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련王連

자 문의(文儀) · 미상 ~ 미상 (224년 이후) · 형주 남양군 · 유비 휘하

왕련 초상

소금과 철의 전매로 촉의 재정을 다지고 제갈량의 친정을 만류한 승상장사

능력치

통솔17무력9지력69정치82매력66

카드

공격력 1체력 1비용 1값어치 4직군 능리
둔전 비용 1
다음 세 국면 지휘력 +1

정사

출전 · 『삼국지』 촉서 왕련전과 진수의 평 · 여예전 · 상랑전 · 두미전 · 요립전 · 제갈량전 · 양희전의 『계한보신찬』 · 『화양국지』 공손술유이목지 · 유후주지

왕련은 자가 문의이며 남양 사람입니다. 유장 때 촉에 들어가 재동현령이 되었습니다. 가맹에 머물던 유비가 유장과 틀어져 군사를 일으켜 남쪽으로 내려오자 왕련은 성문을 닫고 항복하지 않았고, 유비는 이를 의롭게 여겨 억지로 핍박하지 않았습니다. 『화양국지』는 이 일을 건안 17년(212)에 적으며, 재동현령 왕련이 성을 굳게 지키자 유비가 그 의리를 높이 사 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건안 19년(214) 성도가 평정되자 유비는 그를 십방령으로 삼았고, 광도로 옮겨서도 머무는 곳마다 다스린 치적이 있었습니다. 뒤에 사염교위가 되어 소금과 쇠의 이익을 나라가 도맡아 거두게 하니 들어오는 이익이 매우 많아 나라 살림에 보탬이 되었습니다. 여예전은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뒤 염부교위를 두어 소금과 쇠의 이익을 거두게 했고, 뒤에 교위 왕련이 여예와 남양의 두기, 남향의 유간을 전조도위로 청해 썼다고 적습니다. 왕련전은 그가 좋은 인재를 골라 속관으로 삼았고, 이들이 끝내 모두 큰 벼슬에 올랐으니 다 왕련이 뽑은 사람들이라고 적습니다. 여예는 뒤에 한중태수로 농사를 감독하며 제갈량의 군량을 대었고 상서령까지 올랐으며, 두기는 여러 군의 태수와 대장군사마를, 유간은 파서태수를 지냈습니다. 왕련은 촉군태수 · 흥업장군이 되어서도 염부를 그대로 거느렸습니다.

건흥 원년(223) 후주가 자리를 잇자 둔기교위가 되어 승상장사를 겸했고 평양정후에 봉해졌습니다. 『화양국지』는 이때 둔기교위 · 승상장사 왕련이 도정후에 봉해졌다고 적습니다. 그 무렵 남쪽의 여러 군이 복종하지 않자 제갈량이 몸소 치러 가려 했는데, 왕련은 「그곳은 풀도 나지 않는 땅이요 역병이 도는 고장이니, 한 나라가 우러르는 몸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가서는 안 됩니다」 하고 간했습니다. 제갈량은 여러 장수의 재주가 자기만 못하다고 걱정해 꼭 가려 했으나, 왕련의 말이 번번이 간곡해 오래 머물렀습니다. 건흥 2년(224) 익주목을 겸한 제갈량은 두미에게 보낸 편지에서 두미의 높은 뜻을 늘 기리던 사람들 가운데 왕련을 꼽았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왕련이 죽었습니다. 죽은 해는 적혀 있지 않지만, 상랑전은 상랑이 왕련을 대신해 승상장사를 맡았고 제갈량이 남쪽으로 나서자 남아서 뒷일을 거느렸다고 적습니다. 제갈량은 건흥 3년(225) 봄에 남쪽 정벌에 나섰습니다. 아들 왕산이 뒤를 이었고 벼슬은 강양태수에 이르렀습니다.

