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균(子均) · 미상 ~ 248년 · 파서 탕거 · 유비 휘하
가정의 패전을 수습하고 위의 십만 대군에게서 한중을 지킨 촉한의 명장
왕평은 파서 탕거 출신으로 원래 조조를 섬겼으나 219년 한중 전투 때 유비에게 귀순하여 촉한의 장수가 되었습니다. 228년 제갈량의 제1차 북벌 당시 마속을 따라 가정 수비를 맡았습니다. 마속이 제멋대로 산에 진을 치려 하자 여러 번 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장합에게 크게 패배했습니다. 이때 왕평만이 휘하 1천 명의 군사로 북을 울리며 굳건히 진을 지켜 장합의 접근을 막았고 흩어진 병사들을 수습하여 귀환했습니다. 이 공로로 제갈량에게 치하받아 참군, 토구장군으로 승진했습니다. 제갈량 사후 위연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승상의 시신이 식기도 전에 어찌 이런 짓을 하느냐'라고 꾸짖어 위연의 병사들을 흩어지게 만들며 난을 평정했습니다. 이후 한중 방어를 책임지는 진북대장군이 되었으며, 244년 위나라 조상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자 낙성에서 수비하자는 의견을 물리치고 유민과 함께 1천 명의 군사로 흥세산에서 위군을 저지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글은 10자도 알지 못했으나 타인에게 사기나 한서를 읽게 하여 요지를 파악했고, 법률을 철저히 이행하는 엄정하고 충용스러운 무장이었습니다.
유비가 한중을 공격할 때 서황의 부장으로 참전했습니다. 서황이 물을 건너 배수진을 치려 하자 왕평이 강하게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서황은 조운과 황충에게 패배합니다. 패전 후 서황이 구원하러 오지 않은 왕평을 꾸짖자 앙심을 품고 진채에 불을 지른 뒤 유비에게 항복해 편장군이 됩니다. 이후 제갈량의 북벌 때 마대, 장익, 강유, 위연 등과 함께 촉군의 핵심 맹장으로 눈부신 활약을 펼칩니다.
적자: 왕훈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제 열전에서 한 자락씩 따 왔습니다.
가정의 일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왕자균이오. 글은 몰라도 이치는 아오.
들은 것은 잊지 않소. 말해 보시오.
…내 말을 들었어야 했소.
진을 다시 세워야겠군.
산 위에 진을 치지 말라 하지 않았소.
…지킬 곳을 지키지 못했구려.
한중은 그대로다.
…흥세의 진을 다시 짜야겠군.
한중은 내가 지켰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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