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렴(子廉) · 미상 ~ 232년 · 예주 패국 초현 · 조조 휘하
형양에서 제 말을 내주어 조조를 살렸으나 인색함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종제
출전 · 『삼국지』 위서 조홍전과 배송지 주의 『위서』 · 『위략』 · 위서 무제기 · 순욱전 배송지 주 · 순유전 · 조휴전 · 만총전 · 신비전 · 양부전 · 사마지전 · 제왕기
조홍은 자가 자렴이며 조조의 종제입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서』는 큰아버지 조정이 상서령이 되어 조홍을 기춘장으로 삼았다고 적습니다.
초평 원년(190) 조조가 의병을 일으켜 동탁을 치러 서쪽으로 가다 형양에서 동탁의 장수 서영에게 졌습니다. 무제기는 조조가 날아든 화살에 맞고 타던 말도 다쳤다고 적습니다. 조조가 말을 잃고 적이 급히 쫓아오자 조홍은 말에서 내려 제 말을 조조에게 주었고, 조조가 사양하자 「천하에 조홍은 없어도 되지만 그대는 없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조홍은 걸어서 조조를 따라 변수에 이르렀는데, 물이 깊어 건널 수 없자 물가를 따라가며 배를 찾아 조조와 함께 건넜고 초로 돌아갔습니다. 그 뒤 평소 사이가 좋던 양주자사 진온에게 집안 군사 천여 명을 이끌고 가서 여강의 날랜 갑사 2천과 단양의 군사 수천을 얻어 용항에서 조조와 합류했습니다.
흥평 원년(194) 조조가 서주를 치는 사이 장막이 연주에서 등을 돌려 여포를 맞아들였습니다. 큰 흉년이 든 때였는데, 조홍은 군사를 이끌고 앞서 나가 동평과 범을 먼저 차지하고 곡식을 모아 대군에 댔습니다. 조조가 복양에서 장막과 여포를 쳐 여포가 달아나자 조홍은 동아를 거점으로 제음 · 산양 · 중모 · 양무 · 경 · 밀 등 열 남짓 현을 빼앗았고, 앞뒤의 공으로 응양교위를 거쳐 양무중랑장이 되었습니다. 건안 원년(196) 조조가 천자를 맞으려 할 때 조홍은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맞으러 갔으나 동승과 원술의 장수 장노가 험한 곳을 막아 나아가지 못했고, 천자가 허에 도읍하자 간의대부가 되었습니다.
건안 2년(197) 남양과 장릉의 여러 현이 다시 장수 쪽으로 돌아서자 조조는 조홍에게 치게 했으나 이기지 못했고, 조홍은 섭에 머물며 장수와 유표에게 여러 번 침범을 당했습니다. 그 뒤 따로 유표를 쳐 무양 · 음엽 · 도양 · 박망에서 유표의 별장을 깨뜨린 공으로 여봉장군이 되고 국명정후에 봉해졌습니다. 건안 5년(200) 관도에서 조조가 몸소 오소의 순우경을 치러 갈 때 조홍은 순유와 함께 본영을 지켰고, 원소의 장수 장합과 고람이 조홍을 치다 항복해 오자 의심해 받지 않으려 했으나 순유의 말을 듣고 받아들였습니다. 건안 9년(204)에는 조조가 윤해를 치러 간 사이 업을 에워싸고 쳤고, 그 뒤 여러 번 싸움을 따라 도호장군이 되었습니다. 만총전은 만총이 허의 현령일 때 종실의 귀한 몸인 조홍의 빈객들이 여러 번 법을 어기자 조홍의 부탁을 듣지 않고 이들을 죽였다고 적습니다.
건안 22년(217) 유비가 장비 · 마초 · 오란 등을 하변에 머물게 하자 조조는 조홍에게 이를 막게 했습니다. 조조는 조휴를 기도위로 삼아 조홍의 군사에 참여하게 하며 「너는 참군이지만 실은 장수다」라고 했고, 조홍도 이 말을 듣고 일을 조휴에게 맡겼습니다. 장비가 고산에 머물며 뒤를 끊으려 하자 모두 머뭇거렸으나, 조휴가 먼저 오란을 치자고 해 조홍이 이를 따라 오란을 크게 깨뜨리니 장비는 물러갔습니다. 무제기는 이듬해 조홍이 오란을 깨뜨리고 그 장수 임기 등을 베었으며, 오란은 음평의 저족 강단에게 목이 베였다고 적습니다. 신비전에 따르면 조조는 신비와 조휴를 조홍의 군사에 참여하게 하며 「옛날 고조는 재물을 탐하고 여색을 좋아했으나 장량과 진평이 그 허물을 바로잡았다」고 일렀고, 양부전은 이 싸움 뒤의 잔치에서 조홍이 얇은 비단옷을 입힌 여자 악사들에게 북을 밟으며 춤추게 하자 무도태수 양부가 크게 꾸짖어 조홍이 곧 여악을 그쳤다고 적습니다.
