,勇冠三軍俶後為將軍,破涼州虜,名聞天下『삼국연의』 제110~112회
연의에서 문앙은 제110회에 처음 나옵니다. 사마사가 황제를 폐하자 관구검이 울며 의논하고, 문흠은 「둘째 아들 문숙, 어릴 적 이름 아앙은 만 명도 당하지 못할 용맹이 있어 늘 사마사 형제를 죽여 조상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며 그를 선봉으로 내세웁니다. 문흠 부자는 5천 군사로 낙가성을 지키러 가고, 사마사의 영채가 아직 다 서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문앙은 아버지와 2,500씩 나누어 황혼에 남북 두 길로 쳐서 삼경에 적의 영채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연의는 이때 그를 열여덟 살, 키 여덟 자에 온 갑옷을 갖추고 허리에 강철 채찍을 차고 창을 든 장수로 그립니다.
삼경에 북쪽에서 영채로 뛰어든 문앙은 좌충우돌하며 막는 이를 창으로 찌르고 채찍으로 쳐 죽입니다. 눈의 혹을 막 째어 낸 사마사는 크게 놀라 눈알이 상처로 튀어나오고, 군심이 흔들릴까 이불을 물고 참다가 이불이 다 해집니다. 문앙은 아버지가 바깥에서 호응하기를 기다리며 몇 번이나 중군으로 쳐들어갔으나 활과 쇠뇌에 밀려나고, 산길에서 길을 잃은 문흠은 끝내 오지 않습니다. 날이 밝자 북쪽에서 등애가 달려와 「반적은 달아나지 마라」 외치고, 문앙은 그와 오십 합을 싸웠으나 승부를 가리지 못합니다. 위군이 앞뒤로 덮치자 부하들은 흩어지고, 문앙은 홀로 말을 달려 남쪽으로 빠져나갑니다. 위의 장수 수백이 뒤쫓아 낙가교에 이르자 그는 말머리를 돌려 크게 외치며 적장들 사이로 뛰어들고, 강철 채찍이 닿는 대로 장수들이 말에서 떨어집니다. 다시 천천히 말을 몰아 가던 그는 백여 명의 장수가 또 쫓아오자 「쥐 같은 놈들이 어찌 목숨을 아끼지 않느냐」며 몇을 쳐 죽이니, 위의 장수들은 네다섯 번을 쫓고도 모두 그 한 사람에게 쫓겨납니다. 연의는 장판에서 홀로 조조를 막은 조운에 그를 견주는 시를 붙입니다.
제111회 끝에서 문앙은 아버지, 문호와 함께 수춘의 제갈탄에게 합류합니다. 제112회에서 양식이 떨어지자 북쪽 군사를 내보내자던 문흠이 제갈탄에게 베이고, 문앙과 문호는 짧은 칼을 뽑아 수십 명을 베고 성 위로 뛰어올라 뛰어내린 뒤 해자를 건너 위의 영채로 가 항복합니다. 사마소는 지난날 홀로 말을 달려 대군을 물리친 문앙을 미워해 베려 하지만, 종회가 죄는 문흠에게 있고 항복한 이를 죽이면 성안 사람들의 마음만 굳힌다고 말려 살립니다. 사마소는 두 사람에게 좋은 말과 비단옷을 주어 편장군으로 삼고 관내후에 봉하며, 둘은 성을 돌며 항복을 외칩니다. 성안에서는 사마씨의 원수인 문앙도 중히 쓰는데 우리야 어떠랴는 말이 돌아 모두 항복할 뜻을 품습니다. 연의에서 문앙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진에서의 행적과 죽음은 나오지 않습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문흠 · 할아버지 문직 · 형제 문호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초군의 문앙이오. 길을 비키시오.
열여덟에 대장군의 본영을 흔든 몸이오. 말로도 물러서지 않소.
적이 자리를 잡기 전에 치라 했소. 그대의 말도 아직 덜 섰소.
…세 번 북을 울렸는데 대답이 없었지.
기세를 먼저 꺾지 않으면 떠날 수도 없소.
앞을 꺾었으니 이제 천천히 물러나도 되겠소.
북을 세 번 쳤으나 끝내 응하는 이가 없었소.
열 몇 기면 충분했소. 길은 내가 열었소.
아버지가 오지 않으니 오늘은 물러나오.
외가의 걱정이라니, 죄 없이 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