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黃皓

자 미상 · 미상 ~ 미상 (263년 이후) · 익주 촉군 성도현 · 유비 휘하

황호 초상

유선의 귀를 막아 촉을 안에서 무너뜨린 환관

능력치

통솔1무력1지력30정치10매력1

카드

공격력 1체력 1비용 1값어치 3직군 모사
아첨 속성
다른 아군이 서 있는 한 적은 나를 먼저 못 친다 · 그런 국면마다 지휘력 +1

정사

출전 · 『삼국지』 촉서 동윤전 · 진지전 · 후주전 · 강유전과 배송지 주의 『화양국지』 · 이주비자전 유영전 · 제갈첨전 배송지 주의 『화양국지』 · 제갈량전과 배송지 주의 손성 『이동기』 · 극정전 · 곽준전 배송지 주의 『양양기』 · 『화양국지』 유후주지

황호는 촉한 후주 유선의 환관입니다. 자와 출신, 태어나고 죽은 해는 전하지 않고, 그의 일은 『삼국지』 동윤전 끝에 진지의 일과 함께 몇 줄 붙어 있으며 후주전 · 강유전 · 극정전과 배송지 주, 『화양국지』에 흩어져 있습니다. 동윤전에 따르면 후주는 자라면서 황호를 아꼈고, 황호는 아첨을 잘하고 약삭빨라 가까이 파고들려 했습니다. 시중 동윤이 위로는 낯빛을 바로 하여 임금을 바로잡고 아래로는 황호를 여러 번 꾸짖으니, 황호는 동윤을 두려워해 감히 그릇된 일을 하지 못했고 동윤이 살아 있는 동안 벼슬이 황문승을 넘지 못했습니다.

연희 9년(246) 동윤이 죽은 뒤 그를 이어 시중이 된 진지가 황호와 안팎으로 손을 잡자, 황호는 비로소 정사에 끼어들었습니다. 진수는 진지가 위로는 임금의 뜻을 받들고 아래로는 환관과 사귀어 깊은 믿음을 얻었으며, 후주가 동윤을 날로 원망하게 된 것은 진지의 아첨과 황호의 이간이 스며든 때문이라고 적었습니다. 진지가 죽은 뒤 황호는 황문령에서 중상시 · 봉거도위로 올랐고, 후주전은 경요 원년(258)에 황호가 비로소 정사를 오로지했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의 『양양기』는 황호가 정사에 끼어들자 많은 이가 그에게 붙었고, 홀로 어울리지 않은 나헌은 그의 노여움을 사 파동태수로 밀려났다고 적습니다. 후주의 아우 유영은 본디 황호를 미워했다가 그의 참소로 열 해 넘게 조회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비서령 극정은 서른 해 동안 황호와 담을 맞대고 지냈으나 사랑도 미움도 받지 않아, 벼슬이 육백 석을 넘지 못한 대신 화를 면했습니다. 제갈량전은 제갈첨 · 동궐이 나라의 일을 맡았을 때도 황호가 몰래 권세를 휘두르는 것을 아무도 바로잡지 못했다고 적는데, 배송지 주의 손성 『이동기』는 진수가 제갈첨에게 모욕을 당한 일이 있어 그렇게 적었다는 촉 노인들의 말을 함께 싣습니다.

경요 5년(262) 대장군 강유가 황호의 방자함을 미워해 죽이자고 청하자, 『화양국지』에 따르면 후주는 「황호는 심부름하는 하찮은 신하일 뿐이다. 예전에 동윤이 이를 갈 때도 나는 늘 못마땅했다」며 들어주지 않고 황호를 보내 강유에게 사과하게 했습니다. 강유는 황호의 가지와 잎이 얽혀 있음을 보고 말을 잘못할까 두려워 물러났고, 황호를 달래어 답중에서 보리를 심게 해 달라고 청해 안의 핍박을 피했습니다. 강유전은 황호가 우대장군 염우와 한편이 되어 몰래 강유를 내치고 염우를 세우려 해 강유가 성도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적습니다.

경요 6년(263) 강유는 종회가 관중에서 군사를 다스린다며 장익과 요화를 보내 양안관 어귀와 음평의 다리목을 지키자고 표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황호는 귀신과 무당을 믿어 적이 끝내 오지 않으리라 하고 후주에게 그 일을 덮게 해, 신하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종회가 낙곡으로, 등애가 답중으로 향한 뒤에야 요화와 장익 · 동궐이 구원에 나섰습니다. 그해 겨울 면죽에서 아버지 제갈첨과 함께 싸운 제갈상은 『화양국지』에서 「나라의 은혜를 입고도 황호를 일찍 베지 못해 나라가 무너졌으니 살아서 무엇 하랴」 하고 적진으로 달려가 죽었습니다.

