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범呂範

자 자형(子衡) · 미상 ~ 228년 · 예주 여남군 세양현 · 손견 휘하

여범 초상

젊은 손권의 사사로운 돈 청도 손책에게 아뢴 강직한 창업 공신

능력치

통솔73무력60지력74정치74매력68

카드

공격력 4체력 4비용 2값어치 9직군 모사
점괘 속성
내 편의 책략이 무산해도 값이 오르지 않는다

정사

출전 · 『삼국지』 오서 여범전과 배송지 주의 『강표전』 · 『구주춘추』 · 손토역전과 배송지 주의 『강표전』 · 오주전 · 노숙전 배송지 주의 『한진춘추』 · 서성전 · 전종전 · 여거전 · 위서 조휴전 · 장패전 · 왕릉전 · 주치주연여범주환전 평

여범은 자가 자형이며 여남군 세양현 사람입니다. 젊어서 현의 관리가 되었고 생김새와 풍채가 훌륭했습니다. 고을의 유씨 집안은 부유하고 딸이 아름다웠는데, 여범이 혼인을 청하자 딸의 어머니가 꺼려 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유씨 집안은 「여자형을 보건대 어찌 오래 가난할 사람이겠느냐」며 딸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뒤에 난을 피해 수춘에 있을 때 손책이 그를 보고 기이하게 여기자, 여범은 몸을 맡기고 거느리던 식객 백 명을 이끌고 손책에게 돌아갔습니다. 손책의 어머니가 강도에 있어 손책이 여범을 보내 맞아 오게 했는데, 서주목 도겸이 여범을 원씨의 첩자라 여겨 현에 일러 그를 붙잡아 매질하며 캐묻게 했고, 가까운 식객과 날랜 장사들이 그를 빼앗아 돌아왔습니다. 손책전은 손책이 어머니를 곡아로 옮기고 여범 · 손하와 함께 외숙 오경에게 갔다고 적습니다.

그 무렵 여범과 손하만이 늘 손책을 따라다니며 고생을 견디고 위험을 피하지 않았고, 손책도 그를 친척처럼 대하여 늘 대청에 함께 올라 어머니 앞에서 잔치를 벌였습니다. 손책을 따라 여강을 깨뜨린 뒤 함께 동쪽으로 강을 건너 횡강 · 당리에 이르러 장영 · 우미를 깨뜨렸고, 소단양과 호숙을 떨어뜨려 호숙상이 되었습니다. 손책이 말릉과 곡아를 평정하고 착융과 유요의 남은 무리를 거두자 여범은 군사 2천과 말 50필을 더 받았습니다. 이어 완릉현령으로 단양의 도적을 깨뜨리고 오로 돌아와 도독이 되었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강표전』에 따르면, 손책이 한가로이 여범과 단둘이 바둑을 두던 날 여범은 군의 기강이 아직 고르지 않다 하니 잠시 도독을 맡아 돕겠다고 했습니다. 손책이 사대부이고 이미 큰 무리를 거느린 그가 어찌 자잘한 일을 맡겠느냐고 하자, 여범은 「고향을 버리고 장군께 몸을 맡긴 것은 처자 때문이 아니라 세상일을 건지려는 것이니, 한 배로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아 한 가지라도 굳지 않으면 함께 무너진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나가서 홑옷을 벗고 말 탈 때의 옷차림에 채찍을 들고 문 아래에서 스스로 도독이라 일컬으며 일을 아뢰었고, 손책이 그에게 전을 주어 군중의 일을 맡기니 이로부터 군중이 엄숙하고 화목해졌습니다.

하비 사람 진우가 스스로 오군태수라 일컬으며 해서에 머물러 강한 호족 엄백호와 통하자, 손책은 몸소 엄백호를 치고 여범과 서일을 따로 보내 해서의 진우를 치게 했으며, 여범은 그의 대장 진목을 베었습니다. 또 능양에서 조랑을, 용리에서 태사자를 치는 데 따라가 일곱 현을 평정했고 정로중랑장이 되었습니다. 강하를 치고 돌아와서는 파양을 평정했습니다. 건안 5년(200) 손책이 죽자 오로 달려가 상을 치렀고, 오주전은 손권이 뒤를 이은 뒤 주유 · 정보 · 여범 등을 장수로 삼았다고 적습니다. 손권이 다시 강하를 칠 때 여범은 장소와 함께 남아 지켰고, 건안 13년(208) 조조가 적벽에 이르자 주유 등과 함께 막아 깨뜨려 비장군 · 팽택태수가 되었습니다. 유비가 경으로 손권을 만나러 오자 여범은 은밀히 유비를 붙잡아 두라고 청했는데, 노숙전 배송지 주에 인용된 『한진춘추』는 노숙이 이를 막고 유비에게 땅을 빌려주자고 했다고 적습니다. 뒤에 평남장군이 되어 시상에 머물렀습니다.

