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劉禪

자 공사(公嗣) · 207년 ~ 271년 · 유주 탁군 탁현 · 유비 휘하

유선 초상

어진 재상에게 맡기면 이치를 따랐고 환관에 홀리자 어두워진 촉한의 후주

능력치

통솔8무력21지력36정치51매력55

카드

공격력 2체력 1비용 1값어치 4직군 능리
줄행랑 속성
한 대에 1 까지만 맞는다 · 반격을 안 한다 · 최대체력 +1

정사

출전 · 『삼국지』 촉서 후주전과 배송지 주의 『위략』 · 『한진춘추』 · 『촉기』 · 『제갈량집』 · 진수의 평 · 촉서 이주비자전과 배송지 주의 손성 『촉세보』 · 선주전과 배송지 주의 『제갈량집』 · 제갈량전 · 조운전과 배송지 주의 『조운별전』 · 동윤전 · 진지전 · 강유전 · 초주전 · 극정전 · 위서 하후연전 배송지 주의 『위략』 · 등애전 · 오서 설종전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화양국지』 유후주지

유선은 자가 공사이며 선주 유비의 아들로, 사서는 흔히 그를 후주라 부릅니다. 『삼국지』 이주비자전은 유비가 형주에 있을 때 첩인 감부인이 그를 낳았다고 적고, 배송지는 즉위한 해에 열일곱이었다는 기록으로 헤아려 건안 12년(207)에 태어났다고 보았습니다. 이듬해 당양의 장판에서 조조의 군사에게 쫓긴 유비가 처자를 버리고 달아나자, 조운이 어린 그를 몸소 안고 감부인을 지켜 둘 다 화를 면했습니다. 배송지 주의 『조운별전』은 유비가 익주로 들어간 뒤 손부인이 그를 데리고 오로 돌아가려 하자 조운과 장비가 군사를 거느리고 강을 막아 되찾았다고 적습니다. 『위략』은 그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한중에서 팔려 갔다가 되찾았다는 이야기를 싣지만, 배송지는 해가 맞지 않는 헛된 말이라며 물리쳤습니다.

건안 24년(219)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왕태자가 되었고, 장무 원년(221) 유비가 황제에 오르자 승상 제갈량에게서 인수를 받아 황태자가 되었으며 장비의 맏딸을 태자비로 맞았습니다. 장무 3년(223) 영안에서 병이 깊어진 유비는 제갈량에게 「아들이 도울 만하면 돕고, 재주가 없거든 그대가 스스로 취하라」 하며 뒷일을 맡기고, 유선에게는 「승상과 함께 일하되 아버지처럼 섬기라」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배송지 주의 『제갈량집』에 실린 유조에는 「악이 작다고 하지 말고, 선이 작다고 안 하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4월 유비가 죽자 5월 성도에서 자리를 이으니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해를 넘겨 연호를 바꾸는 옛 법과 달리 그해 곧바로 건흥으로 연호를 고쳤고, 제갈량은 무향후가 되어 승상부를 열었습니다. 정사는 크고 작은 일이 모두 제갈량에게서 결정되었고, 『위략』은 유선이 「정치는 갈씨가 하고 제사는 과인이 한다」고 했다고 전합니다. 그해 장비의 맏딸을 황후로 세우고 등지를 보내 오와 다시 화친했으며, 건흥 3년(225) 제갈량이 남중의 네 군을 평정했습니다. 건흥 5년(227) 제갈량이 한중으로 나가며 출사표를 올렸고, 여러 해 이어진 북벌 끝에 건흥 12년(234) 가을 위수 가에서 죽었습니다. 유선은 장완을 상서령으로 삼아 나라의 일을 맡기고 이듬해 대장군으로 올렸습니다.

연희 원년(238) 장황후를 세우고 맏아들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장완 · 비의와 함께 나라를 지탱한 동윤은 궁중의 일을 맡아, 유선이 후궁을 더 뽑으려 하자 천자의 비빈은 열둘을 넘지 않는다며 끝내 들어주지 않았고 유선은 그를 더욱 어려워했습니다. 연희 9년(246) 장완과 동윤이 잇달아 죽자 『위략』은 유선이 비로소 몸소 나라의 일을 맡았다고 적습니다. 연희 12년(249) 위에서 달아나 온 하후패에게는 「그대의 아버지는 싸움터에서 해를 입었을 뿐 내 선친이 손수 벤 것이 아니다」라며 달래고 제 아들을 가리켜 하후씨의 외손이라 했다고 배송지 주의 『위략』은 적습니다. 연희 16년(253) 비의가 위의 항복한 이 곽순에게 죽은 뒤로는 강유가 거의 해마다 북으로 군사를 냈습니다.

