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王經

자 언위(彥偉) · 미상 ~ 260년 · 기주 청하국 · 조조 휘하

왕경 초상

조모를 말렸으나 사마소에게 알리지 않아 어머니와 함께 죽은 위의 상서

능력치

통솔65무력63지력68정치75매력77

카드

공격력 4체력 3비용 2값어치 9직군 능리
공성 비용 2
적 하나가 내 편 무작위 하나를 친다(공격력 절반). 되받는 반격으로 잡는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하후현전 끝 허윤 대목에 붙은 몇 줄과 배송지 주의 『세어』 · 『한진춘추』 · 삼소제기와 주의 『한진춘추』 · 『세어』 · 『진제공찬』 · 진태전 · 관로전과 주의 『관로별전』 · 최림전 주의 『진제공찬』 · 등애전 · 촉서 강유전 · 장익전 · 『진서』 문제기 · 향웅전 · 『세설신어』 현원

왕경은 자가 언위이며 청하 사람입니다. 『삼국지』는 그의 일을 위서 하후현전 끝의 허윤 대목 뒤에 몇 줄 붙였을 뿐이고, 나머지는 배송지 주가 끌어온 『세어』 · 『한진춘추』 · 『진제공찬』 과 진태전 · 관로전이 전합니다. 본문은 청하의 왕경도 허윤과 함께 기주의 이름난 선비로 일컬어졌다고 적습니다. 『세설신어』는 그가 젊어서 가난하고 고생스러웠다 하고, 최림전 주의 『진제공찬』은 같은 군의 최림이 백성 가운데서 그를 알아보아 끝내 명사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관로전에 따르면 벼슬을 그만두고 집에 와 있던 왕경은 괴이한 일이 있었다며 관로에게 점을 청했고, 관로는 길한 괘로 벼슬이 옮겨질 징조라 했습니다. 얼마 뒤 왕경은 강하태수가 되었습니다. 『세어』는 대장군 조상이 비단 스무 필을 붙여 오와 교역하게 하자 왕경이 그 글을 열지도 않고 벼슬을 버리고 돌아왔다고 적습니다. 어머니는 군사를 맡은 몸으로 멋대로 떠났다 하여 보내온 아전 앞에서 그에게 곤장 오십 대를 쳤고, 이를 들은 조상은 더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그가 군수가 되었을 때 어머니가 「너는 농사짓는 집 아들인데 이제 이천석에 이르렀다. 일이 지나치면 상서롭지 않으니 그칠 만하다」고 일렀으나 따르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왕경은 두 주의 자사와 사례교위를 지냈습니다. 정원 2년(255) 옹주자사였던 그는 정서장군 진태에게 강유와 하후패가 기산 · 석영 · 금성 세 길로 나오려 한다고 알렸습니다. 진태는 적이 세 길로 오지는 못하리라 보고, 적도로 나아가 머물다가 원군이 닿으면 함께 치라고 일렀습니다. 그러나 왕경이 거느린 군이 고관에서 싸워 불리해지자 그는 곧 조수를 건넜고, 강유와 싸워 크게 져 만여 명만 이끌고 적도성으로 돌아가 지켰습니다. 진태는 왕경이 높은 성벽에 기대 적의 기세를 꺾어야 했는데 도리어 들에서 맞섰다고 했습니다. 강유가 적도를 에워싸자 진태는 밤에 높은 산에 올라 봉화를 많이 올리고 북과 뿔피리를 울렸고, 강유는 물러갔습니다. 풀려난 왕경은 「군량이 열흘을 못 갈 판이었으니, 때맞춰 오지 않았다면 온 성이 도륙되고 한 주를 잃었을 것이다」 하고 탄식했습니다.

『세어』에 따르면 사례교위일 때 그는 하내의 향웅을 도관종사로 불렀습니다. 『진서』 향웅전은 향웅이 처음 군의 주부로 태수 왕경을 섬겼다고 적어 『세어』와 다릅니다. 감로 연간에 왕경은 상서가 되었습니다.

