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첨傅僉

자 미상 · 미상 ~ 263년 · 형주 의양군 · 유비 휘하

부첨 초상

양안관 어귀의 관성을 끝까지 지키다 아버지처럼 싸워 죽은 촉의 장수

능력치

통솔73무력85지력72정치42매력60

카드

공격력 5체력 4비용 3값어치 11직군 맹장
맹위 호령
이번 판 동안 자기 공격력 +2

정사

출전 · 『삼국지』 촉서 양희전(『계한보신찬』에 덧붙인 진수의 글)과 배송지 주의 『촉기』 · 촉서 강유전과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촉기』 · 선주전 · 위서 종회전 · 오서 육손전 · 『화양국지』 유선주지 · 유후주지

부첨은 촉한의 장수입니다. 『삼국지』에 제 전은 없고, 진수가 양희전의 『계한보신찬』에 덧붙인 글에 아버지와 함께 몇 줄이 있으며, 강유전 본문과 배송지 주에 인용된 『한진춘추』 · 『촉기』, 그리고 『화양국지』에 그의 마지막이 적혀 있습니다. 자와 태어난 해는 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의양 사람으로, 『삼국지』는 그 이름을 부융으로, 『화양국지』는 부동으로 적습니다. 장무 2년(222) 유비가 오나라를 치다 이릉 싸움에서 크게 져 물러날 때 아버지는 뒤를 끊으며 싸웠고, 거느린 군사가 다 죽은 뒤 오나라 장수가 항복하라고 하자 「오나라 개야, 어찌 항복하는 한의 장군이 있겠느냐」 하고 꾸짖고 싸우다 죽었습니다. 부첨은 그 뒤 좌중랑이 되었고, 뒤에 관중도독이 되었습니다.

경요 6년(263) 위나라가 촉을 칠 때 종회는 한성과 낙성을 에워싸게 하고 별장을 보내 양안관 어귀를 쳤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한진춘추』에 따르면 부첨과 함께 관성을 지키던 장서는 항복하려고 마음먹고 「적이 왔는데 치지 않고 성문을 닫고 지키기만 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오」 하고 속여 말했습니다. 부첨이 「명을 받아 성을 지키니 온전히 지키는 것이 공이오. 지금 명을 어기고 나가 싸우다 군사를 잃고 나라를 저버리면 죽어도 보탬이 없소」 하고 맞서자, 장서는 「그대는 성을 지켜 온전히 하는 것을 공으로 삼고 나는 나가 싸워 적을 이기는 것을 공으로 삼으니, 저마다 뜻대로 합시다」 하고 무리를 이끌고 나갔습니다. 부첨은 그가 싸우러 가는 줄 알았으나, 장서는 음평에 이르러 위나라 장수 호열에게 항복했습니다. 호열이 빈틈을 타 성을 치자 부첨은 맞붙어 싸우다 죽었고, 위나라 사람들도 그를 의롭게 여겼습니다.

『촉기』는 무흥독이던 장서가 일을 잘하지 못해 자리를 바뀌고 한중을 지키는 일을 돕게 되자 앙심을 품어 성을 열고 항복했다고 적습니다. 강유전 본문은 장서가 성을 열고 나가 항복하고 부첨은 맞붙어 싸우다 죽었다고 짧게 적고, 『화양국지』는 그를 도독 부첨이라 부르며 힘껏 싸우다 죽었다고 적습니다. 관 어귀가 떨어졌다는 말을 들은 종회는 곧장 앞으로 내달았고, 강유 등은 검각으로 물러나 종회를 막았습니다.

진수는 부첨이 경요 6년에 「또 위태로움 앞에서 목숨을 바쳤다」고 적고, 논하는 이들이 그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충의를 지킨 것을 기렸다고 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촉기』에 따르면 뒤에 진 무제는 조서에서 「촉의 장군 부첨은 앞서 관성에서 몸소 관군에 맞서 죽음을 돌아보지 않았고, 그 아버지 부융도 유비를 위해 싸우다 죽었다. 천하의 선은 하나이니 어찌 이쪽저쪽으로 다르게 보겠는가」라고 했습니다. 부첨의 아들 부저와 부모는 뒤에 관노가 되었다가 풀려나 평민이 되었습니다. 사서에 남은 부첨의 일은 이것뿐입니다.

