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자중(子仲) · 미상 ~ 221년 · 서주 동해국 구현 · 유비 휘하
누이와 재물을 바쳐 유비를 일으켰으나 아우의 배반을 부끄러워하다 죽은 신하
출전 · 『삼국지』 촉서 미축전과 배송지 주의 『수신기』 · 『조공집』 · 촉서 선주전 · 손건전 · 간옹전 · 『화양국지』 유선주지
미축은 자가 자중이며 동해국 구현 사람입니다. 집안이 대대로 장사를 해 종과 식객이 만 명에 이르고 재산이 억을 헤아렸습니다. 『삼국지』 미축전은 이 집안의 성을 「고라니 미」 자로 적는데, 연의는 「죽 미」 자로 적습니다. 배송지 주에 인용된 『수신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축이 낙양에서 돌아오던 길에 한 부인이 태워 달라고 하여 수레에 태웠는데, 몇 리를 가서 내린 부인은 자신이 하늘의 사자로 동해 미축의 집을 태우러 가는 길이라 밝혔습니다. 미축이 사정하자 부인은 태우지 않을 수는 없으니 서둘러 돌아가라며 한낮에 불이 날 것이라 했고, 미축이 급히 재물을 꺼내 두자 과연 한낮에 큰불이 났다고 합니다.
뒤에 서주목 도겸이 그를 별가종사로 불렀습니다. 선주전에 따르면 병이 깊어진 도겸은 미축에게 「유비가 아니면 이 주를 편안히 할 수 없다」고 했고, 흥평 원년(194) 도겸이 죽자 미축은 그 유언을 받들어 주의 사람들을 이끌고 소패의 유비를 맞았습니다. 건안 원년(196) 유비가 원술을 막으러 나간 틈에 여포가 하비를 기습해 유비의 처자를 사로잡았습니다. 광릉의 해서로 옮겨 간 유비에게 미축은 누이를 부인으로 바치고 종과 식객 이천, 금은과 재물을 내어 군자를 도왔고, 곤궁하던 유비는 이로써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 뒤 조조는 표를 올려 태산군의 다섯 현을 떼어 영군을 두고, 「편장군 미축은 평소 충성스럽고 곧으며 문무가 밝게 빛난다」며 그에게 영군태수를 맡겼습니다. 아우 미방은 팽성상이 되었으나, 형제는 모두 벼슬을 버리고 유비를 따라 떠돌았습니다. 건안 6년(201) 유비가 형주로 가려 할 때 미축이 먼저 가서 유표와 뜻을 통했고, 유비는 그를 좌장군종사중랑으로 삼았습니다. 간옹전은 형주에서 간옹이 미축 · 손건과 함께 종사중랑으로 늘 말벗이 되고 사신으로 오갔다고 적습니다.
건안 19년(214) 익주가 평정되자 미축은 안한장군이 되었고, 그 반열은 군사장군 제갈량보다 위였습니다. 선주전은 이때 허정 · 미축 · 간옹을 유비의 빈우(손님이자 벗)로 꼽고, 손건전은 손건이 받은 예우가 미축 다음이었다고 적습니다. 미축은 점잖고 도타웠으나 일을 맡아 다루는 재간은 그의 장기가 아니어서, 유비는 그를 귀한 손님의 예로 대할 뿐 군사를 거느리게 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상과 총애는 누구도 견줄 이가 없었습니다.
건안 24년(219) 남군태수로 관우와 함께 일하던 아우 미방이 두 마음을 품고 손권을 맞아들였고, 이 일로 관우는 무너졌습니다. 미축은 스스로 몸을 묶고 죄를 청했으나, 유비는 형제의 죄는 서로 미치지 않는다고 그를 달래고 처음처럼 높이 대우했습니다. 미축은 부끄러움과 분함으로 병을 얻어 한 해 남짓 만에 죽었는데, 장무 원년(221) 봄 태부 허정 · 군사장군 제갈량 등과 함께 유비에게 제위에 오르라고 글을 올린 이들 가운데 그의 이름이 보이니 그해의 일입니다. 아들 미위는 호분중랑장에, 손자 미조는 호기감에 이르렀고, 미축부터 미조까지 모두 말 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다고 합니다.
