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례孫禮

자 덕달(德達) · 미상 ~ 250년 · 유주 탁군 용성현 · 사마의 휘하

손례 초상

호랑이 앞에서도 굽히지 않은 조위의 대쪽 같은 충신

능력치

통솔77무력81지력65정치74매력73

카드

공격력 5체력 4비용 3값어치 11직군 맹장
맹공 호령
적 하나에게 3 피해

정사

출전 · 『삼국지』 위서 손례전 · 삼소제기 · 최염전 · 조휴전 · 왕릉전 · 오서 오주전

손례는 자가 덕달이며 탁군 용성현 사람입니다. 조조가 유주를 평정하자 그를 불러 사공의 군모연으로 삼았습니다. 처음 세상이 어지러울 때 손례는 어머니를 잃었는데, 같은 군의 마태가 어머니를 찾아 주자 집안 재산을 모두 그에게 주었습니다. 뒤에 마태가 법에 걸려 죽게 되자 손례는 몰래 그를 옥에서 빠져나가게 해 주고는 「신에게는 달아날 의리가 없습니다」라며 곧바로 자간주부 온회에게 가서 스스로 죄를 털어놓았습니다. 온회가 이를 갸륵히 여겨 조조에게 아뢰자 둘 다 죽음에서 한 등급을 덜었습니다. 『삼국지』 최염전은 손례와 노육이 처음 군부에 들어왔을 때 최염이 손례를 두고 밝고 꼿꼿하며 굳세고 간결해 결단을 잘한다고 평하며 둘 다 삼공의 재목이라 했다고 적습니다.

하간군승을 거쳐 형양도위가 되었고, 노산의 도적 수백 명이 험한 곳에 버티며 백성을 해치자 노나라의 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제 녹봉의 곡식을 내고 관리와 백성을 모아 도적의 머리에 상을 걸었으며, 항복해 오는 이를 받아들여 도로 첩자로 쓰니 곧 고을이 평온해졌습니다. 이어 산양 · 평원 · 평창 · 낭야의 태수를 지냈습니다. 태화 2년(228) 대사마 조휴를 따라 협석에서 오를 칠 때 깊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간했으나 조휴는 듣지 않고 졌습니다. 손례는 양평태수를 거쳐 조정에 들어가 상서가 되었습니다.

명제가 궁궐을 짓는데 절기가 고르지 못해 곡식이 모자라자 손례는 굳게 다투어 노역을 그치게 했고, 명제는 바른 말을 받아들이니 백성을 서둘러 돌려보내라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공사를 감독하던 이혜가 한 달만 더 두어 일을 마치게 해 달라고 다시 아뢰자, 손례는 다시 아뢰지 않고 곧바로 공사장에 가서 조서를 일컬어 백성을 돌려보냈고, 명제는 그 뜻을 기이하게 여겨 꾸짖지 않았습니다. 명제가 대석산에서 사냥할 때 호랑이가 수레 쪽으로 달려들자 손례는 채찍을 던지고 말에서 내려 칼을 휘둘러 호랑이를 베려 했고, 명제는 그에게 말에 오르라고 명했습니다.

경초 3년(239) 명제는 죽음을 앞두고 조상을 대장군으로 삼으며 좋은 보좌가 있어야 한다고 여겨, 침상 아래에서 유조를 받든 손례를 대장군장사로 삼고 산기상시를 더했습니다. 손례가 밝고 곧아 굽히지 않자 조상은 그를 불편히 여겨 양주자사로 내보내고 복파장군을 더하며 관내후의 작위를 주었습니다. 정시 2년(241) 오나라의 대장 전종이 수만의 무리로 쳐들어왔을 때, 주의 군사는 쉬러 보내 남은 이가 얼마 없었습니다. 손례는 몸소 호위병을 다잡아 작피에서 맞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싸웠고 장수와 군사가 절반 넘게 죽거나 다쳤습니다. 그는 칼날을 무릅쓰고, 말이 여러 군데 다쳤는데도 손수 북채를 잡고 몸을 돌보지 않았으며, 그제야 적이 물러갔습니다. 조서로 위로하며 비단 7백 필을 내리자 손례는 싸우다 죽은 이들을 위해 제사를 차려 곡하고 비단을 모두 죽은 이의 집에 나누어 주어 제 몸에는 하나도 들이지 않았습니다. 『삼국지』 왕릉전은 이때 정동장군 왕릉이 여러 군을 거느리고 작피에서 맞서 연일 힘써 싸워 적을 물리쳤다고 적습니다.

소부로 불려 갔다가 형주자사로 나갔고 기주목으로 옮겼습니다. 태부 사마의는 청하와 평원이 8년 동안 경계를 다투어 자사가 두 번 바뀌어도 가리지 못했으니 잘 밝히라고 일렀습니다. 손례는 무덤과 늙은이의 말로는 가리기 어려우니 명제가 처음 평원왕에 봉해질 때의 지도로 가리자고 했고, 사마의도 옳다며 지도를 내려 주었습니다. 손례가 지도를 살펴보니 땅은 평원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조상은 청하의 말을 믿고 지도를 쓸 수 없다는 글을 내렸습니다. 손례는 지도와 실제 경계를 맞대어 보이는 상소를 올리고, 녹만 먹을 낯이 없다며 띠를 매고 신을 신은 채 수레에 올라 물러나기를 기다렸습니다. 크게 노한 조상은 그가 원망을 품었다고 탄핵해 다섯 해의 형을 매겼습니다. 한 해 동안 집에 있자 많은 이가 그를 두고 말해 성문교위가 되었습니다.