진수는 평에서 「왕련은 절개를 굳게 지켜 옮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양희는 『계한보신찬』에서 그를 두고 「둔기교위는 옛 주인을 받들어 절개를 굳게 지켰고, 새 명을 받고서는 법도에 마음을 다했으며, 군수 물자가 기대는 것을 갖추고 보탰다」고 기렸습니다. 한편 요립전에 따르면, 제 재주에 걸맞은 자리를 얻지 못해 늘 불만을 품던 장수교위 요립은 승상의 속관들 앞에서 여러 신하를 헐뜯으며 「왕련은 속된 사람으로 구차하게 긁어모으기만 하여 백성을 지치게 하고 오늘에 이르게 했다」고 했습니다. 제갈량은 요립이 뭇 선비를 함부로 평하고 뭇 신하를 헐뜯었다며 그를 서인으로 내쳐 문산군으로 옮겼습니다.

王連固節不移
왕련은 절개를 굳게 지켜 옮기지 않았다『삼국지』 촉서 왕련전 평
此不毛之地,疫癘之鄉,不宜以一國之望,冒險而行
그곳은 풀도 나지 않는 땅이요 역병이 도는 고장이니, 한 나라가 우러르는 이가 위험을 무릅쓰고 가서는 안 된다『삼국지』 촉서 왕련전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87회

연의에서 왕련은 제87회에 한 번 나옵니다. 건흥 3년 익주에 급보가 닿으니, 남만왕 맹획이 군사 10만을 일으켜 쳐들어오고 건녕태수 옹개가 그와 손잡았으며 장가태수 주포와 월수태수 고정이 성을 내주어 영창태수 왕항만이 버틴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갈량은 후주에게 몸소 대군을 거느리고 가서 치겠다고 아뢰고, 동쪽의 손권과 북쪽의 조비를 걱정하는 후주에게 오와는 화친했고 백제성의 이엄이 육손을 당할 만하며 마초가 한중의 관문을 지킨다며 안심시킵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열에서 한 사람이 나서 「안 됩니다, 안 됩니다」 하니, 연의는 그를 남양 사람 왕련, 자는 문의로 지금 간의대부라고 소개합니다. 왕련은 남방은 풀도 나지 않는 땅이요 풍토병이 도는 고장이니 나라의 무거운 소임을 맡은 승상이 몸소 멀리 치러 가는 것은 마땅하지 않고, 옹개 등은 옴 같은 작은 병이니 대장 하나만 보내도 반드시 이긴다고 간합니다. 제갈량은 남만 땅은 나라에서 멀고 사람들이 왕의 교화를 익히지 않아 거두기 어려우니, 굳세게 할지 부드럽게 할지 따로 헤아릴 것이 있어 쉽게 남에게 맡길 일이 아니라며 몸소 가겠다고 답합니다. 왕련이 거듭 간곡히 말렸으나 제갈량은 듣지 않고, 그날로 후주에게 하직한 뒤 장완을 참군, 비의를 장사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익주로 떠납니다. 연의에서 왕련이 나오는 것은 이 대목뿐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12재동현령으로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유비에게 성문을 닫고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2. 214성도가 평정되자 십방령이 되었고, 광도로 옮겨서도 치적을 남겼습니다.소금과 철을 거두다
  3. 223둔기교위가 되어 승상장사를 겸하고 평양정후에 봉해졌습니다.
  4. 223남쪽 여러 군이 복종하지 않자 몸소 가려는 제갈량을 간곡히 말렸습니다.
  5. 224제갈량이 두미에게 보낸 편지에서 두미의 뜻을 늘 기리던 사람으로 꼽혔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들 왕산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촉의 살림을 맡았소.

말을 열며

나라 살림은 소금 한 톨부터요.

되받으며

셈이 서지 않는 말은 사양이오.

말문이 막혀

…적자가 나겠군.

말문이 막혀

다시 셈해 보겠소.

설전을 이기고

곳간이 차야 군대도 가오.

설전에 지고

이번 담판은 밑졌소이다.

이긴 뒤

살림이 튼튼하면 이기오.

진 뒤

…곳간을 다시 채워야겠구려.

쓰러지며

소금과 철로 나라를 세웠다.

같은 기치 아래

관우제갈량조운장비위연방통장완서서왕평관색마속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