진수는 평에서 미축 · 손건 · 간옹 · 이적이 모두 점잖은 풍모와 의논으로 세상에서 예우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麋竺、孫乾、簡雍、伊藉,皆雍容風議,見禮于世竺雍容敦雅,而干翮非所長。是以待之以上賓之禮,未嘗有所統御『삼국연의』 제11~80회
연의에서 미축은 제11회에 처음 나옵니다. 동해 구현 사람으로 집안이 대대로 부유했는데, 낙양에서 장사하고 돌아오던 길에 수레를 내어 준 아름다운 부인이 자신은 남방의 화덕성군으로 상제의 명을 받아 그의 집을 태우러 간다며 밤에 불이 날 것을 알려 주고, 미축은 재물을 옮겨 두어 화를 피한 뒤 집안의 재물을 널리 풀어 가난한 이들을 구했다고 소개됩니다. 도겸의 별가종사로 조조에게 에워싸인 서주를 구하려 북해의 공융에게 구원을 청하러 가고, 유비가 오자 도겸의 명으로 서주의 인수를 가져다 넘기려 하며, 「한실이 기울고 온 나라가 뒤집혔으니 공을 세울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권합니다. 제12회에서 도겸은 죽기 전에 미축에게 유비를 잘 섬기라고 이르고, 유비는 서주를 맡으며 손건 · 미축을 보좌로 삼습니다.
제13회에서는 서주로 몸을 의탁해 온 여포를 호랑이와 이리 같은 무리라며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고, 제14회에서는 원술을 치라는 조서를 조조의 꾀라고 짚습니다. 제18회에서 연의는 미축에게 누이가 있어 유비의 둘째 부인이 되었다고 소개하고, 제19회에서 여포가 소패에 들어오자 유비의 처자를 해치지 말라고 설득해 서주로 데려가며, 뒤에 성루에 올라 여포를 들이지 않고 「진규는 내가 이미 죽였다」고 둘러댑니다. 제28회에서는 아우 미방과 함께 고성의 장비를 찾아와 다시 모이고, 제35회에서 사마휘는 손건 · 미축의 무리를 세상을 다스릴 재주가 없는 백면서생이라 평합니다.
제41회 장판에서 미축은 조인의 부장 순우도에게 사로잡혔다가 조운에게 구해지고, 조운은 그에게 감부인을 모시고 먼저 가라고 합니다. 누이 미부인은 이 싸움에서 아두를 조운에게 맡기고 마른 우물에 몸을 던집니다. 제45회에서는 강동의 주유에게 사신으로 가 제갈량의 소식을 살피고, 제56회에서도 사신으로 주유를 맞습니다. 제63회에서는 문관으로 관우와 함께 형주에 남고, 제80회에서 안한장군으로 유비에게 제위에 오르라고 권하는 무리에 섭니다. 연의에서 미축이 나오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아우의 배반에 대한 그의 반응이나 죽음은 그리지 않습니다.
역사 연대표에서 이 사람이 서는 일입니다. 딱지는 그 일이 정사와 연의에 어떻게 적혔는지를 뜻합니다.
누이(유비의 부인) · 아우 미방 · 아들 미위 · 손자 미조
이 무장이 게임 안에서 실제로 하는 말입니다.
가진 것을 다 걸었소.
미자중이오. 셈은 정확하게 합시다.
장사꾼의 말이라 얕보지 마시오.
…가산으로도 못 메우는 것이 있구려.
이 판은 셈이 맞지 않소.
사람에게 거는 것이 가장 남는 장사요.
…아우의 일이 모두 내 탓이오.
쓴 값을 오늘 거두었소.
…아우의 낯이 떠오르는구려.
아우의 죄가… 나를 태운다.