경요 원년(258) 환관 황호가 비로소 정사를 오로지했습니다. 동윤전은 유선이 자라면서 황호를 아꼈으나 동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황호가 황문승을 넘지 못했고, 동윤을 이은 시중 진지가 황호와 안팎으로 손을 잡은 뒤로 유선이 동윤을 날로 원망하게 되었다고 적습니다. 경요 2년(259) 아들 유심을 북지왕, 유순을 신흥왕, 유건을 상당왕에 봉했고, 이듬해부터 관우 · 장비 · 마초 · 방통 · 황충과 조운에게 시호를 내렸습니다. 『화양국지』는 경요 5년(262) 강유가 황호를 죽이자고 청하자 유선이 「황호는 심부름하는 하찮은 신하일 뿐」이라며 들어주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는 촉에 다녀온 오의 사신 설후가 「임금은 어두워 제 허물을 모르고, 신하들은 몸을 사려 죄를 면하기만 바란다」고 전했다고 합니다.

경요 6년(263) 위가 등애 · 종회 · 제갈서를 여러 길로 보냈습니다. 강유는 그보다 앞서 장익과 요화를 보내 길목을 지키자고 표를 올렸으나, 황호가 귀신과 무당을 믿어 적이 오지 않으리라며 유선에게 그 일을 덮게 해 신하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해 연호를 염흥으로 고쳤고, 겨울 등애가 음평의 험한 길을 넘어 면죽에서 제갈첨을 깨뜨렸습니다. 오로 달아나자는 말과 남중으로 가자는 말이 오가는 가운데 유선은 광록대부 초주의 계책을 따라 등애에게 글을 보내 항복했고, 그날 아들 북지왕 유심은 나라가 망하는 것을 슬퍼해 처자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선은 관을 수레에 싣고 스스로 몸을 묶어 등애의 진영 문으로 나아갔고, 등애는 묶은 것을 풀고 관을 불사른 뒤 조정의 명을 빌려 그를 표기장군으로 삼았습니다.

이듬해(264) 정월 종회가 성도에서 난을 일으켰다가 죽고, 그 난리 속에 태자도 난병에게 죽었습니다. 유선은 온 집안을 이끌고 낙양으로 옮겨 가 3월 안락현공에 봉해졌고, 식읍 만 호와 비단 만 필, 노비 백 명을 받았으며 자손 가운데 도위가 되거나 제후에 봉해진 이가 쉰 명 남짓이었습니다. 옛 신하 가운데 처자를 두고 홀로 따라간 이는 극정과 장통뿐이었고, 극정의 도움으로 몸가짐에 흠이 없게 되자 유선은 그를 늦게 알아본 것을 한탄했습니다. 『한진춘추』는 사마소가 잔치에서 촉의 옛 놀이를 벌이자 곁의 사람들은 모두 슬퍼했으나 유선은 웃으며 태연했고, 다른 날 촉이 생각나느냐는 물음에 「여기가 즐거워 촉이 생각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고 적습니다. 태시 7년(271) 낙양에서 죽으니, 배송지 주의 『촉기』는 시호를 사공이라 하고 아들 유순이 뒤를 이었다고 적습니다.

진수는 「후주는 어진 재상에게 맡기면 이치를 따르는 임금이었고 환관에게 홀리면 어두운 임금이었으니, 흰 실은 물들이는 대로 된다는 말이 참으로 맞다」고 평하고, 제갈량이 있을 때는 열두 해 동안 연호를 바꾸지 않고 군사를 자주 일으키면서도 사면을 함부로 내리지 않았으나 제갈량이 죽은 뒤로 이 법도가 점점 허물어졌다고 적었습니다. 『화양국지』에 실린 촉군태수 왕숭의 논은 그를 「평범한 임금」이라 했습니다.

傳曰『素絲無常,唯所染之』,信矣哉
옛 글에 「흰 실은 제 빛이 따로 없어 물들이는 대로 된다」 했으니 참으로 그렇다(어진 재상과 환관 사이의 후주를 두고)『삼국지』 촉서 후주전 평
他日,王問禪曰:「頗思蜀否?」禪曰:「此間樂,不思蜀。」
다른 날 사마소가 「촉이 꽤 생각나지 않소?」 하고 묻자 유선은 「여기가 즐거워 촉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하고 답했다『삼국지』 촉서 후주전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34~119회

연의에서 유선은 제34회에 처음 나옵니다. 건안 12년(207) 봄 신야에서 감부인이 그를 낳을 때 흰 학이 관아 지붕에 날아와 울고 방 안에 향기가 가득했으며, 감부인이 밤에 북두칠성을 삼키는 꿈을 꾸었다 하여 아명을 아두라 했다고 합니다. 제41회 장판에서 미부인은 다친 몸으로 아두를 조운에게 맡기고 우물에 몸을 던지고, 조운은 갑옷 끈을 풀어 아두를 품에 안은 채 조조의 진을 뚫고 나옵니다. 제42회에서 유비는 조운에게서 아두를 받아 땅에 던지며 「이 어린것 때문에 내 대장 하나를 잃을 뻔했다」고 합니다. 제61회에서는 손부인이 일곱 살 아두를 데리고 오로 돌아가려 하자 조운과 장비가 강에서 배를 막아 아두만 되찾습니다.