조홍은 집안이 부유했으나 성품이 인색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위략』은 조조가 사공이던 때 고을마다 재산을 매기게 했는데 초의 현령이 조홍의 재산을 조조 집안과 같게 매기자, 조조가 「우리 집 재산이 어찌 자렴만 하겠는가」라고 했다고 적습니다. 조비는 젊을 때 조홍에게 빌리려던 것을 얻지 못한 일로 늘 그를 원망했는데, 『위략』은 동궁 시절 비단 백 필을 빌리려 했으나 조홍이 뜻대로 해 주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조비가 즉위하자 조홍은 위장군을 거쳐 표기장군 · 특진이 되고 야왕후에 봉해져 봉읍이 2천1백 호에 이르렀으며, 뒤에 도양후로 옮겨 봉해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식객이 법을 어기자 조비는 조홍을 옥에 가두고 죽을죄로 다스렸습니다. 뭇 신하가 함께 구하려 했으나 아무도 해내지 못하자, 변태후는 곽황후에게 「조홍이 오늘 죽으면 나는 내일 황제에게 명해 황후를 폐하게 하겠다」고 했고, 곽황후가 울며 여러 번 청해 조홍은 벼슬을 잃고 작위와 봉토를 깎이는 데서 그쳤습니다. 『위략』은 곁에 있던 조진도 그를 풀어 달라고 청했고, 변태후가 조비를 꾸짖으며 「양과 패 사이에서 자렴이 아니었다면 오늘이 없었다」고 했다고 적습니다. 『위략』에 따르면 몰수된 재산도 태후가 다시 말해 뒤에 돌려받았고, 조홍은 죽을 줄 알았다가 풀려나자 「성품에 만족할 줄 아는 분수가 없고 승냥이와 이리처럼 물리지 않는 바탕을 지녔다」며 죄를 비는 글을 올렸습니다. 진수는 조홍이 선제의 공신이라 당시 사람들이 이 일을 많이 서운해했다고 적습니다.
황초 7년(226) 명제가 즉위하자 조홍은 후장군 · 특진이 되어 낙성후로 다시 봉해졌고, 다시 표기장군에 올랐습니다. 사마지전은 이 무렵 특진 조홍의 유모가 금한 제사에 얽혀 옥에 갇히자 변태후가 황문을 보내 구하려 했으나, 하남윤 사마지가 이를 들이지 않고 형을 집행했다고 적습니다. 태화 6년(232) 조홍이 죽으니 시호는 공후이고, 아들 조복이 뒤를 이었습니다. 앞서 조조는 조홍의 봉읍을 나누어 아들 조진을 열후로 삼았는데 이 조진은 대사마 조진과 다른 사람이며, 딸은 순욱의 아들 순찬에게 시집갔습니다. 정시 4년(243) 조홍은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습니다. 진수는 하후씨와 조씨의 친척들이 그 시대에 귀하게 쓰여 곁에서 공업을 도왔다며 조홍을 조인 · 조휴 등과 함께 평했습니다.
故惇、淵、仁、洪、休、尚、真等並以親舊肺腑,貴重於時,左右勳業,咸有効勞天下可無洪,不可無君『삼국연의』 제5~80회
연의에서 조홍은 제5회에 처음 나옵니다. 조조가 의병을 일으키자 조씨 형제인 조인과 조홍이 저마다 천여 명을 이끌고 와 돕습니다. 제6회 형양 싸움에서 조조의 말이 창에 맞아 쓰러지고 조조가 두 군사에게 붙잡히자, 조홍이 달려와 둘을 베고 제 말을 내주며 「천하에 조홍은 없어도 되나 공은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조홍은 갑옷을 벗고 칼을 끌며 말 뒤를 걸어서 따르다가 큰 강에 막히자 조조를 업고 물을 건넙니다.
그 뒤로 조홍은 조조의 싸움마다 따라다닙니다. 제24회에서는 동승 등이 죽은 뒤 조조의 명으로 어림군 3천을 거느려 궁을 살피고, 제26회에서는 여남의 유벽 · 공도와 싸워 여러 번 지며, 제33회에서는 남피에서 원담과 맞닥뜨려 칼로 그를 벱니다. 제40회에서는 조인과 함께 선봉이 되어 신야에서 불에 쫓기고, 제51회에서는 이릉을 지키다 감녕에게 빼앗깁니다. 제56회 동작대의 활쏘기에서는 조휴 · 문빙에 이어 과녁 한가운데를 맞힙니다.
제58회에서 조조는 조홍과 서황에게 열흘 동안 동관을 지키라 하고, 조인은 조홍의 성미가 급하다며 걱정합니다. 마초의 군사가 날마다 조조의 삼대를 욕하자 조홍은 서황의 말을 듣지 않고 관에서 내려가 싸우다 아흐레 만에 동관을 잃고, 조조는 그를 베라고 했다가 여러 관원의 청으로 거둡니다. 그러나 수염을 자르고 달아나던 조조가 마초에게 쫓길 때 조홍이 가로막아 마초와 사오십 합을 싸우며 구해 내자, 조조는 조홍을 죽였다면 오늘 마초의 손에 죽었을 것이라며 상을 줍니다. 제59회에서는 조조의 꾀대로 한수에게 다가가 알 수 없는 말을 건네 마초와 한수를 갈라놓습니다.
제69~71회에서는 한중으로 가서 하변에서 오란의 선봉 임기를 베지만 관로의 예언을 꺼려 물러나고, 와구관을 잃고 돌아온 장합을 베려다 곽회의 말에 그칩니다. 제78회에서는 병든 조조에게 뒷일을 부탁받는 신하 가운데 하나가 되고, 제80회에서는 조휴와 함께 칼을 차고 궁에 들어가 헌제에게 옥새를 내놓으라 하고 이를 꾸짖는 부보랑 조필을 베게 합니다. 연의에서 조홍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큰아버지 조정 · 아들 조복 · 조진(대사마 조진과 다른 사람) · 딸(순찬의 아내) · 종형 조조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패국의 조자렴이다!
내 말을 내드린 그날처럼, 오늘도 지지 않소.
재물은 아껴도 말은 아끼지 않겠소.
…밑지는 장사는 싫은데.
본전 생각이 나는구려.
천하에 조홍은 없어도 공은 계셔야 하오.
이 빚은 이자 없이 갚으리다.
형양의 빚을 갚았소!
…말이라도 또 내드리리다.
형양에서 내준 말이 값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