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원웅(元雄) · 미상 ~ 미상 (231년 이후) · 연주 진류군 · 유비 휘하
이릉 전투와 제갈량의 북벌에서 최전선을 지휘한 촉한의 맹장
출전 · 『삼국지』 촉서 양희전(『계한보신찬』에 진수가 덧붙인 글) · 선주전 · 제갈량전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이엄전 배송지 주의 제갈량 공문 · 장비전 · 오서 육손전 · 『진서』 선제기 · 『후한서』 하진전 · 『화양국지』 유선주지 · 유후주지
오반은 자가 원웅이며, 『화양국지』에 따르면 진류 사람입니다. 『삼국지』에 제 전은 없고, 진수가 양희전의 『계한보신찬』 오의 대목에 덧붙인 두 줄과 선주전 · 육손전, 배송지 주에 인용된 『한진춘추』 등에 이름이 몇 번 나올 뿐입니다. 태어나고 죽은 해는 전하지 않습니다. 『계한보신찬』에 덧붙인 글은 그를 오의의 일족 아우라 하고, 대장군 하진의 관속이던 오광의 아들이라 적습니다. 『화양국지』는 그를 오의의 사촌 아우라 적습니다. 『후한서』 하진전에 따르면 오광은 하진이 아끼던 부곡장으로, 중평 6년(189) 하진이 환관들에게 죽자 원술과 함께 궁궐 문을 쳤고, 하진의 아우 거기장군 하묘가 환관과 함께 꾀했다고 의심해 「대장군을 죽인 자는 곧 거기장군이다」라며 동탁의 아우 동민과 함께 하묘를 쳐 죽였습니다.
『계한보신찬』에 덧붙인 글은 오반이 호협으로 이름났고 벼슬이 늘 오의에 버금갔다고 적습니다. 유비 때 그는 영군이 되었습니다. 장무 원년(221) 7월 유비가 오나라를 치러 나서자, 선주전은 오의 장수 육손 · 이이 · 유아 등이 무현과 자귀에 진을 쳤는데 장군 오반과 풍습이 무현에서 이이 등을 깨뜨리고 자귀까지 나아갔다고 적습니다. 『화양국지』는 두 사람을 좌 · 우 영군이라 부릅니다. 이듬해 정월 오반은 진식과 함께 수군을 이끌고 이릉에 머물며 강의 동쪽과 서쪽 기슭을 끼고 진을 쳤습니다.
육손전에 따르면 유비는 무협과 건평에서 이릉 어귀까지 수십 곳에 진을 잇고 풍습을 대독으로, 장남을 전부로 삼은 뒤, 먼저 오반에게 수천을 주어 평지에 진을 치고 싸움을 걸게 했습니다. 오의 장수들이 모두 치자고 했으나 육손은 「반드시 속임수가 있으니 지켜보자」고 했고, 꾀가 먹히지 않음을 안 유비는 골짜기에 숨겨 두었던 군사 팔천을 이끌고 나왔습니다. 그해 여름 유비는 효정에서 크게 졌고 풍습과 장남은 죽었으나, 오반의 이름은 그 뒤에도 사서에 나옵니다.
건흥 9년(231) 제갈량이 다시 기산으로 나섰을 때, 배송지 주에 인용된 『한진춘추』는 5월 사마의가 장합에게 남쪽 에움의 하평을 치게 하고 스스로 가운데 길로 제갈량을 향하자, 제갈량이 위연 · 고상 · 오반을 보내 맞서게 해 크게 깨뜨리고 갑옷 입은 적의 머리 3천과 검은 갑옷 5천 벌, 뿔 쇠뇌 3,100장을 거두었다고 적습니다. 그러나 『진서』 선제기는 사마의가 노성에 둘러친 제갈량의 에움을 쳐서 빼앗고 밤에 달아나는 그를 쫓아 깨뜨려, 사로잡거나 벤 자가 만을 헤아렸다고 적어 두 기록이 어긋납니다. 그해 제갈량이 이평을 탄핵하며 올린 공문(배송지 주)에 이름을 함께 올린 장수들 가운데, 오반은 뒤쪽 부대를 거느린 후장군 · 안락정후로 나옵니다.