제85회에서 유비는 백제성에서 제갈량에게 「아들이 도울 만하면 돕고, 재주가 없거든 그대가 성도의 주인이 되라」 하고 아들들에게 승상을 아버지처럼 섬기라고 이릅니다. 자리에 오른 유선은 장비의 딸을 황후로 맞고, 위가 다섯 길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몸소 승상부를 찾아가 연못가에서 물고기를 보던 제갈량을 「상보」라 부르며 계책을 묻습니다. 제100회에서는 구안이 퍼뜨린 헛소문을 듣고 한창 싸우던 제갈량을 불러들이고, 제105회에서는 제갈량이 죽었다는 소식에 「하늘이 나를 버렸다」며 용상에 쓰러져 울고 몸소 영구를 정군산까지 보내 장사 지냅니다.

제112회에서 초주는 조정이 술과 여색에 빠져 환관 황호를 믿는다고 탄식합니다. 제113회에서 유선은 황호의 말만 듣고 싸움터의 강유를 불러들이고, 제115회에서는 하루에 세 번 조서를 내려 강유를 돌려세운 뒤 황호를 죽이라는 강유에게 「황호는 심부름하는 하찮은 신하」라며 오히려 황호를 불러 강유에게 절하게 합니다. 제116회에서는 위군이 쳐들어온다는 강유의 표를 받고도 황호가 데려온 무당이 「몇 해 뒤에는 위나라 땅도 폐하의 것이 된다」고 하자 그 말을 믿고 궁중에서 잔치만 벌입니다.

제118회에서 초주의 말을 따라 항복하기로 하자 다섯째 아들 북지왕 유심이 「어찌 항복하는 천자가 있느냐」며 성을 등지고 싸우자고 울며 간하지만, 유선은 그를 궁문 밖으로 내쫓습니다. 유심이 소열제의 사당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튿날, 유선은 태자와 여러 왕, 신하 예순 남짓을 거느리고 몸을 묶고 관을 수레에 실어 북문 밖 십 리에서 항복합니다. 제119회에서 낙양에 온 그는 사마소에게 꾸지람을 듣고 안락공에 봉해지며, 잔치에서 촉의 음악에 촉의 신하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는데도 홀로 웃고, 촉이 생각나느냐는 물음에 「여기가 즐거워 촉이 생각나지 않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극정이 일러 준 말로 다시 답했다가 들키자 사마소는 그가 참되다며 더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연의에서 유선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07형주에서 유비의 첩 감부인에게서 태어났습니다.
  2. 208당양 장판에서 조운이 어린 그를 안고 감부인을 지켜 화를 면했습니다.
  3. 219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왕태자가 되었습니다.
  4. 221유비가 황제에 오르자 황태자가 되고 장비의 맏딸을 태자비로 맞았습니다.
  5. 223유비가 영안에서 제갈량에게 그를 부탁하고 죽자 성도에서 자리를 이었습니다.백제성의 탁고
  6. 227한중으로 나가는 제갈량에게서 출사표를 받았습니다.출사표
  7. 234제갈량이 죽자 장완을 상서령으로 삼아 나라의 일을 맡겼습니다.
  8. 238장황후를 세우고 맏아들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9. 246장완과 동윤이 죽은 뒤 몸소 나라의 일을 맡았다고 『위략』은 적습니다.
  10. 249위에서 달아나 온 하후패를 달래고 제 아들을 하후씨의 외손이라 했습니다.하후씨의 외손
  11. 258환관 황호가 비로소 정사를 오로지했습니다.
  12. 259아들 유심을 북지왕, 유순을 신흥왕, 유건을 상당왕에 봉했습니다.
  13. 260관우 · 장비 · 마초 · 방통 · 황충에게 시호를 내렸습니다.
  14. 262황호를 죽이자는 강유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15. 263강유의 표를 황호의 말대로 덮었다가 위군이 움직인 뒤에야 구원군을 보냈습니다.
  16. 263초주의 계책을 따라 성도를 열고 등애에게 항복했습니다.그립지 않다는 말
  17. 263항복하던 날 아들 북지왕 유심이 처자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종묘 앞에서 갈린 부자
  18. 264온 집안과 함께 낙양으로 옮겨 가 안락현공에 봉해졌습니다.
  19. 271낙양에서 죽었고 아들 유순이 뒤를 이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유비 · 어머니 감부인 · 아내 장비의 두 딸(경애황후 · 장황후) · 아들 일곱(태자 · 북지왕 유심 · 신흥왕 유순 등)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짐도 나왔소.

말을 열며

상부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지 않소?

되받으며

짐이 어리석다는 소문, 다 사실은 아니오.

말문이 막혀

…상부, 도와주시오.

말문이 막혀

여기가 즐거워 촉 생각이 안 나오.

설전을 이기고

짐도 이길 때가 있소!

설전에 지고

졌어도 밥은 맛있구려.

이긴 뒤

짐도 할 때는 하오.

진 뒤

…이곳도 즐겁긴 하오.

쓰러지며

이곳이 즐거워 촉이 그립지 않소.

같은 기치 아래

관우제갈량조운장비위연방통장완서서왕평관색마속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