건안 24년(219) 손권은 관우를 치러 가는 길에 여범의 관사에 들러 「예전에 일찍 경의 말을 따랐더라면 이런 수고가 없었을 것이오. 이제 올라가 그를 칠 터이니 경은 나를 위해 건업을 지켜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관우를 깨뜨리고 돌아와 무창에 도읍한 손권은 여범을 건위장군으로 삼아 완릉후에 봉하고 단양태수로 건업에 머물며 부주에서 바다까지를 감독하게 했습니다. 황무 원년(222) 조휴 · 장료 · 장패 등이 쳐들어오자 여범은 서성 · 전종 · 손소 등을 거느리고 수군으로 동구에서 막았고, 전장군이 되어 가절을 받고 남창후로 고쳐 봉해졌습니다. 그러나 큰바람을 만나 배가 뒤집혀 수천 명이 빠져 죽었고 군을 돌렸습니다. 위서 조휴전과 장패전은 이 싸움에서 여범을 깨뜨렸다고 적고, 왕릉전은 밤의 큰바람에 여범 등의 배가 북쪽 기슭으로 떠밀려 오자 맞받아쳤다고 적습니다. 돌아온 여범은 양주목이 되었습니다.

여범은 위의를 좋아하여, 양주 사람인 육손 · 전종과 귀한 집 자제들도 그 앞에서는 모두 몸가짐을 삼가 공경하고 감히 가볍게 굴지 못했습니다. 사는 곳과 옷차림은 그때로서는 사치스러웠으나 일에 부지런하고 법을 받들었으므로, 손권은 그 충성을 기뻐하고 사치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누가 여범과 하제의 옷차림이 왕자를 흉내 낸다고 아뢰자, 손권은 관중의 예를 들며 그들의 기물이 정밀하고 배와 수레가 엄정한 것은 군의 위용을 갖춘 것이니 다스림에 무슨 해가 되겠느냐고 했습니다. 처음 손책이 여범에게 재정을 맡겼을 때, 나이 어린 손권이 사사로이 구하는 것이 있으면 여범은 반드시 손책에게 아뢰고 홀로 허락하지 않아 그때는 원망을 샀습니다. 양선현장이던 손권이 사사로이 쓴 것을 공조 주곡이 장부를 고쳐 덮어 주었는데, 손권은 그때는 주곡을 좋아했으나 일을 맡은 뒤로는 여범의 충성을 믿어 두터이 쓰고 장부를 속인 주곡은 쓰지 않았습니다.

황무 7년(228) 여범은 대사마가 되었으나 인수가 내려오기 전에 병으로 죽었습니다. 손권은 흰옷을 입고 곡했으며 사자를 보내 인수를 추증했습니다. 도읍을 건업으로 옮긴 뒤 손권은 여범의 무덤을 지나며 「자형!」 하고 부르고 말끝에 눈물을 흘렸으며 태뢰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손권은 노숙을 등우에, 여범을 오한에 견주었는데, 엄준이 지나친 칭찬이라 하자 「여자형은 충성스럽고 도타우며 밝고 곧아, 사치를 좋아하기는 했으나 나랏일 근심을 앞세웠다」고 그 까닭을 밝혔습니다. 맏아들은 먼저 죽어 둘째 여거가 뒤를 이었고, 여거는 표기장군에 올랐다가 태평 원년(256) 손침과 맞서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진수는 「주치와 여범은 옛 신하로서 믿고 쓰였다」고 하고, 여범과 주환이 분수를 넘었는데도 좋게 삶을 마친 것은 만난 때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평했습니다.