후주가 항복한 뒤 성도에 들어온 등애는 황호가 간사하고 음험하다는 말을 듣고 가두어 죽이려 했으나, 황호는 등애의 좌우에게 두텁게 뇌물을 써서 벗어났습니다. 『화양국지』는 등애가 뇌물을 받고 놓아주었다고 적습니다. 그 뒤의 일은 사서에 없습니다. 진수는 동윤전 끝에 황호가 권세를 휘두르다 끝내 나라를 엎었고 촉 사람들이 모두 동윤을 그리워했다고 적었습니다.

操弄威柄,終至覆國。蜀人無不追思允
권세를 휘두르다 끝내 나라를 엎었다. 촉 사람들은 모두 동윤을 그리워했다『삼국지』 촉서 동윤전(진지전)
黃皓信巫鬼,謂敵不來,啟後主寢其事
황호는 무당과 귀신을 믿어 적이 오지 않는다 하고, 후주에게 아뢰어 그 일을 덮어 두게 했다『화양국지』 유후주지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12~113회 · 제115~119회

연의에서 황호의 이름은 제112회에 처음 나옵니다. 경요 원년(258) 초주는 조정이 술과 여색에 빠져 환관 황호를 믿고 나랏일을 돌보지 않는다고 탄식하며 「수국론」을 지어 강유에게 보냅니다. 제113회에서는 오의 사신 설후가 돌아가 근래 중상시 황호가 일을 쥐어 공경이 그에게 붙는다고 전하고, 등애의 부하 당균이 금과 구슬을 싸 들고 성도에 와서 황호와 손잡고 강유가 천자를 원망해 위에 항복하려 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리자, 황호가 이를 후주에게 아뢰어 싸움터의 강유를 불러들이게 합니다.

제115회에서는 황호에게 붙어 벼슬을 얻은 우장군 염우가 강유 대신 공을 세우려 하자 황호가 후주에게 아뢰어 하루에 세 번 조서를 내려 강유를 불러들입니다. 후원에서 후주와 잔치하던 황호는 강유가 들어오자 숨었다가, 후주가 「황호는 심부름하는 하찮은 신하」라며 불러내 강유에게 절하게 하자 울며 「저는 성상을 모실 뿐 나랏일에 끼어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116회에서 강유가 위군이 쳐들어온다는 표를 올리자 황호는 강유가 공을 세우려는 것이라 하고, 성 안의 무당을 데려와 후주에게 몇 해 뒤 위나라 땅도 폐하의 것이 된다는 말을 듣게 하며, 뒤로 이어지는 강유의 급한 표를 모두 감춥니다. 제117회에서는 부성이 떨어졌다는 소식에도 헛소문일 뿐이라고 아룁니다.

제118회에서 성도에 들어온 등애는 황호가 간사하고 음험하다는 말을 듣고 베려 하지만, 황호는 금과 보물로 그 좌우에게 뇌물을 써서 벗어납니다. 제119회에서 낙양에 온 후주가 안락공에 봉해지는 날, 사마소는 황호가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해쳤다며 무사를 시켜 저잣거리로 끌어내 능지처참합니다. 연의에서 황호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46동윤이 살아 있는 동안 황문승에 머물다가, 동윤이 죽자 시중 진지와 손을 잡았습니다.낯빛으로 누르던 사람
  2. 258후주전에 따르면 이해에 비로소 정사를 오로지했습니다.귀를 막은 자리
  3. 262황호를 죽이자는 강유의 청을 후주가 물리쳤고, 강유는 답중으로 물러났습니다.
  4. 263귀신과 무당을 믿어 강유의 표를 후주에게 덮게 했습니다.나라가 끝나던 날
  5. 263성도에 들어온 등애가 죽이려 했으나 그 좌우에게 뇌물을 써서 벗어났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인연

숙적 싸움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공격이 오른다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황호가 곁에 서 있소.

말을 열며

궁 안의 일은 내가 제일 잘 아오.

되받으며

임금의 귀에 닿는 것은 내 말뿐이오.

말문이 막혀

…동윤이 살아 있을 적에는 조용히 지냈소.

말문이 막혀

급한 글이 올라와도 굳이 아뢸 것은 없었소.

설전을 이기고

곁에 있는 자가 이기는 법이오.

설전에 지고

말로는 안 되는 것이 있구려.

이긴 뒤

싸움은 밖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오.

진 뒤

내 일이 아니오. 나는 궁 안에 있었소.

쓰러지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

같은 기치 아래

관우제갈량조운장비위연방통장완서서왕평관색마속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