감로 5년(260) 5월 황제 조모는 시중 왕침, 상서 왕경, 산기상시 왕업을 불러 「사마소의 마음은 길 가는 사람도 안다」며 오늘 함께 나가 치겠다고 했습니다. 『한진춘추』에 따르면 왕경은 옛날 노 소공이 계씨를 참지 못하다가 패해 달아나 나라를 잃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며, 숙위는 비고 군사는 약하니 병을 없애려다 더 깊게 할까 두렵다고 말렸습니다. 조모는 품에서 판을 꺼내 던지며 뜻을 굽히지 않았고, 왕침과 왕업은 사마소에게 달려가 알렸습니다. 『세어』는 왕경이 곧아서 나가지 않았다 하고, 『진제공찬』은 두 사람이 나가며 부르자 그가 따르지 않고 「그대들은 가시오」 했다고 전합니다. 조모가 죽은 뒤 태후의 영은 왕경과 그 집안사람을 정위에 넘기게 했고, 『진서』 문제기는 그가 두 마음을 품었다 하여 죽였다고 적습니다.

『한진춘추』에 따르면 잡혀가며 하직하는 왕경에게 어머니는 낯빛도 바꾸지 않고 웃으며 「사람이 누구인들 죽지 않겠느냐. 너를 말리지 않은 것은 제자리를 얻지 못할까 해서였다. 이 일로 함께 목숨을 바치니 무슨 한이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세설신어』는 왕경이 울며 어머니의 말씀을 따르지 않아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자, 어머니가 자식으로서 효도하고 신하로서 충성했으니 무엇을 저버렸느냐고 했다고 조금 달리 적습니다. 왕경은 동시에서 처형되었고 어머니도 함께 죽었습니다. 향웅이 곡하자 온 저자가 슬퍼했고, 옹주의 옛 관리 황보안이 제 재산으로 두 사람을 거두어 장사 지냈습니다. 진 무제는 태시 원년(265) 조서에서 그가 법에 걸려 죽었으나 지킨 뜻이 기릴 만하다며 그 손자를 낭중으로 삼았습니다.

人誰不死?往所以不止汝者,恐不得其所也。以此并命,何恨之有哉?
사람이 누구인들 죽지 않겠느냐. 지난날 너를 말리지 않은 것은 제자리를 얻지 못할까 해서였다. 이 일로 함께 목숨을 바치니 무슨 한이 있겠느냐『삼국지』 위서 하후현전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왕경의 어머니의 말
昔魯昭公不忍季氏,敗走失國,為天下笑。今權在其門,為日乆矣
옛날 노 소공은 계씨를 참지 못하다가 패해 달아나 나라를 잃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지금 권세가 그 집안에 있은 지 오래입니다『삼국지』 위서 삼소제기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조모를 말린 왕경의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10~111회 · 제114회

연의에서 왕경은 제110회에 옹주자사로 처음 나옵니다. 강유가 군사 5만으로 조수에 이르자 왕경은 마보병 7만을 일으켜 맞서고, 진 앞에 나와 위 · 오 · 촉이 이미 솥발처럼 섰는데 어찌 자꾸 쳐들어오느냐고 따집니다. 강유가 조수를 등지고 진을 친 것을 본 왕경은 지면 물에 빠질 것이라며 장명 · 화영 · 유달 · 주방 네 장수를 내보냅니다. 강유는 몇 합 만에 달아나는 척하다 물가에서 돌아서고, 장익과 하후패가 뒤를 끊자 위군은 크게 무너져 조수에 빠진 이가 셀 수 없고 목 베인 이가 만이 넘습니다. 왕경은 기병 백여 명만 이끌고 적도성으로 달아나 문을 닫고 지킵니다. 강유가 적도를 에워싸자 진태와 등애가 원군을 이끌고 와 산골짜기에 숨겨 둔 깃발과 북을 울리고, 강유는 물러납니다. 제111회에서 왕경은 진태와 등애를 성으로 맞아들여 포위를 풀어 준 데 감사하며 잔치를 엽니다.