그 무렵 흉노왕 유정의 무리가 강성하고 선비가 자주 변경을 노략질하자, 손례는 병주자사가 되어 진무장군과 부절을 더하고 호흉노중랑장을 겸했습니다. 떠나기 전 사마의를 찾아가서는 성난 낯빛으로 말이 없었습니다. 사마의가 병주가 작아서인지, 경계를 가린 일이 억울해서인지 묻자 손례는 공께서 이윤과 여상의 자취를 따라 위나라를 바로잡아 명제의 부탁에 보답하시리라 여겼다며 「지금 사직이 위태롭고 천하가 어지러우니 이것이 제가 기쁘지 않은 까닭입니다」 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마의는 「잠시 그치시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으시오」라고 했습니다.

가평 원년(249) 조상이 죽은 뒤 조정에 들어와 사례교위가 되었고, 일곱 군과 다섯 주를 맡는 동안 어디서나 위엄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삼소제기에 따르면 그해 12월 사공이 되었고, 대리정후에 봉해져 식읍 100호를 받았습니다. 같은 군의 같은 또래인 노육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이름과 지위는 엇비슷했다고 합니다. 가평 2년(250) 11월에 죽어 경후라는 시호를 받았고, 손자 손원이 뒤를 이었습니다. 진수는 손례가 굳세게 결단하고 꼿꼿하며 엄했다고 평하고, 함께 실린 이들이 모두 삼공의 자리에 이르렀다고 적었습니다.

孫禮剛斷伉厲
손례는 굳세게 결단하고 꼿꼿하며 엄했다『삼국지』 위서 한기 · 최림 · 고유 · 손례 · 왕관전 평
今社稷將危,天下兇兇,此禮之所以不恱也
지금 사직이 위태롭고 천하가 어지러우니, 이것이 제가 기쁘지 않은 까닭입니다『삼국지』 위서 손례전 · 병주로 떠나며 사마의에게 한 말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제95회 · 제97~99회 · 제101~103회

연의에서 손례는 제95회에 처음 나옵니다. 조예가 장합을 선봉으로 사마의를 보내면서 신비와 손례에게 군사 5만을 주어 조진을 돕게 하고, 사마의는 손례와 신비에게 기곡 길목을 막게 했다고 말합니다. 제97회에서는 신비와 함께 조진이 장수를 잃고 군사가 꺾였다는 급보를 올립니다.

제98회에서 손례는 군량 수레로 꾸민 수레에 마른 장작과 풀을 싣고 유황과 염초를 부어 기산 서쪽에 두었다가, 촉군이 빼앗으러 오면 불을 놓고 복병으로 치자는 꾀를 내어 맡습니다. 제갈량이 운량관이 누구냐고 묻자 한 위나라 사람이 손례는 위주를 따라 대석산에서 사냥할 때 호랑이가 어가로 달려들자 말에서 내려 칼을 뽑아 베었고, 그 일로 상장군이 된 조진의 심복이라고 알려 줍니다. 꾀를 꿰뚫은 제갈량은 마대를 보내 바람을 타고 먼저 불을 지르게 하고, 마충과 장의가 에워싸자 손례는 다친 군사를 이끌고 불길과 연기를 뚫고 달아납니다. 본진마저 관흥 · 장포에게 빼앗기자 조진은 지키기만 합니다. 조진이 병들어 낙양으로 돌아간 뒤에는 곽회 · 장합과 장안의 여러 길을 지키다가 옹성을 맡습니다.

제99회에서는 사마의의 명으로 곽회와 함께 무도와 음평을 구하러 가는 길에, 곽회가 중달과 공명 가운데 누가 나으냐고 묻자 「공명이 중달보다 훨씬 낫다」고 답합니다. 그러나 두 군은 이미 떨어졌고, 앞을 막은 제갈량과 뒤에서 온 왕평 · 강유에게 몰려 곽회와 함께 말을 버리고 산을 기어올라 달아납니다. 제101회에서는 옹주와 양주의 군사를 이끌고 와 검각을 치러 가고, 제102회에서는 곽회와 북원에 진을 쳤다가 위연과 마대가 다가오자 사마의의 명대로 진을 버리고 달아나 그들을 협공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제103회에서 곽회와 함께 위수의 부교 위에서 촉군과 싸우는 것이 연의에서 손례가 나오는 마지막입니다.

정사와 연의가 다른 곳

생애

  1. 228조휴를 따라 협석에서 오를 칠 때 깊이 들어가지 말라고 간했으나 조휴는 듣지 않고 졌습니다.
  2. 239명제의 유조를 받들어 대장군 조상의 장사가 되었습니다.
  3. 241양주자사로서 몸소 호위병을 이끌고 작피에서 전종의 무리를 물리쳤습니다.
  4. 249조상이 죽은 뒤 조정에 들어와 사례교위가 되었습니다.
  5. 249그해 12월 사공이 되고 대리정후에 봉해졌습니다.수레 앞의 호랑이
  6. 25011월에 죽어 경후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연대표 속 이 사람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가족

손자 손원

남긴 말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싸움터에 들며

굽히지 않는 자가 여기 있다.

말을 열며

굽힐 줄 모르는 사람이오. 미리 이르오.

되받으며

듣기 좋은 말은 기대하지 마시오.

말문이 막혀

…또 미움을 사겠군.

말문이 막혀

그래도 굽히지는 않겠소.

설전을 이기고

곧은 것은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소.

설전에 지고

…내 성미가 화를 부르는구려.

이긴 뒤

버틴 자가 가져가는 법이오.

진 뒤

…그래도 굽히지는 않았소.

쓰러지며

굽힌 적 없으니 여한도 없다.

같은 기치 아래

사마의양호곽회사마사사마소왕준진태위관왕기왕창가충두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