呂子衡忠篤亮直,性雖好奢,然以憂公為先,不足為損
여자형은 충성스럽고 도타우며 밝고 곧았다. 성품이 사치를 좋아했으나 나랏일 근심을 앞세웠으니 흠이 되지 않는다『삼국지』 오서 여범전 배송지 주의 『강표전』에 실린 손권의 말
若範、桓之越隘,得以吉終
여범과 주환은 분수를 넘었는데도 좋게 삶을 마칠 수 있었다『삼국지』 오서 주치주연여범주환전 평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15회 · 제29회 · 제44회 · 제54회 · 제76~77회 · 제85회

연의에서 여범은 제15회에 처음 나옵니다. 주치가 손책에게 원술의 군사를 빌려 강동으로 가라고 권하는 자리에 원술의 모사인 여남 세양 사람 여범이 들어와 「정예 백 명으로 백부를 돕겠다」고 합니다. 원술이 군사를 빌려주지 않을까 걱정하던 여범은 손책이 아버지가 남긴 전국옥새를 볼모로 맡기겠다고 하자 「공로가 오래 탐내던 것이니 반드시 군사를 낼 것」이라고 맞장구칩니다. 여범은 주치와 함께 손책을 따라 길을 떠납니다. 제29회에서 손책이 우길을 죽이려 할 때는 가뭄이 들었으니 비를 빌게 해 죄를 씻게 하자고 청합니다. 제44회에서는 제갈근과 함께 문관 무리로 주유를 찾아오고, 적벽 싸움을 앞두고 주치와 함께 사방순경사가 됩니다.

제54회에서 손권은 유비를 사위로 불러 붙잡아 두려는 주유의 계책을 받아들이고 「여범이 아니면 안 된다」며 그를 중매로 형주에 보냅니다. 여범은 유비에게 혼담을 꺼내고 오국태가 딸을 멀리 보내려 하지 않으니 동오로 와서 혼례를 올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국태가 감로사에서 유비를 보겠다고 하자 여범은 가화에게 도부수 3백을 거느리고 두 회랑에 숨어 있게 하자고 꾀를 내고, 일이 드러나 오국태가 꾸짖자 손권은 여범에게 묻고 여범은 가화에게 떠넘깁니다. 제76회와 제77회에서는 관우를 칠 때 점을 쳐서 적이 멀리 달아날 괘라 하고, 다시 점쳐 관우가 서북으로 달아나 그날 밤 해시에 사로잡힐 것이라고 맞힙니다. 제85회에서 조비가 세 길로 쳐들어올 때 여범은 조휴를 막아 깨뜨립니다. 연의에서 여범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그 죽음은 그리지 않습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195손책을 따라 강을 건너 장영 · 우미를 깨뜨리고 호숙상이 되었습니다.손책을 받든 두 사람
  2. 197해서의 진우를 쳐서 그의 대장 진목을 베었습니다.
  3. 200손책이 죽자 오로 달려가 상을 치렀고, 손권 밑에서 주유 · 정보와 함께 장수가 되었습니다.어릴 적부터 본 두 사람
  4. 208주유 등과 적벽에서 조조를 막아 비장군 · 팽택태수가 되었습니다.
  5. 209경으로 손권을 찾아온 유비를 붙잡아 두자고 은밀히 청했습니다.
  6. 219관우를 치러 가는 손권의 명으로 건업을 지켰습니다.
  7. 221건위장군 · 완릉후 · 단양태수가 되어 건업을 다스렸습니다.
  8. 222동구에서 조휴를 막다 큰바람에 배를 잃었고, 돌아와 양주목이 되었습니다.
  9. 228대사마에 올랐으나 인수가 닿기 전에 병으로 죽었습니다.곳간을 잠근 사람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아내 유씨 · 아들 여거(맏아들은 먼저 죽음)

인연

해후 마주치면 서로 방벽이 오른다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강동의 살림을 맡은 몸이오.

말을 열며

장부는 정직하오. 말도 그래야 하오.

되받으며

셈이 맞는지부터 따져 봅시다.

말문이 막혀

…계산이 하나 어긋났군.

말문이 막혀

다시 맞춰 보면 되오.

설전을 이기고

한 푼도 틀리지 않았소.

설전에 지고

이 손해는 장부에 적어 두겠소.

이긴 뒤

셈이 맞아떨어졌소.

진 뒤

…장부를 다시 봐야겠구려.

쓰러지며

셈은 흐린 적이 없었다.

같은 기치 아래

주유여몽손견손책육항육손노숙황개주태서성손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