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백도(伯道) · 미상 ~ 미상 · 병주 태원군 · 조조 휘하
천여 명으로 진창을 지켜 제갈량을 되돌려 보낸 수성의 명수
출전 · 『삼국지』 위서 명제기와 배송지 주의 『위략』 · 조진전 · 소칙전 · 장합전 · 문제기 · 촉서 제갈량전
학소는 자가 백도이며 태원 사람입니다. 『삼국지』에 제 전은 없고, 그의 일은 배송지가 명제기 태화 2년(228) 조의 주에 끌어온 『위략』에 가장 자세하며, 조진전 · 소칙전 · 명제기의 본문에 몇 줄이 더 있습니다. 『위략』은 그가 몸집이 크고 굳셌으며, 젊어서 군에 들어가 부곡독(한 부대를 거느리는 무관)이 되어 여러 번 싸움에서 공을 세웠고, 잡호장군이 되어 하서를 열 해 넘게 지키니 백성과 이민족이 두려워하며 따랐다고 적습니다.
연강 원년(220) 장액의 장진이 태수를 붙잡고 주천의 황화가 태수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무위의 세 갈래 호족까지 노략질해 하서의 길이 끊겼습니다. 소칙전에 따르면 그때 학소는 장군 위평과 함께 금성에 주둔하며 서쪽으로 건너가지 말라는 조서를 받아 둔 참이었습니다. 금성태수 소칙이 적은 새로 모인 무리라 한마음이 아니니 조서를 어기더라도 형편에 맞게 치자고 하자, 학소 등은 이를 따라 무위를 구하고 세 갈래 호족을 항복시킨 뒤 무위태수 관구흥과 함께 장액의 장진을 쳤고 하서가 평정되었습니다. 명제기는 태화 원년(227) 정월 서평의 국영이 반란을 일으켜 임강 현령과 서도 현장을 죽이자 학소와 녹반을 보내 쳐서 베었다고 적습니다.
태화 2년(228) 봄 기산으로 나온 제갈량이 물러가자, 조진은 그가 기산에서 혼이 났으니 다음에는 반드시 진창으로 나오리라 보고 장군 학소와 왕생을 보내 진창을 지키며 성을 고치게 했습니다. 그해 겨울 제갈량은 다시 산관을 나와 진창을 에워쌌습니다. 명제기는 이 일을 그해 12월에 두고 조진이 장군 비요 등을 보내 막게 했다고 적는데, 조진전은 에워싼 때를 「이듬해 봄」이라 하여 서로 어긋납니다.
『위략』에 따르면 제갈량은 먼저 학소의 고향 사람 근상을 성 밖에 보내 멀리서 달래게 했습니다. 학소는 누각 위에서 「위나라의 법은 그대가 익히 아는 바이고 나의 사람됨도 그대가 아는 바요. 나는 나라의 은혜를 많이 입었고 가문이 무거우니 그대가 할 말은 없고, 나에게는 반드시 죽는 일이 있을 뿐이오. 돌아가 제갈량에게 쳐도 좋다고 전하시오」라고 답했습니다. 근상이 다시 와서 군사의 수가 맞서지 못하니 헛되이 망하지 말라고 하자, 학소는 「앞서 한 말은 이미 정해졌소. 나는 그대를 알아보지만 화살은 그대를 알아보지 못하오」라며 돌려보냈습니다.
제갈량은 수만의 무리를 거느렸고 학소의 군사는 겨우 천여 명이었으며, 동쪽의 구원도 곧 닿지 못하리라 헤아려 공격에 나섰습니다. 구름사다리와 충차를 성에 대자 학소는 불화살을 거슬러 쏘아 사다리를 태웠고, 사다리 위의 군사는 모두 타 죽었습니다. 또 밧줄로 맷돌을 이어 충차를 짓눌러 부러뜨렸습니다. 제갈량이 백 자 높이의 망루를 세우고 흙덩이로 해자를 메워 곧장 성벽을 기어오르려 하자 학소는 안쪽에 겹담을 쌓았고, 땅굴을 파 성 안으로 솟아 나오려 하자 성 안에서 땅을 파 가로로 끊었습니다. 밤낮으로 스무 날 남짓 맞섰으나 제갈량은 꾀가 다했고, 구원군이 이르자 물러났습니다. 제갈량전은 그가 군량이 다해 돌아갔다고 적고, 장합전은 명제가 서둘러 보낸 장합이 「신이 닿기 전에 제갈량은 이미 물러갈 것이니, 그 군량이 열흘도 가지 못한다」고 헤아렸다고 적습니다.