후주 때 오반은 차츰 올라 표기장군 · 가절이 되고 면죽후에 봉해졌습니다. 『화양국지』는 그의 작위를 향후라고만 적습니다.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전하지 않습니다.
以豪俠稱,官位常與壹相亞先遣吳班將數千人於平地立營,欲以挑戰『삼국연의』 제65회 · 제81~84회 · 제91회 · 제98~102회
연의에서 오반의 이름은 제65회에 처음 나옵니다. 성도를 얻은 유비에게 상을 받은 형주 때부터의 문무 관원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제81회에서는 형주에서 와서 유비를 뵙고 아문장이 되어 장비를 도와 낭중을 지키던 장비의 부장으로 소개됩니다. 장비가 범강 · 장달에게 죽자 오반은 먼저 표를 올려 천자에게 알리고, 장비의 맏아들 장포에게 관을 갖추게 합니다. 유비는 낭중의 오반이 보낸 표가 왔다는 말만 듣고도 「아, 셋째 아우가 죽었구나」 하며 발을 구릅니다. 장포와 관흥이 선봉의 인을 두고 다툰 뒤, 유비는 조서를 내려 오반을 선봉으로 삼고 두 사람에게는 어가를 지키게 합니다.
제82회에서 선봉의 인을 받은 오반은 촉을 나선 뒤 이르는 곳마다 항복을 받으며 의도에 이르고, 관흥 · 장포가 손환을 무찌르자 장남 · 풍습을 이끌고 몰아칩니다. 장남 · 풍습이 밤에 손환의 영채를 치자고 하자 오반은 주연의 수군이 돌아갈 길을 끊을까 걱정하지만, 장남의 꾀대로 관흥 · 장포를 산골짜기에 숨겨 두고 세 길로 나누어 손환의 영채를 쳐서 손환을 이릉성으로 몰아넣고 에워쌉니다. 제83회에서는 늙었다는 말에 성이 나 찾아온 황충을 맞고 풍습을 보내 돕게 합니다. 여름이 되어 영채를 숲으로 옮길 때, 유비는 오반에게 약한 군사 만여 명을 주어 오의 진영 가까운 평지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날랜 군사 팔천을 골짜기에 숨겨 육손을 꾀려 합니다.
제84회에서 육손은 「선봉 오반」이라 쓴 깃발 아래의 늙고 약한 군사를 보고 골짜기에 살기가 서린 것을 알아채 치지 않고, 오반이 관 앞에 와서 욕하며 싸움을 걸어도 나가지 않습니다. 사흘 뒤 오반의 군사가 물러가자 골짜기에서 유비의 복병이 나옵니다. 촉의 영채가 불타던 날 장남과 함께 이릉성을 에워싸고 있던 오반은 겹겹의 에움을 뚫고 나와, 뒤쫓는 오군에게서 조운의 도움으로 백제성으로 돌아갑니다.
제91회 제갈량의 첫 출사에서 오반은 후장군 · 안락후로 이름이 오르고, 제98회부터 제101회까지 오의와 함께 복병을 맡거나 기산의 영채를 지킵니다. 제102회에서는 제갈량의 명으로 오의와 함께 뗏목 군사를 이끌고 위수의 뜬다리를 태우러 가다가, 북쪽 기슭에 숨어 있던 장호 · 악침의 궁노수가 쏜 화살에 맞아 물에 빠져 죽습니다. 연의에서 오반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버지 오광(하진의 부곡장) · 일족 형 오의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앞줄은 내 자리다.
선봉이라면 내 이름부터 부르시오.
앞에 서 본 자만 아는 것이 있소.
…화공은 지긋지긋하오.
물러서도 다시 나아가오.
최전선의 답이오.
이릉의 불길이 떠오르는구려.
앞줄이 무너지지 않았소.
…앞줄이 밀렸소.
앞줄에 서는 것이 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