景耀六年,又臨危授命。論者嘉其父子奕世忠義。
경요 6년(263)에 또 위태로움 앞에서 목숨을 바쳤다. 논하는 이들은 그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충의를 지킨 것을 기렸다『삼국지』 촉서 양희전에 덧붙인 진수의 글
受命保城,惟全为功,今违命出战,若丧师负国,死无益矣
명을 받아 성을 지키니 온전히 지키는 것이 공이다. 지금 명을 어기고 나가 싸우다 군사를 잃고 나라를 저버리면 죽어도 보탬이 없다『삼국지』 촉서 강유전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12~116회

연의에서 부첨은 제112회에 처음 나옵니다. 경요 원년 강유가 한중에서 뽑아 날마다 군사를 조련하게 한 두 장수 가운데 하나로, 장서와 함께 담력과 용기가 있어 강유가 아꼈다고 소개됩니다. 강유가 어디로 나갈지 묻자 부첨은 위의 군량이 모두 장성에 있으니 낙곡을 지나 침령을 넘어 장성으로 가서 먼저 군량을 태우자고 답하고, 강유는 제 계책과 꼭 맞는다며 기뻐합니다. 장성 앞에서는 사마망의 장수 왕진과 맞붙어 짐짓 빈틈을 보인 뒤 그를 산 채로 사로잡고, 구하러 달려든 이붕을 네모난 쇠몽둥이로 쳐 죽입니다.

제113회에서는 장서와 함께 오른쪽 군을 맡아 기산으로 나가고, 제114회에서는 강유가 위의 왕관이 거짓으로 항복해 온 것을 역이용할 때 항복해 온 위군 이천을 이끌고 군량 수레를 모는 척하다가, 뒤쫓아 온 등애 앞에 나타나 「등애 필부야, 이미 우리 주장의 계책에 빠졌다」 하고 외칩니다. 제115회에서는 강유가 답중으로 가며 장서와 함께 관애를 지키게 합니다.

제116회에서 종회가 한중으로 쳐들어오자 부첨은 부장 장서와 양평관을 지킵니다. 장서는 굳게 지키자고 하나 부첨은 나가 싸우지 않으면 한성과 낙성이 위태롭다며 맞서고, 종회가 항복을 권하자 크게 노해 장서에게 관을 맡기고 삼천을 이끌고 나갑니다. 종회가 달아나 위군이 물러나자 뒤쫓았으나 위군이 다시 모여들고, 관으로 돌아오니 이미 위의 깃발이 서 있고 장서가 「나는 이미 위에 항복했다」 하고 외칩니다. 부첨은 은혜를 잊고 의리를 저버린 도적이라 꾸짖고 다시 싸우다 에워싸여 거느린 군사 열에 여덟아홉을 잃고, 「살아서 촉의 신하였으니 죽어서도 촉의 귀신이 되리라」 하고 다시 뛰어들었다가 여러 창에 찔리고 말이 쓰러지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습니다. 연의는 차라리 부첨처럼 죽을지언정 장서처럼 살지는 않겠다는 시를 붙입니다. 연의에서 부첨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아버지 부동은 제84회 이릉 싸움에서 유비의 뒤를 막다 죽지만, 연의는 두 사람을 아버지와 아들로 잇지 않습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22아버지 부동이 이릉 싸움에서 물러나는 유비의 뒤를 막다 싸워 죽었습니다.
  2. 263관중도독으로 관성을 지키며, 나가 싸우자는 장서에게 성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공이라고 맞섰습니다.
  3. 263장서가 호열에게 항복한 뒤 호열이 빈틈을 타 관성을 치자 맞붙어 싸우다 죽었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버지 부동(『삼국지』는 부융) · 아들 둘(부저 · 부모)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양평관의 부첨이오.

말을 열며

아버지도 이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았소.

되받으며

두 대에 걸쳐 지키는 일만 하였소.

말문이 막혀

…양평관의 문이 안에서 열리더이다.

말문이 막혀

곁에 선 자가 등을 보일 줄은 몰랐소.

설전을 이기고

지키는 자에게는 물러설 뒤가 없소.

설전에 지고

말에서도 문이 열렸구려.

이긴 뒤

문이 닫혀 있는 한 지지 않소.

진 뒤

안에서 열리면 막을 도리가 없소.

쓰러지며

아버지의 뒤를 따르겠소.

같은 기치 아래

관우제갈량조운장비위연방통장완서서왕평관색마속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