명제는 조서를 내려 학소가 성을 잘 지킨 것을 기리고 열후의 작위를 내렸습니다. 학소가 돌아오자 명제는 그를 불러 위로하고, 같은 태원 사람인 중서령 손자를 돌아보며 「경의 고향에 이런 시원스러운 사람이 있었구려. 장수 노릇이 이처럼 빛나니 짐이 다시 무엇을 걱정하겠소」라고 하며 그를 크게 쓰려 했습니다. 그러나 마침 학소는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는 아들 학개에게 남긴 유언에서 「나는 장수가 되어 장수란 할 것이 못 됨을 알았다. 여러 번 무덤을 파헤쳐 그 나무로 싸움에 쓸 기구를 만들었으니, 두텁게 장사 지내도 죽은 이에게 보탬이 없음을 안다. 너는 반드시 평소의 옷으로 염하라」고 이르고, 이제 본디의 무덤에서 멀리 떠나 있으니 어디에 묻든 아들에게 달렸다고 했습니다. 진수가 따로 남긴 평은 없고, 그가 태어난 해와 죽은 해도 사서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前言已定矣。我識卿耳,箭不識也。卿鄉里乃有爾曹快人,爲將灼如此,朕復何憂乎『삼국연의』 제96~98회
연의에서 학소는 제96회에 처음 이름이 나옵니다. 가정의 싸움 뒤 조예가 촉군이 다시 쳐들어오면 어찌하느냐고 묻자, 사마의는 제갈량이 이번에는 한신이 몰래 진창으로 건넌 꾀를 본뜰 것이라며 진창 길목에 성을 쌓아 지킬 사람으로 학소를 천거합니다. 연의는 그를 키가 아홉 자에 원숭이처럼 팔이 길어 활을 잘 쏘고 꾀가 깊은 태원 사람으로, 지금 하서를 지키는 장군으로 소개하고, 조예는 그를 진서장군으로 올려 진창 길목을 맡깁니다.
제97회에서 제갈량은 다시 표를 올리고 삼십만으로 진창 길목에 이르지만, 이미 새 성이 서 있고 학소가 해자를 깊이 파고 녹각을 둘러 지키고 있습니다. 위연이 며칠을 쳐도 떨어지지 않자, 제갈량의 부곡 은상이 자신과 학소는 같은 농서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사귀었다며 달래러 갑니다. 학소는 「제갈량은 우리나라의 원수이니 각자 제 주인을 섬길 뿐이오. 예전에는 형제였으나 지금은 원수요」라며 그를 성 밖으로 내보내고, 「위나라의 법도는 형도 아는 바요. 나라의 은혜를 입었으니 죽음이 있을 뿐이오」라고 합니다. 다시 온 은상에게는 활을 당겨 겨누며 앞서 한 말이 이미 정해졌으니 어서 물러가라, 쏘지는 않겠다고 합니다.
성안이 삼천쯤이라는 말에 제갈량은 구원군이 오기 전에 서둘러 칩니다. 한 대에 열 몇이 서는 구름사다리 백 대는 학소가 삼천 군사에게 들려 사방에서 쏜 불화살에 모두 타고, 충차는 구멍을 뚫은 돌을 칡 줄에 꿰어 휘둘러 부수며, 요화가 밤에 파 들어온 땅굴은 성안에 겹으로 판 해자로 가로막습니다. 밤낮 스무 날 넘게 쳐도 깨지 못하는 사이 위의 선봉 왕쌍이 구원하러 오고, 제갈량은 진창을 두고 사곡으로 해서 기산으로 나아갑니다.
제98회에서 사마의는 진창에 학소를 둔 것이 자신이었다고 다시 말하고, 학소는 왕쌍이 베였다는 소식을 알려 옵니다. 뒤에 학소가 병으로 깊이 누웠다는 말을 들은 제갈량은 몰래 진창으로 달려갑니다. 곽회가 장합을 보내 학소를 대신하게 하는 사이, 앓아누운 학소는 성문마다 불이 올랐다는 말을 듣고 놀라 죽고 진창은 떨어집니다. 제갈량은 그의 죽음을 가엾게 여겨 처자에게 영구를 모시고 위로 돌아가게 해 그 충성을 드러냅니다. 연의에서 학소가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아들 학개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진창의 학소요. 못 지나가오.
성을 지키던 사람이오. 물러설 줄 모르오.
천여 명으로 수만을 막았소. 말인들 다르겠소.
…사다리가 타는 냄새가 아직 나는구려.
굴을 파거든 파시오. 안에 또 파 두었소.
스무 날을 버티면 오는 쪽이 먼저 지치오.
성이 하나 무너졌을 뿐이오.
지키는 쪽이 이기는 싸움도 있는 것이오.
이번에는 내가 치는 쪽이었구려.
성은 끝내 열리지 않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