제114회에서 조모는 사마소가 찬역할 마음을 품었다며 왕침 · 왕경 · 왕업을 불러 함께 치자고 합니다. 왕경은 노 소공의 일을 들어 권세가 사마씨에게 돌아간 지 오래이고 숙위가 약하니 참고 천천히 도모하라고 말립니다. 왕침과 왕업이 사마소에게 가서 먼저 알려 죽음을 면하자고 하자, 왕경은 크게 노하여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가 욕되고, 임금이 욕되면 신하가 죽는 법인데 감히 두 마음을 품겠는가」 하고 따르지 않습니다. 조모가 수레에 오르자 왕경은 그 앞에 엎드려 울며 양을 몰아 범의 입에 넣는 격이라 말리지만 조모는 듣지 않습니다. 조모가 성제의 극에 찔려 죽자 뒤따라온 왕경은 가충을 역적이라 크게 꾸짖다가 묶입니다.

사마소는 왕경의 온 집안을 옥에 가둡니다. 정위의 뜰에서 묶여 온 어머니를 본 왕경이 머리를 조아리며 불효한 자식이 어머니까지 얽었다고 울자, 어머니는 크게 웃으며 사람이 누군들 안 죽겠느냐, 다만 제자리에서 죽지 못할까 두려웠을 뿐이니 이 일로 목숨을 버리는데 무슨 한이 있겠느냐고 합니다. 이튿날 왕경의 집안은 모두 동시로 끌려가고, 왕경 모자는 웃음을 머금고 형을 받으며 성 안의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립니다. 같은 회에서 등애의 참군 왕관은 왕경의 조카라 속여 강유에게 거짓 항복하지만, 강유는 사마소가 왕경의 삼족을 멸했는데 조카를 관 밖에 두고 군사를 맡겼을 리 없다며 그 꾀를 꿰뚫습니다. 연의에서 왕경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55옹주자사로서 강유 · 하후패가 세 길로 나온다고 진태에게 알렸고, 적도로 나아가 머물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2. 255고관에서 싸움이 불리하자 조수를 건너 강유와 싸워 크게 졌고, 만여 명으로 적도성에 들어가 지켰습니다.
  3. 255진태의 원군이 오자 강유가 물러나 포위가 풀렸고, 군량이 열흘을 못 갈 판이었다고 탄식했습니다.
  4. 260조모가 사마소를 치겠다 하자 상서로서 노 소공의 옛일을 들어 말렸습니다.
  5. 260왕침 · 왕업이 사마소에게 알리러 나가며 불렀으나 따르지 않았습니다.
  6. 260조모가 죽은 뒤 집안사람과 함께 잡혀 동시에서 처형되었고 어머니도 함께 죽었습니다.
  7. 265진 무제가 조서로 그가 지킨 뜻을 기려 손자를 낭중으로 삼았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어머니(함께 죽음) · 손자(진 무제가 낭중으로 삼음)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옹주자사 왕경이오. 적도를 지키겠소.

말을 열며

옹주를 맡은 왕경이오. 이 땅은 한 치도 내줄 수 없소.

되받으며

바른말은 귀에 거슬려도 약이 되오. 그대의 말은 어떠하오?

말문이 막혀

…군량이 열흘을 못 가는구나. 원군은 아직인가.

말문이 막혀

그대들은 가시오. 나는 따라가지 않겠소.

설전을 이기고

성벽에 기대 기세를 꺾으니 이렇게 이기는구려.

설전에 지고

들에서 맞선 것이 화근이었소. 진태의 말이 옳았소.

이긴 뒤

조수를 넘보던 군이 물러갔소. 성은 무사하오.

진 뒤

적도로 물러나 성문을 닫으시오. 원군을 기다리오.

쓰러지며

어머니, 끝내 제자리를 얻었습니다.

같은 기치 아래

조조하후연하후돈서황학소허저조인전위문앙우금악진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